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국주의 과정은?

봉달이 2017. 5. 30. 15:39

일본은 어떻게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나?<22>



신꼴통들의 집합체 탄생하다


- 1921년 10월, 유럽 출장 중이던 오카무라 야스지, 스위스 공사관 무관 나가타 데쓰잔, 러시아 대사관 부 무관 오바타 도시로 라는 3명의 일본 육군 사관학교 16기 동기생이 남부 독일 휴양지 바덴바덴에서 육군의 인적 쇄신과 군제 개혁을 단행하여 군의 현대화와 국가 총동원 체제를 확립하기로 작당했다.
- 이들은 이후 마사키 진자부로(真崎甚三郎),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 등을 옹립하여 육군의 초슈 파벌을 타도하기로 하고 이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 즉, 출세의 줄에서 밀려나 있는 똘똘한 찌끄레기들을 모아 육군 개혁과 만몽 문제의 조기 해결이라는 허울 좋은 혁신 운동을 단행하기로 맹세한다.


        나가타 데쓰잔 등에 의해 옹립되기로 약속된 훗날 황도파의 거두, 마사키 진자부로..


- 1922년부터 1923년 사이에 유럽에 나가있던 나가타와 오바타가 귀국하면서 이들은 본토 내에 둥지를 틀었고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찌끄레기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은 1927년, “이엽회(二葉会)”라는 이름의 육군 내 사조직을 조직했다.
- 거의 같은 시기인 1927년 11월경, 참모 본부의 스즈키 데이이치가 중심이 되어, 육군 중앙의 소장파 참모 일원들이 나가타 등 당시의 중견 간부가 주요 멤버인 이엽회를 모방하여 목요회(木曜会)를 만들었고 나가타 데쓰잔, 도죠 히데키 등 구성원의 일부는 서로 중복되기도 하였다.
- 1928년 3월에 열린 목요회 제 5 차 회의에서 당시 나가타 데쓰잔의 심복이었던 육군성 군사과의 도조 히데키 소좌는 일본의 당면 목표를 만주와 몽고에 완전한 정치적 친일세력을 확립시켜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소유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이시와라 간지(중앙)와 목요회의 중심이었던 육군대학 30기..


- 또한 향후 육군의 전쟁 준비는 대 소련을 주된 목표로 하기로 하였고 이후 이들은 동년 12월에 열린 제 8 차 회의에서도 이를 재확인하였으며, 이때에는 이엽회의 오카무라 야스지도 참석, 적극적인 발언을 하였고, 이런 일관된 개소리가 이후 목요회와 이엽회의 단일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 1931년 9월에 발생한 만주 사변은 대공황 하의 1930년대 초반 일본 경제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시와라 간지 등 관동군 중추가 지네 맘대로 만들어 지랄한 것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흔히 있다.
-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 가을보다 1년이나 전에 이미 일본 육군의 중추부에 있던 양아치들은 이미 만주와 몽고를 집어먹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 이들의 모임을 통해 증명된다(어느 똘똘한 양아치가 어느 날 갑자기 지랄한 게 아니라는..)


 1931년 9월 19일 새벽, 관동군이 일방적으로 장쉐량 군을 공격해서 봉천성을 장악한 만주사변..


- 이들의 소위 “만몽 영유 방침(満蒙領有方針)”은 당연히 중국의 주권과 영토권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만몽 문제 같은 현안 해결에 그치지 않았고, 대소전을 비롯한 국가 총력전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여기까지만 보아도 일본의 신군국주의자들의 교활한 암실 정책에 학을 띠겠으나 이를 비웃기나 하는 듯 하는 진정한 꼴통들은 따로 있었다.


 


- 1930년 9월, 육군 참모 본부의 하시모토 긴고로(橋本欣五郎) 중좌, 육군성의 사카타 요시로(坂田義朗) 중좌, 도쿄 경비 사령부의 히구치 기이치로(樋口季一郎) 중좌가 중심이 되어 그 이름도 꼴통스럽기 그지없는 사쿠라회(桜会)가 결성되었다.
- 이 꼴통 조직은 소위 “쇼와 육군(昭和陸軍) 최초의 파벌”이라 일컬어지는데, 이는 그때까지의 이엽회니 목요회니 하는 그룹과는 달리 조직적 정치 활동 등을 최초로 실시하였기 때문이었다.
- 최초 모임에는 참모 본부와 육군성에 근무하는 육군 대학교 출신의 나름 초 엘리트 장교들 약 20여명이 참석하였고 모임 설립 시작 단계부터 이들은 얼척 없게도 “본회는 국가 개조를 최후 목적으로 삼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라는 목표를 내걸고 있었다(쉽게 말하면 “대놓고 쿠데타!!”라는 얘기다..)



                      이것들의 모임 결성 동기 자체가 아예 대놓고 쿠데타였다...


