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교육이야기

문상원 2017. 1. 16. 12:46

학생들과 연극을 하며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6월에 학생들과 효 공연을 하였습니다. 학생들과 악극 봄날은 간다를 만들어 공연을 했습니다. 연극도 힘든 학생들이 악극을 만들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름 공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 후 진로체험 버스 우리소리 체험을 장사익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고 바로 신청했습니다. 신청 결과를 발표하는 날 소리가 없어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오후 늦게 신청 학교가 많아 발표를 연기한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 후 우리소리체험에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너무 좋았습니다.

 

체험일 당일 버스를 타고 국립 국악원을 가는 도중 찔레꽃 이야기, 엄니 꽃구경 가요 등 장사익 선생님의 노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줬습니다. 고려 공녀로 끌러간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다시 고려로 왔지만 사랑을 찾지 못하고 찔레꽃이 된 이야기, 나이 드신 부모님을 산에다 버렸던 고려장 이야기 등을 해 주었습니다. ‘엄니 꽃 구경가요,’를 소재를 효잔치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하였습니다. 장사익 선생님을 뵐 때 노래를 하고 싶은 학생이 있음 마음껏 하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 날따라 차가 유난히고 막혔습니다.

 

국립현충원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문화융성위원회 서한샘 연구원님과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맨 먼저 예악당으로 가 한 공연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직업에 대해 국악원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습니다. 설명을 들을 때 다른 공연을 위해 무대 셋팅 작업을 하고 있어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음향, 조명, 무대장치, 등 여러 직업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국악 박물관에 입장하여 우리 음악과 세종대왕님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국악 박물관 일정을 마치고 장사익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장사익 선생님이 먼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장사익 선생님과 체험 일정을 협의 후 학생들에게 장사익 선생님을 소개할 영광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제대로 선생님을 소개하지 못해 죄송함과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선생님은 일일이 학생들에게 싸인을 해 주시면서 인사를 다시 나누었습니다. 이 후

선생님이 무대로 가 산위에서 부는 바람을 선생님 특유의 소리를 들여 주셨습니다. 학생들은 처음 듣는 소리와 노래가 어색하지고 했지만 소리에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 주옥같은 선생님 말씀이 시작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의 이야기,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픈 이야기 등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소리꾼이 되기까지 과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을 듣는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리를 시작한 나이가 46세라는 것, 15번의 직업을 바꿨다는 것, 언제나 꿈을 간직하게 있다는 이야기에 모두는 숙연해졌습니다. 타고난 소리꾼 선생님도 많은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다닐 때 웅변을 하고 동네 뒷산에서 소리 연습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할 때 음악 학원에 다니고, 태평소를 그 동안 더 감동적인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카센타 종업원 삼년을 하다 이렇게 삶을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 감동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한 후 3년 동안 태평소를 열심히 배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습생으로 악단에 어렵게 들어가서 열심히 했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꿈을 항해 앞으로 한 걸음 나가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말해주신 것입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노래할 기회가 있어 노래를 하게 된 것이 오늘 날까지 노래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소리꾼으로 말입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열심히 준비한 자는 언제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이 있음을 모두는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가수의 길을 걸었던 23년 전 그 때 유명한 가수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서태지, HOT, 그 시절 같이 노래를 했고, 어쩜 그 가수들이 더 유명했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부분에서 중요한 말씀 한 가지를 해주셨습니다. 23년 같이 노래를 했지만 지금까지 노래를 하고 있는 사람은 선생님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이 가지고 오랫동안 준비하면 어떤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국악원에 오는 버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했던 찔레꽃을 브라질 공연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찔레꽃 노래의 감동에 무한 빠졌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학생들도 노래 소리와 함께 했습니다. 우리민족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가 입니다. 그러하기에 찔레꽃 노래와 선생님의 한이 가득한 소리가 모두의 가슴을 울린 듯합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 노래가 제 망에 들어와 서러움 가득 채웠습니다. 화면에 나타난 사람들 모두 눈에 이슬에 가득했습니다. 그곳에 함께한 모두도 말입니다.

 

선생님의 노래 엄니 꽃구경 가요를 가지고 공연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께서 공연 준비 상황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아직 준비 상태에서 보여드리질 못했습니다. 대신 봄에 공연 했던 효 공연 악극을 보여드렸습니다. 학생들이 그 장면을 잊어 제대로 못 보여드렸습니다. 저나 학생들이나 아쉬움이 가득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끝나고 나니 학생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한다고 이야기 했으면 준비했는데 못했다며 말입니다. 사실 저도 들은 적이 얼마 안 되어 제대로 전달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얘야, 문 열어라.

 

어느 덧 시간이 되어 정리해야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아버지란 노래를 들었습니다. 민족의 아버지들은 퍽이나 힘들게 살았습니다. 밖에 나가 너무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밖에서 굴욕적인 삶과도 많이 만났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안에 들와서는 권유를 늘 앞세우셨습니다. 늦은 밤 집에 들어오실 때도 큰 소리로 대문을 발로 차며 애야 눈 열어라하시면 아버지가 돌아가셔 장례를 모시고 온 날 애야, 문 열어라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니 바람만 불고, 아버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세상이 문이 열린다는 노래에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저도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너무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말씀해 주시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말씀 하시는 열 가지 이야기 중에 학생들이 한 가지라도 담아 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마당극에 관심에 많은 저이기에 46세에 선생님이 데뷔했다는 소리에 저만 열심히 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춤을 출 때 봄날은 간다노래를 불렀던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꿈을 꾸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사실임을 말씀해 주신 듯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체능 쪽에 꿈을 가지고 있는데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어른 들 사이에서 스트레스가 많고, 당장 닥치는 시험이 힘든데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에 질문에 격려의 여러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힘든 시기가 와도 물이 흐르듯 지나간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계속 꾸다보면 이루어지고, 한결같이 겸손하며 열정을 가지고 꾸준하게 준비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학생은 선생님 이야기에 더 많은 자신감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가장 보람이 있었던 공연을 질문한 학생에게 답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모두는 또 다시 감탄했습니다. 일본에서 공연할 때 리허설 도중 암 환자가 선생님 노래를 너무 듣고 싶어서 왔다고 이야기를 듣고 온전히 한 시간 사십분 동안 그 사람을 위해서 공연을 해주었고 며치 있다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에서 듣고 모두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노래는 듣고 싶은 사람에 들어주어야 한다는 말도 생각이 났습니다. 선생님의 인간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공연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습니다.

 

선생님과 약속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문화융성위원회 표재순 위원장님도 오셨습니다. 말로만 듣던 위원장을 뵈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되면 위원장 말씀도 학생들이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해진 시간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기년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 때 선생님이 재미있는 포즈도 알려주셨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가득 안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이 날 행사를 위해 애쓰신 문화융위원회 서한샘 연구원님에게 감사인사도 못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너무 수고 하셨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은 너무 뿌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