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기행

    아티스트 2011. 7. 1. 10:50

    <특별 기고> 김은진 여남고등학교 교사·이뉴스피플 시민기자
    여수 금오도의 천국 같은 나날들
    지척에 교무실-텃밭-천연잔디운동장…완전 좋아
    지적장애 딸아이 좋아지는 모습에 저절로 “감사”
    “이 섬이 우리에게 준 행복 꼭 갚아야지” 날마다 다짐
    입력시간 : 2011. 06.30. 11:56


    여수시 금오도(金鰲島)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학교폭력예방연구학교를 진행하면서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과 함께 주말을 이용, ‘사제동행 체험활동’이라는 교육프로그램으로 방문 한 것이 처음이었다. 여수 중앙동 여객선터미널에서 철부선으로 약 1시간 걸려 도착해 1박 2일 동안 머물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는 지금처럼 ‘비렁길’이 유명하지 않았기에 생태 탐방로보다는 옥녀봉 등반, 새벽 일출 보기, 바다낚시 등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의 성장통이 잠시라도 잠재워지는 듯한 모습에 마음이 훈훈했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에게 금오도란 아름다운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교육의 요람처럼 초·중·고등학교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도 특색이었고,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천연잔디운동장이 더욱 그랬다. “이런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심리를 자극할 정도였다. 그 기대를 실행에 옮기려 했으나, 여러 여건이 겹치면서 그냥 그렇게 묻혀갔다.


    그 동안 나는 평준화 일반고등학교에서 입시 전쟁을 치르는 고3 학생들과 함께 전투적으로 주말도 잊어가며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쉼이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였다. 이런 기계적인 삶에 ‘한 가정의 엄마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있는 자식들에게 모든 면에서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문득 스쳐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낭만적인 섬 금오도였다. 인사 내신 서열에서 불리함도 있었지만, 오히려 온 가족이 이주해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했다. 교장선생님 이하 여러분들의 배려로 살림하기에 충분한 관사가 마련되어, 앞마당의 텃밭에서 야채들을 직접 만질 수 있었고, 지척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천연잔디운동장이 넓은 가슴을 열어주고 반긴다. 특히, 10m 거리에 교무실이 있어, 그동안 출퇴근으로 도로위에 버렸던 시간들을 여기선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나는 지적장애 2급인 중학교 2학년인 설아와 초등학교 2학년인 자연이를 슬하에 두고 있다. 그랬기에 가슴을 펼 수 있는 금오도를 원했는지 모른다. 전학 문제도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고, 가장 걱정했던 큰아이의 적응 문제가 하늘에서 돕기라도 한 듯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배려 속에 잘 해결되어 하루하루 조금씩 변화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점이 그 무엇보다 감사했다. 도시생활 속에서 부모의 삶 때문에 빼앗겼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아이들이 마음껏 누리는 것이 눈에 확연히 들어옴을 느낀다. 집에 다녀간 또래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흔적에서 창의성을 발견하고, 늘 뛰는 것을 자제해야 했던 아파트 생활에 비해 모든 게 정원이고 운동장인 이곳의 환경에 아이들은 삶의 초점을 바로잡아가고 있었다.

    우리 작은아이 자연이의 일기장에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자취가 묻어난다. 불과 지난 2월만 해도 엄마의 강요에 의해서 서너 줄 쓰던 일기는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 스토리를 엮어가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어린 나이에 놀라울 정도로 문장력이 돋보인다. <바다를 아름답게 빛내는 해님, 비가 놀러왔다, 밤에 바람이 쌩쌩 불었다, 세상을 비춰주는 태양, 봄바람을 따스하게 해주는 햇살> 등은 자체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또 만화, 동화 등을 구성해내는 능력이 자연에서 접한 내용과 접목되어 주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얼마나 이 섬에서 생활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이곳으로 결정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고, 행복하다.

