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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설 2015. 3. 20. 12:32

보성선씨의 족보통합

보성(寶城) 단일본(單一本)이나 고려 고종, 원종조의 인물인 패주군(貝州君) "선용신"(宣用臣)을

중시조로...

 

예의 판서공(선원지-중시조 선용신의 장손, 예의판서 우문각 대제학) 계열

▶전라 안렴사공(선윤지-중시조 선용신의 차손, 전라안렴) 계열

위 두 계열의 후손이 분쟁속에 있다.

 

한국의 보성선씨는 두 계열로 분관된바 없었으니 세거별로 마치 본을 달리하는 듯한 표현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보성선씨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기록이 있는 성본으로 시조와 연원(淵源)이 달리하는 광주선씨(光州宣氏)와 밀양선씨(密陽宣氏)가 있지만 모두 동원(同源)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고래하던 동국문헌비고의 수정판(1903-1908)이라 할 수 있으며 성씨관련 만큼은 각 성씨들로부터 직접 간접으로 수집하였을 것이니 객관성을 확보했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이 족보 위에 있다 표현함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며 여타 다른 성씨관련 저서들도 다 마찬가지로 족보에 누락된 내용을 참고할 뿐이지 근거로 하고자 하는 발상은 더욱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조선조 중엽까지는 하나의 보성선씨로 잘 살아왔으며 근거가 없어진 당시 족보도 1681년신유보(辛酉譜)에 복원하였음으로 이를 근거로 해야 할 것이다. 그후 1749(己巳年)에 전라 안렴공 후손 중 몇분들의 주도하에 신유보(申酉譜)상의 시조 2대에 예의 판서공 계열 이른바 도촌파 모두를 삭거해버린 비극의 별보를 제작하였으니 그로부터 8년이 지난후 예의 판서공 계열은 1757년 정축보(丁丑譜)를 단독보로 제작 분질함으로써 지금까지 이른 것이다.

 

왜 이런 불미스런 사건이 있었을까? 잘못된 부분은 수정해야 한다.

지금도 대다수 안렴공 후손들은 결별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한 예의 판서공 후손들의 반발을 알고도 모르는 척 진실이 알고도 애써 방관하는 전라 안렴사공 계열들의 보성선씨 문중인것이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고통과 분쟁을 남겨주는 것이다. 설사 보성선씨가 두개의 선씨로 영구 고착된다 하여도 진실을 추구하고 혈족을 사랑하는 선씨후손들은 양분된 슬픈 현실을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따라서 이산가족의 역사를 기록한 보성선씨의 족보는 통합족보가 시급한 숙제이며 두 계열의 후손으로 한 맺힌 거짓 족보를 모신다는 것은 너무도 끔직한 사안임을 인식하고 족보통합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양계열의 대표가 마음을 비우고 통합추진에 임하는것이 당연하다.

 

(도촌파 참고문서)

보성선씨 족보에 혼선이 생긴 경위는 이렇다.

 

1681년에 양파(당시는 예의판서공 원지파. 전라안렴사공의 윤지파)는 관산의 보림사에서 모든 선씨들이 가지고있는 단편적인 자료들을 수집 검증하여 계보를 확립하고 참의공(선중의)의 호적에 따라 선용신을 시조로하여 대동보 초안을 완벽하게 합의 작성한후 1688년 보성 개흥사에서 다시 수정 하였는데 이듬해 안렴공파 몇분(선필하.선수구)들이 1689년 갑짜기 선용신 2대를 의조(疑祖: 의심가는 선대)라고 주장하면서 합의된 대동보 초안을 무시한다는 일방통보 시조 2(용신-.)3대 원지 계열를 빼버린체 단독으로 족보를 만들었는데 선씨들에게는 뼈아픈 갈라섬의 시발이 되고 말았다.

그후 1697년 예의판서공 후손들도 종맥의 찢어짐과 혼선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불가피 안렴공의 후손을 제외한 족보를 만들게 되었다.

*(파보의 실제 원인은 도촌파의 수효가 적고 융성하지 못한데 기인한 것으 로 선대들이 분석하였음).

 

보성선씨는 많은 충신 효자 효부,정치가,학자가 나와 전남은 물론 전국적인 명문 대성씨로 자리 메김 하였고 지금 양대파의 후손들은 각분야에서 현조들의 치적에 걸맞는 처세에 노력하고있다.

사는곳(집성촌 포함)은 보성일대, 순천, 장흥, 광주, 전주, 경기 광주,이천

강릉, 김해 등 전국에 고루 퍼져있다. 몇개의 본이 있다고 하나 모두 사는곳 중심의 의 개념이며 근본(根本)은 모두 보성선씨이다.

특별히 예의판서공 후손으로 병마절도사 여경과 필백.경백.청원.해수.인수의 壬亂六忠과 호란(胡亂)의 문환.영길 二功의 절의(節義)는 가문의 빛이며

안렴공과 그 후손 유성군 형. 임난 1등공신 친친제 거이장군. 안동령장 세강. 수사 약해는 五忠으로 보성선씨오충사에서 제향하고 있으며 가문의 자랑이다. 인구는 35,000 명 정도이며 안렴공 후손들이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