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

봉달이 2015. 1. 6. 17:27

나치 무장친위대의 장군들.. 

 

취향이야 자유겠지만..

나치 친위대의 그 가오 나오는 패션감각 하며 하늘을 찌르는 용맹과 전투력에 필 꽂혀 죽고 못사는 몇몇 분들에게 그들을 전장에서 지휘한 장군들은 어떤 인물이었는 지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태클 들어올까바 일반 친위대 장성은 제외)    

 

1.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Luitpold Himmler) 친위대 원수 

- 나치독일의 SS와 게슈타포의 최고지도자이자 유대인 대학살 최고 책임자.
- 1차 대전 당시 전쟁에 장교로 참전하려 했는데 애초에 1순위였던 해군에서는 눈이 안좋아서 거부, 육군에서도 신검기준에 미달.
- 끝내는 아버지의 빽으로 사관후보생으로 제11바이에른 연대에 입대했으나, 훈련이 끝나기도 전에 전쟁이 종결됨에 따라 참전은 나가리 됨.
- 종전 후 기술학교에 들어갔고 비참한 독일의 현실에 분노하는 참전병들이 모인 쌩 양아치 조직 자유군단에서 활동(대부분의 친위대 장성들은 전부 여기서 사회에 삿대질하고 발광하며 놀았다는..)
- 이 시기 동거녀 살해 혐의로 체포됐는데, 관련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훗날 SS의 수장으로서 독일 경찰권 전반을 손에 넣은 후 관련기록을 말소한 것으로 추정.
- 재판 결과는 증거 불충분(-_-;;)
- 농경제학 전공으로 대학 졸업 후 빌빌거리며 놀다가 1921년, 영원한 빽, 부친에게 손 벌려 양계장을 운영.
- 훗날 힘러가 나치당 당내에서도 유난히 우생학에 골몰하게 된 데는 양계장 경영 및 농학 전공이었던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추측(닭 품종 구분하듯 인종을 구분...닭대가리 같은 쇅기...) 

                양계장 주인 출신 오성장군 히믈러..그래서 사람을 닭 보듯 한다는..
- 2차 대전 당시 친위대의 악행으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히믈러가 마치 처음부터 나치 넘버 쓰리니 뭐니 별 근거 없는 평가도 있지만 나치당 내에서 초창기에는 듣보잡으로 친위대 창설 후 1934년, 돌격대 쓸어내기 유혈극 "장검의 밤" 당시의 활약으로 벼락 출세.
- 전쟁 후 친위대가 덩치를 키워가며 거대한 조직으로 커갔지만 무장친위대 장군들은 히믈러를 대놓고 무시했고 친위대 보안대(SD)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또한 히믈러보다 유능한 인물로(유태인 학살과 뒷조사, 사실왜곡 같은 쓰레기 짓으로 유능하다는 얘기..) 딴 주머니를 찼기 때문에 친위대 권력이 온전히 그의 수하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후세의 평가.
- 전후 변장한 채로 토끼다가 연합군에게 체포, 신분이 드러날 것을 예상하고 예전에 썼던 안경으로 바꿔 낀 후 입 속에 숨겨뒀던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어 자살.
-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냥 인간쓰레기

 

2. 하인츠 레이네파르트(Heinz Reinefarth) 친위대 중장 

- 1922년, 고교 졸업 후 제나 대학(the university of Jena) 법학과 입학.
- 1927년, 동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 통과 후 1930년까지 제나 지방법원 판사로 제직.
- 하지만 1932년, 타 인물들에 비해 늦게 나치당과 친위대에 동시 가입, 이때부터 엄한 길로 빠짐(이때까지 초급 판사 하던 인간이 갑자기 무장친위대 장교에서 중장까지..이래서 썩은 조직..). 

                     이 인간이 주동이 된 바르샤바 진압작전..그냥 판사나 해 처먹고 살지.. 
- 이후 법무장교도 아니고 전혀 상관없는 무장친위대 장교가 됐다가 이후, 폴란드 바르샤바 봉기 시 각급 진압부대를 조직하고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진두지휘(별명이 바르샤바의 도살자..전투가 아니라 민간인 학살 전문가..) 
- 이후 중부 오더강 방어선의 제 18 친위군 사령관(전쟁이 재판이냐?)

 

3. 헤르베르트 오토 자일(Herbert Otto Gille) 친위대 중장

- 간더스하임(Gandersheim) 출생, 1차 대전 당시 포병 소위로 참가, 1급 철십자훈장 수여(여기서 군대 경력은 끝..)
- 1919년 전역 후 1931년 나치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자동차 세일즈를 하다가 고향에서 농사지음.
- 10년간 농사짓다가 친위대에 들어간 뒤 벼락출세, 쓰리스타에 오름
- 제 3 친위기갑 사단장(3rd SS Panzer Division)과 제 4 친위기갑군(IV SS Panzer Corps) 사령관. 

