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병기들과 숨겨진 명품들

봉달이 2014. 9. 10. 12:19

오늘은 실전에 쓰였던 독일해군의 병기들을 한번 다뤄 보도록 하죠..
이놈들은 병기의 문제보단 그 운명이 더 드라마틱 했었던 놈들입니다...


1.언니보다는 잘난 그러나 가려진.. 
1) 전함 티르피츠(Tirpitz)



- 제2차 세계대전때 활약한 나치 독일 해군(크릭스마리네)의 전함.
- 등장 시점에 일본 해군의 야마토급 전함의 등장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전함이라는 타이틀을 보유.
- 영국 해군의 신경을 많이 긁었고 1번함 비스마르크의 활약과 최후가 너무 드라마틱했기에 이놈은 뒤로 살짝 가려짐(미운 언니..야마토 동생 무사시가 그랬고 히로시마 뒷타자 나가사키가 그렇듯 역사는 2등을 잘 기억해주지 않는다는..캬캬)
- 티르피츠의 함명은 1차 세계대전당시 독일해군 제독인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의 이름에서 따옴.
- 제 원
•기준배수량 : 42,900t (만재 53,500t)
•전체길이 : 251m
•전체 폭 : 36.0m•홀수 : 8.7m
•출력 : 160,026hp
•최대속력 : 30.1kt
•항속거리: 16kt로 9,280해리
•승조원: 2,608명
•주 엔진 : Brown-Boveri식 기어드 터빈 3기, 3축 추진(연료는 중유 8,000t)
•무장 : 52구경 38cm 연장포 8문(주포),
55구경 15cm 연장포 12문(부포)
 65구경 10.5cm 연장포탑 8기(대구경 대공포)
 83구경 37mm 연장대공포탑 8기,
 20mm 대공기관포 78기(단장과 4연장 혼용)
 533mm 4연장 어뢰 발사관 2기,
 Ar196 수상정찰기 4대
•시공: 1937년 11월 2일
•진수: 1939년 4월 1일
•취역: 1941년 2월 25일
•침몰: 1944년 11월 12일

 

 

2) 개발 배경

- 베르사유 체제의 붕괴와 함께 절호의 호기를 맞아 독일 해군은 야심찬 건함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비스마르크급 전함.
- 독일 해군의 사령관은 에리히 레더 제독이었는데 이 사람 역시 거함거포주의 신봉자로(지금이야 시대에 뒤떨어지고 스스로 무덤파는 고집쟁이 꼴통취급을 당하지만 당시엔 흔하디 흔했던..) 당시 시각으로는 독일 해군 내에선 해상전의 최고 권위자였음.
- 레더 제독의 전술은 영국해군이 영국본토에 배치한 전력은 속력이 느린 전함 위주니(당시 영국 해군은 식민지 유지를 위해 전세계에 고속의 순양함들을 골고루 한가득 배치해놓은 상태) 독일 해군은 중순양함과 순양전함, 고속전함을 편성해 적당하게 영국 해군 전함이나 순양함 한두척 잡아내고 본 함대(전세계에 퍼져있던)가 몰려오기전에 튄 다음 통상파괴전을 실시한다는 게 핵심.(어째 치고 튀는 작전은 1차대전 때랑 비스무리..하긴..맞짱뜨기엔..)
- 이런 레더의 의견을 들어본 초거대무기 오타쿠 에다가 허세끝판왕 히틀러는 좀만한 U보트 가지고 강력한 독일 해군이라고 광고할수 없는 노릇이니 이 견해를 적극 채용(이 때만 해도 둘이 짝짝꿍이 맞았음..)하여 영국 해군에 대응할 수상함대 건설을 지시(이것이 바로 장밋빛 인생이 아니고 플랜..Z계획)

(독일해군의 장밋빛 꿈..그냥 꿈..)

