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전의 요새들

봉달이 2017. 3. 30. 16:09

<떡밥 투척#1>일본 육군, 뤼순의 악몽을 놀이터로 구현하다<5>



제 22 연대의 암울한 동계관산 북 보루 공략기(4)


- 1904년 11월 26일, 세 번째로 동계관산 북 보루를 향해 닥돌하라는 노기 제 3 군 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제 22 연대 아오키 연대장은 예하 대대장들이 두 차례의 닥돌 과정 중에 모조리 날아갔기에, 새로 임명된 후쿠치 모리타로(福地守太郎) 소좌의 제 1 대대를 정면 돌격대로 선정하고 기관총 2문을 후방에 배치, 지원 태세를 갖췄다.
- 마침내 공격 시간인 13시가 되자 계획대로 보루 외부 방벽에 설치한 폭약의 폭파가 이루어졌지만, 갱도 추진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바깥 쪽 절반만 무너지고 안쪽 절반은 여전했고, 이 때문에 파괴된 부분은 흙더미와 콘크리트 파편이 흘러내려 자연스럽게 완만한 경사면이 되었지만, 당연히 이 좁은 지점, 폭 4m의 경사면을 향해 러시아 수비대의 화력이 와장창 쏟아졌다.



                                  10월 27일, 외부 방벽 폭파 지점...


- 이 좁은 경사면을 향해 닥돌한 정면 돌격대, 제 1 대대는 러시아군의 치열한 사격과 수류탄 비를 온몸으로 받으며 순식간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 보루 탈취는커녕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는데도 연대장은 즉시 예비대 병력을 이 부분에 추가로 투입, 더욱 치열하게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러시아군 탄환이 떨어질 때까지 몸빵해라~~!! 그건가? -_-;;)
- 하지만 이미 정면 돌격대는 지휘관인 후쿠치 소좌가 전사하는 등 장교와 간부 대부분이 쓰러져 전선 전반에 걸쳐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 이 시각, 정면 돌격대 외에 제 2 대대장 사사키 에이지로(佐々木栄次郎) 소좌가 지휘하는 우회 돌격대도 동시에 돌격을 감행했으나 치열한 반격 앞에 수많은 병력을 잃게 되자 사사키 소좌는 공격 중지와 후퇴를 명령하기에 이른다.
- 이 난장판을 보고 있던 연대장 아오키 스케지로(青木助次郎) 대좌는 병력 충원이 충분하지 않아 결원 상태여서 예비대로 남겨둔 제 3 대대를 정면으로 옮겨, 제 1 대대의 뒤를 따라 계속 돌격하라고 강요했지만, 대대장 고토 히데요시(厚東秀吉) 대위가 튀어 나가자마자 수류탄  폭발에 중상을 입고 나자빠졌고, 뒤따라 돌격하던 다수의 병력이 집단처럼 쓰러지자 이 마저 나가리가 되었다.



- 이에 빡 돌아버린 아오키 연대장은 그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있던 3개 중대를 탈탈 털어 돌격에 투입시킨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어 16시 30분에는 츠치야 미츠하루(土屋光春) 제 11 사단장은 사단 예비대였던 보병 제 44 연대 제 6 중대를 제 22 연대로 증원 배속시켜주며 “연대장 스스로 최선을 다해 돌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얌마! 너부터 튀어 나가라, 이기야!!)



                   너부터 앞장서서 튀나가라 이기야! .. 제 11 사단장 츠치야 미츠하루..


