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며 외치는 여자를 봤을 때,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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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꿈꾸는 사람들

2012. 7. 15.

 

며칠 전 버스 안에서 한 흑인여자가

할머니의 목을 누르고 주먹을 휘둘러 대며 욕을 퍼부었으나

버스 승객 중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것도 24세의 어린 흑인여자가

61세나 되는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폭행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할머니가 “니가 여기 (자리에) 앉아” 라고 한 말을

“니거(nigger-깜둥이)” 로 잘못 알아들어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읽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30년 전,

그러니까 내 나이 23살 청년시절 추억의 앨범을 되새겨 보면서

추억 속의 한 컷의 프레임으로 기억되는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 * *

 

나의 어머니는 전라남도 순천의 갑부 딸로써

산림청 공무원인 아버지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답니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내성적인 성격의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창시절 체질이 약골이다 보니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워낙 약골이라 태권도 1단까지 운동을 한 것이 전부였지만, 나자신을 보호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라북도 전주에서 시내버스로 한 시간 정도의 시외인 삼례에서

학창시절 친구를 만나고 전주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내가 버스에 승차했을 때에는 버스안의 빈 좌석은 없었으며 서서가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였습니다.

 

버스를 타고서 세 정거장 정도 갔을 때,

20대 중반쯤 되 보이는 남자가 버스에 승차를 했는데

술 냄새를 풍기며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버스 안에 서 있는 20대 초반 쯤 보이는 아가씨를 괴롭히자

이 아가씨가 놀라서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앉아있는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면해 버리고

도와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결국은 아가씨가 나를 붙잡으며 도와 달라고 내 뒤로 숨어들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얼마나 놀라고 있었는지 나를 잡고 있는 손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법은 성희롱의 죄를 적용하여 처벌을 쉽게 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의 법은 술 먹은 사람이 실수하는 정도의 사건으로 간주하는 정도였으며

재수 없이 아가씨가 걸려들었다는 정도의 생각이 다수였던 시대였습니다.

 

나의 성격은 학창시절 싸움을 걸어오면 타협점을 찾는 편이었으며 한마디로 말하면 ‘범생이’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회초리를 들고 단체 체벌을 가할 때는

선생님께 항의하여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 시시비비를 따지는 성격이었으며

꼭 이러한 방법으로 체벌을 가해야 하는지도 물어 타협점을 찾는 당찬 모습에

친구들이 내게 그러한 면이 있느냐고 놀라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놀란 아가씨가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도움을 청하는데

내 자존심이 가만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편으로는 술 냄새를 풍기며 정신병자처럼 행동하는

그 남자를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라있는 상태였습니다.

 

 

“야! 너 저리 꺼져 임마”

 

그 건달 같은 남자는 나를 흘려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큰소리로 말했지요.

 

“어디다가 행패를 부려. 새끼야 대낮부터 똥구멍으로 술을 쳐 먹었어?”

“아~ 형씨가 깡패구만”

 

그러자 그 건달 같은 남자가

그러면서 차 안에서 당장 한 판 싸워보자고 하면서 덤벼들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하지 말고 버스에서 내려서 한판 하자.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임마!”

 

내가 내리자고 한 곳은 제가 잘 아는 동네였습니다.

 

그 시대에 최고의 인기는 권투였습니다.

미국의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나비같이 날아 벌같이 쏘아 버리는 알 리가 순간,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세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요.

 

첫째 : 그래 태권도를 배웠으니 내 실력으로 실컷 알리처럼 두들겨 패줘야겠다.

둘째 : 과연 내가 배운 태권도로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았는데 이 친구를 이길 수 있을까?

셋째 : 알리도 그렇게 펀치가 강했지만 한 대도 안 맞고 챔피언 된 것은 아닌데 싸움을 했을 때

결과적으로 지서(지금은 파출소)에 갈수도 있겠다.

 

이런 세 가지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내가 내리자고 하는 목적지에 버스는 멈췄고

그 건달 남자와 내가 하차하려고 할 때, 그 아가씨도도 따라 내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아가씨에게 “아가씨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가세요” 하며 말리고선, 둘이 내렸습니다.

 

버스는 출발했고 많은 사람이 나를 존경하는 모습과

결과에 대한 궁금하다는 모습과 함께 버스 뒷 유리창 쪽으로 몰려와 보고 있었습니다.

 

 

 

버스는 코너 길을 돌아 사라졌을 때 나는 세 번째 생각을 순간 떠올리면서

‘그래,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맞지도 않고 승리하는 방법을 택하자’ 하고선

줄행랑을 쳤지요. 뒤를 돌아보니 술 먹었다는 놈 치고는 너무 잘 따라오는 거였습니다.

 

내가 길을 아는 동네라는 점과 며칠 전 큰 비가 와서 인지

담이 무너져 있었던 장애물을 이용하여 담 안과 바깥을 이동하면서

많은 움직임 속에서 결국은 그 건달남자를 따돌렸습니다.

 

한 대도 안 때리고 한 대도 안 맞고 깨끗이 해결하며 승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하였지만 현명한 판단이라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에 폭행을 당하고 있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도와주세요“ 라고 외쳐도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리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많이 봐왔습니다.

 

이 글을 접하는 여러분 이라면 어떤 길을 택하겠습니까. 외면하시겠습니까?

 

내 가족 내 형제가 또는 내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할 때를 생각하시어

내 생각의 세 번째를 참고하여 지혜롭게 잘 해결해 보시길 바랍니다.

난 이 추억 속 앨범의 프레임 한 컷을 기억하고, 추억을 곱씹으며 웃음꽃을 피워 본답니다.

 

사진= 알트이미지

글= 성동구치소 000

이 글은 ‘새길(통권 415호)’에 실린 내용을 편집·정리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람들 중에 약 1/4은 3년 내에

또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복역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연평균 수용자 수가 4만 8천여명에 달합니다. 이 중 1만 500여명(22.7%)이 3년 내에 재복역하는 인원입니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아직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재범방지 사업’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예방 사업’보다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수형자들의 건강한 사회복귀를 위해 취업 알선·기술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형자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법무부 따뜻한 법치 앱 로앤톡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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