 

제 3 친위기갑 사단 토텐코프..아! 자동차 팔았던 경험으로 기갑사단 사단장이? 아..그랬구나아...
- 그러니까 군 경력은 소위 달고 소대장한 게 전부고 전역 후엔 10년간 차 팔다가 농사지었는데 전쟁 터지자 바로 별 달고 장군 됐다는 얘기(살살 달래가며 지휘 잘 하겠네..소 젖 짜던 경험으로..그래도 뒤에 나올 인간들 보다는 그나마 낫다..)

 

4. 프란츠 아욱스베르거(Franz Augsberger) 친위대 소장

- 오스트리아 빈에서 호텔 사장 아들로 출생. 군사학교에 1년 다닌 걸 굳이 군생활로 쳐 주자면 그게 전부(졸업도 아니고 1년 다니다 중퇴).
- 이후 기술건축학교 졸업. 1932년 까지 비엔나의 건축회사 근무.
- 이때, 노르웨이에서 약 1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노르웨이어를 쪼께 배움. 1933년,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불법 정당이던 나치당에 가입.
- 전쟁이 터지자 바로 건축기사에서 무장친위대 장교로 둔갑. 

                       동부전선의 제 20척탄병사단..사단장은 군미필..-_-;;
- 제 1 친위기갑사단 7대대장을 거쳐 1944년, 출중한 노르웨이어 실력(?)으로 제 20 척탄병사단(20th Waffen Grenadier Division of the SS 1st Estonian) 사단장(공병대 아니고?).

 

5. 울리히 그라프(Ulrich Graf) 친위대 소장

-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 겸 푸줏간 주인. 레슬러 경력으로 1920년부터 1923년까지 히틀러의 개인 보디가드.
- 뮌헨의 맥주홀 난동 때 행진하던 히틀러에게 발사된 총탄을 몸으로 막은 공로로 출세가도에 오르고
- 이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친위대가 자리를 잡자 바로 소령에 특채된 후 매년, 그의 생일이나 히틀러의 생일 때 마다 일 계급 씩 특진(군 경력은 전무...군대 근처도 가본 적 없다는..)
- 1943년, 히틀러 생일날 친위대 장성의 반열에 오름(참, 기가 찬다..군대계급이 생일 선물이라뉘..아..친위대는 군대가 아니지...그럼 뭐다냐?) 

  입당초기 푸줏간 주인 시절...생일선물로 투스타...소 잡다가 사단장이 된 아마추어 레슬러
- 전후 1948년, 전범재판에서 5년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1950년 사망.

 

6. 구스타르 롬바르드(Gustav Lombard) 친위대 준장

-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에서 출생하였으나 1906년, 부친이 사망하자 미국의 친척에게 건너감.
- 1913년, 고졸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미주리 대학(the University of Missouri)에서 현대문학을 전공
- 이노마가 미국에서 성장한 것 때문에 헐리우드 여배우 캐롤 롬바르드(Carole Lombard)의 사촌이라는 소문이 미국 내에 파다하게 퍼졌으나 캐롤 롬바르드의 본명은 제인 엘리스 피터스(Jane Alice Peters)이고 캐롤은 예명(캐롤 롬바르드는 이 때문에 곤혹을 치름..애꿎은 놈이 엄한 사람 잡은 꼴..) 

                  괜히 이름땜시 구설수에 오른 헐리웃 여배우 캐롤 롬바르드 누님..
- 이후 독일로 돌아온 이노마는 베를린의 미국회사 현지법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클라이슬러 자동차에서 샐러리맨 생활(군경력이라곤 단 1주일도 없다..고등학교 교련수업도 받은 적이 없다..)
- 이후 나치당 입당과 친위대 가입 이후 워낙 쓰레기 집단이라 그의 영어 실력과 고학력으로 인해 승승장구
- 제 8 산악사단 프로리안 가이어(8. SS-Division Florian Geye)사단장과 제 31 척탄병사단(31. SS-Volunteer Grenadier Division) 사단장이 됨(영어만 잘해도 스타가..그럼 군 경력도 있고 영어도 잘하는 샘 해밍턴은 최소 투스타? -_-;;) 

              병장이 왠 말이냐..나도 스타 시켜다오..아니면 화채라도..-_-;;

 

7. 오스카 딜레방어(Dr. Oskar Paul Dirlewanger) 친위대 준장

-“싸이코 킬러와 아동성애자”로 유명한 개 또라이.
- 1차 대전 당시 기관총 사수로 참전.
- 당시 여섯 번이나 부상을 입고도 계속 전선에서 싸워 철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소위로 전시 임관.
- 이후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에 입학, 1922년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음.
- 하지만 고학력과 박사학위에도 불구 취업이 되지 못해 은행원, 스웨터공장 노동자 등등 여러직업을 전전.
- 1934년, 14세 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당시 법원은 술에 만취해서 몰랐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집행유예.
- 이후 실업자 신세였다가 박사학위와 군대에서의 훈장경력을 내세워 사회부적응자 및 쌩 양아치 집합소 나치당에 기세 등등 가입. 