-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싸다구까지 맞은 아오키 연대장은 18시 10분, 연대의 남은 병력인 3개 중대 약 150명과 공병 2 중대의 잔존 병력 그리고 새로 배속 받은 제 44 연대 6 중대 병력을 끌어 모은 다음, 스스로 선두에 서서 발악적인 돌격을 시도했지만, 그런다고 별 달라질 건 전혀 없어서 러시아 군의 기관총 소사에 탈탈 털리며 인간의 탑만 쌓았다.
- 지가 직접해보니 그때서야 답이 없음을 깨달은 아오키 연대장은 결국 돌격을 포기하고, 꾸역꾸역 진출한 지점에 참호선이나마 구축하기 위해 포화를 무릅쓰고 참호 구축 작업을 명령했지만, 이 짓거리마저 러시아군의 포화에 절딴나자 또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병력이 없어? 옛다~~~ ㅠ.ㅠ 


- 제 22 연대가 남아있는 전체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 투입한 총공격이 이따우 상황에 놓이자, 제 11 사단장 츠치야 중장은 동계관산 북 보루가 전황 전반에 미치는 가치가 지대하다고 판단, 사단의 마지막 예비대로 남아있던 제 44 연대 제 3 대대(2개 중대가 부족한..)와 제 5 중대를 제 22 연대에 다시 증원시켜주며 돌격의 재개를 명했다(아..닝기리..죽는 거이다..흑~~)
- 재차 등을 떠밀린 아오키 연대장은 이들을 지휘, 11월 27일 0시 35분, 본격적인 돌격을 개시하기 전에 우선 제 44 연대의 1개 소대를 동원, 보루 외곽 참호선의 점령을 명령했지만, 이 소대가 참호 밖으로 전진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수류탄과 기관총에 의한 손해가 속출하였고 뒤따를 후속 부대는 아예 진출을 시도할 수도 없게 되자 결국 공격을 중단하고 말았다(나도 해봤다, 이기야! 빨리 포기하는 게 맞음!)


                                나도 시키는대로 해봤다, 이기야!


- 다음날인 11월 27일, 계속적인 윗선에 재촉에 아오키 연대장은 또 다시 포병의 지원 사격을 요청하고 새로 배속된 제 44 연대의 일부와 남은 잔존 병력들을 모아 돌격을 준비했는데, 이때 마침, 제 3 군 사령부로부터 북계관산에 대한 정면 공격을 일시 중지하고 203 고지 공략에 집중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 이 시기, 노기의 제 3 군은 뤼순 공략 작전의 과정 중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11월 26일 13시에 시작된 제 3 차 총공격에서 휘하 각 사단이 막대한 손해에도 불구하고 돌격을 반복, 러시아군 진지에 돌입했지만, 러시아 군의 맹렬한 포화와 역습의 반복에 의하여 이의 점령은 완벽한 나가리가 되었고 전황은 또다시 지지부진의 늪에 빠졌다.



           제 3 차 총공격과 일본군의 돌격 모습..산 위로 꼬물꼬몰 올라가는 게 보인다..


- 그러자 이럴 때마다 여지없이 일본군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히어로, 아니 새로운 꼴통분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제 10 여단장 나카무라 사토루(中村覚) 소장이란 작자로, 이 인간은 근성으로 무장하여 정신력으로 적의 방어선 일각을 분단, 요새 내부에 돌입하여 교란하면 적의 지휘 계통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누구나 내뱉을 수는 있지만 현실성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별 거러지 같은 주장을 노기 사령관에게 직접 호소, 결국 결사대의 편성을 승인받게 된다(저딴 걸 작전이라고 씨부리는 놈이나 승인하는 영감탱자나..할 말 없음..) 
- 이때 나카무라는 부하 장교에게 “많은 병사가 죽었다. 이제 윗사람이 죽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 했다는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건 체면이 서지 않아 죽으려면 지 혼자 나가서 죽지(배를 째던가..) 애먼 병사들은 또 왜 끌고 나갔나 하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 일본군엔 언제나 희대의 또라이들이 등장한다..나카무라 사토루...


