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전의 요새들

봉달이 2017. 3. 23. 14:48

<떡밥 투척#1>일본 육군, 뤼순의 악몽을 놀이터로 구현하다<3>



제 22 연대의 암울한 동계관산 북 보루 공략기(2)


- 뤼순 요새는 일본 해군의 관점에서 볼 때, 유럽에서 발틱 함대라는 대규모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항만 내에 짱 박힌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 하지만, 일본 육군이 가지고 있던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극동의 러시아 육군과의 일대 결전에 대비, 세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요새 공략보다는 차라리 봉쇄하여 요새 내에 러시아 군을 묶어두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뤼순 요새 공략에 전력을 소모하면 추후 러시아 육군을 각개 격파하기 위한 전력이 줄어든다는..)
- 당시 일본 육군이 세워둔 기본 전략 또한 뤼순 요새는 그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철도와 해상로를 차단하면 가방 안에 든 쥐나 다름없고, 큰 희생까지 감수하며 굳이 공략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지만, 절박해진 해군의 머리 숙이기에 육군 수뇌부는 우쭐해지며 단박에 기존 전략을 홀라당 뒤집었다(역시 이것들은 우리가 나서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 하는구만!! 캬캬~~ 쿨럭~~ -_-;;)



                               뤼순이야 묶은 다음 굶기면 되는데 뭐가 고민?


- 이렇게 일본 육군이 스스로 세워둔 전략마저 홀랑 뒤집을 수 있었던 내막에는 10년 전 청일 전쟁에서 닭나라 군대 청국군이 방어하던 뤼순 요새를 쉽게 공략 할 수 있었다는 경험(노기가 뤼순 공략을 맡은 이유도 청일 전쟁에서 불과 하루 만에 뤼순을 함락시킨 공적이 있었기 때문..)과 러시아 군이 엄격한 기밀 유지를 통해 뤼순을 청나라 시기의 하꼬방에서 현대식 요새로 완벽하게 변신시킨 것을 까맣게 몰랐던 데에 있었다(이래서 인사와 정보가 중요하다는 거... 지 맘대로 한 인사는 나라를 조진다..순시리 두 마리 치킨의 위엄...)
- 이 쪼다들은 옛날에 한 가닥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할 것이라는 무뇌아적인 발상으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서남 전쟁에서 칼 들고 설치던 영감탱이 노기에게 현대적 요새 공략전의 책임을 맡겼고, 이들은 러시아 군이 아무리 요새를 견고하게 해도 쉽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만주군 총참모장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郎)도 “10일이면 떨어진다!”고 호언장담했다(실제로는 5개월 걸렸다..흑~~ ㅠ.ㅠ)



                     청일 전쟁 때 뤼순은 하루만에 자빠뜨렸쟈나~~ 뭐가 고민?


- 이것들이 얼마나 자신만만했느냐 하면, 노기가 지휘하는 제 3 군의 주 임무는 뤼순 함락이 아니라 최대한 빨리 뤼순을 점령하고, 전열을 수습해 앞서 전진한 일본 육군 주력군과 합류, 러시아 육군과 결전을 벌이는 것이었다는 것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이런 일본 육군의 과대망상적 발상은 훗날 태평양 전쟁에서도 고스란히 부활하는데 개전 직전, 이들의 전략은 해군이 기름 없다고 징징대서 못이기는 척, 남방 작전을 실시하지만, 당시 그들이 내세운 명목은 "이 작전은 1941년 겨울 안에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우리는 1942년 봄에 시베리아로 쳐들어간다!"였다(이 얼마나 획기적인 국가 전략인가!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한 계절 만에 끝장내고 곧바로 소련과 전쟁하러 간다니...엉엉~~ㅠ.ㅠ )



          남방 작전(위)은 3개월 안에 쫑 내고 따스해지면 우린 시베리아로 간당~~ ㅠ.ㅠ


- 하지만 이렇게 의기양양 뤼순을 향해 항가거리며 나아간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제 3 군은 그 초전부터 쎄한 느낌을 받는다.
- 이들에 앞서 제 2 군이 뤼순 요새의 전초 진지라고 할 수 있는 진저우(金州)의 남산(南山)에 주둔한 러시아 군을 공격했는데, 그 방비 태세와 진지의 견고함이 일본 측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고, 비록 이곳을 어렵게 함락시켰긴 하였지만 사상자가 무려 4,500명이나 발생했다는 것에서 벌써 이들의 예상이 영 빗나갔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노기가 10년 전 뤼순을 함락시킬 때, 일본군의 손해는 달랑 전사 40명, 부상 241명, 실종 7명이었으므로 이때부터 이미 글러먹었다..)


