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청소년의 사회복지사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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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꿈꾸는 사람들

2011. 12. 4.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출과 비행을 일삼다가

끝내 사고를 저질러 보호관찰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나의 생활은 변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과 담배를 하고, 힘이 약한 아이들의 돈을 뺏으며 살아왔다.

새벽까지 놀다 도둑고양이처럼 집에 몰래 들어와 잠을 자고

오후 늦게 일어나 다시 놀러다니고... 매일 그런 삶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보호관찰기간 두 달을 남겨놓고

보호관찰소 담당 선생님께서 ‘지금 학교를 잘 나가냐?’고 전화로 물어보셨다.

나는 망설이다가 ‘안 간다.’고 대답하자, 법원 판결문을 읽어 주면서

보호관찰 6개월을 선고받고 풀려난 이유는

학교에 복학해 열심히 다니는 조건으로 판사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학교를 안 가면 다시 소년원밖에 갈 곳이 없다고 말씀하였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다가 보호관찰 선생님께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방법이 있다면서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여 수강증을 제출하면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버지, 고모와 함께 00 검정고시 학원 대입반에 접수하게 되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학원비 완납이 어렵다는 사정을 학원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원장님께서 그럼 법무보호복지공단 순천지소(다산청소년의 집)이라는 곳을 가보라며

소개를 해주셨다.

 

난 집에 와서 생각했다.

그런 곳에 가봤자 달라질 게 하나도 없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고모께 그런 곳에 들어가기 싫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와 고모는 그 곳에 들어가 학원비도 지원받고

이제까지의 잘못된 환경과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라며

“다산청소년의 집”에서 생활을 하라 하셨다.

 

 

■ 새로운 곳에서의 힘들고 낯선 생활...

 

일단 소년원 문제도 있어서 조금만 참다가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생활을 하다 보니

여기 들어오기 전에 나의 생활과 정반대 생활을 하게 되었다.

들어온 후 일주일 정도는 적응을 못 해 다시 나가고 싶은 충동만 생겼다.

 

아침 7시에 일어나 7시 30분에 밥을 먹고 9시에 학원을 가며

외출 허락을 받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저녁 10시 이후부터는 컴퓨터와 이별을 해야 한다.

11시부터는 무조건 잠을 자야 했다.

 

그런 생활에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매사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벽만 바라보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때 계장님의 한마디

“놓이는 곳에 놓였을 때가 아름답지 않니?

비록 가족과 떨어져 있지만

네가 선택한 자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길러라.”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학원 가는 것도 재미있고, 점점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만 형식적으로 가끔 봉사활동을 해봤지만

여기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활동이나 등산을 가는데,

이것 또한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아버지께서 산에 가자고 말씀하셔도 안가 던 내가 여기서는 규칙상 가게 되었다.

 

그러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식구 중에 제일 게으른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학원에 가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주말이면 산이나 봉사활동을 가는 날에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안 간다고 짜증내고 그럴 때마다

다산청소년의 집 담당 계장님께서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서 쉽게 나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기왕 봉사활동하기로 결정을 했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처음부터 안 하려면 시작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억지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덤벙대고 짜증내고 숨어있고 그랬지만

그런 부분을 보고도 지적을 하지 않고 계장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셨다.

 

다산의 다른 아이들과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투르지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게 되었고

흐르는 땀방울에서 철부지였던 내가 남에게 사랑과 봉사를 실천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아름다운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내 자신인데

이곳 다산청소년의 집에 입소하여 반복 학습의 결과가

나 자신을 변화시켰던 시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 내게도 인생의 전환점과 삶의 목표가 생겼다!

 

돌이켜 생각해 보지만 봉사활동은 작은 시발점이라 할 수 있겠다.

환경과 습관을 교정하여 미래주인공으로 성장시키려는

한국법무부보호복지공단 순천지소(다산청소년의 집)에 입소함으로써

인생의 전환점과 삶의 목표가 생겼으며,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고 후회하지 않은 삶을 위해

규칙을 잘 따르고 솔선수범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길러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계기라 할 수 있다.

다산청소년의 집에 계시는 소장님을 비롯한 계장님

그리고 주임선생님은 착하시고 부모님같이 잘 지도해주셨다. 

 

 

한 발짝도 걷기 싫어 돈 있으면 택시타고

사정이 좋지 못하면 길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훔쳐서 타고 다니던 내가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다산 청소년의집에서 실시하는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500km 청소년 남도순례대행진과 한지공예 만들기, 사회봉사활동, 검정고시,

성격유형검사, 웃음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여

과격함과 충동성을 억제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이해심 그리고 리더십 등을 배우게 되었다.

 

다산 청소년의 집에 함께 생활하면서 사귀게 된 친구들과 동생들이 있어서

무엇을 하던지 힘이 되었으며 하면 된다는 자심감이 생겼고

앞서 간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행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줄곧 하기도 했다.

 

 

■ 하지만, 고비가 찾아오고...

 

그러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일이 없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

검정고시 시험 두 번의 낙방이 또 비행으로 몰고 갔다.