- 아무튼 그의 이런 광신도적인 발광으로 제 1 사단 25 연대에서 2개 대대, 제 12 연대와 제 35 연대에서 각각 1개 대대, 공병 제 9 대대의 1개 소대 등을 합해 총 3,100여명으로 결사대를 조직, 러시아 군의 송수산(松樹山) 제 4 포대를 기습하기로 한다(말은 전원 자원한 병사들이라고 하고 있지만..하나 물어 보자..군대에 자원이 있나? 난 없다고 보는데,,)
- 당시 이들은 결사의 결의를 보여주고 피아 식별을 위한다며 백색 띠를 가슴팍에 엑스(X)자로 둘러 일명, 백거대(白襷隊)로 불리게 되는데, 웃기는 건 이 지랄로 인해 야간에 러시아 군 탐조등에 일본군 병사가 비춰지면 마치 걸어 다니는 표적지처럼 보여서 사격을 집중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고 한다(야간 기습한다면서 교통경찰들 입는 야광 띠 매고 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그것도 포복이 아니라 벌떡 일어서서..)



    워뗘? 잘 보이남요? 쥑이네~~~ 염병도 가지가지...(두 번째 사진은 본 염병과 무관함)


- 11월 26일 오후 9시부터 송수산 러시아 포대 정면으로 닥돌한 이들은 도중에 지뢰와 접촉하며 제시까닥 정체가 뽀록났고 러시아 군의 탐조등 아래에서 포화가 집중되며 다수의 사상자를 낸 것은 물론 나카무라 소장 자신도 중상을 입었다(사족으로 윗사람도 죽어야 한다던 이 인간은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육군 대장까지 올랐다..역시 애먼 밑사람만 죽어난..) 
- 이리하여 궁여지책인지 마지막 발악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전술적 상식으로는 무모함에 가까운 이 야간 기습 작전은 약 2,000명의 사상자만 만들고는 퍼팩트한 대실패로 끝났다(훗날 러시아 측으로부터 이들이 장렬한 돌격에 감탄했다는 회고가 있었다니 하며 현대 일본 우익들은 이 지랄을 핥고 빨지만..실제로는 완벽한 전술적 개뻘짓이었다..뒤에서 박수만 치지 말고 담부턴 니네가 직접 가길..)



                                  돌격~~~~ 탈탈탈탈....   이하 생략...


- 일이 이 꼬라지가 되자 11월 27일, 마침내 궁지에 몰린 노기 마레스케 제 3 군 사령관은 그때서야 주공을 203 고지로 변경하였다(탈탈 털려봐야 정신 차리는..)

- 이에 겨우 한숨 돌린 동계관산 방면의 제 22 연대 아오키 연대장은 제 7 중대와 기관총 6문을 최전선에 배치한 뒤, 새로 증원된 제 44 연대 병력과 공병들은 새로운 땅굴 파기에 주력하며, 탈탈 털려 혼이 가출한 제 22 연대 주력은 후방으로 빼내 재건을 도모하기로 결정하였다.



     노기가 203 고지로 주 공격 방향을 변경하자 그제서야 22연대는 숨이라도 쉬게 되었다..


- 땅굴파기가 계속되고 이를 방해하려는 러시아군의 반격이 계속되던 12월 2일, 양군의 합의에 의해 전사자의 수용이 이루어졌고 쌍방이 적십자 깃발을 세우고 작업이 이루어지던 가운데 양군 장교가 술 같은 것을 교환하며 기념사진을 찍은 곳도 있었지만, 일부는 총성이 일어나 작업이 중단 된 곳도 있었다.
- 한편, 11 사단장 츠치야 미츠하루 중장은 이 제 3 차 총공격 와중에 모든 전선에 걸쳐 휘하 부대가 아작나자 뚜껑이 홀라당 열려 설쳐대다가 대갈팍에 총알을 맞고 발랑 나자빠져 본국으로 후송되었고, 12월 3일, 새로 사단장으로 사메지마 시게오(鮫島重雄) 중장이 부임했다.
- 이후 제 22 연대는 제 7 사단의 203 고지 총공격을 지원하고 동계관산의 러시아 수비대를 묶어두기 위해 이들의 견제 임무에 매진했고, 제 7 사단은 돌격과 육탄전 끝에 결국 203 고지 일대의 러시아군 진지를 점령하는데에는 성공했다.



                         203 고지의 쌩 또라이 짓거리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음..


