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순정이 2008. 5. 11. 14:25

 

 정화수와 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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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편안히 잘 계시죠?
어제 저녁 어머니 기일엔 동생네에 가지도 않고 뒷문 열어젖히고 어머니 혼신 뿌려진 오색령
빨딱고개 방향.산맥이 장엄한 쪽을 향해 불효 딸... 재배만 올렸읍니다.
그래도 교회 초신자가 된지 얼마 안된 서투른 제 기도도 들으셨는지요.
한도 많고 그 한 만큼이나 강하셨던 당신...
어머니!!.. 56년도였을거예요
39세 꽃다운 젊음에 남편을 연하의 새 여인에게 내어주고 밀려나시고 말았을때
저는그때 어렸지만 어머니의 피를 토해내듯하던 분노 배신앞에 오열하며 돌덩이처럼 굳어가던
어머님의 한숨 눈물을 아무 말없이 지켜보기만했읍니다.
아버지는 경찰 고위공직자인 경무주임으로 우리는 관사에서 살고 나는 아버지 아침 조회땐 사무실
한켠에서 자랑스러웠던 아버지를 지켜볼 수 있어 너무 행복했지요.
조회가 끝날때면 식순에 경찰가를 부르면 그때를 기다렸다는듯이 뒷켠에서 목청 돋궈 같이 불러뎄지요
♪♬영광과 의무를 어깨에 메고 이땅에 굳게섰다아~ 민주경찰♩♩....
아마 마지막 소절이었던겄같읍니다.

 
화천에서 고성으로 부임하시고 저택이 정해지면 가족을 데리러 온다던 아버지는 연락이없어 고성으로
찾아왔을땐 다른 여인과 신접을 차리고 있었지요.
평소에는 어머닌 아버지를 뻐어난 호남이라고 자찬하셨는데...
하지만 어머니 현실앞엔 우선 먹고살 걱정이 직격탄이었읍니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이 오기 어린 분노만을 가지고 어린 남매중 동생만 데리고 떠나섰지요.
그후 6개월을 서모밑에서 못버틴 나는 아버지를 졸라 어머니와의 동거에 결정을 받아내었읍니다.
"아버지 ~저쪽 자루 쌀을 주세요"
내방 윗목엔 풀지도않은 국방색 대마자루와 헐어놓은 광목자루에 쌀이 있었읍니다.
"응 그래라"
"그쌀이 3말은 넘을 텐데 네가 힘들어 다못가져간다"
자루를들고 덜어 떠 내실 양이었읍니다.
"아니예요 다가져갈 수 있어요"
울먹이며 필사적으로 자루를 안고 조그만 몸으로 막아 덮었읍니다.
어머니와 동생은 먹을 것이없어 기진맥진한 것만같았읍니다.

순경아저씨한분은 동행해서 쌀자루를 버스에 올려주고 돌아가고 아버지는 조개비만한 딸의 손을잡았읍니다.그래도 아버지의 손은 따뜻했읍니다.

버스에 올라 기사 아저씨에게 양양의 지명을 일러주고 내려가서  뻘건눈에 눈물을 마구 토해내었읍니다.

나는 얼른 얼굴을 돌리고 아버지는 마땅히 눈물의 댓가로 마음아파야 한다고 생각했읍니다.

오직 이 쌀자루만을 지키면 되는것입니다.

동해상사 버스에 태워져 이제부터 지나치는 지명 이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읍니다.

천진리 속초읍 대포리 낙산사 조산리....
기사님에게 양양이 지나지는 않았느냐고 자꾸 묻다가 호통을 당하기도 했읍니다.
드디어 양양이라는지명이 있는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읍니다.
광목자루 동여메어진 목아지를 잡고 그만 울어버렸읍니다.
"우리 어머니가 여기 산단 말이예요"
뒤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정거장에가서 내려 줄테니 염려말라고 일러 주었지요.
양양이란 곳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이곳 경찰서에 당신 동기되시는 분에게 경비전화로 연락을 하였는지
그분이 정거장에 저를 데리러 나와 어머니게 데려다 주셨지요.
낯선 이웃분들이 나를 구경와서 어린것이 쌀 3말을 어떻게 가져왔느냐고 혀를 내두르셨어요.
하루 아침에 경무주임의 사모님에서... 아들 딸에서...

