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화원

조로아스터 2018. 7. 9. 20:49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5강> (2018.05.14.)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1강)-(2)

———————————————————————————————



周易 繫辭傳·上 (제2장~제4장)


<제2장> ; 주역(周易)의 성립(成立)과 효용(效用)


[2]-1 聖人 設卦하여 觀象繫辭焉하여 而明吉凶하며

         剛柔 相推야 而生變化하니

         是故로 吉凶者는 失得之象也요 悔吝者는 憂虞之象也라.

         變化者 進退之象也요 剛柔者 晝夜之象也요

         六爻之動은 三極之道也라.


 성인(聖人)은 괘(卦)를 만들어 상을 살피고 거기에 설명을 붙여서 길(吉)함과 흉(凶)함을 밝혔다.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서로 밀쳐서 변화(變化)를 낳는다.

 이런 까닭으로 길함과 흉함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과 잘된 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뉘우친다는 것과 곤란해진다는 것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나아가고 물러감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은 나아가고 물러남이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다.

 육효(六爻)가 변동하는 것은 천(天)·지(地)·인(人) 삼극이 작용하는 것이다.


* [本義 강설] ①  "是故로 吉凶者는 失得之象也요 悔吝者는 憂虞之象也라"에 대한 해설

·과 悔·吝은 易의 말이요, 得·失과 憂·虞는 일의 變이니, 이치에 맞으면 吉하고 이치를 잃으면 凶하며, 憂와 虞는 비록 凶함에 이르지 않았으나 이미 뉘우침을 이루어 부끄러움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吉과 凶은 상대가 되고 悔와 吝은 그 중간에 위치하니 , 悔는 흉함으로부터 吉함으로 나아가는 것이요, 吝은 길함으로부터 凶함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爻의 가운데에 이러한 象이 있음을 보면 이러한 말씀을 다신 것이다. 


* [本義 강설② — "變化者 進退之象也요  剛柔者 晝夜之象也요  六爻之動은 三極之道也라"

柔가 변하여 剛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감이 지극하여 나아기는 것이요, 剛이 화하여 柔에 나아감은 나아감이 지극하여 물러가는 것이니, 이미 변하여 剛하면 낮이어서 陽이고 이미 변화여 柔하면 밤이어서 陰인 것이다. 六爻는, 初爻와 二爻는 地가 되고 三爻와 四爻는 人이 되고 五爻와 上爻는 天이 된다. 動은 곧 變化이다. 極은 지극함이니, 三極은 天··人의 지극한 이치이니, 三才는 각각 한 太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剛·柔가 서로 미루어 變化를 낳고 변화의 極이 다시 剛·柔가 되어 서 한 卦 여섯 爻의 사이에 유행하니, 占치는 자가 만난 바를 통해서 吉·凶의 결단함을 밝힌 것이다.


* [강 설(講說)] —————

주역의 괘(卦)는 대자연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성인(聖人)은 괘를 만들고 난 후, 그 괘(卦)와 효(爻)가 상징하는 의미를 살펴 그 설명을 괘와 효 아래에 붙였다. 그것을 각기 괘사(卦辭) 효사(爻辭)라 한다. 이를 통하여 대자연의 변화에 하나가 되어 순응하도록 인도하고, 그것을 따를 때의 길(吉)함과 따르지 않을 때의 흉(凶)함을 밝혔다.


주역(周易)의 원리는 태극(太極)에서 시작하여 음양(陰陽) - 사상(四象) - 팔괘(八卦) 등으로 분화된다. 태극(太極)은 모든 존재와 변화의 근본 원리이며, 도(道), 진리, 하늘, 부처, 하느님 등 어떻게도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언어 이전의 세계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도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음·양(陰陽)에서 팔괘(八卦)에 이르는 코드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의 존재와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음(陰)과 양(陽)으로 구성되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에 말했다.  “한 번 음(陰)이 되었다가 한 번 양(陽)이 되었다가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一陰一陽之謂道

        

우주 만물의 존재와 삶은 음양(陰陽)의 요소가 기본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과 그 변화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주역(周易)’은 음양(陰陽)이 분화하여 사상(四象)을 이루고, 사상이 다시 분화하여 팔괘(八卦)라는 여덟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삶의 다양한 양상과 변화와 대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보통 사람의 삶은 원만하게 잘 되기도 하고 막혀서 흉하게 되기도 하며, 다시 후회하며 분발하면 풀리게 되어 길흉(吉凶)이 거듭하는 양상을 보인다. 


