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기행

    아티스트 2011. 5. 30. 13:59

    <초대석> 이건국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광주·전남도회장
    “회원사 힘이 될 일거리 창출”
    25년 외길…업계 사정 가장 잘 아는 사람
    개인적으론 중학 졸업 후 생업 뛰어들어 自手成家
    입력시간 : 2009. 02.03. 11:56


    다들 알고 있는 얘기일 테지만, 자수성가(自手成家)의 뜻은 물려받은 재산 없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온 집안을 일으키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단어로, 화려하게 보이는 모습 이면엔 당사자가 겪었을 숱한 고난과 인내가 감춰져 있을 것이다.

    그의 순탄치 못했던 학창시절이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했으며, 인터뷰 내내 풍겨지는 색깔 있는 카리스마에 참으로 놀라웠다. “허황되게 살지 않고, 진실 되게 꾸준히 산다”며 자수성가의 삶을 보여준 (주)태성의 이건국(48) 대표이사가 지난 1월 15일 광주 무등산관광호텔에서 ‘제29회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광주·전남도회 정기총회’에서 제20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회장 경선 때 연설 중인 이 회장
    그는 인사말에서 회원사들의 이익 창출과 권익 보호에 앞장서준 윤풍식 19대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순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변화의 물결에 순응하여 회원사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해내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 봉사와 헌신을 약속했다. 아울러 지금 전 세계가 초유의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고,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또한 불황의 한파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안타까운 비상 국면에, 정보통신업계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당부함과 동시에 회원사들의 사업이나 수주가 결코 침체되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자신의 회장 출마가 명예회복과 새로운 변화에 있다는 그는 25년 동안 정보통신사업의 한 길만을 걸어왔다. 그러기에 통신업계의 어려운 점과 발전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어려운 이 시기에 적절한 인물이라는 평가와 변화에 발맞추어 진보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밖으로 나타나 보이는 외형이나 명분보다 실속을 우선시하는 그의 장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를 포용하고 화합토록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힌 이 회장의 공약사항 또한 거대하지 않으면서 작지도 않은, 한마디로 실속 있으며 실천 가능한 것들이었다. 첫째, 투명한 협회의 운영을 통해 모든 회원이 공감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교류와 신속한 업무를 추진하면서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하는 협회가 될 수 있는, 회원이 주인임을 실감할 수 있게 협회의 문을 활짝 열겠다고 했다.
    중국 청도시 시북구와 광주 서구 자매결연
    둘째, 분리발주제도 수호와 중앙회 및 관련기관과의 유대강화를 통해 회원사의 수주 물량 확보에 주력하는, 미약한 공사 수주 업체의 목소리도 적극 수렴할 것을 공약했다. 셋째, 각종 행사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우의와 친목을 돈독히 하면서 회원사간의 유기적인 정보교환을 위해 회원사 대표들의 컬러 수첩을 만들어 광주·전남도회의 위상 제고에 주력할 것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회장 경선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회원간의 갈등을 없애고, 유능한 회원들을 영입하여 끊임없는 변화에 대응해가는 새로운 조직기구를 만들어갈 것을 다짐했으며, 역대 회장들에게서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차곡차곡 공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웅변연설인중앙회 총재, 광주 서산초등학교 총동창회장,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광주·전남도회 운영위원인 그는 광주 북구 오치동이 고향으로, 북성중과 동성고(구 광주상고)를 거쳐 만학으로 조선이공대학 정보통신과에 재학 중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17세의 나이인 1976년 전남통신 전업사에서 통신업계에 첫 발을 내려놓으며 시작한 그때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의 눈엔 가난과 싸우며 청운의 꿈마저 접어야 했던 당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던지 눈물이 비쳤다. 부모님께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도 생계를 위해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해야만 했던 그의 학창시절은 훗날 (주)태성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생이 맹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간호와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휴학이 아니라 재학으로 되어 있어서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며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웃어넘겼다.
    광주·전남도회 운영위원과 함께


    또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새벽 4시에 일어나 2천640㎡(800평)의 논을 써레질하고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1984년 주식회사 전통(전남통신 전업사 승급)에서 6년을 근무하면서 자신의 가정과 가족들을 돌볼 수 있었고 자수성가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거듭 고마움을 피력하는 이 회장은 큰 통신업계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줘 항상 고마워한다고 했다. 이후 1997년 법인인 (주)태성정보통신(정보통신공사업 1등급)과 이듬해에 (주)태성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탄탄한 재무구조와 건실한 기업으로 그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있다.

    “혼자 배불러 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며, 동생들에게도 절대로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그는 부모님을 비롯하여 모든 가족들의 가족애와 삶의 의미 부여를 위해 형제들끼리 부모님을 모시고 전 가족이 한 집에서 함께 자는 행사를 돌아가면서 실행하고 있다. 부모님 외에 고향에 계신 어르신들에게도 나눔을 실천하는 이 회장 부부(부인 배숙희)는 작년 4월 광주시 북구 오치1동 하오치경로당에 전등을 새롭게 교체하는 등 전기공사를 직접 해 보다 환한 경로당으로 탈바꿈시켜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드렸다.
    이 회장의 가족들


    특히, 하오치경로당 어르신들이 봄날 꽃구경 때 편히 다녀올 수 있도록 운동복과 모자, 운동 수건 70벌을 마련해드리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봄날 야유회 가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경로당에 직접 가서 보니 실내가 어두워 도저히 그대도 놔둘 수 없어 2층 전등까지 모조리 교체했다. 두 부부는 남구와 서구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가끔 돕고 있다. “좁게는 부모님만 생각할 수 있지만 고향의 어르신들이 더 생각났어요. 동네에서 맨 손으로 나와 건실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동네 어르신들이 다 알고 있거든요. 넓은 의미로 동네 어르신들도 부모님과 같다고 생각해 봉사했습니다.” 아울러 열심히 노력하여 잉여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노무자에서 CEO가 되기까지 자수성가한 그는 약속, 믿음, 신용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가슴에 새겨두며 살았다. 그는 무조건 전진하는 것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노력하며 채워지는 동안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첫 출발하는 협회 회장으로서 기다리며 보기 좋게 채워서 가는 아름다움이 그에겐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오치 경로당 위문품 전달 후 이 회장 부부


    박인수 부장 gnp@goodnewspeople.com        박인수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