- 어쨌든 이렇게 쿵짝이 맞는 분위기 속에서 비스마르크급의 건조가 결정됨.
- 일반 밀매들이 생각하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란 흔히 "당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최신예 기술과 독일인의 장인정신이 결합한 세계최대,최강의 스펙을 자랑하는 전함"이란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실상은 그렇지 않음. 
-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후, 기술 및 건조사상을 도입, 채용할 길이 없던 독일 해군이 런던 해군조약에 맞춘 3만5천톤급 선체에 이 모든 것을 적용시킬 능력이 독일 기술진에겐 없었음(환상이 빡! 깨지는 순간..)
- 그래서 한다는 짓이 불법(조약을 무시하는..)의 가장 단순한 방법, 즉,선체의 크기를 대폭 키우는 것이었음(이 얼마나 심플한가!..소형 정밀화가 안되면 덩치를 키운다..)
- 따라서 외부에는 3만5천톤(조약 범위안..)이라고 발표했으나 현실은 4만톤의 거함이 탄생, 이로 인해 비스마르크급은 아이오와급과 야마토급 전함이 등장하기 전에 세계 최대의 전함이라는 비공식(!) 타이틀을 얻게 됨.
- 같은 시기 일본 해군은 돈이 없는 관계로 오만가지 불법 마개조를 하고 있었으며 영국과 미국은 조약 내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맨 것과는 대조적.
- 게다가 영국과 미국, 일본등 타국은 이 조약 내에서 성능을 뽑아 낼려고 엄청난 기술을 투입하고 잦은 설계변경 등 나름 엄청난 예산을 퍼부었음(당연히 의회나 언론에서 태클이 만만치 않았음..)
- 독일에선 예수님 부처님과 동급인 무소불위 총통의 입장에서야 태클 걸 의회도 없고,언론이야 더더욱 없으니..(사실 크기가 커지게 되면 요구되는 예산이 훨씬 많아지는데...그딴 거 싸그리 무시..그냥 까..)
- 이렇게 해서 불법적으로나마 넉넉한 배수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되자 구식기술로도 원하는 성능의 향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 바이에른급 전함의 3샤프트식 설계를 적용하는 등
- 알고보면 결국 2차대전형 전함이 아닌 1차대전형 전함의 개량형(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후 손 놓고 있다가 한참 만에 만들어진 전함치고는 이 정도면 대단한 성공작이라고..)
 
3)실 전
- 티르피츠는 비스마르크가 황천길로 간 다음에 완성된 관계로 주요 작전에 거의 참가하지 못했고 연합군 함선을 향해 제대로 포격한번 해본 적이 없음(야마토 해상호텔과 비슷한 신세..)

(피요르드 해상관광 호텔)

- 하지만 그 존재감 만으로도 연합국 해군(특히 영국)의 신경을 박박 긁어댔고(존재감에 있어선 대전 통 털어 갑 오브 갑) "티르피츠가 떴다"란 정보 만으로도 이를 대비하기 위해 대규모 선단과 항공기들이 필요했음은 말할 필요가없음.
- 1942년 초반 북해 수송선단을 압박하기 위하여 노르웨이로 이동한 티르피츠는  피오르드 해안에서 2차 세계대전 전쟁기간 대부분을 보내게 됨.
- 그래도 줄곧 짱박혀 있지만은 않았고 1942년에 두차례, 1943년에 한차례 제한적인 공세에 동원됨,
- 비록 티르피츠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이놈이 뜰 때마다 여러모로 위협을 느낀 연합군은 티르피츠가 항구에 짱박혀 있을 때 침몰시켜야 한다고 판단함(기어 나왔다하면 빡쎔..)
- 1942년 3월 초, 수송선단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항했으나 수송선단을 발견하는데 실패, 도로 영국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호의 정찰기에 위치만 뽀록나서, 영국 해군항공대의 추격 및 공격을 우려, 노르웨이로 토깜.
- 1942년 7월, 티르피츠는 그냥 한번 설렁 움직였을 뿐인데(포 한번 안쏘고 수송전단을 대면한 적도 없음..걍 한번 슬쩍 나갔던 것 뿐..밥상위에 숟가락 한번 슬쩍 올려놓았던 것 뿐인데..) 그 존재감만으로 수송선단 QP17을 거의 괴멸시키는데에 성공.
- 이게 뭔소리냐면.. 당시 연합군은 티르피츠가 구축함 9척을 동반하고 출항했다는 정보를 받고 이를 수송라인 차단을 위한 것으로 판단(엇 뜨거..저놈아가 떴단다..뭐 그런..)
- 호들갑을 떨며 수송선단의 산개를 명령, 이에 호위도 제대로 못 갖춘 수송선단은 명령을 받고 일제히 흩어지자 이는 U보트와 루프트바페의 좋은 먹이가 되어 12척의 수송선을 상실, 귀중한 전쟁물자와 더 귀중한 생명들을 차디찬 북극해 용궁으로 이주시킴(세렝게티에서 하이에나가 사슴떼를 사냥하는 것과 같음..무리가 흩어지면 잡기도 쉬움..)