성자 복희(伏羲) 씨는 우주만물이 음·양(陰陽)으로 되어 있다는데 주목하여 그것을 기호화하여 역(易)의 기초를 만들었다. 주역(周易)은, 우주와 세상의 모든 만물을 음양(陰陽)으로 설명하며 그 변화의 양상을 형상화하여 팔괘(八卦)를 완성하였다. 음양은 다시 사상(四象)으로 세분화하고, 팔괘(八卦)는 그 사상(四象)을 다시 세분화한 것이다. 태양(太陽)에서 다시 양(陽)이 생겨난 것()과 음(陰)이 생겨난 것(☱), 소음(少陰)에서 다시 양(陽)이 생겨난 것(☲)과 음(陰)이 생겨난 것(☳), 소양(少陽)에서 다시 양(陽)이 생겨난 것(☴)과 음(陰)이 생겨난 것(☵), 태음(太陰)에서 양(陽)이 생겨 난 것(☶)과 음(陰)이 생겨 난 것(☷)이 그것이다. 이 여덟 가지 부호를 팔괘(八卦)란 한다. 이것이 주역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태극(太極)의 구체적인 코드이며, 하늘의 코드(CODE)인 팔괘(八卦)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一乾天

二兌澤

三離火

四震雷

五巽風

六坎水

七艮山

八坤地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팔괘를 바탕으로 64괘를 만들고 그 괘상를 살펴 괘사를 붙였으며, ‘주공(周公)’이 각 괘의 있는 전 384개 효의 상을 살펴 효사를 붙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觀象繫辭]


예컨대 [15] 지산(地山) 겸괘(謙卦)의 괘사 ‘謙 亨 君子有終’은 유일한 양(陽)[九三]이 땅[☷] 아래 자리하고 있으므로 군자의 겸손(謙遜)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地山謙

     [15]  謙, 亨, 君子有終.


주역에서 길(吉)함은 자연의 변화를 터득하여 순응할 때 생기는 좋은 결과이고 흉(凶)함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여 생기는 역경이나 고난이다. 후회하고 한스러워한다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따르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렇게 길흉(吉凶)을 밝히는 것은 괘의 상이나 효의 상을 보고 붙인 것이다.


예컨대 [37]풍화(風火) 가인(家人)괘의 육사(六사)는 ‘가정을 부유하게 하니 크게 길하다.(富家 大吉)’이라 했다. 가인(家人)괘의 초효(初爻)에서는 가정의 법도를 이루고, 이효에서는 식구들이 음식을 함께 나눈다. 그리하여 삼효에서는 가정이 안정되고 가풍이 엄숙하게 되니, 사효에서는 경제적으로 아주 넉넉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富家 大吉’이라 했다. 이는 길(吉)함의 표상이다.


이와 반대로 [28]택풍(澤風) 대과(大過)괘에서 ‘상육(上六)은 너무 넘어갔으니 이마[頂]를 없애서 흉(凶)하다. 누구를 탓하겠는가.(上六, 過涉滅頂, 凶, 无咎)’ 했다. 대과(大過)괘의 초효(初爻)와 상육(上六)은 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약한 음효(陰爻)가 왔으므로 집을 제대로 지탱할 수가 없다. 그래서 괘사의 ‘대들보가 휘어지는’[棟撓] 요인이 되는 것이므로 흉(凶)하다고 했다.


 길(吉)함의 예

 흉(凶)함의 예

[37] 風火 家人

 


[37] ‘家人, 利女貞'


[28] 澤風 大過

[28] 大過, 棟撓, 利有攸往, 亨.'   



   ‘上九, 有孚, 威如, 終吉.

