범인 잡으려는 함정수사 불법일까, 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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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네 이야기

2011. 3. 21.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비 오는 날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여경이 직접 비 오는 날 밤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으슥한 길을 걷습니다. 연쇄살인범으로 하여금 살인을 유도해 범행에 착수하는 순간 범인을 잡으려는 것입니다. 뮤지컬 ‘살인마 잭’에서도 잭을 잡기 위해 경찰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에게 접근하여 그와 손을 잡기도 하는데요. 이와 같이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에서는 함정수사를 통해 범인을 잡으려는 시도가 자주 보여지는데요. 아마도 관객의 입장에서 ‘범인이 함정에 걸려들까, 걸려들지 않을까?’에 대한 긴장감을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처럼 ‘미리 만들어 놓은 함정에 걸려들게 하여 범인을 잡는’ 방법이 과연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범인을 속여서 체포하는 과정이 과연 법적으로 정당한 것일까요?

 

 

 


▲비 오는 날의 함정수사 ⓒ 영화 <살인의 추억>

 


함정수사, 불법일까 합법일까?

 


함정수사는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이 범죄를 교사한 후 실제로 범죄를 저지를 것을 기다려 범인을 체포하는 수사방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 절도범을 잡기 위해 범행이 자주 발생하는 곳에 자전거를 가져다 놓은 다음 범인이 자전거를 훔치는 순간 체포하는 방법과 같은 것인데요.


함정수사는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회제공형’은 언제라도 기회만 있으면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가지고 있는 범인에게 단순히 범행을 할 기회만을 준 경우를 말합니다. 이에 반해 ‘범의유발형’이란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데도 말이나 행동 등으로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여 범행을 하는 순간 체포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자(기회제공형)의 경우에는 이미 범행을 저지르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범행의 기회를 주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것에 불과하므로 적법한 수사방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사례에서 보면 비오는 날 빨간 색 옷을 입고 길을 걷는다고 해서 살인하도록 교사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후자(범의유발형)의 경우에는 범죄를 저지를 마음조차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마음을 먹게 하여 범행을 하면 체포하는 것이므로 위법한 수사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판례도 다음의 사례에서 보듯이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위법한 수사방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하게 하여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하다.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당 범죄의 종류와 성질, 유인자의 지위와 역할, 유인의 경위와 방법, 유인에 따른 피유인자의 반응, 피유인자의 처벌 전력 및 유인행위 자체의 위법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인자가 피유인자와의 개인적인 친밀관계를 이용하여 피유인자의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적·심리적 압박이나 위협 등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거나, 또는 범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범행에 사용될 금전까지 제공하는 등으로 과도하게 개입함으로써 피유인자로 하여금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지만, 유인자가 수사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피유인자를 상대로 단순히 수차례 반복적으로 범행을 부탁하였을 뿐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는 경우는, 설령 그로 인하여 피유인자의 범의가 유발되었다 하더라도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6도2339 판결 등)

 

 

함정수사를 둘러싼 두 가지 판단

 

 

 


함정수사는 범인이 처음부터 범행의 의사가 있었는지 등 주로 범인의 심리상태에 따라 적법 여부가 결정되므로 판단이 쉽지 않은데요. 다음의 두 사례에서도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고 합니다.


얼마 전, 불법 PC도박장에 위장 잠입하여 사이버 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한 PC방 업주를 체포한 일이 있었는데요. 법원은 이 함정수사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업주가 사이버머니 환전을 해줄 수 없다고 수차례 거절했지만 손님으로 위장한 경찰이 집요하게 환전을 요구했고, 이런 정황을 보면 신씨는 환전 알선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고 의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PC방 사장은 다만, 사이버 도박을 할 수 있는 PC방을 운영한 혐의(도박장 개장)는 인정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법원 “함정수사로 인한 위법은 무죄” | 국민일보 2011.1.14.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534557&cp=nv

 

 

손님으로 위장해 성매매 단속을 벌인 건 함정수사가 아닌 정당한 수사라는 법원 판단도 있었습니다. 서울 강북경찰서 소속인 한 경찰관이 2009년 3월 한 여관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손님으로 위장해 여관을 방문했고, 여관 운영자에게 화대를 낸 뒤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이에 여관 운영자는 성매매 여성을 불러 방으로 들여보냈고, 근처에서 잠복하던 다른 경찰관들은 여관으로 들어가 그 현장을 포착하여 여관 운영자를 체포했습니다.

 

그는 성매매알선 등 혐의로 입건됐고, 여관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숙박자에게 성매매알선을 해 공중위생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합니다.

 

 

법원 "'손님위장' 성매매 단속, 함정수사 아니다" | 아시아경제 2010. 5. 13.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51309285377099

 

 


함정수사 실제로는 적법한 수사방법인 경우가 대부분


함정수사는 적재적소에 이용하면 매우 효과적인 수사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마약이나 조직범죄와 같이 극히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범죄를 수사하는 데에는 어쩌면 필요불가결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범죄와 맞서다 보면 함정수사의 유혹도 있을 법한데요. 수사기관에서는 혹시라도 한도를 넘어서 불필요한 범죄를 유도하거나 무고한 국민을 만들지 않도록 잘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적절한 함정수사를 통해 감히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정의 앞에 모두 무릎 꿇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글 = 이상진 기자
살인의 추억 캡쳐 = 네이버 영화검색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