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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 2018. 7. 9. 20:49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6강> (2018.05.21.)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2강)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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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상 [제5~8장]


周易 繫辭傳·上 (제5장~제7장)


<제5장> ; 음양(陰陽)의 법칙(法則)과 역(易)


[5]-1 一陰一陽之謂 道니 繼之者 善也요 成之者 性也라.

         仁者 見之 謂之仁며 知者 見之 謂之知오 百姓 日用而不知라.

         故로 君子之道 鮮矣니라.


 음(陰)이 되었다가 양(陽)이 되었다가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陰陽의) 도(道)를 이어받는 것은 선(善)이고, 도(道)를 갖추고 있는 것이 성(性)이다.

 어진 사람을 그것을 보고 어질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지혜롭다고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매일 매일 도(道)를 쓰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잘) 행해지는 일이 드물다.


· ‘一陰一陽’은 한 번 음(陰)이 되고 한 번 양(陽)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이 되었다가 양이 되었다가 하는 도(道)의 작용’을 표현한 말이다. [본의] ‘음·양이 번갈아 운행하는 것은 기(氣)이고 그 이치는 이른바 도(道)라는 것이다.(陰陽迭運者氣也 其理則所謂道)’

· ‘仁者 見之’, ‘知者 見之’의 ‘之’는 앞에 나오는 ‘음양의 道’를 가리킨다. ‘謂之仁’은 ‘부드럽고 너그럽다고 말한다.’ ‘謂之知’는 ‘지혜로 삼는다.’ ‘仁’과 ‘知’를 겸비한 사람이 성인이다.


* [강 설(講說)] —————

하늘의 작용은 만물에 생명(生命)을 부여하고 살리는 작용이다. 그 작용은 음(陰)과 양(陽)의 순환으로 나타난다. 사계절의 순환이나 밤과 낮의 교차와 같은 자연현상이 그렇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명작용이나 인간의 삶이 모두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음양(陰陽)의 조화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는 하늘의 작용을 이어받아, 생명이 만들어지고 성숙하는 과정을 선(善)이라 한다. 그리고 성장의 결실을 이루어 그 생명체에 내재하게 된 천도(天道)를 성(性)이라 한다. 예컨대, 씨앗에서 싹이 터서 성장하는 과정을 선(善)이라 한다면, 다 자란 뒤 결실을 하고 그 씨앗에 내재하게 된 상태를 성(性)이라 한다.


천도(天道)가 순환하여 만물이 나고 자라고 결실하는 과정은, 생명에 대한 하늘의 사랑이 충만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빛을 내리고 밤낮을 교차시키며 바람과 비를 내리고 사계절을 순환시키는 것은 모든 만물을 살리기 위한 하늘의 힘이다. 그래서 어진 자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하늘의 사랑[仁]을 느낀다. 또 하늘의 작용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지혜롭다. 모든 생명체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암수가 짝을 이룬다. 모든 식물들은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해 꽃을 피우고 꿀을 만든다. 식물이 뿜어내는 산소를 동물들이 호흡하고 동물이 뿜어내는 탄소를 식물은 자양으로 삼는다. 생태계의 먹이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조화로운 삶의 구조를 이룬다. 이 모든 것에 신비로운 이치가 가득하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보고, 하늘의 지혜를 안다.


인간 또한 이 하늘의 작용을 벗어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인간의 호흡(呼吸)이나 심장의 박동 등이 음양의 작용이고 하늘의 작용이다. 그리고 ‘남’을 ‘나’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것 또한 하늘이 내린 본성인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하늘의 작용[본성]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잘) 행해지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5]-2 顯諸仁하며 藏諸用하야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하나니 盛德大業 至矣哉라


  (陰陽의 도는) 인(仁)을 실천하는 데 드러나고, 작용하는 데 감추어져 있어서,

  만물을 고무(鼓舞)시키지만 성인과 같이 걱정하지 않는다.

  성대한 덕(德)과 위대한 업적이 지극하도다!


· ‘顯諸仁 藏諸用’에서 ‘諸’는 ‘之於’의 관용적(慣用的)인 축약형이다.

