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여행

    아티스트 2016. 4. 1. 11:57

    빛가람 路에서 - ‘없음’이 곧 ‘쓰임’이다

    2016. 03.28(월) 14:24확대축소
    박양수 편집국장

    업보(業報)란, 사전적으로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운명]이라 정의한다.
    부자로, 가난으로, 바쁘게, 느긋하게, 잘하고, 못하고, 크고, 작고, 늘씬하고, 뚱뚱하고, 운 좋고, 재수 없고... 이런 것들의 모임들이 우리가 사는 사회(社會), 즉 인간세상의 군상(群像)들이다.
    어떤 사람은 잘 살면서도 밥값 한 번 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그럭저럭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인사치례를 빠뜨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바퀴통이 텅 비어 있어 수레로 쓰이고.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그릇 속이 비어 있어 그릇으로 쓸 수 있다. 문을 내고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방이 텅 비어 있어 방으로 쓰인다고>고 했다.
    텅 빈 방에 도둑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 바로 비움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언제든지, 지금도, 끊임없이 무언가로 자신을 채움으로서 스스로 빛나려 하고 있다. 텅 비어 있는 아름다움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텅 비어 있는 아름다움!
    욕심 없는 자의 가득한 충만!
    우리는 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비움의 맛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각자 노자는 어쩜 이렇게도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을까?
    그렇다.
    하나의 바퀴통과 그릇과 방이 텅 비어 있을 때 각각 온전한 쓰임이 되듯이, 우리에게도 비움이 있어야 진정한 채움이 있다는 것을.
    어느 글에, ‘업보(業報)란 우주만물의 균형의 법칙이다’라고 쓰여 있다.
    또 ‘전생을 알고 싶으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이 있다.“
    내가 어떤 업(業)을 보냈느냐에 따라 그만큼 보(報)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사람이 발을 딛는 것은 불과 몇 치의 땅에 지나지 않는데, 벼랑에서 엎어지거나 자빠지고, 좁은 다리에서는 물에 빠지고 만다. 그것 또한 여지(餘地)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지는 배려고 비움이다.
    어진 사람이 인격을 세우는 것 또한 이와 다를 게 없다. 지성스런 말인데도 남들이 믿지 않고, 지극히 고결한 행동도 혹 의심을 부르는, 그 이유 또한 그 언행과 명성에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여지(餘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있는 자가 더 무섭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들에게 비움은 상식 밖의 일일까!
    인간관계에서 비움, 양보, 배려는 수레의 바퀴살처럼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박혀 있어야 사회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박양수 기자 cws2344@hanmail.net        박양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