- 12월 15일, 러시아 군 요새 축성의 권위자이자 실질적인 방어 책임자인 콘트라첸코 소장이 동계관산 북 보루를 시찰하던 중, 우연히 일본군이 발사한 28cm 유탄 포탄이 그가 있던 지점에 떨어지며 전사하고 만다.
- 당시 이 시찰의 목적은 일본군이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전선의 보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는 포탄 발사 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착각한 것이었고, 이렇게 콘트라첸코 소장이 허무하게 전사하자 러시아 군의 사기는 급전직하로 떨어지게 된다.


                    동계관산 북 보루를 시찰하던 로만 콘트라첸코 소장이 전사했다..


- 콘트라첸코 소장이 전사한 다음 날인 12월 16일, 제 22 연대가 필사적으로 매달려 작업한 땅굴파기가 마침내 예정 지점에 도달, 2.3톤의 다이너마이트 장착을 완료했고 폭파는 12월 18일 14시로 결정되었다.
- 제 22 연대는 제 44 연대에서 배속 받은 병력들과 함께 폭파와 동시에 돌입할 준비를 갖추고 대기했고 예정보다 15분 늦은 14시 15분 일제히 폭약이 점화되었으며 계획대로 8곳의 폭발 지점에서 동시에 폭발, 파편들이 공중에 비산, 3~400m까지 흩뿌려졌다.
- 그러나 예상을 넘은 파괴력으로 인해 보루 아래에 대기하던 일본군 병력의 일부도 피해를 입었고, 공격 참호선의 일부가 절단되었으며, 외벽의 진출입로도 막혀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이뭐병..-_-;;)



                      동계관산 북보루 방벽의 대폭발과 아직 남아있는 폭파 흔적..


- 하지만 예정 시간에 맞춰 포병들은 모든 화력을 집중, 돌격을 지원하기 위한 사격을 시작했고 1차 돌격대는 열라 삽질을 시작, 진출입로의 토석을 제거하고 보루 안쪽까지 진출했지만, 요새 안마당의 제 2 선 방어 벙커와 측면 총안으로부터 기관총 세례와 수류탄을 두들겨 맞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으며, 거기에 더해 후방 포대에서까지 사격을 받으며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 돌입한 돌격대가 땅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있는 가운데, 저녁이 되자 사단으로부터 예비대였던 후비 보병 제 38 연대 2대대가 이곳에 증원되며 제 22 연대와 나란히 전투에 투입, 일몰 무렵 일제히 돌격해 들어갔지만, 금새 집중 사격을 받고 역시나 공격은 짜부라졌다.
- 당일 한밤중이 되자 아오키 연대장은 안마당을 향해 대량의 폭약과 다수의 수류탄을 투척하여 러시아군 화력의 쇠퇴를 노리고 이 기회를 틈타 보루의 양쪽으로 돌입할 것을 명령하였고, 이에 따라 폭파 구멍 근처에서 위치를 고수하고 있던 병력도 용기를 얻어 안마당에 진입하여 이를 겨우 확보했다.



 
- 또한 일부 병력들이 러시아 군의 막사를 탈취하기 위해, 좌우 양쪽 입구에 육박해 들어가자 마침내 러시아 수비대는 제반 시설을 폭파하고 퇴각했으며, 마침내 제 22 연대는 무려 7개월에 걸친 난리 부르스를 끝내고 1904년 12월 18일, 동계관산 북 보루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 하지만 12월 6일에 203 고지가 노기의 온갖 삽질을 거름 삼아 함락되었고, 일본군의 포격에 의해 러시아 뤼순 함대가 전멸적 상황에 놓인 이상, 이미 동계관산 북 보루는 요새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이후였다.



             203 고지가 떨어지며 동계관산 북보루는 요새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었다..