 (난 그냥 가만 있었는디...???) 
- 당시 티르피츠는 수송선단이 흩어졌다며 작전 종료..걍 노르위이로 돌아옴..(이런 범접치 못할 포쓰를 봤나...걍 나타났다는 소문만으로도 알아서들 엎드린다는..)
- 1943년 9월에 티르피츠는 스피츠베르겐 공격을 목적으로 출항하여 독일군의 상륙작전을 지원할 목적으로 육상 포격을 실시(이게 티르피츠의 유일한 실전 포격..-_-;;)
 
4) 영국군의 근성과 격침
- 상황이 이리되자 티르피츠 격침을 위해 영국군은 근성돋는 각종 작전들을 입안하고 실시함.
- 티르피츠에 대한 영국군의 첫 작전은 거의 일본군이나 하는 막장에 가까운 위험한 작전이었음.
- 1943년 9월, 영국해군 X급 소형 특수잠수정 2척이 기지를 떠나 1천 마일을 항해, 독일군이 설치한 기뢰지대를 돌파하고 그물과 해안포대, 수중청음 시설을 피해 물넘고 산너머 기어코 티르피츠의 선저에 잠입, 4톤의 폭약을 설치.
- 폭약은 한시간 뒤에 폭발했고 격침에는 실패했지만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티르피츠는 몇 개월간 임무에 나갈 수 없었음(일본이 진주만기습 때 하려다가 실패한 작전과 비슷..그토록 근성을 강조하던 일본군이 영국군보다 근성이 없었나?)
- 1944년 4월경 수리를 마친 티르피츠는 다시 연합군의 신경을 긁어 댔고 영국 해군은 또다시 작전을 기획해서 이번엔 항공모함을 동원, 티르피츠 격침을 시도.
- 2척의 전함, 2척의 항공모함, 5척의 호위항공모함, 2척의 순양함, 16척의 구축함과 2척의 유조선(함대네 함대..한놈 잡으려고..)으로 구성된 대규모 공격대 함대가 출발, 피요르드에 짱박혀있던 티르피츠를 향해 함재기들을 출격시킴.