  ‘九五, 王假有家, 勿恤, 吉.

  ‘六四, 富家, 大吉.

  ‘九三,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嘻嘻 終吝

  ‘六二, 无攸遂, 在中饋, 貞吉.’

  ‘初九, 閑有家, 悔亡.   


 

 上六, 過涉滅頂, 凶, 无咎.

 ‘九五, 枯楊生華 老婦得其士夫 无咎无譽

 ‘九四, 棟隆, 吉, 有它, 吝.

 ‘九三, 棟橈, 凶.

 ‘九二, 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无不利.

 ‘初六, 藉用白茅, 无咎.



천지만물과 세상만사의 변화란 음(陰)과 양(陽)의 진퇴과정에서 야기된 결과를 말한다.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은 밤과 낮, 더위와 추위 등의 자연의 변화를 이끄는 두 요소이니, 곧 음과 양이다. 음의 자리와 양의 자리에 오는 효는 그 본래의 위상(位相)에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곤란해지는 상황에 처한다. 예컨대 [1]중천(中天) 건괘(乾卦)의 ‘상구(上九)는 목에 힘을 주는 용이니 후회가 생기리라.(亢龍有悔)’고 하여 ‘유회(有悔)’를 통하여 그 위상에서 처신을 경계한 것이요, [57]중풍(重風) 손괘(巽卦)의 ‘구삼(九三)은 마지못해 겸손해 하면 한스러워진다(九三 頻巽吝)’고 하여 ‘인(吝)’으로 경계한 것이다.



[2]-1 是故로 君子 所居而安者는 易之序也요 所樂而玩者는 爻之辭也니              

         是故로 君子 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是以自天祐之하야 吉无不利니라. 右는 第二章이라


 이런 까닭으로 군자가 편안하게 거처하면서 살펴야 하는 것은 역에 대한 서술이고,

 즐기면서 완미해야 하는 것은 효사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편안하게 거처할 때는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象]를 살피고, 그 괘사와 효사를 보며,

 일이 있어 움직일 때는 변하는 것을 살피고 점을 완미한다.

 이런 까닭으로 하늘에서부터 도와서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 ‘所居而安者’에서 ‘安’은 ‘按’과 통용. 대부분의 연구서에서는 ‘安’을 ‘편하다’는 뜻으로 해석했으나, 이 부분의 내용은 역리를 파악하은 것에 관한 것이므로, ‘按’(어루만지다)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좋다.


* [강 설(講說)] —————

역리(易理)를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주역』64괘의 대강을 순서대로 이해하여 전체의 윤곽을 파악하고 그 다음으로 각 괘의 내용을 효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64괘로 서술되는 전체의 역리를 살피고, 또 그 괘의 효사를 완미하야 한다.


역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괘의 상(象, 형태)를 보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의 상징성을 파악하고, 그 다음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를 보고 그 파악한 내용이 옳은 지를 확인해야 한다. 역(易)의 성립순서로 보면, 먼저 태극(太極)이 있었고, 그 태극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괘(卦)가 생겼으며, 괘를 이해하기 위해 괘사(卦辭)와 효사(爻辭)가 생겼다. 이를 통해 보면 괘는 태극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괘사나 효사 역시 괘의 내용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주역(周易)의 이치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태극(太極)을 이해할 목적으로 괘를 읽어야 하고, 괘를 이해할 목적으로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를 읽어야 한다. 먼저 괘사나 효사를 읽고 거기에 얽매이면 괘의 본질적인 내용을 얻지 못한다.


사람이 역리(易理)에 맞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점(占)을 쳐서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점이 지시하는 내용을 따라야 한다. 자연의 실상은 잠시도 쉼도 없이 변화한다. 사람이 그러한 자연의 변화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역을 통해 그 변화의 원리를 읽어야 한다. 점을 쳤을 때 노양(老陽)이나 노음(老陰)을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역리를 따르는 것은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땅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이상적인 최선의 삶이 된다. 그래서 ‘하늘에서부터 도와서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고 했다.