                                            영 껄적지근 한데?? -_-ㅋ


- 따라서 일본 육군은 그때까지 예상했던 공격 계획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이를 변경할 필요에 직면하였지만, 여전히 현대적 공성 전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채 그대로 막가파식 돌격 작전에 임했고, 그렇게 행해진 제 1 차 뤼순 총공격에서 제 3 군은 투입 병력 50,700명 중에 사상자가 15,800명이나 발생하며 전체 병력의 31%를 홀라당 말아 드셨다(대한민국 육군 교범에 따르면 단위 부대당 피해율 30%는 전멸(全滅 Annihilation)로 규정하고 있다.. 30%쯤 손실을 입으면 재편성을 해야 할 정도로 전력이 급감하더라..이거임..)
- 한편, 제 1 차 총공격에서 목표했던 동계관산의 러시아군 주요 거점 근처도 못가보고 탈탈 털려 후퇴한 제 11 사단은 공격 출발선까지 밀린 것도 모자라 오히려 러시아 수비군의 반격에 대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 특히, 손해가 컸던 제 10 여단(제 22 연대와 제 44 연대)은 결국 사단 예비대로 돌려졌고, 이들은 전력 회복에 노력했지만 입은 피해가 너무나 커서, 제 22 연대는 각 대대의 잔존 병력을 모아 중대로 개편해야할 만큼 쭈구리가 되었다.



               1차 총공세 당시 22연대의 공격 방향(위)과 이후 제 3 군의 교착 상황..


- 1차 총공격이 엄청난 피해만 입고 무위로 돌아간 일주일 후인 8월 31일, 제 3 군 사령관 노기는 1차 공격 때의 무작정 돌격 강습에 의한 공격을 그만 포기하고, 다가올 2차 공격은 러시아 방어선 인근까지 최대한 참호를 파서 접근한 다음, 최단 거리에 이르면 육박하는, 일명 두더지 공격법을 계획했다(흠..나름 대갈빡 굴린 게..-_-;;)
- 노기의 획기적인 전술(?)에 따라 9월 2일부터 참호파기 노가다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제 22 연대는 다시 야마나카(山中) 소장의 지휘 하에 들어갔고 공격 목표 또한 동계관산 북 보루가 주어졌다(흠..신념의 일본 육군..죽으나 사나 한 곳만 파!!) 
- 참호 굴진 작업은 공병대의 지도하에 밤낮 교대로 이루어졌지만, 달랑 사흘 만에 러시아 수비병에게 발각되며 뽀록났고, 참호선 제일 전방은 사람 그림자가 보이는 족족 저격을 받았기 때문에 종종 공사를 중지해야만 했다.


                              땅을 파라~~!!! 군대 뭐 그렇지...-_-;;


- 특히 낮에는 파낸 흙을 앞으로 던지면 곧바로 러시아 군의 사격이 집중되었으므로 파낸 토사를 일일이 참호 제일 뒤로 옮겨야 하는 진땀 빼는 상황이 연속되었지만, 이 무렵, 제 22 연대는 본토로부터 새로운 보충병들을 받아 제 1 대대와 제 2 대대를 편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제 3 대대는 여전히 병력 부족..)
- 노가다를 시작한지 한 달이 경과한 10월 1일이 되면, 동계관산 북 보루 외부 벙커로부터 약 200m 지점까지 길이 약 120m의 참호선 4개가 완성되었는데, 그 동안에도 러시아 군의 방해 공작은 여전히 ​​극심하였고 특히, 해상용 기뢰를 개조한 투척식 지뢰 공격에 의한 손해까지 발생했다.



      2차 총공세 직전의 상황.. 열라게 참호 파서 러시아 진지 앞까지 전진한 것이 보인다..


- 마침내 각 사단으로부터 참호선 추진 상황과 포격의 성과를 보고받은 제 3 군 사령관 노기는 1904년 10월 30일 23시를 기해 전 전선에 걸쳐 일제히 할당된 목표를 향해 돌입할 것을 명령했다(이것을 2차 총공세라고 한다..)
- 제 22 연대는 제 2 대대에 기관포 2문과 공병 1개 소대를 배속시켜 선봉 돌격대의 임무를 맡겼고, 2개 중대가 모자란 제 1 대대는 예비대로 다음날 이른 아침에 동계관산 북 보루를 향해 돌격하기로 계획하였다.
- 이에 따라 선봉으로 낙점된 제 2 대대는 각 중대에서 선발된 병사들로 이오 세이지(井生清治) 중위의 지휘 하에 돌격 중대를 편성하였으며, 이들은 참호선의 최전방에서 공병들이 돌격로를 개설해주기를 기다렸다.



               돌격~~~~ 아래 삽화는 1차 총공세 당시를 외국인 기자가 그린 거...