가진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당신 지혜로 이곳이(양양군) 그맘때 철광지로 개발되어서 장사라도 해서
먹고사는데는 유리하지않을까...
그렇게 해서 보따리를 꾸려 고성군에서 양양군으로 오게되었지요.
어머니 처음 생활전선에 뛰어드셔 하신 장사 기억하세요?
계란 장사였지요.
퇴화옥 문화옥 유정집....큰 식당에만 대어 주셨답니다.
함석으로 만든 큰 다라이을 머리에 이고 농가로 다니셨어요.
난 뻘겋게 녹슨 함석을 아궁이만 네모나게 잘라낸 화덕에 나무를 떼고 밥을 짖는것을 시작했읍니다.
그때가 제나이 열살때 주방장이로 입문이 시작되었지요.
이곳엔 겨울이면 예나 지금이나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장사가신 어머니가 눈길이 막혀 돌아오지
못하면 부억 아궁이 젖은 나무는 연기가 거꾸로 나와 군불도 포기하고 말았지요
아침에 얼어붙어 돌떵이가 된밥..... 밥은 얼면 그리도 하얗던지요....
아무리 앞니로 할키고 긁어도 밥알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도 않아 남매는 포기하고학교로 가는 수
밖에 없었읍니다.

계란을 거두어 톱밥으로 깨지지않게 켜켜히 담아 시골 뻐스에 힘껏 들어올리며 내리며 집으로 향해
목이 불어지게 머리에 이고 하꼬방 우리집으로 와서 깨진게 없나 확인하시면 비포장 길 시골길에
얼마나 덜커덩거리며 왔는데 불상사가 없을리가없지요.
우리 남매는 그때 그 영양가있는 계란.
톱밥이 묻지않게 조심히 떠주시는 깨진 께란을 좋아라 홀짝거리며 먹어주었읍니다.
깨어진 계란 하나도 당신 입에는 넣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장사를 하시던 어느날 .
학교에만 있는 전화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답니다 .
그때 예쁜 우리 담임 선생님이 저를 교무실로 부르셨읍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것이었읍니다.
내가 4학년 남동생은 1학년이었읍니다.
계란 거두어 오시다가 미랑고개라는 말량에서 뻐스가 전복되어 많은 사상자가 났읍니다.
그 병원집 따님이 우리 담임 김용광선생님이셨읍니다.
선생님 손을 꼭잡고 어머니를 보러 병실에 들어서니 외마디소리가 지천이고
어머닌 이마에서부터 머리전체를 붕대로 감고 계셨는데 어린 마음에 무서워 보기싫기도 했읍니다.
다행이 골절상은 없고 이마에서부터 머리 뒤통수까지 찢어진 찰과상인데 구급대원이 있는 세월도
아니니 논밭에 일하던 주민들이 달려와서 구조 될때까지 출혈을 많이 하셨다는것입니다.
눈도 얼굴도 많이 부어 그때는 걱정보다 정말 무서웠읍니다.
집을 지척에두고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니는 어린 남매때문에 붕대위로 피 눈물을 쏟아내시었읍니다.
난 당신 손을 꼭 잡기만 했읍니다.
내가 눈물을 어머니앞에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읍니다.
동생은 어머니를 보자 튀어나가 병실 밖에 나와 제가 팔뚝지를 당겨메도 끌려오지 않았읍니다.
당신은 연신 어린 아들을 찾기를 했읍니다.
객지라 우리에겐 아무도 찾아오지않는 병실....