예컨대 [14]화천(火天) 대유(大有)괘의 상구(上九)에서 ‘上九, 自天祐之, 吉无不利’라 했다. ‘상구(上九)는 덕(德)을 갖춘 원로이다. 육오(六五)에게 이념을 제공하는 정신적 지주이다. 육오(六五)가 물질적이 부를 통하여 경제성장을 꾀할 때 상구는 정신적인 덕(德)을 수행하여 강조한다. 상구(上九)가 정신적인 감화력을 발휘하므로 육오(六五)는 상구(上九)를 존경한다. 그래서 상구는 모두가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모두가 필요로 하는 존재는 하늘이 돕는다.’


<제3장> 주역의 기본 용어(用語)


[3]-1 彖者는 言乎象者也요 爻者는 言乎變者也요

         吉凶者는 言乎其失得也요 悔吝者는 言乎其小疵也요

         无咎者 善補過也니라.


 단(彖)은 상(象)에 대해 말한 것이고 효(爻)는 변화의 과정을 말한 것이다.

 길흉(吉凶)은 잘못된 것과 잘된 것을 말한 것이요,

 후회(後悔)하는 것과 한스럽게[吝] 여기는 것은 조그마한 허물을 말한 것이다.

 허물이 없다는 것은 허물을 잘 보완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단(彖)이란 괘(卦)가 상징하고 있는 의미를 설명한 글이다. 이를 괘사(卦辭)라고 한다. 효(爻)라고 한 것은 효사(爻辭)를 말한 것이다. 효사는 전체의 괘의 상황 속에서 각 효가 나타내는 변화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역(易)에서 변화(變化)의 순서(順序)는 아래의 초효(初爻)에서부터 점차 위로 올라간다. 길흉(吉凶)은 잃고 얻음에 대해 말한 것이고 회인(悔吝)은 작은 하자(瑕疵)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예컨대 [37]‘풍화(風火) 가인(家人)’괘는 하괘[☲]는 자녀의 밝은 모습이고 상괘[☴]는 유순하고 따뜻한 부모의 분위기이다. 그러므로 집안 분위기가 아주 따뜻하고 행복하다. 그러므로 가인(家人)괘는 ‘행복한 가정(家庭)’의 주역 코드라고 할 수 있다. 가인(家人)괘는 '가정을 바로잡는 지혜'가 담겨 있다. 단에서 괘사 ‘家人, 利女貞’을 두고 설명하기를 ‘가인(家人)은 여자가 안에서 바른 자리에 있고, 남자가 밖에서 바른 자리에 있어, 남녀가 바르게 되는 것이 천지(天地)의 도리(道理)이다.(彖曰, 家人, 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라고 했다.


[37]가인(家人)괘에서, 위의 손괘(巽卦)에서는 유일한 음(陰)인 육사(六四)가 유능하기 때문에 아래의 이괘(離卦)를 관리하고 동시에 구오(九五)를 잘 보좌한다. 또 아래의 이괘(離卦)에서는 유일한 음(陰)인 육이(六二)가 유능하기 때문에 정응(正應)하는 구오(九五)를 잘 보좌한다. 말하자면 구오(九五)를 유능한 육사(六四)와 육이(六二)가 경쟁적으로 잘 보좌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 된다. 가정이면 행복한 가정이고 나라라면 살기 좋은 나라이다. 인군(人君)을 보좌하는 훌륭한 현자(賢者)들이 있기 때문이다.


역에서 변화는 아래[初爻]에서 위[上爻]로 올라간다. [1]건괘(乾卦) 초효(初爻)는 ‘潛龍勿用’이라 했다. 건괘(乾卦)의 주역 코드의 핵심은 용(龍)이다. 용(龍)은 인간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용(龍)으로 상징한다. 초구(初九)는 시간적으로 10대 전후의 어린 시절에 해당되고 공간적으로는 한 집단에서 가장 어린 구성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용[潛龍]이 몸을 키우고 때를 기다리며 물속에 있다가, 밭에 오르고[九二 見龍在田] 종일건건(終日乾乾) 노력하여[九三], 비로소 못에서 도약[九四 躍淵]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하늘을 나는 용이 되는 것[飛龍在天]이다. 상구(上九)는 한 생애의 막바지에 이른 원로를 말한다. 상구는 그 처신을 경계하고 있다. 그것이 ‘亢龍有悔’이다.


