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국주의 과정은?

봉달이 2017. 5. 16. 14:22

일본은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나?<21>



일본 육군 분열의 서막 – 바덴바덴 밀약


- 독일 뮌헨 남서쪽 보덴 호수 인근에 바덴바덴(Baden-Baden)이라는,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도시가 있다.
- 1981년 9월 30일, 이 도시에서 열린 84차 IOC 총회에서 서울이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었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캬..추억 돋는 이름..) IOC 위원장이 단상에서 종이를 펴들며 “쎄울~~”을 외치자 대한민국은 환희로 발칵 뒤집어졌다.



                        쎄울~~~ 만세~~~ 크흑~~ 그랬던 때가 있었다...

 
- 오죽하면 내가 살던 지방 소도시에마저 바덴바덴이라는 이름의 호프집이 생겼을 정도로(디스코텍이었나? 암튼..) 우리 또래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그리 생소한 이름만은 아닌 이 도시는 우리에겐 서울 올림픽을 확정한 도시로 남아있지만 일본의 군국주의화 과정에서의 이 도시는 또 다른 의미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 사마란치가 한국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기 정확히 60년 전인 1921년 10월 27일, 온천으로 이름난 이곳의 호텔에 세 명의 일본인이 숙소를 잡았다.



                       온천 휴양지로 이름난 이 독일의 소도시에 이상한 놈들이 나타난다..


- 이 세 명은 스위스 주재 무관 나가타 데쓰잔(永田鉄山) 소좌, 소련 주재 부무관을 발령받아 임지로 가는 길에 잠시 베를린에 들린 오바타 도시로(小畑敏四郎) 소좌, 그리고 휴가를 겸해 유럽에 파견된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 소좌였다.
- 이들은 모두 일본 육군 사관학교 16기로 절친한 사이었으며 세 명 모두 37,8세의 소장파 중견 장교였고, 특히 나가타와 오바타는 육군 대학도 동기인데다 함께 우등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 둘에 성격이 원만하고, 친화력이 좋아 인간관계가 좋은 오카무라가 끼어들며 이상하게 균형 잡히고 끈끈한 트리오가 결성되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 모인 일본 육군의 동기생들.. 오바타 도시로(위)와 오카무라 야스지..


- 이때 이 3명이 독일의 소도시에 은밀하게 모인 목적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어떻게 하면 무식한 육군의 대가리들을 숙청하는 동시에 나약하기 그지없는 정부를 뒤집어엎어 일본을 육군이 주도하는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로 이끌 것인가”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이었다(자기네 딴에는 엄청난 당면과제였다..)
- 제 1 차 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 전쟁의 결과, 이제 세계는 군축과 평화 유지라는 기류로 만연했고, 일본도 이 시류에 편승하였으며, 이 시기에 나타난 일본의 내각들도 정당 정치와 민주주의를 표방,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군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슬리는 정치적 시류를 만들어냈다.



         1차 대전 이후의 평화 지향 주의와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곧 군부의 몰락을 의미했다...


- 일이 이따우로 돌아가자 군부는 그저 정치적 들러리, 혹은 거수기로 전락했고, 1차 대전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대대적인 예산 감축의 차가운 칼날이 가해지는 1순위 후보가 되었다.
- 거기에 더해 육군 소장파 장교의 입장에서 보면, 육군 장관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 참모 총장 우에하라 유사쿠(上原勇作), 교육 총감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라는 육군의 3대 최고위 포스트가 모두 초슈(長州) 파벌에 의해 여전히 장악되어 있음으로써 동향 출신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똑똑하고 기량이 출중하여도 출세가 어렵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는 상황이었다(설상가상 군축도 한댄다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군의 대가리는 지역 파벌이 장악... 출새길이 꽉 막혔다는..


- 또한 당시 일본 육군의 대가리 계층을 형성하고 있던 자들이 러일 전쟁이라는 실전에 참가했다는 의미의 전중파(戦中派)라고 한다면, 이들은 전후파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 전후파 1기에 해당하는 똘똘이 3명의 눈에는 이들 전중파 선배들은 시대의 흐름을 망각한 채, 그저 지나간 구닥다리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훈장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꼴통으로 비춰졌다.
- 하지만 반대 시각에서 보면 러일 전쟁이라는 실전에 참가할 수 있었던 육사 15기 졸업생까지의 전중파들에게 16기 이하 기수는 1904년 10월에 졸업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껏해야 후방 근무나 하던, 실전 경험도 없는 풋내기들로 인식되었다(이거 또 어디랑 비스무리..두화니 파벌들이 딱 그랬다는..지네 기수부터가 4년 교육받은 정규 육사 출신이니 어쩌니 하면서..)



              러일 전쟁 정도는 나가줘야 군인이제~~ 니네가 정로환 맛을 알아~~?? 