· ‘鼓萬物而…’에서 ‘’는 ‘고무하다’, ‘동기를 부여하다’의 뜻이다.


* [강 설(講說)] —————

하늘의 뜻은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는 작용으로 드러난다. 인의 작용이다. 그리고 그 인의 작용은 하늘임 만물을 생성하고 기르는 과정에 내재되어 있다. 예컨대, 무리하여 몸이 상한 사람에게는 쉬면서 몸을 돌보게 하기 위해 아픔[病]을 준다. 이것은 하늘의 인(仁)의 작용이고 그 인(仁)은 아프게 하는 작용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작용은 만물을 고무(鼓舞)시켜 생명을 충실하게 하지만, 성인처럼 자세하게 걱정하거나 치료해 주지 않는다. 하늘은 인간의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물을 사랑하는 뜻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조금의 착오도 없이 인을 실현하고 있다. 그래서 ‘성대한 덕과 위대한 업적이 지극하다’고 한 것이다.


[5]-3 富有之謂 大業이요 日新之謂盛德이며 生生之謂 易이요

         成象之謂 乾이며 效法之謂 坤이요 極數知來之謂 占이며

         通變之謂 事이고 陰陽不測之謂 神이라. 右는 第五章이라


 (땅이) 넉넉하게 가지는 것을 큰 사업(事業)이라 하고

 (하늘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성대한 덕(德)이라고 한다.

 그리고 살리고 살리는 것을 역(易)이라고 한다.

 상(象)을 이루는 것을 건(乾)이라 하고, 본받는 것을 곤(坤)이라 한다.

 수(數)를 다 헤아려 미래의 일을 아는 것을 점(占)이라 하며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여 변화시키는 것을 일이라 한다.

 음인지 양인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 ‘富有之謂 大業’는 ‘땅’의 작용을 말한 것이다. 땅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業’은 ‘역할’.

· ‘日新之謂 盛德’은 ‘하늘’의 성대한 작용을 말한 것이다. 맹자가 『孟子』<盡心·上4>에서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萬物皆備於我矣)”고 한 것은 하늘의 작용이 우리 사람에게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性)이다.[天命之謂性]

· ‘生生之謂 易’에서 ‘生生’은 ① ‘(만물을) 낳고 또 낳다’ ② ‘(만물을) 살리고 또 살리다’

· ‘成象之謂 乾’은 ‘주역 64괘의 모든 상(象)은 건(乾)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늘’은 물론 ‘땅-사람’도 모두 그 근본(根本)은 ‘하늘’이다.

· ‘效法之謂 坤’에서 ‘效法’은 ‘기준[法]을 본받는다[效]’는 뜻인데 땅이 하늘을 본받고, 사람도 하늘의 이치를 본받고[精神] 또 땅의 이치를 본받는다.[肉體] 군자는 하늘과 땅을 본받아 수기(修己)하여 덕업(德業)을 쌓는다.

· ‘極數知來之謂 占’에서 ‘極’은 ‘극진하게 생각하다’, ‘완전히 이해하다’. ‘數’는 ‘경우의 수’를 말한다. ‘來’는 ‘知’의 목적어로 ‘미래(未來)’라는 뜻으로 쓰였다.

· ‘通變之謂 事’에서 ‘通變’은 ‘하늘과 통하여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즉 내가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여 자신도 변하고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성인(聖人)이 하는 일이다.

· ‘陰陽不測之謂 神’에서 ‘陰陽’은 현상적으로 작용하는 것[形而下者]이지만 그 이전의 상태인 ‘태극(太極)’은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形而上者] 그래서 신비하고 신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순수한 본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은 선(善)이라 하고, 선(善)을 자기 속에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고, 선이 몸속에 가득 차는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하는 것을 대(大)라 하고, 대의 상태가 되어서 스스로 탈바꿈하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의 상태가 되어서 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聖而不可知之之謂神)’고 하여 신(神)을 ‘不可知之’라고 했다. * [盡心章句·下](제25장)


* [강 설(講說)] —————

하늘의 작용을 인간에게 알려 주는 것이 역(易)이다. 즉 역리(易理)는 하늘의 계시이다. 하늘의 작용은 만물을 살리고 또 살리는 것이다. 죽게 하는 것은 없다. 개체의 죽음은 전체적으로 보면 살리는 과정이다. 마치 가을의 낙엽이, 그 자체만으로 보면 소멸하는 것이지만 나무 전체의 생명에서 보면 살기 위한 과정에서의 현상인 것과 같다.