- 그리고 12월 28일에는 이용산 보루가, 31일에는 송수산 보루가 차례대로 점령되었고, 1905년 1월 1일 오전 9시, 일본군이 뤼순 시내를 향해 일제히 포격을 시작한 2시간 후 러시아 수비군 사령부 옥상에 백기를 내걸리며 뤼순 요새 방어사령관 아나톨리 스테셀(Anatolii Mikhailovich Stoessel) 중장의 항복 서한이 일본군에게 전달, 총 150여 일간에 걸친 뤼순 요새를 둘러싼 공방전은 막을 내렸다.


 
- 제 3 차 총공격에서 제 22 연대에서는 1,75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를 7개월에 걸친 뤼순 공격 전 기간에 합산해보면, 사상자 수는 4,300명을 넘어서는 숫자가 되는데 이는 당초 연대 편성 인원의 거의 2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이 7개월 동안 현대적 요새에 몸빵으로 닥돌한 일본 육군 제 22 연대가 전멸, 괴멸 같은 수식어를 넘어 완전히 싹싹 갈려나갔다는 것을 의미했다(더블 옥쇄?? 두 번 죽이는 거예요~~)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www.sakanouenokumo.com/keikanzan.htm
http://iccs.aichi-u.ac.jp/postcard/manzhou/lvshun/page/3/
http://3443.or.jp/tsushin/t1505/150504.htm
http://shinkokunippon.blog122.fc2.com/blog-entry-1406.html
https://ja.wikipedia.org/wiki/%E4%B8%AD%E6%9D%91%E8%A6%9A
http://www.bell.jp/pancho/travel/china-2/sept03_203kohti.htm
https://nowarjapan.blogspot.kr/2016/08/203.html

양질의 글을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군 관련한 글들이 좋은데 치하라던가 제로센같은 물건을
자세히 따로 안 다루시는건 이미 깔만큼 까여서 더 까일 곳이 없기 때문이신가요.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치하라던가 제로센같은 물건이야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저 놈들 말고도 잘 모르고 계시거나 곡해하고 계신, 충분히 깔 "꺼리"들이 수두룩하기에 그렇습니다..
아마 몇 년을 두고 까고 다 못 깔듯..

말씀하시는 치하 부분은 왜 저런 쓰레기가 나오게 되었나 하는, 일본 육군의 전차 개발사를 포스팅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저 부분도 많이 알려진 부분이 없기에 함 건드려 보려구요..
벗뜨, 능력도 안 되면서 워낙에 벌여 놓은게 많아서..
아마 올 하반기 정도?? 예정 중입니다..

조만간 수정된 포스팅 계획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드뎌 나왔다 백거대 ㅋㅋㅋㅋ... 야간에도 조준하기 아주 쉬운 움직이는 표적! 당시 일본군복이 흑색계통 였는데 대비색으로 흰색이라... 전열보병시대를 훌륭하게 구현! ㅎㅎㅎ
크흑~~ 백거대...상또라이 짓이죠...쩝...
저두 훌륭한 표현에 깊은 감명을 느낍니다....
"아래 사진은 본 염병과 무관함" 부분은 사진을 다른 걸로 대체하심이.. 그냥 둔다면 "위 두 번째 사진"이 맞을 것 같네요.
프랑스군이 1차대전을 시작할 때 파랑빨강 알록달록한 군복입고 천모자를 썼다가 끝나갈 때 쯤에는 회색군복에 철모로 바꾼 게 생각납니다.
군대의 표준 유니폼으로 카키색 군복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1899년~1902년 사이에 벌어진 보어 전쟁 중 영국 육군에 의해서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영국 육군은 용맹성을 상징한다는 전통적 군복인 빨간색 군복(현재 버킹엄 궁 앞에서 근위대 사열식에 입고 나오는..)을 입고 전투에 나섰다가 싹싹 갈리게 되죠(이때 보어군이 장비한 장거리 라이플에 의해 저격..)
그러니 10년도 더 지난 1차 대전 시기에 프랑스 군이 저런 군복을 입고 나왔던 걸 생각하면 당시 프랑스 육군도 얼마나 낙후되었는지(아니면 아무 생각 없었던지..) 알 수 있습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