(가자!! 한놈 잡으러..참 가오 안선다는..)
- 티르피츠를 발견한 항재공격기들은 격침내지 최소한 데미지라도 입히기 위해 각종 소규모 폭탄과 일반 범용폭탄 등 다양한 폭탄들을 티르피츠에 쏟아부었음.
- 일부 영국군 전투기들은 갑판에 기관총을 마구잡이로 갈겨대기도 했으며 영국 해군은 3대의 항공기를 손실하고 티르피츠는 승조원 122명 사망에 300여명 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약간의 누수와 손상외에 격침에는 실패(수리기간 2개월...끝..)
- 또다시 격침에 실패한 근성의 영국군은 차기 작전 3개를 다시 입안하였으나 북해 특유의 지독한 기상상황으로 인해 작전은 모두 취소(하지만 계속된 실패에도 영국군은 결코 포기하지 않음..이것들 근성있네..)
- 1944년 7월 다시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티르피츠를 공습, 두번은 안속는지 독일군의 경보체제와 연막때문에 또다시 티르피츠의 격침에 실패.
- 8월 초, 티르피츠는 자잘한 수리를 마치고 다시 시험 항해에 들어갔고 영국군은 다시 공격을 개시, 8월 24일 전개된 작전에서 영국 뇌격기들은 티르피츠에 폭탄을 명중시켰으나 이번엔 운나쁘게 불발(어렵다..어려워..-_-;;)
- 이 와중에 영국 항공모함 한척만 U보트의 공격을 받아 대파되는 안습의 사태가 발생, 결국 영국 해군은 티르피츠 격침작전을 포기, 임무는 영국 공군의 손으로 넘어감(에고~ 이제 우린 못하겄다..니네가 해봐..뭐 그리된 거임)
- 뒤이어 영국 공군은 모두 3차례의 공격을 실시.
- 그들은 아무리 폭격을 하고 맞춰도 가라앉질 않는 티르피츠를 죽이기 위해서 걍 폭탄이 안 먹히면 졸라 쌘 폭탄을 먹이면 되지.. 라고 생각.
- 1944년 9월 15일 소련에서 출발한 아브로 랭카스터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톨보이라 불리는 무지막지한 5톤의 지진폭탄과 5천 파운드의 조니워커 수중보행 기뢰를 투하.

(안되면 더 쌘놈으로..랑카스터와 톨보이)

- 티르피츠가 살포한 연막 때문에 대부분은 빗나 갔지만 한 발이 핀 포인트로 명중 심각한 피해를 입히며 티르피츠는 더이상 연합군 수송선을 위협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음.
- 같은해 10월경 독일군은 더 이상 전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티르피츠를 노르웨이 지역의 연합군 침공을 방어하기 위한 해상 포대로 활용하고자 위치를 이동.
- 1944년 10월 28일 영국 공군은 또 다시 랭카스터 폭격기에 톨보이 폭탄을 적재하고 공습을 개시,이번엔 안개에 가려 빗나갔지만 티르피츠의 스크류 프로펠러 축을 구겨놓는 데에 성공(워낙 무지막지한 폭탄이라 명중이 안되도...이 시점에서 티르피츠는 사실상 앉은뱅이가 된다는)
- 마침내 1944년 11월 12일, 랭카스터 폭격기들이 다시 날아 올랐고 이번에는 운 없게도 티르피츠의 연막 장치가 작동되지 않아 3발의 톨보이 폭탄이 몸통에 박힘
- 한 발은 주포탑에, 두 발은 선체 장갑을 관통하며 200피트 깊이의 구멍을 뚫어 버렸고 3번 주포탑이 유폭을 일으키자 결국 티르피츠는 수 분만에 전복되며 그 지긋지긋한 일생을 마침(1,700여명의 승조원 중 1천여명이 전사)

 (끝내는 전복..어렵다..어려워..T.T)


