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 말하기

문상원 2010. 8. 9. 15:05

사랑의 매’는 누군가가 누구에게 매질을 통하여 사랑을 전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르치는 자가 자신의 가르침을 배우는 대상에게 매질을 통하여 가르침을 전달하는 행위에는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함을 ‘사랑의 매’라는 말로 나타낸다. 또 가르침을 배우는 대상인 매질을 사랑의 행위로 받아들여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하는 마음가짐을 통하여 가질 때 ‘사랑의 매’란 말이 빛난다. 이때의 조건들은 가르치는 자는 언제나 자신의 위치에 설 때 사랑하는 맘이 충만해 있어야 한다. 배우는 자는 언제나 가르치는 대상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또 매질 행위는 가르침을 위한 최선의 수단일 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의 매는 가르치는 사람의 편의를 위한 매가 되고, 배우는 대상이 더 좋은 방법이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사랑의 보답보다는 분노가 가득차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랑의 매에 대한 논쟁이 많다. 교사들이 학생에게 하는 매질이 ‘사랑의 매인가, 아니면 교사들의 감정 표출인가.’ 의 문제로 말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여러 조건들로 판단한다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의 애매함(가르치는 자, 배우는 자, 사회 등의 판단 기준)으로 또 다른 논쟁을 만들 가능성이 많다. 이 논쟁의 해결을 위하여 현실상황을 고려하며 철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교육 현실에서 ‘사랑의 매’라는 언어 자체가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오늘 날 교육 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옛날 교육 현장에서 매질은 제자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이 주목적이었지만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의 매질은 징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교육 현장의 특성상 잘못에 대한 처벌의 성격이 강하다.

오늘날 교육 현장은 초등학생인 경우는 소수의 선생님과 다수의 학생, 중등학생인 경우는 다수의 교사와 다수의 학생으로 만난다. 이제 교육 현장은 하나의 사회이다. 사회의 유지를 위한 법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법을 어긴 자에 대한 징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 사회가 유지되듯이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정학이나 퇴학은 학교라는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지 대상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학과 퇴학을 보고 사랑의 징계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유독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교육 현장을 모든 사람들이 교사에게 엄청나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 학부모들의 자기 아이 중심 사고 등이 그 앞에 서 있다. 몇 백 명을 가르치는 교사가 학생 개인의 특성을 파악하여 지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오늘날에 합당한 사제관계의 인식이 더욱 필요하다.

교사들의 행동이 ‘사랑의 매’라는 말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아직 적겠지만 불리한 행동을 한 교사가 사랑이라는 거룩한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 교사들도 솔직해져야 한다. 어떤 문제가 있었을 때 교육이라는 거룩한 말보다는 솔직한 구체제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현실은 그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이야기를 계속할 경우 교사에게 사회는 계속 성자를 요구하게 된다. ‘교원 평가제’의 경우 교권의 거룩함(제자가 스승을 평가하다니)이라는 일반적인 말보다는 교원평가제에 따른 교사의 업무 부담으로 수업이나 학생지도 시간이 줄어든다거나, 평가기준이 애매함을 이야기해야한다. ‘잘 가르친다. 잘 지도한다. 열심히 근무한다. 수업준비를 잘한다’ 의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고 교장, 학부모, 동료교사, 학생 등의 개인적 판단이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처럼 교사들이 말하는 교권의 거룩함이 받아들여 교원 평가제가 실시되지 않는다면 교사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만큼의 거룩함을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서 나와야 하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후자의 경우처럼 교사가 어떤 문제를 접근한다면 사회는 교사들을 합리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사랑의 매’라는 말은 교육현장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면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교사와 학생들과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생들 때문에 우는 교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물론 그 사실을 교사가 인식할 경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아니 안타까움이 더 클 것이다. 교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신의 의무와 학생의 내일을 위해 열심히 하면 되지 그 이상의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선생님이 제자식이라면 저렇게 하겠는가’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제 자식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정한 선생님이라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분명한 것은 제 자식하고 제자는 다르다. 오늘날 제자와 스승 관계는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일대 다수, 다수 대 일의 관계이다. 일대 일,이의 부모와 자식 관계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자식과 제자를 똑같이 사랑하기에 인간으로서 교사가 사랑의 한계가 있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정도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사랑을 사회나 교사가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하는 제자와 선생님의 개념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개념으로 학생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나 학생의 생각은 다른데 교사 혼자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에 ‘사랑의 매’라는 생각을 교사 스스로도 지워야 한다.

학생들이 잘못을 했을 경우 교사는 법의 원칙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랑의 매’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법의 원칙을 적용할 때 매는 징계의 한 수단이다. 학생에 대한 징계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거나, 현장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거나, 학생에 따라 달라지면 그것은 법에 의한 징계가 아니라 교사의 매질이 되어 ‘사랑의 매’ 논란의 시작이 된다. 학생들을 대할 때는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보아야 한다. 학생들의 잘못을 발견하였을 때도 사회의 법 원칙에 따라야 한다. 잘못을 한 학생을 바로 범법자로 대해서는 안 된다. 죄를 지은 사람도 재판을 받아 벌을 확정받기 이전에는 죄인으로 대하면 안 된다. 네가 이런 잘못을 했고 이 잘못은 어떤 교칙에 위배되기에 너는 이러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가 되어야 한다. 순간적으로 때리거나 마구 욕하면 안 된다.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내리는 징계를 인정하여야 한다.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학생이 있으면 다시 한 번 판단해 보고 학생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학생이 그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잘못 즉시 선생님에게 욕을 먹거나, 매질을 당하면 순간적으로 학생들의 반항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문제의 본질이 아닌 태도를 가지고 서로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이런 경우 무의미한 매질이 되고 학생을 더 큰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오늘날 학생들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학교라는 집단의 사회가 원활하게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또한 사회의 윤리나 도덕의 기준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일탈의 기준이나 범위에 대한 생각은 개인에 따라 많은 변화가 발생한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엄격한 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학교란 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다.

‘사랑의 매’라는 논란거리에 자신의 찬반의견을 내기에 앞서 왜 이런 논란이 나왔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 발생되는 논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매라는 징계의 수단이 없는 경우 잘못을 한 학생에 대해서는 엄격한 또 다른 것의 법을 적용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발생된다. 이 경우 징계를 받는 학생은 성장에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인간적으로 이야기하고 잘 타이르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쉬운 문제라면 징계가 필요 없다. 이러면 안 되지, 조용히 해, 등의 이야기로 해결되지 않기에 징계가 나왔다. 징계가 이루어져야만 학급 전체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사랑의 매’도 징계의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 이상의 사랑을 매에 요구한다면 논란만 존재하여 오늘날 교육현장을 후퇴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