- 마침내 공격 개시 시간인 23시가 되자 돌격 중대는 명령대로 일제히 참호를 벗어나 돌진을 시작했고, 먼저 1개 소대가 러시아 군의 벙커에서 토해내는 화망을 무릅쓰고 장애물을 넘었으며, 이들은 곧바로 사다리를 해자(垓字)에 걸치고 마침내 보루 외벽 정상에 도달하는 듯 보였다.
- 이때 러시아 군의 방어 화력은 "수류탄의 비가 내렸다!"는 증언까지 있을 정도로 점점 심해졌고 일본군 선봉 소대는 사상자가 속출했지만, 23시 30분, 마침내 이들은 동계관산 북 보루 외부 벙커의 일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 하지만 이들은 그 직후, 보루 외부 경사면에 위치한 벙커의 출입문을 열려고 시도하다가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러시아 군의 총격과 외부 벙커에서의 기관총 세례가 집중되며 순식간에 소대장 이하 대부분의 병력이 콩가루가 되었다.




- 이어서 두 번째 돌격 소대도 튀어나갔지만, 이들 또한 해자 바닥에 고립되며 측면과 후방 총안에서 쏟아지는 총격과 수류탄 세례에 싹싹 갈려나갔고, 세 번째 돌격 소대가 전진하려고 할 때가 되면, 이미 이들의 돌격로가 러시아 군에게 노출되어 참호선 입구에 화망이 집중되던 상황인지라 이들은 외부 벙커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헬 게이트가 따로 없다..)
- 이 꼬라지를 본 제 2 대대장 사사키 에이지로(佐々木栄次郎) 소좌는 제 6 중대와 제 7 중대를 동원, 돌격 중대를 지원함과 동시에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돌격대를 막느라 경계가 느슨해진 러시아 수비대를 제압하는 작전을 도모했지만, 이 작전도 이동 도중에 쏟아지는 기관총탄과 철조망에 막혀 시도도 못해보고 나가리가 되었다.



                       역시나 탈탈 털린다..(사진은 드라마 "언덕위의 구름" 캡쳐)..


- 열불이 하늘 끝까지 솟은 사사키 대대장은 야간에 재돌입할 것까지 결심했지만, 어둠이 내리자 러시아 수비대에 증원 병력이 속속 추가되며 도리어 방어 태세가 더 강화되었고, 이를 파악한 사단장 츠치야 미츠하루(土屋光春) 중장은 야습을 해봐야 성공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 이를 중단하고 다음날 아침에 추가 공격을 실시할 것을 명령했다(그럼 그때까지 튀어나가 가루가 된 아그들은 뭐가 되는겨? -_-;;)

- 다음날인 10월 31일, 해가 떠오르자 제 11 사단 정면의 동계관산 북 보루가 제 3 군 공세의 중점 목표로 선정되면서 포병의 화력이 집중되었고, 오후에 들어서는 9월 상순부터 본토로부터 제 3 군에 보내진 28센티미터 곡사포도 이 포격에 가세하기에 이른다.



                  일본군 회심의 역작 28센티미터 곡사포와 동계관산 포격 모습..


- 아오키 스케지로(青木助次郎) 제 22 연대장은 이 기회를 통해 명예회복을 노렸고(이것들은 그놈에 체면땜에 망한다..) 다시 한 번 총공세를 단행할 것을 계획했으나, 이처럼 치열한 포병의 맹사격을 받고도 러시아 군의 현대적 보루와 포대는 여전히 건재했으며 또한 그 화력을 이미 노출된 일본군 참호선의 좁은 입구에 집중시켰다.
- 쏟아지는 러시아 군의 포탄에 옴짝달싹 못하던 22연대는 막대한 손해를 입고 결국 기존의 공격 계획을 잠시 중단시켰으며 이후 이들은 참호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열심히 외부 해자까지 공격 루트를 개설하기 위해 피X을 쌌고(또 땅을 판다..), 마침내 19시 무렵에는 양군의 포화가 격렬해지는 틈을 타 보루 인근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우옷~~ 인간 승리!!!)

 


                   파고 또 파서 마침내 보루 정면 부근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 하지만 여기까지 어거지로 접근한 제 5 중대와 제 8 중대가 러시아 군의 포화뿐만 아니라 보루의 수직벽 위에서 쏟아지는 수류탄과 총탄을 무차별로 두들겨 맞고는 간부 인원이 전원 전사하는 전멸의 위기에 처했고, 증원을 명령받은 제 7 중대 또한 속수무책인 상황이었으며, 수습책으로 연대장이 명령한 제 3 중대 1개 소대의 우회 공격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이 참상에 아오키 연대장은 마침내 기가 죽으며 이런 무의미한 돌격을 계속한다는 것은 작전 성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판단, 11월 1일 02시에 공격 중단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휘하 부대는 점령한 소수의 러시아 군 벙커를 확보하면서 외부 해자와 공격 참호를 연결하는데 투입되었다.



