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렘/지구촌essay

민트 2018. 8. 16. 14:53

 


처음 프라하를 여행했던 해, 그리고 바츨라프 광장을 찾았던 그 날,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났다. 바츨라프 광장엔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마이클잭슨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바츨라프 기마상 아래에 촛불과 꽃다발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사진이 놓였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애도하는 팬들은 울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생전의 그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를 기억해 두려는 듯했다. 


바츨라프 광장과 바츨라프 기마상 주변


나는 여행 중이던 몇 해전의 프라하를 생각하며 봄을 맞아 바츨라프 광장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고 관광객들도 넘쳤다. 

바츨라프 광장은 1968년 ‘프라하의 봄(개혁 공산주의자들의 정치개혁운동 시기)’과 1989년 ‘벨벳 혁명’이 일어난 자유 항쟁의 중심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그중 1969년에 체코 대학생 ‘얀 팔라흐’ 가 소련군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분신을 하여 여기서 목숨을 잃었다. 한 달 뒤 같은 장소에서 '얀 자이츠'라는 학생도 분신하였다. 그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이곳에 있다. 

프라하의 봄을 짓밟힌 어둡고 칙칙했던 바츨라프 광장은 그로 인해 1989년 다시 한번 절정을 맞이한다. 30만 명이 넘는 체코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그때 바츨라프 하벨(공산정권이 무너진 뒤 초대 대통령)은 군중을 향해 외쳤다. 체코의 자유가 눈앞에 왔습니다! 

시민들도 뜻을 모아 함께 자유를 외쳤다. 

그 후 체코의 공산주의 정부는 무너지고 시민들은 자유를 찾았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벨벳혁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천천히 길을 걸으며 눈에 띄는 것들을 삼킨다. 이국적인 물결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순간, 영화 '프라하의 봄'이 떠올랐다. 그 영화를 본 기억이 없어 최근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 보았다. 한글 자막이 없어 좀 불편하긴 했지만 원작인 밀란 쿤데라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있어 영화의 흐름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1984년에 발간된 소설과 1988년에 제작된 영화인 만큼 그 당시에 대학생이던 나와 수많은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문학작품이었다. 또한 영화가 흥행하던 해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우리나라도 학생운동이 점차 퇴조되던 시기였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은 1990년대 초기 문학에 영향을 준 문제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로 첫 장면부터가 노골적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엔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원색적이고 채도가 낮은  영화의 배경이나 장면, 그리고 영화 이전의 소설은 제목부터가 관념적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본 후 내가 이해하고 느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꾸 되묻게 되는 작품이다.

 '1968 프라하의 봄' 이후, 소련군의 침공을 받아야 했던 시기의 연애소설이잖아! 

사회적, 정치적 소설이잖아! 하다가도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지? 

굳이 의미를 찾아야 할 무언가 있다는 게 독자인 나로서는 해야 할 숙제가 많은 듯 개운치 않다. 

그 시대의 격정을 주인공들의 육체와 욕망으로 풀어낸 것일지도 몰라, 그렇게 밀란 쿤데라는 그들을 만들어 냈어. 자신이 보고 겪어야 했던 그 시대의 암울함을...


체코의 작가 밀란쿤데라의 대표적인 작품이어서, 그리고 내가 프라하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프라하의 봄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유난히 많은 정사 장면은 그 시대의 무엇을 담아낸 것일까. 

테레자가 사진기를 들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셔터를 누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소련군의 탱크에 맞서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녀의 카메라에 담겼다. 오늘의 봄볕을 즐기려 벤치에 앉아있는 여유로운 남녀의 모습은 내 아이폰의 카메라에 담긴다. 그 거리는 , 그 시간의 차이는 얼마쯤이나 될까.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정치적 격변은 주인공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요인이 된다. 

1968년 '프라하의 봄'과 소련의 침공은 소설보다도 실제 다큐멘터리를 삽입한 영화에서 한층 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다가온다. 

음과 양, 가벼움과 무거움,  서로 상이한 삶을 살고픈 그들의 대화에 잠깐씩 나오던 대사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알 것도 같다. 그 무게를...


평화로운 모습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내려앉는 봄빛이 밝다. 어둡던 역사의 추운 골목길이 아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프라하 그리고 토마스와 테레자가 함께 살았던 어느 골목의 아파트, 이 모든 것들이 평화의 봄으로 다시 피어나는 오후가 슬프다.

내 카메라엔 다시 프라하의 빛이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