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변의법칙12화] 합의서 작성하고 싸우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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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변의 법칙

2018. 5. 21.





 어른들이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다.” 라고 하는 말, 많이 들어보셨지요? 하지만 요즘엔 애들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고, 싸움 자체가 심해서 크게 다치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싸우는 것 자체가 학교폭력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니, 어떤 학생들은 싸우기 전에 사후 법적 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거나 치료비를 청구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하고 싸움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참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슬픈 이 시대의 단면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합의서를 작성하고 싸움을 시작하면 법적으로 아무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걸까요?

 

싸우기 전 합의서, 법률적 효력은?

예를 들어, 두 학생이 싸우기 전에, 싸우고 다치더라도 상대방을 고소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치료비 등을 청구하지 않는다. 라는 두 가지 조항에 대하여 합의했다고 해봅시다. ‘고소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은 형사적 처벌의 문제이고, ‘치료비 등을 청구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은 민사적 손해배상에 대한 문제입니다.






    

싸움은 형법적으로 보면 공격과 방어의 상호 연속으로 양 당사자 모두 폭행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다친다면 상해죄’, 심하게 사망에 이른다면 폭행치사또는 살인죄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싸움이 사전 합의가 있었다면, 범죄의 위법성 조각사유(범죄가 성립하지 않음)’가 되는 걸까요? 피해자는 합의서를 미리 써줬다고 해서 처벌불원의사(처벌을 원하지 않음)’로 보아 기소할 수 없게 되는 걸까요?


정당방위는 다들 잘 알고계시는 위법성 조각사유입니다. 부당한 법익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형법 제21조 제1). 마찬가지로 형법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 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마치, 피해자가 승낙한다면 피해자에게 범죄를 저질러도 위법이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정말 그럴까요?

하지만 판례는 이에,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의 승낙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 승낙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풀이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대법원 2008.12.11. 선고 20089606 판결). 다시 말해, 누군가의 승낙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윤리나 도덕에 어긋나는 승낙이라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체를 싸움에 내던지는 것은 자기스스로 내린 결정이라 할지라도, 싸움을 위하여 서로가 폭행에 대하여 승낙하는 것은 윤리적,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싸우기 전에 작성한 합의서가 법률적 쟁점을 막아주는 방패가 될 수 없습니다.

 




 

 

 

형법 제260조는 폭행죄에 대해서 규율하고 있는데요. 동조 제3항에서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규정합니다. 이를 반의사불벌죄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사전에 작성한 각서를 명시적인 처벌불원의사로 볼 수 있을까요?

 

폭행을 당하기 전에 내비친 의사를 그 후에도 그대로 유지한다면, 당연히 이것은 명시적 처벌불원의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다툼이 아닌, 폭행으로 인해 심하게 다친 경우는 당사자 간 합의가 있었어도 형사기관이 나서서 처벌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단순폭행과 달리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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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형벌권 행사에 관한 문제이므로 당사자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치료비와 같은 손해배상 문제는 민사상 문제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해결할 부분입니다. 싸우기 전에 다쳐서 치료비를 물지 않는다고 합의했고, 그 결과 서로 경미한 상처만 남아 그 합의에 따라 치료비 청구를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서서 치료비를 서로 배상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싸움의 결과 한쪽 당사자가 예상과 달리 심하게 다치거나 장해를 입어 엄청나게 치료비가 나온 경우에도 위 합의에 따라 치료비를 청구 할 수 없는 것일까요?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합니다. “싸운 결과 발생하는 치료비는 서로 청구하지 않는다.”고 각서를 쓴 것은 손해배상을 배제하는 일종의 계약이자 법률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각서는 싸우기 위한 것이므로 어떻게 보아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이므로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인 법률행위입니다. 각서의 효력이 없으므로 당연히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치료비를 청구하더라도 상대방은 이를 거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합의서를 작성한 후 하는 싸움은 사실, 아무런 법률적 효력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싸우기 전에 각서를 쓰는 것이나, ‘촉법소년이니 형사미성년자니 하면서 자신들은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걸 보면, 요즘 학생들은 법을 참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가끔 법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아니라, 법을 악용하여 법망을 피해 나쁜 짓을 일삼고, 법을 피해 죄값을 받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아서 몹시 안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법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올바른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어른들이 몫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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