 [重天乾]


    


乾,元,亨,利,貞

   [乾] ‘用九, 見羣龍无首, 吉.

  [乾] ‘上九, 亢龍有悔.

  [乾]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乾] ‘九四, 或躍在淵, 无咎.

  [乾]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

  [乾]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乾] ‘初九, 潛龍勿用.’                 




[3]-2 是故로 列貴賤者는 存乎位하고 齊小大者는 存乎卦하고

         辨吉凶者 存乎辭하고 憂悔吝者는 存乎介하고 震无咎者는 存乎悔하니

         是故로 卦有小大하야 辭有險易하니 辭也者는 各指其所之니라.

         右는 第三章이라


 이런 까닭으로 귀(貴)한 것과 천(賤)한 것을 나열하는 것은 자리에 있고,

 작고 큰 것을 배열하는 것은 괘에 있으며, 길흉을 판별하는 것은 사(辭)에 있다.

 뉘우치거나 한스럽게 될까 근심하는 것은 갈림길에 끼어있는 데 있고,

 두려워해서 허물이 없는 것은 뉘우침에 있다.

 이런 까닭으로 괘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으며, 사(辭)에는 까다롭고 쉬운 것이 있다.

 사(辭)라고 하는 것은 각각 그 가야 할 곳을 가리킨 것이다.


· ‘齊小大者’에서 ‘’는 ‘가지런하게 하다, 나란히 열을 세우다’의 뜻.

· ‘存乎介’에서 ‘介’는 ‘두 갈림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말한다.

· ‘震无咎者’에서 ‘震’은 ‘천둥, 벼락, 두려워하다, 떨다’


* [강 설(講說)] —————

괘를 구성하고 있는 효(爻)가 상하(上下)의 6자리에 나열되어 있는 것은 각 효가 처한 자리에 높낮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貴]을 하는 자리는 보통 상층부의 중심(中心)을 이루는 오효(오爻)이고 그 다음은 하층부의 중심을 이루는 이효(이爻)이며, 사효(四爻)와 초효(初爻)는 각각 상·하괘의 아래에 있으므로 천(賤)하다고 한 것이다.


예컨대 [14]‘화천(火天) 대유(大有)’괘의 상구(上九)와 [23]‘산지(山地) 박(剝)’괘의 상효(上爻)는 귀(貴)하다고 이를 만하다.


[14]‘火天 大有

[23]‘山地 剝


 

大有, 元亨


 

剝, 不利有攸往

   · ‘上九, 自天祐之, 吉无不利

   · ‘六五, 厥孚交如, 威如, 吉

   · ‘九四, 匪其彭, 无咎

   · ‘九三,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 ‘九二, 大車以載, 有攸往, 无咎

   · ‘初九, 无交害, 匪咎, 艱則无咎    

   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六五, 貫魚以宮人寵, 无不利.

  ‘六四, 剝牀以膚, 凶.

  ‘六三, 剝, 无咎.

  ‘六二, 剝牀以辨, 蔑, 貞凶.

  ‘初六, 剝牀以足, 蔑, 貞凶 


괘의 형상에서 음과 양의 역동적인 관계에서 보면, 음이 양의 진출을 저지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 많이 저지하는 것과 적게 저지하는 것이 있다. [9]‘풍천(風天) 소축(小畜)’과 [26]‘산천(山川) 대축(大畜)’이 그것이다. 그리고 조금 힘에 지나친 것이 있고, 많이 지나친 것이 있다. [62]‘뇌산(雷산) 소과(소過)’와 [28]‘택풍(澤風) 대과(大過)’로 이름 붙여 나열하였는데, 이는 모두 괘의 형태에서 결정한 것이다.


괘사나 효사에는, 그 괘에서 지시하는 구체적인 마음가짐과 행동 방법을 설명한 뒤, 그것을 따를 때와 따르지 않을 때를 길흉(吉凶)으로 단정한다.