            역시나 나가리..아래 사진은 실제 러시아 군 요새 앞에 가설된 철조망 지대..


- 이 제 2 차 총공세에서 제 22 연대는 53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를 제 1 차 총공세에서 발생한 사상자와 합산하면 달랑 2개월 반 동안 1,887명이 날아갔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는 1차 총공세 개시 당시 연대 병력 2,015명의 94%가 괴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이런 사태가 초래되자 비로소 노기 제 3 군 사령관도 자신이 생각한 공격 방식이 전혀 먹히지 않는 원인으로, 포병이 매일같이 쏟아 붓는 전력 사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군의 현대적 보루와 포대 등의 방어 시설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콘크리트로 엄폐된 외부 해자의 측면 방어 시설과 교통호 등에도 거의 손상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닥돌로는 야스쿠니에 위패만 늘어날 뿐이다..아래는 당시 일본군이 제작한 보루 모형..


- 또한 벙커 통과에 성공한 일부 부대도 다음 공격로에 교묘하게 배치된 방어 시설에서 쏟아지는 러시아 군의 화력을 받고 궤멸되었으므로 이제 기존의 공격 방법으론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아이고~~ 이제서야 아셨쎄요? 노기의 2차 대공세에는 44,000명이 투입되어 전사 1,092명, 부상 2,738명, 합이 3,8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얻은 거? 러시아 군의 외곽 벙커 몇 개..-_-;;)


<다음 편에 계속>




                              동계관산 북 보루의 평면도와 단면도


<사진출처>

http://www.sakanouenokumo.com/kikaku/taigo.htm
http://www.nihontosho.co.jp/2010/03/post-105.html
https://www.jacar.go.jp/nichiro2/sensoushi/rikujou04_detail.html
https://ja.wikipedia.org/wiki/二十八糎砲

뻘짓의 연속이긴 하지만 이눔들 그래도 배부른 입장이었네요. 물량치기하는 건 보니....

러시아가 배상금 쌩깐건 인종차별 관점도 있겠지만 전면전으로가면 절대 지지않는다는 억울함이 더 큰 것 같네요.
물량치기라 하면 보통은 압도적 화력 투사 같은 걸 의미하는데요...
저 짓거리는 물량치기가 아니라 사람 꼴아박기였으니..
오죽하면 저 뤼순 공방전을 두고 어느 학자는 휴먼 불릿(Human Bullet), 즉, 총알 한발과 사람 하나를 바꾼다고까지 표현하였습죠..
좀 과장된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표현에 반박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게...

아무튼 당시 일본 육군의 사람 꼴아박기의 근원적 문제점은 다음 <떡밥 투척>에서 살짝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특기 100으로 군대가서 육군 하사달고 가장많이한 훈련이 분대전투!
이상황을 읽으며 일본군들이 나와 오버랩되며 서글퍼 지네요!!
저는 해군 출신이라 분대전투나 각개전투 훈련을 훈련소때 한 번 해보고 못해봤는데요..
예비군 훈련 때 담당 조교가 떠드는 소리만 들어도 서글프더구만요..
이게 당췌 뭐하는 짓거리인지...쩝...

물론 전쟁은 육군이 산 정상에 깃발 꽂아야 끝난다고는 하지만..
현대전에서 고지전 따위는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일본영화 203고지 예전 엠앤케스트인가에서 본 기억 나네요 ㅋㅋ 우와아 하고 닥돌한 일본군들 야메로 으아악 하며...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해자 바닥에 쫙깔린 장애물에 쳐박혀 인간꼬치(!)가 되고 설령 숨이 붙어 있어도 콘크리트안에서 러시아군 기관총과 수류탄에 그냥 인간혈죽(!)되고... 나름 쾌감(!)을 느끼며 감상했던 장면들 이었습니다 ㅎㅎㅎ
흐흐..그 영화 나름 사실적이긴 하지요..
저 영화가 나올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군국주의를 반성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지금처럼 유치원생들 모아놓고 지랄하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아무튼 아베를 볼 때마다 또라이들은 대대로 재생산될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DNA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우리 여왕마마를 봐도..-_-;;
그 장면 일본육군 11사단 22연대 병력들 일껍니다. 동계관산 북보루 정면으로 닥돌하다 낭떠러지에서 해자에 집단추락+기관총/수류탄 세례로 싹 갈려나가죠. 결국, 11사단 동계관산 영구보루 돌입실패 22연대 완전전멸이라는 비장한 자막까지 뜹니다 ㅋㅋㅋ 이백삼고지 영화내 수많은 똘기광만한 닥돌들중 최악의 장면으로 기억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