5) 평 가
- 비스마르크급은 결론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형 설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내놓기에 만족스러운 전함은 아니었음.
- 나치 독일의 그릇된 현시욕과 단절된 건함 기술의 결합이 낳은 열강 최약체 전함이라고도 평가 받으며 이는 시대에 맞지 않고 뒤떨어진 기술과 사상들을 적용했기 때문.
- 심지어 당시의 열강 신형건조함정 중 최약체 화력이었다는 영국의 킹 조지 5세급 전함(이놈은 담에 함 디벼 보겠음..)과 비교하더라도 열세한 점이 많았다고 전해짐.
- 또한 가격대비 효율도 좋지 않았음.
- 예를 들어 비스마르크의 건조비용은당시 영국 파운드화로 환산하면 2450만 파운드(독일 마르크로 1억9600만 마르크)로 당시 영군해군 후드급 순양전함이 600만 파운드. 넬슨급 전함은 750만 파운드였음.
- 근데 2450만짜리가 600만짜리 하나 없애고 750만짜리에게 신나게 쳐맞고 용궁갔으니 장사로 쳐도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님.
- 비스마르크 한 척이면 스핏파이어 MK V 전투기가 2,041대 분량이므로 비스마르크 침몰소식을 듣고선 히틀러가 길길이 날뛰면서 전화통 붙들고 난리부르스를 떤 것도 이해가 됨.
- 그나마 티르피츠가 그 운좋게 얻었던 최강전함 이미지를 백분 활용하여 연합군에게 자신의 존재감만으로도 지속적인 압박을 주었으며
- 그럼으로써 북해에 연합군 해군전력 일부를 붙잡아 놓음으로써 항공모함이 해전의 주축이 되었던 2차대전에서 전함을 잘 이용한 몇 안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음.
- 당시 열강으로 따지자면 최약체 전함이었지만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도 삽질이나 했던 야마토급 전함보다는 훨씬 더 가치가 있었던 나름 수훈함(돈이란 돈은 다 쳐들여놓고 무엇하나 한 게 없는 야마토는 대체 뭔 짓거린지...)

 
(야마토..요새 일본애들 망상만 키우는..걍 뻘짓..뭐? 우주전함? 개가 웃겠음..)


2. 어드미럴 히퍼급(Admiral Hipper-Class) 중순양함들의 기구한 운명


1) 개 요
- 어드미럴 히퍼급(Admiral Hipper-Class) 중순양함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당시 사용한 중순양함.
- 모두 5척의 동형함이 건조되었으며, 각각의 이름은 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 프린츠 오이겐 (Prinz Eugen), 뤼초프 (Lützow), 블뤼허 (Blücher), 자이들리츠 (Seydlitz).
- 어드미럴 히퍼는 초기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는 1만톤급의 조약형 순양함으로 세상에 공개.
- 그러나 건조가 시작되면서 만재 배수량이 18,400톤에 이르는 조약위반형 순양함으로 취역(뭐 언제나 하는 구라뻥 드립질이니까..)
- 1935년 ~ 1937년 까지 총 5척이 차례로 건조된 어드미럴 히퍼급은 주로 통상파괴작전에 투입되었음(그거 말고 할 게 있었나?)
- 동혐함인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와 함께 출격, 영국해군과의 행상 난타전을벌이다 장비한 8인치 함포를 후드급 순양전함에 명중시켜 화재를 발생시킴.
- 이후 전함 비스마르크는 해당 화재를 확실한 조준점으로 잡아서 후드를 공격하여 침몰시킴(후드급 침몰에 결정적인 한몫을 했다는...)
- 하지만, 조약 위반까지 하면서 만들어진 것 치고는 문제점이 많은...
- 일단 독일에 대형함선의 제조기술이 10년 이상 단절된 이유로 인해 1차대전형 전함의 설계도를 그대로 카피수준으로 답습해서 함체 구조가 구식(중순양함의 경우에는 카피한 전함의 설계도를 축소해서 그대로 적용...) 
- 설치된 고압력 보일러의 경우 관리에 기술자가 필요하고 부품도 군용 스펙에 맞지 않게 매우 정밀한 것이 사용(독일군 전체의 문제.. 장인정신)
- 따라서 수시로 문제를 일으켜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충격에 심각하게 취약하므로 사소한 공격에 파열되어 사상자나 늘리는 애물단지.
- 이런 이유로 인해 장대한 항속력을 자랑하면서도 실제로는 멀리 내보내기 힘든 물건이였음.
- 어찌되었던 독일은 모두 5척의 동형함을 건조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독일해군이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각자 모두 다른 기구한 운명을 맞이함.