‘후회할 일이 있을까’, ‘곤란한 일이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은 이럴까 저럴까하는 기로(岐路)에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각 괘에서 삼효(三爻)와 사효(四爻)는 부중(不中)의 자리에서 오효(五爻)와 이효(二爻) 사이에 끼어 있다.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잘못이 없게 되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괘에서는 그 형태에 따라 ‘소과(소過)’, ‘대과(大過)’, ‘소축(小畜)’, ‘대축(大畜)’ 등의 소대(小大)가 있는 경우가 있고, 또 괘사나 효사에는 강력하고 험악하게 말하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도록 인도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쉽게 말하여 편안하게 대처하도록 인도하는 것도 있다.


예컨대 [29]‘중수(重水) 감(坎)’괘는 험난(險難)한 상황이다. ‘거듭되는 고난[習坎]의 상황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괘사(卦辭)에서 말하듯 ‘믿음[信念]이 있어야 하고, 오직 밝은 마음으로 임하면 된다. 행하면 고상함이 있다.(習坎, 有孚, 維心亨, 行有尙)’ 경계하는 괘사가 길다. 그런데 [14]‘화천(火天) 대유(大有)’는 ‘크게 소유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크고 밝은 마음으로 임하면 된다.(大有 元亨)’고 하고, [34]‘뇌천(雷天) 대장(大壯)’괘는 ‘크게 힘쓰는 상황이다.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大壯 利貞)’고 했다. 괘사가 간단하고 명료하다. 간이(簡易)의 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29]‘重水 坎

[14] 火天 大有 

[34] 雷天 大壯 

 

   

   

 習坎, 有孚, 維心亨, 行有尙

大有 元亨

大壯 利貞 


이렇게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는 각각의 처한 입장에서, 순리대로 나아가야 하는 실천의 방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제4장> 주역이 진리(眞理)인 이유


[4]-1 易이 與天地準이라 故로 能彌綸天地之道하나니

         仰以觀於天文하고 俯以察於地理라

         是故로 知幽明之故하며 原始反終이라.

         故로 知死生之說하며 精氣爲物이오 游魂爲變이라

         是故로 知鬼神之情狀하나니라


 역(易)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수준(水準)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道)를 망라한다.

 위로 우러러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구부려 지리를 살핀다.

 이 때문에 은밀하여 드러나지 않는 세계와 밝게 드러나는 세계의 근원을 안다.

 처음 시작되는 것을 살펴 마치는 이치를 돌이켜 보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정밀한 기운은 엉기어 물체가 되고, 떠도는 혼(魂)은 변하여 흩어진다.

 이런 까닭에 귀신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與天地準’에서 ‘準’(준)은 ‘수준, 평준’

· ‘能彌綸天地之道’에서 ‘彌’(미)는 ‘두루, 널리’. ‘綸’(륜)은 ‘낚싯줄, 현악기의 줄’. ‘망라하다’.

· ‘仰以觀於天文’에서 ‘天文’은 ‘천체의 운행’

· ‘俯以察於地理’에서 ‘地理’는 ‘땅의 질서, 땅의 이치’

· ‘知幽明之故’에서 ‘幽明’은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 어두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서 형이상의 세계로 볼 수 있고, 밝은 세계는 가시적인 세계로 형이하의 세계로 볼 수 있다.

· ‘原始反終’은 즉 ‘처음 시작되는 것을 살펴 마치는 이치를 돌이켜 본다’는 말은 종즉유시(終則有始)와 서로 통하는 말이다. 종즉유시(終則有始)는,『주역』은 음(陰)이 다하는 순간에 양(陽)이 시작되고 양(陽)이 다하는 순간에 음(陰)이 시작됨으로써 영원히 진행되는 태극(太極)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과 삶이 계속 순환되는 것이다. 만물은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근본을 소급하면 결국 태극(太極)으로, 그리고 무극(無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생사(生死)’가 아니라 ‘사생(死生)’이라고 한 것이다.