- 어쨌든 나가타 데쓰잔을 중심으로 한 이들 똘똘이 그룹들은 차후 벌어질 전쟁에서는 1차 대전에서 독일 패전의 교훈을 들어 전술적 승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국가 전체를 동원한 총력전에서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따라서 열악한 현실 속에 전쟁 기술의 고도화와 총력전화를 어떻게 도모해야하는 지가 앞으로 일본이라는 열강 대비 거러지 국가가 떠안아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었다(이 단락까지의 현실 인식은 사실 욕할 것이 못된다..나름 똘똘이들의 클라스를 보여주는..)


                     당시 일본 육군 최고의 똘똘이로 불렸던 나가타 데쓰잔...


- 또한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일본 육군의 가상 적국인 소련이 마침내 군사 대국으로 변모하였고, 이는 당시 일본 육군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장악하고 사수하여야 했던 만주와 몽고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었다.
- 따라서 1차 대전의 결과로 크게 세력권이 바뀐 열강과 소련이라는 거대 공산주의 국가의 위협을 앞둔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육군의 최상부를 이루는 영감탱이 꼴통들은 러일 전쟁에서의 대승 따위의 지나간 과거의 영광에나 매달리며 정신론이나 앞세우고 급격히 변천하고 있는 정세에 대응하려는 의욕 따윈 옛날 옛적에 잃어버린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으로 이들 똘똘이 3명은 의견을 일치시켰다.
- 마침내 이들은 이 자리에서 초슈 파벌로 대표되는 지역 파벌을 해소하여 인사를 쇄신하고, 군정을 개혁하여 국가 총동원 태세를 확립한다는 대전제를 내걸고 자신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 육군 내에 소위 사조직을 결성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혁명의 성공으로 이제 소련은 코 앞에 닥친 위협이 되었다..


- 이 바덴바덴에서 열린 비밀 모임은 겉으로만 보면 무언가 거창하고 합리적인 모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의 양아치 모임은 육군 내의 지역 파벌 위주 인사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것이었다.
- 또한 1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도로 변모한 국제 정세에 따라 군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출세한 상층부야 적당히 시류와 타협하다 은퇴하면 그만이지만 이제 막 육군의 중심부로 도약하기 시작한 소장파 장교들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국가의 운명 따위 거창한 게 아니라 걍 불평불만이 원인..) 
- 따라서 그들은 현재의 육군 정상들 대부분이 지역 파벌로 일찌감치 출세길이 열린 것에 더해 러일 전쟁의 승리에 대한 수훈으로 군인의 최고 영예인 금치 훈장(金鵄勲章)을 받는 등 출세와 개인적 영달을 거듭했던 반면, 그들은 그러한 기회를 빼앗기고 있었고 그런 만큼, 총력전 시대를 핑계로 그들도 그런 기회를 갖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훈장은 영감탱이 지네가 다 먹고... 어디랑 똑같네...


- 어쨌든 다음 날인 10월 28일에는 이들을 가장 잘 따르던 1기수 아래 후배이자 옹냐옹냐 내 새끼, 도조 히데키(東条英機) 소좌가 곧바로 이들에게 합류했고, 평소 이들을 동경해오던 후배들이 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지만 너무 잡다한 인간들을 모으면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하여 이들은 나름 자체 인사검증을 거친 인간들을 우선적으로 합류시켰다.
- 이들은 그들과 가장 가까운 육사 15기~17기 위주로 인간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한 다음, 군사 교리를 연구하는 연구회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소위 “이엽회(二葉会)”라는 이름의 육군 내 사조직을 조직했다.
- 이때 모인 인간들의 면면을 보면, 앞 선 세 똘똘이를 중심으로 육사 15기의 고모토 다이사쿠(河本大作)와 야마오카 시게하츠(山岡重厚), 육사 16기에선 도이하라 겐지(土肥原賢二),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 오가사와라 카즈오(小笠原数夫), 이소가이 렌스케(磯谷廉介)가, 육사 17기에서는 그 유명한 도조 히데키(東条英機), 레타리 히사오(渡久雄), 마쓰무라 마사카즈(松村正員) 등이 영관급 장교 약 18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끈끈한 사조직이 형성된다..훗날의 이타가키 세이시로와 도조 히데키..


- 한편, 육군 내에 불만으로 가득 찬 소장파 장교들로 구성된 사조직이 생겼다는 것도 골 때리는 일인데 1927 년 11월이 되면 나가타 데쓰잔 등의 이엽회를 사모하던 후배 장교들이 이를 모방하여 비슷한 사조직을 또 다시 결성한다.
- 육군 참모 본부의 스즈키 데이이치(鈴木貞一)와 미야마 카베사부로(深山亀三郎)가 중심이 되어 육사 21기에서 25기까지의 졸업생들이자 계급은 소좌에서 대위 정도로 결성된 이 조직은 매주 목요일에 모여 작당모의를 한다하여 목요회(木曜会)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이 목요회에 속한 소위 파벌 정치 군인들이 훗날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실질적 중추이자 뻘짓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그 주요 인물들을 보면, 육사 21기의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 22기인 무라카미 케이사쿠(村上啓作),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25기 무토 아키라(武藤章), 타나카 신이치(田中新一), 토미나가 교지(富永恭次) 등등의 훗날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는 이들로 구성되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불세출의 독립 유공자들..이들은 같은 파벌이었다..