그날 저녁 우리집 널판지 쭉데기로 지은 하꼬방집은 정말 들어가기싫었읍니다.
마당도 손바닥만한것이...
옆집이 자기네 땅 경계되로 울을 한다고 목제소 쭉데기로 막아서 방문을 열면 닿을 정도였읍니다.
방하나 부엌하나엔 쥐구멍도 많아 붕근넘어 산밤 송이를 주어서 쥐구멍에 아무리 쑤셔넣어도
비웃듯 뚫어내는..그때우리집 쥐들은 독종중에 독종이었는지요.....ㅎㅎ
캄캄해도 한참을 방안에 쭈구리고 않아있었읍니다.
석유 호야를 조심히 닦아서 불을 켜서 식은밥.. 동생을 먹였더니 금방 잠들었지요.
그밤 난 정말 잠을 이룰 수 가없었읍니다.
아까 병원에서의 어머니 모습이 닥아와 자꾸 울었읍니다.
그런데 순간 이렇게 울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문앞에 장독두껑을 물로 깨끗이 닦아놓고 그위에 물 한대접을 놓는 정한수 생각이 났읍니다.
소중이 물한사발을 두손들어 올려놓고나니 무언가 너무 성의 없어 보였읍니다.
부엌에 사과 괘짝 찬장 포장을 들고 봐도 딱히 놓을게 없었는데
깨끗한 고추장 종지에 시선이 멎었읍니다.
아~ 이거다!!
난 장똑 뚜껑위에 물 한사발과 고추장 종지를 놓고 엎들여 절을 수 없이하였읍니다.
얼마큼인가 다리가 너무 아파. 않아서 이젠 산신령님을 찾기로 했읍니다.
그때 들은 풍얼은 산신령이 최고 우상이라고 생각했던겄같았읍니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우리 어머니를 빨리낳게해주세요"
"그저 그저 그저 그저 그저........."
"산신령님! 우리어머니를 빨리 낳게해주세요 그저 그저..........."
이 주문을 그저 반복하고 있었읍니다.
그때 뒤에서 나즈막히
"순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읍니다.
어머니가 병원 담요를 뒤집어 쓰시고 아까보다 더부은 손등 얼굴로 서있는 것입니다.
밤에 보는 머리붕대는 더 희어보였읍니다.
병원 사람들이 잠들자 집이 걱정이되셔서 잠깐 탈출을 하신것이었읍니다.
이광경을 보신 어머닌 내손을 꼭 잡고 한동안 무언으로 그 물그릇과 고추장 종지를
물끄럼이 보시다가 방에 자는 동생을 어루만지시고 다시 병원으로 가셨지요.
난 지금도 그 "정한수 물사발과 고추장 종지"를 잊을 수 없읍니다.
고추장 종지만 빼면 그냥 "정한수"가 되는것을....


어머니!!!
힘들고 지칠때 불러보는 가장 따스한 이름.....
살아계셨으면 제 아픔을 저보다 더 갑절 아파하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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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가슴이 아파
그냥 눈물만 흘리다가 갑니다.
님...................
지금은 잘 사시겠네요
그러리라 믿으며 눈물 닦아 봅니다.
아파여<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28.gif" value="~" /><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28.gif" value="~" /><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28.gif" value="~" />

어머니에 대한 글을 보니
가슴이 아려오구...

순정이님 힘내세여...<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cafe2/bbs/ttc/8.gif" value="파이팅" /><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28.gif" value="~" /><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54.gif" value="!" /><img src="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54.gif" value="!" />
노을이두 엄마만 생각하면 늘 가슴 어려옵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시절은 참 어렵고 고난의 세월이셨어요.
살만 하니까 이 세상에 안계시고..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 생각할 때마다 눈물짓게 돼요.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네요. 차마 그냥 읽기에 너무 아픈 추억이...
옛날엔 왜 이리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두 집살림을 하던 잘난(?) 남자들이 많았는지?
힘들거나 기쁠 때, 어머님이 제일 생각도 나고, 보고싶겠네요?
가슴아려 오는군요..

살아계신 어머님께 잘해 드려야겠습니다
돌아가신후에 마음 아프기보다..
순정이님..가슴 아픈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리고 순정이님도 동생분도..
이제는 행복한 일들만 있으시겠지요?
꼭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52년전 이야기
얼마나 아프셨으면
이리 생생하게 .