· ‘精氣爲物’에서 ‘精氣’는 ‘새로운 물체가 될 수 있는 정밀한 기운’, 새의 알이나 물고기알, 식물의 씨 등이 머금고 있는 기운이 정기에 해당한다.

· ‘游魂爲變’에서 ‘魂’은 ‘넋’. 기가 응결되어 물체가 되면 그 물체에는 그 물체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넋이 깃들게 된다.

· ‘知鬼神之情狀’에서 ‘鬼神’은 ‘모든 존재를 주관하는 기의 작용’. 만물은 양기의 확산작용과 음기의 수축작용을 통하여 존재되고 보존되는데 이 양기의 확산작용을 신이라고 하고 음기의 수축작용을 귀라 한다. 따라서 귀신이란 만물을 유지하고 존재하게 하는 기의 작용이다.


* [강 설(講說)] —————

천지만물의 운행 현상은 음양(陰陽)의 작용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이 존재하는 이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 즉 형이하(形而下)의 세계도 있고 형이상(形而上)의 세계도 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계[몸]도 있고 정신계[마음]도 있다. 전자를 명(明)의 세계라 한다면 후자를 유(幽)의 세계이다. 역리(易理)는 이 두 세계를 다 망라하고 있으므로, 역리를 아는 사람은 이 두 세계를 다 파악할 수 있다.


유(幽)의 세계와 명(明)의 세계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유(幽)의 세계에 의해 명(明)의 세계가 유지되고, 명의 세계에 의해 유의 세계가 유지된다. 마치 하나의 나무에,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이 있고 보이는 줄기와 잎의 부분이 있는 것과 같다. 뿌리에 상처를 입으면 줄기와 잎이 영향을 받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유(幽)의 세계와 명(明)의 세계는 서로 영향을 받는다.


북송 때의 대학자 횡거(橫渠) 장재(張載, ?~1077)는, ‘이 세계가 기(氣)로 가득 차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이 기(氣)를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에너지’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기(氣) 중에서 정밀한 것이 응축(凝縮)되어 형체를 갖춘 물질(物質)이 됐다가, 흩어지면 다시 본래의 기(氣)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물이 응고하여 얼음이 되었다가, 녹아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다.


이 기(氣)가 엉겨 만물이 생겨나는 것을 살펴보면, 그것이 흩어져서 돌아가는 과정도 알 수 있다. 전자를 ‘태어나는 것[生]’이라 하고, 후자를 ‘죽는 것[死]’이라고 하니, 처음에 태어나는 이치를 알면 죽는 이치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처음을 살펴 마침을 돌이켜보면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기운이 흩어져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흩어져 땅으로 돌아간다는 인식도 여기에 연유한 것이다.


응축외어 정밀해진 기(氣)가 물체를 이루는 것을, 역(易)에서는 ‘정밀한 기(氣)가 물이 된다’고 했고, 흩어지는 것을 ‘떠도는 넋이 변해간다’고 표현했다. ‘넋’이란 응결되어 형성된 물체를 유지하는 기운(氣運)이다. 이 기운이 그 물체에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며 떠나는 것을 ‘유혼(游魂)’이라고 표현했다. 혼(魂)이란 그 혼이 들어있는 물체를 유지하는 넋을 말한다.


기(氣)가 응축되어 물체가 되는 것은 기의 수축작용이니, 귀(鬼)라 할 수 있고, 물체가 확산되어 흩어지는 것은 기가 확산되는 작용이니 신(神)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氣)가 엉겼다가 흩어졌다가 하는 과정을 아는 것이 귀신(鬼神)의 실상을 아는 것이다.


[4]-2 與天地相似라 故로 不違하나니 知(智)周乎萬物而道濟天下라.

         故로 不過하며 旁行而不流하야 樂天知命이라.

         故로 不憂하며 安土하야 敦乎仁이라

         故로 能愛하나니라


 (易이) 천지와 더불어 비슷하기 때문에 어긋나지 않는다.