- 1927년 11월경부터 1929년 4월까지 약 1년 5개월가량 총 12회 지속되던 이 쫄따구들의 모임은 이후 선배들의 조직과 결합되며 소위 <쇼와 군벌>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 언뜻 그 면면만 살펴보아도 훗날의 활약상으로 볼 때 보통 꼴통들의 집합체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꼴통들의 모임은 따로 있었으니(더 꼴통들의 집합체가 있단 말야?) 그 이름도 꼴통스럽기 그지없는 사쿠라회(桜会)가 1930년 9월에 일본 육군 내 한 구석탱이에서 결성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s://blogs.yahoo.co.jp/bonbori098/28978562.html
http://nozawa22.cocolog-nifty.com/nozawa22/2011/01/post-5100.html
http://rekisineta.ldblog.jp/zaturoku/meizitaitei-kinjutusya.html
https://m.kdslife.com/t_6333599_0_1.html
http://alphahistory.com/russianrevolution/

이 시리즈는 원래 서너편 정도로 끝낼 예정이었는데 끊는 시점이 애매해서 여기까지 와 버렸습니다.
어차피 일본의 개전과 패전 까지의 과정을 알려면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야 할 내용이므로 이 시리즈는 장기 연재로 돌려 일주일에 한 편 정도 개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얼마든지 길어져도 저야 대환영입니다.불철주야 고생해 주시는 봉달님 덕분에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망해가는 군대에 꼭 있는 것이 사조직=군벌이네요.
그것도 하나의 공통점일 수 있겠네요..^^
광주에 바덴바덴이라는 디스코텍(당시엔 그냥 나이트클럽이라 불렀지 않나......)이 있었죠. 저희들은 바둥바둥이라고 했는데, 뭐가 좋은 건지 몰랐지만 그런 행사가 상당한 효과를 남긴다는 것은 알겠더군요. 감사합니다
아마 전국 대부분의 도시에 하나씩은 생겼을 듯...캬캬
유명무실한 동양의 패권국가 청을 거꾸러뜨리고, 전리품은 못챙겼지만 격변기의 손발 묶인 유럽강대국 러시아에게 총력전으로 1승을 챙긴 쾌거(?)가 심장에 털난
것들에게 움찔한 시기를 제외하곤 ABS없는 터보차져에 무한궤도를 달아준준 것 같습니다...

환각이 아닌 성장통이었다면 쑥부케는 안 받았겠지요....

섬나라나 우리나 정치군인들의 작태는 무섭도록 닮았네요, 우리쪽의 데드카피지만...

굳이 군대 내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죠..
거의 대부분의 공조직에 생겨났고 민간에까지 파급력을 발휘한 듯..
한국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5.16 & 12.12의 경우 결국 진급적체의 문제가 군사정변을 유발하는 한 원인이 됩니다.6.25사변으로 급팽창한 군의 진급적체가 5.16을 불렀고 진급적체는 어디나 있으나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유신사무관제도를 만들었다 폐지한 과정을 보면 그 뒤로도 주먹구구였던 것 같습니다.
거의 자식과도 같았죠..
배워도 별 거지같은 걸 배워서는..
어디까지가 모임이고 어디부터가 사조직일까요?
군인은 모이는 즉시 사조직이죠
그건 우리 생각이고.. 군인도 사람이거든요?
사조직을 만들지 말라는 취지야 모두가 인정할 텐데, 실제로 법규로 만들어 적용할 때의 기준이 어떠냐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우리보단 제도가 서 있을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의 실태가 궁금하네요.
80년대까진 정권탈취 목적이면 사조직... 그후로 잇권 개입이면 역시 사조직... 그렇지 않으면 친목회.. 저 생각엔.
마누라한테 줘뜯겨서 대머리된 원통한 서러움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하여 모여서 술파티를 하는 것은 모임인테 술이 거나해지자 일심 돌변해서 태양처럼 빛나는 대머리를 중심으로 한마음으로 뭉쳐서 마누라한테 큰소리치고 살아보자라는 공동목표아래 공적자산을 사적 배타적으로 독점하야 이용하는 행태를 모의하고 수립된 계획대로 조직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가 사조직아닐까요.
군인들이 뒷방에 모여 국가와 민간 정치를 논의하는 것까지야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이를 해결한다는 사고를 갖게되는 순간부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