역(易)은 인간이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충실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개인의 삶은 만물 전체의 삶에 닿아 있고, 하늘의 작용과 이어져 있다.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역은 개체적인 삶을 초월하여 전체적 입장에서 삶을 충만하게 하도록 인간을 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서면, 삶만이 영원히 계속될 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리를 익혀 삶 속에서 실현한다면, 영생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을 생성하는 상(象)을 드리우는 것을 하늘의 작용이고 건(乾)의 작용이며 양(陽)의 일이다. 그리고 드리워진 이미지[象]을 본받아 이를 구체화시키는 것은 땅의 작용이고 곤(坤)의 작용이며 음(陰)의 일이다.


시초(蓍草)의 수(數)를 갈라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는 것은 점(占)의 효능이다. 점을 치거나 역리를 공부하여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여 자신의 삶을 천명에 따른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늘의 작용은 음양(陰陽)으로 구체화되지만, 그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천명(天命) 그 자체는 아니다. 음양으로 구별하는 것은 천도(天道)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천도는 역리이니 역리 역시 그러하다. 신(神)이란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역리나 천도를 형용하는 표현이다.


<제6장> ; 건곤(乾坤)의 방대함과 역(易)


[6]-1 夫易이 廣矣大矣라 以言乎遠則不禦하고 以言乎邇則靜而正하고

         以言乎天地之間則備矣라


 역(易)의 이치는 넓고 크다. 먼 것에서 말하면 그것을 막아낼 수 없고

 가까운 곳에서 말하면 고요하면서도 바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에서 말하면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 ‘以言乎…’에서 ‘以’의 목적어는 앞에 나온 ‘易’이다. ‘역리를 가지고 …’로 해석하면 된다.

· ‘以言乎遠則不禦’에서 ‘禦’(어)는 ‘막다’, ‘不禦’는 ‘막을 수 없다, 끝이 없다, 무한하다’.

· ‘以言乎邇則靜而正’에서 ‘邇’(이)는 ‘작은 것, 미세한 것’이니 ‘깊은 마음 속’도 포함된다.


* [강 설(講說)] —————

역의 이치는 천지의 작용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의 작용처럼 크고 땅의 작용처럼 넓다. 그리고 그 괘가 제시하는 이치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적용되지만, 또한 찰나의 순간이나 극미한 공간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역리를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적용하면 중단되거나 막을 수 없다. 또 극미의 시공에 적용하면 소리도 형체도 없는 미세한 세계를 표현하지만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정확하다. 따라서 역리는 천문학에도 적용되지만 미생물학이나 양자역학 등에도 적용될 것이다.


역(易)의 이치는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원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자의 삶의 원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6]-2 夫乾은 其靜也 專하고 其動也 直이라. 是以大 生焉하며

         夫坤은 其靜也 翕하고 其動也 闢이라. 是以廣 生焉하나니

         廣大는 配天地하고 變通은 配四時하고 陰陽之義는 配日月하고

         易簡之善은 配至德하니라. 右는 第六章이라.


 건(乾)은 고요할 때는 한결같고, 움직일 때는 곧다. 그리하여 크게 만물을 낳는다.

 곤(坤)은 고요할 때는 닫히고, 움직일 때는 열린다. 그리하여 넓게 만물을 낳는다.

 광대(廣大)한 것은 하늘과 땅에 짝하고 변하여 통하는 것은 네 계절에 짝하고,

 음(陰)과 양(陽)이 변화하는 법칙은 해와 달에 짝하고,

 쉽고 간략하게 잘 처리하는 것은 지극한 덕(德)에 짝한다.