나와 동갑이군요 .
동병 상련을 ,,,,

아프고 아프고 ..
참 아픈시절이 ...
이제 어머님을 가슴에 묻고 담담하게 아픔도 받아들이고 이렇게 글로 쓸수 있을 만큼 많은 시간들이 지나갔군요 어머니의 한이 자식의 슬픔이라기보단 가슴에 멈춘 어머니의 자화상 같은것이겠지요 ..... 이제 어머니만큼 커진 마음을 가지시고 어머니가 아팠던 만큼 넓고 큰 마음이 행복이 되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구여.....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정에..
눈시울이 붉어지려 합니다.

아버님께서는 한 가장이기에 앞서 공직자로서의 본분에 문제가 있었군요.
그러면서도 용케도 공직생활을 하셨네요.

지나간 일이라지만
세상 살아가는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저도.. 한때~
속초에서 지낸적이 있습니다.
물론 양양에도 많이 왕래 했었고요
양양 군청 입구에 있는 막국수 먹으로 많이 갔었습니다.
벌써~ 25년이나 흘렀지만
그곳에 대한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항상~ 행복한 가정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님은 516군사혁명때 울진 경찰서장으로 재직다가 축첩 관계로 파면을 당하셨지요.
한번 막국수 드시러 오셔야겠네요ㅎㅎ
양양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니 더욱 반갑습니;다
건강히 잘 지네세요^^*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글을 접하고 가슴이 아려옵니다...그어린 나이에 엄나와 동생 이 굶고만 있을것 같아 그 무거운 쌀3말을.... 거기다 어머니께서 또....어린 나이에 가슴메여오는 아픈 고생을.... 나이가 더 해 갈수록 어머님이 더 그리워지시겠네요~~저도 강원도 출신아라 .... 아무튼 좋은 날 많이 있으시길 빌며 늘 건강하세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강원도 출신이라고 하시니 더 반갑네요. 건강하세요^^*
철이 없다면 없을 나이에...
눈앞의 현실은 ...
굶고잇을 어머니와 동생을 외면할수없어
쌀 세말을 지고가야했을 영악한 마음이 가슴아픕니다....
오랫만에...울어봤읍니다...
오기하나는 잇어서 ...좀체로 울지않는...
아니 눈물조차 메말러서 나오지 않는 눈물이 나더이다....
오랫만에 남을 위해 흘린 눈물...
이젠 행복하세요....^^
님의 눈물에 저도 따라울었읍니다.
미천한글에 흔적주시어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어머니...
자꾸만 불러 보고픈 단어지요.
마음이 아팠어요.
원망은 뒤에 두고 어머니 그리는 맘이 아퍼요.
어린 두 남매는 어머니의 사랑속에서 ...
지금은 행복해 보이시네요.
어머니가 절절이 그립습니다.
지금은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그이름 만으로도 가슴 아픕니다.
글을 읽으며,,, 어느샌가 제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구요.
다행히,, 수술하러 들어가셔서 들키지 않았네요....
무슨말을 해야할지,,,,,,,음........
와이팅!!아자아자!!!
수술 잘 되실꺼예요.

저의 어머니는 저가네살때 부엌문앞에서 같이서
마주보왓던기엌밖에 않나는구려
감명있는글 감사합니다
아~ 쑤가쑤가 이럴 수가?
파란만장 눈물고개 사연..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려 읽다가 율고 울다가
또다시 읽느라 쌀 서말이
다새나가는줄도 몰랐네라. ㅠㅠ

나도 정서적으로는 어머님 그리고
그 어린딸 순정이같은 사람만보면
괜스레 가여워서 콧등이 시큰시큰..

어머님 몫까지 열심히 사셔아겠쥬?

부디부디 오래오래 무사무탈 무병
건강하기를 정화수 떠놓고 빌겠스. _()_*
눈물이 핑 도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