    장애를 겪고 있는 큰딸 설아는 내게 참으로 많은 슬픔과 눈물을 주었다. 태어난 지 19개월 때 장애 판정을 받은 큰딸은 전국의 유명한 병원과 좋다는 치료약재들, 심지어 무속신앙에 까지 의지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했다. 다른 모든 장애아를 둔 부모와 가족들의 모습이 그랬을 것이다. 16년이나 된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장애를 숨기지 않고 공개해 정상인들 속으로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잘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는 통합학급 속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6년을 보냈고, 중학교는 고심한 끝에 특수학교인 여명학교에 입학시켰다. 그건 내가 학교에 근무하는 관계로 공부에 바쁜 학생들에게 설아가 민폐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둘째 자연이가 한번은 “우리 언니가 장애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누군가로부터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기에 그런 표현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지만, 그 마음을 삼키며 “언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며 “장애우 가족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장애인으로 살면서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는 모범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 이해하는 듯한 말로 엄마인 나를 오히려 위로하려는 섬세함을 보인다. 세상을 알기도 전부터 배려와 나눔에 익숙해진 둘째 자연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모든 것들은 오랜 시간을 통해 익숙해졌지만, 순간순간 딜레마에 빠질 때도 많다.

    아이들의 아빠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등의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아픔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는 세상의 것들보다는 특수교육과 사회복지 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장애우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런 일이 무척 행복하단다. 섬으로 가족이 이주하면서 출퇴근이 어려워 주말에 들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나, 늘 옆에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긴 시간의 아픔과 상처가 금오도로 옮겨오면서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무척이나 걱정을 했던 설아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신변 처리하는 능력도 좋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사용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7명이 전부인 중학교 2학년 모두가 설아를 배려해주고 운동도 같이 하며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데도 고마움을 표한다.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내가 가진 달란트(재능)를 그 아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에 나누어줄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도시에서는 꿈꿀 수 없는 영혼의 안식을 우리 아이가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금오도로 온 4개월 생활의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가 앞뒤 건물로 나란히 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면 설아는 교무실을 노크하고 문을 빼꼼히 열고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점심때 집에 와서 이를 닦고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천연잔디구장에서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면 끼어서 참여해보려고도 한다. 틈나면 체력단련실에서 러닝머신을 하고, 친구들이나 언니-오빠들과 함께 점심시간을 이용해 탁구도 친다. 물론 서투름 그 자체이지만, 세상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모습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느껴져 온다. 설아의 신체는 여느 아이들과 비슷하지만, 정신수준은 여섯 살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모든 것에 정상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에서는 설아의 삶은 불행하겠지만, 설아 자체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라는 생각도 가져본다. 항상 웃으며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하나씩 가질 때 ‘아싸!’를 외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귀찮으리만큼 자랑하고 다닌다. 그래서 우리 집은 비밀이 없다. 큰 구속됨 없이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엄마 입장에서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섬을 근무지로 택할 때 내 가족들은 많이 속상해했다. 친정엄마는 여수로 돌아가는 배에서 엉엉 우시고, 집에 도착해서도 전화기를 붙들고 “내 새끼를 어찌 섬에 떼어놓느냐”면서 눈물을 그치시지 않으셨다. 나도 함께 울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내 딸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 것이 금오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나는 이 섬이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준 행복함을 살아가는 동안에 갚아나갈 생각이다. 내가 맡고 있는 고3 아이들 8명을 시작으로, 이 섬에서 꿈을 품고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아울러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섬에서의 고등학교 시절을 가장 기억에 남게 해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 금오도에서 적어도 4년을 근무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나름대로 계획을 짜서 아름다운 보석으로 이 아이들을 빛나게 해주고 싶다. 나중에 세상에 던져졌을 때, 섬에서 산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우리 반 외에도 사제 결연 일촌 맺기를 통해 생긴 아들, 딸이 있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선규, 세상 속에서 늘 웃고자 노력하는 현준이,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지혜, 세상에서 최고 성공한 자기 모습을 꿈꾸는 지선이를 들여다보면 아픔이 참 많다. 그 아픔을 내가 얼마나 껴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만큼 사랑하는 마음을 보이게 되면 삶이 더욱 변화되리라 믿는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부족한 초보 섬마을 교사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에게 큰 느티나무가 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엄마로서, 교사로서 성숙함을 보일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베풀고 나누는 모습이 쌓여갈 때, 언젠가는 설아와 자연이도 도움을 받는 위치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신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정리=박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