· ‘其靜也 翕’에서 ‘翕’(합)은 ‘합하다’, 두 문짝을 합하는 것은 닫는 것이므로 ‘닫는다’.


* [강 설(講說)] —————

새로운 생명을 낳고자 하는 건(乾)의 의지는,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한결같다. 그리고 그 의지가 구체적으로 작용할 때는 곧바로 발휘된다. 그리하여 무수한 만물을 생성한다.


건(乾)의 의지를 받아 실질적으로 만물을 생성하는 곤(坤)의 작용은, 조건에 따라 문을 열어 건의 뜻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닫아서 그 뜻을 차단하기도 한다. 마치 가을에 씨를 뿌려도 겨울에 발아(發芽)하지 않고 가다렸다가 봄에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암컷이 때가 아닐 때는 수컷의 접근을 차단했다가, 발정기(發情期)가 되었을 때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건(乾)과 곤(坤)의 넓고 큰 작용은 하늘과 땅의 작용에 짝이 된다. 그리고 이 작용이 원(元)→형(亨)→이(利)→정(貞)→원(元)… 으로 순환하여 통하는 것은 사계절에 짝이 된다. 또 건(乾)의 양(陽)의 작용과 곤(坤)의 음(陰)의 작용은 해와 달에 짝이 되고, 건곤(乾坤)의 쉽고 간단한 작용은 하늘과 땅의 지극한 덕(德)에 짝이 된다.


[본의(本義)] 건·곤(乾坤)은 각기 동·정(動靜)이 있으니 사덕(四德)에서 보면 정(靜)은 체(體)이고 동(動)은 용(用)이며, 정(靜)은 따로이고 동(動)은 서로 사귄다. 건(乾)은 일(一)이어서 실하므로 질(質)로써 말하며 대(大)라 하였고, 곤(坤)은 이(二)여서 허(虛)하므로 양(量)으로써 말하여 광(廣)이라고 한 것이다. 하늘의 형체가 비록 땅의 밖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기는 항상 땅의 가운데에 행하니, 역이 광대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제7장> ; 역(易)을 실천하는 문(門)


[7]-1 子曰 易 其至矣乎인저. 夫易은 聖人 所以崇德而廣業也니

         知(智)는 崇코 禮卑하니 崇은 效天하고 卑法地하니라.

         天地 設位어든 而易 行乎其中矣니 成性存存이 道義之門이라

         右는 第七章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역(易)은 지극하도다!”

    역(易)은 성인이 덕을 높이고 사업을 넓히는 도구이다.

    지혜(智慧)는 높이고 예법(禮法)은 낮추는 것이니,

    높이는 것은 하늘을 본받고 낮추는 것은 땅을 본받는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베풀어 역(易)의 도(道)가 그 가운데에서 행해지니

    본성(本性)을 이루어 간직하고 간직하는 것이 도의(道義)를 실천하는 문이다.


* [강 설(講說)] —————

천지(天地)는 말이 없다.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성장시키지만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천지의 작용으로 나고 그 속에서 존재하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에 가려져 온갖 악을 자행하고 고통을 짊어진다. 때문에 성인이 나오시어, 천지의 도를 실천하도록 인간들을 가르치고 악과 고통으로부터 구제하셨는데, 이때 성인이 제시한 천지의 도가 바로 역리이다. 그러므로 역은 인간을 구제하기 위한 도구로 성인이 만드신 것이다. 성인의 모든 뜻과 사업이 이 역에 응축되어 있다.


역의 이치를 아는 것은 참된 지혜요, 이를 실천하는 것은 참된 삶이다. 역을 아는 이치는 하늘을 본받는 것이니, 높고 고상하다. 그러나 역리를 실천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니, 땅의 작용에 해당한다. 땅은 하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춘다. 역리를 실천할 때의 행동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예이다.


위에는 하늘이, 아래에는 땅이 자리하고 있고, 그 사이에서 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받은 자신의 본성을 보존하고 실천하는 것이 도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리에 통달하여 실천할 때 가능하다.


 <계 속>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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