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 氏 의 세계/족보서문.가승

천설 2015. 3. 20. 08:42

 

1. 家乘序

嗚呼 惟我宣氏 姓貫出自本郡 世代綿遠 不知幾百年 而系以寶城之前 則蓋自中國來于東土矣 粤在百濟前 宣氏世居伏虎村 伏虎乃山陽之舊號 而宣氏世基也 改易州郡時 換以代土 刱立官舍于宣氏世基 改縣名曰伏忽 伏忽卽伏虎 以其地形之似虎伏也

自是之後 宣氏各分散居之際 惟我先祖移徙冬老郡狄村面 冬老卽兆陽縣之舊號 而狄村卽今之狄村面也 自分派之後 至諱用臣氏 以上 代數名字無文可考 故用臣氏爲近代中始祖 其來又累百年矣 古今傳聞及出於稗說者如是 而旣無信史可訂 又累經兵燹 無可憑驗 則顧玆孱孫感舊之懷 庸有已乎 抑有可言者 古人詩云 無文戒勿云難信 非實緣何說到今 然則不可以文籍之不存而 流傳之語 歸之於不實也

自我鼻祖及今 耳孫代數十二代 而十代祖兄弟 只是二分 而伯氏左右尉保承郞將 諱元祉 卽吾系出之祖先 季氏全羅道按廉使 諱允祉 嫡無後 八代祖兄弟 又是二分 而伯氏虎勇宣傳官 諱仲吉 亦吾之先祖也 季氏行參議公 諱仲義 乃吾傍先祖也 參議公以上世代 無聞可考 而所可幸者 兵燹之後 參議公戶籍 至今猶在 參議公以上父及祖曾祖諱 昭然可考 則非若傳聞之可訂 豈非可信之一大文案乎

惟其如是 而吾先鼻祖 遂以參議曾祖爲錄者 于今數百年 而自吾父祖以上 文人碩德高官大爵 世出不絶 而同然一辭 少無可疑者也

吾同宗散處各邑 先代代系 旣無可證 則略書草記 憑驗爲可 文卷及族譜見失於兵亂 若不此記 則後孫 先代世系 何可考知耶 先山在道村面

萬歷四十一年 癸丑二月 日 十二世孫 通訓大夫 行碧沙察訪禁府都事 文煥 撰

 

번 역1. 가승서문(계축가승, 1613)

 

! 우리 선씨(宣氏)는 그 성과 관향이 본군(本郡=寶城)에서 나왔는데 세대가 아득히 멀어 몇백 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보성 계통으로 이어지기 이전 조상은 중국으로부터 동쪽 땅에 온 것으로 추측된다. 백제(百濟) 이전에는 선씨들이 대대로 복호촌(伏虎村)에 거주하였는데, 복호는 바로 산양(山陽, 보성의 옛 이름)의 옛 이름으로 선씨들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다. 주군(州郡)을 개편할 때에 대토(代土)를 바꾸어 주면서 관사(官舍)를 선씨의 세거지(世居地)에 세우고 현의 이름을 복홀(伏忽)이라고 고쳤다. 복홀은 복호(伏虎)이니 그 땅의 형세가 호랑이가 엎드려있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이후로 선씨들이 각기 나뉘어 흩어져 살 무렵 우리 선조는 동로군 적촌면(冬老郡 狄村面)으로 이사하였다. 동로는 곧 조양현(兆陽縣)의 옛 이름이요 적촌은 지금의 적촌면(狄村面)이다.

파가 나누어진 뒤로부터 휘() 용신(用臣)씨 이상은 대수(代數)와 이름자를 상고해 볼 만한 문적이 없어서 용신씨를 근대의 중시조(中始祖) 삼았는데 그로부터 또 수백 년이 흘렀다.

고금에 전해들은 말이나 떠돌아다니는 말에서 나온 것들이 이와 같지만, 이미 고증할 수 있는 믿을만한 역사 자료도 없는데다, 또 여러 번 전란으로 인한 화재를 겪으면서 증거 삼을 만한 자료도 없게 되었으니, 이 잔약한 후손들이 지난날을 생각하는 감회가 어찌 그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옛 사람들의 시에 이르기를,

문적이 없다고 해서 믿기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사실이 아니면 어찌하여 지금에까지 이르러 왔겠는가?”

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문적이 없다고 하여 흘러 전해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비조(鼻祖 시조)로부터 지금까지 후손의 대수가 12대인데, 10대조 형제에 와서 다만 둘로 나뉘었다. 백씨(伯氏)는 좌우위보승랑장(左右尉保承郞將) () 원지(元祉)이니 곧 우리 계통이 나온 선조이며, 계씨(季氏)는 전라도안렴사(全羅道按廉使) 휘 윤지(允祉)인데 적처(嫡妻)에서는 후손이 없다. 8대조 형제도 또 두 분파로 나뉘는데 백씨는 호용선전관(虎勇宣傳官) 휘 중길(仲吉)로서 역시 우리 선조이며, 계씨는 행 참의공(行 參議公) 휘 중의(仲義)로서 바로 우리 방계(傍系) 선조이다.

참의공 이상의 세대는 상고해 볼 만한 자료가 없었는데, 다행인 것은 전란 이후에도 참의공의 호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참의공 이상의 부(), (), 증조(曾祖)의 휘를 환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니, 이는 전해들은 것으로 증거 삼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찌 믿을 만한 하나의 중대한 문안(文案)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았기 때문에 우리 선대의 시조를 마침내 참의공의 증조(用臣)로 기록한 것이 지금까지 수백 년이 되었으며 우리 부조(父祖) 위로 문장과 덕이 뛰어난 분, 벼슬과 작록이 높은 분들이 대대로 끊임없이 이어져 나왔는데, 그분들이 한결같이 똑같은 말씀을 하셨으니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다.

우리 동종(同宗)들이 각 읍에 흩어져 살면서 선대의 계통(系統)과 대수(代數)에 대해 증거삼을 만한 것이 없으니, 대략 초기(草記)를 써서 증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문권과 족보가 전란으로 없어졌으니 이 기록이 아니면 후손들이 선대의 세계(世系)를 어디에서 상고하여 알 수 있겠는가. 선산은 도촌면(道村面)에 있다.

 

만력(萬歷) 41(1613) 계축년 2.

12세손 통훈대부 행 벽사찰방 금부도사(通訓大夫 行 碧沙察訪禁府都事) 문환(文煥)이 지음.

 

좋은포스팅 천설님 잘봤어요~ 자주 올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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