 지혜가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道)가 천하를 구제하기 때문에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두루 행하지만 한 곳으로 빠지는 일이 없으며 하늘의 일을 즐거워하고

 천명(天命)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

 처한 곳에서 편안히 있으면서 인(仁)에 돈독하기 때문에 능히 만물을 사랑할 수 있다.


· ‘旁行而不流’에서 ‘旁’(방)은 ‘두루, 널리, 방방곡곡’


* [강 설(講說)] —————

역(易)의 이치는 하늘의 운행과 땅의 작용을 상징적(象徵的)으로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역(易)은 천지(天地)와 비슷하다. 천지(天地)의 작용이 한 치의 오차도 없듯이 역리(易理)에는 어긋남이 없다. 역(易)의 이치에서 얻은 지혜는 만물의 이치를 두루 다 통찰할 수 있고, 그 이치에 의거하여 따르면 천하의 모든 문제를 감당하여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역리에는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역(易)의 이치는 천지만물을 아우르지만 어느 한 곳만을 강조하여 그에 치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리를 따르는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천명(天命)을 실천하는 것이다. 즉 천명을 알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천명을 실천하면 근심이 없다. 사적인 요구가 있다면, 그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수고하고 근심하며 때러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은 사심(私心)이 없는 것이니, 걱정할 일이 없다.


‘토(土)’는 지기(地氣)가 있는 곳이다. 천명(天命)을 따르면 걱정도 고통도 없다.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낙원(樂園)이다. 그래서 ‘토(土)에서 편안하다’고 했다.


천명(天命)을 실천한다는 것은 ‘나’와 ‘남’ 즉 주체와 대상 간의 구별이 없는 것이기 이것이 ‘인(仁)에 돈독하게 되는 것’이다. 인(仁)에 돈독해지면, 주체와 대상 간의 구별이 없으니, 남을 나처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이다.


[4]-3 範圍天地之化而不過하며 曲成萬物而不遺하며 通乎晝夜之道而知라.

         故로 神无方而易无體하니라. 右는 第四章이라


 천지 변화의 범위(範圍)를 정하되 잘못되지 아니하며,

 구석구석 만물을 이루되 빠뜨리지 아니하며, 낮과 밤의 작용에 통달하여 다 알기 때문에

 역(易)의 신비(神秘)한 대응책은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고 역(易)은 일정한 주체(主體)가 없다.


· ‘神无方而易无體’에서 ‘神’은 역리의 헤아리기 어려운 면을 일컫는 말이다.


* [강 설(講說)] —————

천지의 변화(變化)는 일정한 시점을 잘라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과 올해와 내년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봄·여름·가을·겨울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구분하여 고정화하지 않은 것은 인식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실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변화와 자연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역에서 하늘의 작용을 음과 양, 땅의 작용을 강과 유 등으로 구분 짓는다.


나아가 하늘의 작용을 원(元)·형(亨)·이(利)·정(貞) 등으로 구분 짓고, 사계절을 봄·여름·가을·겨울 등으로 구분 짓는다. 이것을 ‘천지 변화의 범위(範圍)를 짓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일단 구분 짓고 나면, 그것을 인식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구분이 없는 것을 구분 짓다 보면 다소 폐단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易)은 이러한 폐단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다. 그러므로 역리를 공부하는 데 있어, 팔괘(八卦)로 이해하기보다는 사상(四象)으로 이해하고, 사상보다는 음양(陰陽)으로 이해하고, 음양보다는 태극(太極)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역(易)은 만물의 이치를 두루두루 다 포괄하여 ‘64괘’로 형상화하여 하나도 빠뜨린 적이 없으니 이를 통찰하면 만물의 이치를 다 알 수 있고, 모든 일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역(易)의 이치의 궁극적인 것은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음(陰)과 양(陽), 유(幽)와 명(明), 생(生)과 사(死) 등 모든 양면적 세계를 다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역리에서 제시하는 신비한 가르침은 한 부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다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역이라는 것은 양면적 세계 중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즉 몸두는 곳이 없다. 그래서 ‘역은 주체(主體)가 없다’고 한 것이다.


<계사전> (제1강) ————— <끝>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