              끼리끼리 챙긴다...싸이코의 든든한 빽..왕또라이 괴들럽 베르거..
- 하지만 집행유예로 나오자마자 다시 비슷한 혐의로 체포, 이후로도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 까지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렸으나 그의 지방 나치당 동지 괴틀럽 베르거가 절친한 히믈러에게 여러 번 부탁해서 이후 그의 관련 자료들은 전부 삭제 또는 사면됨.
- 이후 쓰레기 집단 친위대 내에서는 고학력으로 승승장구, 장성에 올랐고 그 유명한 싸이코 부대 SS 제 36무장척탄병 사단 “딜레방어”의 사단장에 오름.
- 이 쓰레기 사단은 바르샤바 무장봉기 진압작전 시 투입 첫날에만 38,000 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특히 세인트 라차루스 병원에서는 의사, 간호사를 포함 환자 1,380명 전원을 학살하였으며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강간과 약탈에만 집중, 하루종일 진격한 거리는 겨우 1km 였음. 

 

  눈깔 맛이 간 바르샤바의 SS 딜레방어 사단 정신병자들과 이들에게 희생된 바르샤바 시민들... 
- 전후 전범으로 폴란드로 이송되었으나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감방에서 간수들에게 두들겨 맞아 사망. 

 

 

                                아직도 이것들이 멋있어 보이나요?

<사진출처>

http://thechowline.files.wordpress.com/2011/02/250px-icon-waffen-ss-pic.jpg
http://www.ww2incolor.com/colorizations/360px-Bundesarchiv_Bild_183-S73495__Oskar_Dirlewanger+-+Copy.html
http://www.wehrmacht-history.com/images/personnel/h/himmler-heinrich-luitpold/himmler-heinrich-luitpold-8.jpg
http://en.wikipedia.org/wiki/File:Polish_civilians_murdered_by_German-SS-troops_in_Warsaw_Uprising_Warsaw_August_1944.jpg
http://wyborcza.pl/51,75477,16304204.html?i=0&piano_t=1
http://en.wikipedia.org/wiki/File:Bundesarchiv_Bild_101I-695-0423-14,_Warschauer_Aufstand,_fl%C3%BCchtende_Zivilisten.jpg
http://did.panzer.pagesperso-orange.fr/Gille-Otto.html
http://www.eestileegion.com/?home/estonian-legion/estonian-legions-leaders/ss-brigadefuehrer-and-waffen-ss-general-major-franz-augsberger.html
http://en.wikipedia.org/wiki/File:Bundesarchiv_Bild_119-1412,_Ulrich_Graf.jpg
http://it.wikipedia.org/wiki/File:Bundesarchiv_Bild_101III-Obermueller-012-06,_Ritterkreuz_f%C3%BCr_Gustav_Lombard.jpg
http://www.fanpop.com/clubs/classic-movies/images/22098755/title/carole-lombard-photo

요즘 우리나라 사회는 너무 외모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깝습니다.
뭐든지 예쁘면 용서되고...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가 되어 버렸어요.
예쁘거나 멋지면 모든게 다 용서되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김태희...
물론 좋아하지만...
연예인질 할려면 뭐하러 머리 터지게 공부해서 서울대까지나 갔을까..싶죠..

흔히 말하죠..
똑똑한데 예쁘다...
이게 아니라..
예쁜데 똑똑하기까지 하다..라고..ㅎㅎ
저런 지휘관의 자격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들의 명령에 죽어나갔을 부하들이 정말 불쌍하네요.
그렇지요...
당시엔 뭐 아무 생각없었겠죠..
설마 저럴 줄 알았을까요? ㅎㅎ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전시 나치 독일을 하드 캐리한건 1차대전 부터 바이마르 공화국 까지 이어온 정통 군인들이군요.
그렇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국방군의 장군들이 2차 대전의 독일군 승전을 이끌었다 봐야겠죠..
방어전도 마찬가지였고요..
물론 또라이 히틀러는 그들을 귀족출신에 겉멋만 든 인간들이라고 엄청 혐오하긴 했지만요..^^
1.헤르베르트 오토 "길레"는 제5 SS "뷔킹" 기갑사단장 이었습니다. 제3 SS "토텐코프 "기갑사단장은 그 유명한 테오도어 아이케구요.

2.히믈러를 SS원수로 번역하는 건 조금 무리죠. 라이히스 퓨러는 친위대 계급과 그의 역할을 고려하면 "친위대 최고장관" 즉 민간 정무직 장관급이지 군계급 대입은 아니지 싶습니다.
뭐야, 별거 없네.
멋있기는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