 

2) 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

(박살나서 방치..)

- 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급의 네임쉽으로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블롬 운트 포스사가 어드미럴 히퍼를 건조.
- 그나마 나름대로 자주 사용되었으나 바렌츠 해 해전(독일해군의 무참한 대패배..레더제독은 그 책임을 지고 사임)에서 기관부에 치명상을 입고 이후 현역에서 제외.
- 이후 방치된 1945년 5월 3일 중순양함 어드미럴 히퍼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킬시에서 연합군의 공습에 의해 침몰

 

3) 프린츠 오이겐 (Prinz Eugen)


(비키니...저어기 어딘가에..)
- 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급의 2번 함.
-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앞서 설명한 것처럼 후드급 격침에 상당한 공로를 수행.
- 이후 동부전선의 함포사격지원 등에 활용되다가 종전후 미국에 배상함으로 넘겨짐.

- 1946년 7월 1일 비키니환초 핵실험에 실험물로 사용(나름 핵폭탄에도 버텼다고 함..) 

 

4) 블뤼허 (Blücher)

(나오자 마자..용궁행..)

- 어드미럴 히퍼급 3번함이자 히퍼급 중 가장 수명이 짧았던 함.
- 노르웨이 침공 당시 수도인 오슬로를 점령하기 위한 함대 소속으로 나갔다가, 오슬로 근방의 피요로드에서 노르웨이군의 구식 해안포에 두들겨 맞고, 어뢰 두발까지 맞아 순식간에 침몰.
- 전복되는 바람에 상당수의 승무원 및 탑승한 지상군 병력이 탈출하지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음.
- 취역 반년만에 격침당하는 최후를 마침으로써 이 얘기는 노르웨이인들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으며,당연히 히틀러는 이 보고를 받고 빡 돌았다고 함. 
- 취역한 지 반년 밖에 안된 최신삥 신형함이 그것도 구식해안포에 맞아 침몰 했으니...비스마르크 침몰과 함께 가뜩이나 인내심부족의 대명사 히틀러에게 이러한 독일해군의 삽질은 이후 완전히 독일해군에게서 정떨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음.

 

5)자이들리츠 (Seydlitz)

(뻘짓 마개조..)

- 어드미럴 히퍼급 4번함
- 1936년 12월 29일 브레멘의Deschimag조선소에서 에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의 4번함으로 건조가 시작
- 1942년 8월 26일 작업이90% 완료되었을떄 함의 용도를 항공모함으로 변경한다는 결정이 내려짐.
- 하지만, 전쟁이 악화됨에 따라 원자재 수급은 원활하지 못했고,이로인해 건조가 더뎌짐.
- 이후 바렌츠 해전의 대패배로 꼭지가 팍 돈 히틀러가 건조중지를 명령, 1943년 1월에 건조가 중지.
- 방치되어 있던 본 함은 소련군이 접근해 옴에 따라 1945년 4월 10일 쾨니히스베르크 앞바다에서 자침.
- 1946년 소련은 꾸역꾸역 그라프제펠린 항공모함을 다시 인양함과 동시에 자이틀리츠도 인양.
- 소련으로 예인해 가서는 함명을 폴타파로 개명했다가 1950년 표적함으로 침몰시켜버림.(뭐하러 꾸역꾸역 건져내서 가져갔대? 어초로 쓸려고?)
- 제 원
만재배수량:18000t
전장:214.0m
홀수선:199.5m
전폭:30.0m
흘수:8m
승무원:1600명
무장:105mm주포10문
     37mm대공포16문
     20mm기관총8정
함재기:24 기
Bf109T(전투기)&FW190A(전투기)10기
Ju87C슈투카(폭격기)8기
Fi167(뇌격기)6기
터빈엔진:3개
엔진최대출력:133631shp
최고속도:32.5kn.t
항속거리:6100마일/15 kn.t

 

 

6) 뤼초프 (Lützow)

(적군에게 팔아 먹고....)