기간도 되었고 집에서 생활하며 학원에 다니겠다고 계장님을 속이고

게임방에 취업했다.

 

그동안 느끼고 반성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돈을 벌어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을 하던 중, 주인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자

앙심을 품고 그날 저녁 친구들과 함께 금고를 털어

현금 300만 원 훔쳐 광주로 도망을 갔다.

 

 

 

광주에서 여관을 잡아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데

계장님께서 문자로 연락이 왔다.

8월 1일에 실시할 검정고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으니

열심히 공부해 합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고 고민을 하다 아버지의 권유로 자수를 했다.

 

 

 

아버지는 고모에게 빌려 훔친 300백만 원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선처를 바랐으나 법은 냉정했다.

 

며칠을 두문불출하다 다시 다산 청소년의 집을 찾아가 생활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하자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할 자신이 있으면 입소하고

예전처럼 적당히 하려면 안된다‘고 하셨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로서는 조건을 받아들였고,

다산 청소년의 집에서는 입소를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하지만 갈등의 연속이었다.

보호관찰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판이 열리면 십중팔구 소년원에 가야할 처지인데

하면 뭐하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계장님께서 주인과 합의도 했으니 네가 합격을 하면

판사님 바지를 잡아서라도 소년원 가는 것을 막아 보겠다고 하셨고,

함께 시작한 친구들과 다시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 했다.

 

그 결과 나를 비롯한 다산의 검정고시생 4명 중 3명의 친구가 합격했고

3명 모두 00대학 사회복지학과 1차 수시에 당당하게 합격을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계장님의 언변에 정말 놀랐다.

평소 광주가정지원 소년자원보호자로 활동하면서 안면을 익힌 판사님께

한 번만 기회를 주면 다시는 법정에 서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통 사정을 했다.

그리고 광주가정지원 소년부 심리결과 보호관찰 2년,

다산 청소년의 집 주거지제한 2년을 선고받고 대학생으로 출발할 수 있었고

새로운 나를 찾아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

 

무거운 짐을 지고 00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여

그동안 봉사활동의 경험을 살려 예비 사회복학도로서 병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며

또 다른 보람을 느끼게 되었고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학교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으며

그 결과 한지공예를 가르쳐주신 한지후원회장님의 추천으로 아산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 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은 영광을 얻고 처음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곰” 같은 계장님의 지도와 다산 청소년의 집 선생님들이 큰 도움을 받고

2년 8개월을 생활하고 군에 입대 할 때까지

여러 번의 실수를 딛고 일어서 지난날을 반성하며

새로운 나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산에 있는 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방황하고 비행을 하는 순간에는 좋지만

그 뒤에는 후회가 밀려오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방황하지 않고 학생 또는 청소년 신분에 맞게 학업에 충실히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네요.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학교를 2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난 후 휴학을 하고 2009년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군 생활이라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힘들게만 생각하고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다산 청소년의 집에서 생활했던 자체가 군 생활처럼 느껴졌다.

날이 가면 갈수록 군 생활에 적응을 잘했고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였다.

 

그래도 군 생활을 하면서 항상 힘든 순간이 많이 있었다.

그러던 도중 2010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지금은 소장님이 되신 서병용 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 한 통의 전화에 소장님께서는 많이 좋아하셨고

저에게 “군 생활 힘들지?” 라며

궁금했던 군생활의 질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답변해주시며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군 생활에 힘들었던 순간을 조금씩 이겨 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1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군 전역을 하게 되었고

오랜만에 다산 청소년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때 새로운 다산 청소년의 집에 있는 동생들을 보았다.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답변도 해주고 참 좋았다.

또 내가 답변해 주었던 게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아직은 미완이지만 그곳에 있는 다산의 친구들이 항상 열심히 하여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성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군 전역 후

간혹 다산을 들려 애들과 상담을 하고

2학기 복학을 하여 학교생활에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곳에서 지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순천지소(다산 청소년의 집)는

내 인생을 새롭게 탄생시켜 주었으며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여 과거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장래희망을 심어준 곳이다. 내 마음의 고향이다.

 

다산 청소년의 집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그 분,

호랑이 같으시면서 아버지처럼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어른이 모범이 되어야 된다는 사고로 우리를 지도해 주셨다.

특히 당뇨가 있으면서도 더위를 이겨내며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9박 10일 청소년 남도순례로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발가락에 염증이 생겼음에도 항생제 주사를 맞아가며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준 서병용 소장님.

 

참 모습과 봉사정신을 본받아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 봉사정신과 사명감이 투철한 사회복지사로 거듭날 것을

약속드린다.

 

제 인생에 꿈과 희망을 심어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순천지소(다산 청소년의 집) 서병용 소장님과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진= 알트이미지

 

 

이 글은 2011 출소자 자립성공 및 지원 우수사례 수기공모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수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람들 중에 약 1/4은 3년 내에

또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복역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연평균 수용자 수가 4만 8천여명에 달합니다. 이 중 1만 500여명(22.7%)이 3년 내에 재복역하는 인원입니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아직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재범방지 사업’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예방 사업’보다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수형자들의 건강한 사회복귀를 위해 취업 알선·기술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형자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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