- 어드미럴 히퍼급 5번함
- 1937년 8월 2일 브레멘의 Deschimag 조선소에서 건조, 1939년 7월 1일 진수.
-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련간에 불가침조약을 체결되자 독일은 소련과의 우호증진을 위해 히퍼급 중순양함 자이틀리츠와 뤼초프를 소련에 판매하기로 결정.
- 이후 자이틀리츠는 소련에 판매 하는걸 취소하고 뤼초프만 소련에 판매(1940년 5월..뤼초프는 54% 완성된 상황)
- 1940년 5월 31일 반쯤 건조된 상태에서 소련은 레닌그라드 조선소로 끌고가서 남은 작업을 지속.
- 1940년 9월 25일 함명을 페트로 파블로브스크로 하고 독일의 기술지원하에 건조는 계속 진행,1941년 6월까지 70% 가량 완성.
- 1941년 6월 22일 히틀러가 바바롯사 작전을 개시하면서, 건조가 취소(뭐 한다고 팔았대? 이것도 히틀러의 페이크중 하난가?)
- 레닌그라드 조선소 근처에 정박하며 해상포대로 사용되다가 독일군의 포격으로 침몰.
- 1942년 9월 17일 소련은 페트로 파블로브스크를 인양하여 수리 후 다시 재취역 시킴.
- 1945년 9월 1일 함명을 페트로 파블로브스크에서 탈린으로 다시 개명
- 1958년 이후 소련은 탈린을 퇴역시키고 폐기처분, 생선들에게 놀이터를 제공.

 

3. 자매 여객선의 이상한 변신
1) 그나이 제나우

(나름 평화로운 시기..)

- 1934년 독일은 나름 평화기에 점점 더 소요가 많아지는 여객선 용도로 브레멘의 AG 베저 조선소에서 그나이제나우를 건조하기로 결정.
- 1935년 5월 17일 진수후, 1936년 1월 3일 완공, 북독일 로이드 여객에 소속되어 여객선으로서의 역활을 수행.
-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후 그나이제나우는 독일해군에 징발, 물자보급이나 병력을 수송하는 임무에 투입.
- 그러다가 1942년 5월 13일 독일해군은 본 여객선를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기로 결정.


(항모로 둔갑..)
- 빌헬름스하펜 조선소로 이동하여 개장작업을 하던 중 원자재 부족으로 1942년 11월 25일 항모개장이 취소.
- 다시 화물선으로 둔갑, 물자운송 임무에 사용되던 중 1943년 5월 2일 발트해에서 기뢰에 의해 전복 침몰.


(다시 화물선으로..그러나..)

 

2) 샤른호르스트

- 그나이제나우와 같은 동형함인 샤른호르스트 여객선은 아시아에서 항해 도중 2차대전이 발발함.
- 하는 수 없이 동맹국인 일본의 고배에 기항, 한동안 계류된 상태로 방치. 
- 오도가도 못하게 됨으로 독일은 일본에게 본 여객선을 1942년 7월 판매.(니네가 사라..)
- 이후에 일본해군은 샤른호르스트를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기로 결정, 함명도 신요로 변경함
- 여객선으로 건조된 동형의 자매함이 모두 이상한 이유로 항모로 개장.그것도 각각 타국에서.

(일본항모 신요로 둔갑...)

- 이후 신요라는 이름의 항모로 개장된 본 함은 항모로써의 임무는거의 수행치 못하고 수송함으로 사용됨.
- 1944년 11월 17일 마닐라 수송작전에 투입되었다가 미국 잠수함 스페이드피쉬가 발사한 어뢰에 침몰.

오슬로 출장길에 거래처랑 바닷가 레스토랑 가다가 블뤼허 앵커를 기념물로 건져놓았더군요. 애들이 되게 으쓱해 하더라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