- 또한 이것들은 만주 점령을 필수라고 생각했으며 정당 민주주의를 정당 정치의 부패로 인식했고, 군축에 대한 피해의식을 바탕으로 군부 독재 정권 수립에 의한 국가 개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자 지향해야 할 목표라 생각했다.
- 이 꼴통 모임의 구성원은 거의 대부분 육군 대학교를 졸업한 소장파 중견 장교로 구성되어 이었는데 결성 당시 회원 96명의 소속을 보면 참모 본부 38명, 육군성 9명, 교육 총감부 2명, 육군 대학교(재학 중) 15명, 헌병 사령부 7명, 기타 25명으로 되어 있었다.
- 오늘날의 우리로 치면, SKY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거쳐 사법 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 청와대나 서울 중앙지검 혹은 중요 포스트에 보직된 초 울트라 엘리트들의 사조직이라 보면 비슷할 것이라 생각된다(아주 좋은 거 카피하고 앉았다는..)



             육군대학(위)만 나오면 출세길이 열렸고 어느 나라에선 그걸 고스란히 카피했다..


- 하지만 이 모임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태평양 전쟁이나 중일 전쟁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단박에 “아~ 그 꼴통색기~”라고 할 만큼 화려한 인물들도 구성되어 있었다.
-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네모토 히로시(根本博), 카와베 토라시로(河辺虎四郎), 츠지하시 유이츠(土橋勇逸), 무토 아키라(武藤章), 토미나가 교지(富永恭次), 조 이사무(長勇), 가타쿠라 타다시(片倉衷) 그리고 츠지 마사노부(辻政信)...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 저 화려한 명단을 두고 새삼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나마는 걔 중 딱 한 명만 잠깐 건드려보고 넘어가겠다.
- 이 꼴통 집단의 창립 발기인 중 한 명인 하시모토 긴고로(橋本欣五郎)는 모임 결성당시 참모 본부 러시아 반장으로 훗날 어찌나 쿠데타를 자주 시도하였으면 “취미가 쿠데타”라고 불렸을 정도의 꼴통이었다.



                                 흐흐흐...취미가 쿠데타..하시모토 긴고로...


- 구마모토 육군 지방 유년학교, 육군 중앙 유년학교를 거쳐 육군 사관학교(23기), 육군 대학교(32기) 졸업 이후 터키 공사관 파견 무관이 되는데 이때, 무스타파 케말 파샤(Mustafa Kemal Atatürk)의 혁명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서 홀랑 돌아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견해가 많다(우리도 있쟈나..쪽바리 군대의 쿠데타 과정 전문가 박장군과 그 수제자, 전장군...게다가 그 딸래미에 아들내미들에 마누라까지 온 핏줄들이 여태까지 지랄하고..이런 썩을..) 
- 이후 1936년 2월의 쿠데타, 2. 26 사건에 연루되어 예편되었다가 중일 전쟁 발발과 함께 연대장으로 재소집, 난징 전투 시 영국 감시선 레이디 버드(HMS Ladybird)에 피해를 입히고 그 유명한 미국 감시선 파나이(USS Panay PR-5)를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그 책임을 지고 다시 퇴역 당했다.



                영국 감시선 레이디 버드와 미국 감시선 파나이 격침을 보도한 기사..


- 웃기는 건, 이 인간은 이후 확산되는 중일 전쟁이나 태평양 전쟁에서는 특별한 역할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전후 도쿄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는데 그 기소 사유는 군국주의 쿠데타를 끊임없이 도모함으로써 침략 계획의 이론을 정립했으며 전쟁의 발단을 마련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 그를 아는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하시모토는 매우 히스테릭한 인간으로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 많았으며 현역으로 복무할 때 부하들에게 구타를 포함, 60회 이상 각종 징벌을 가했고 전범 재판 공판 중에도 법정 대기실에서 아주 사소한 일로 홱 돌아버려 같은 전범으로 기소된 시라토리 도시오(白鳥敏夫)의 얼굴에 강펀치를 날린 적도 있었다.
- 이후 전범 재판에서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에 가석방되었으며 이후로도 계속 전체주의에 의한 국가 개조를 부르짖다가 1957년 6월, 폐암으로 인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하시모토에게 죽방을 얻어맞은 시라토리 도시오..당시 암 말기였다는데..쩝..


- 다시 얘기를 돌려 일본 육군에 있어 최초의 파시스트 비밀 결사 단체인 사쿠라회가 탄생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1930년, 금 본위제의 실시로 당시까지 호조를 유지하고 있던 일본 경제가 긴축 재정 정책으로 전환되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였고 세계 대공황은 심각한 경제 불황을 발생시켰다.
- 한편 국외 정세는 중국 통일을 목표로 국민당의 민족주의에 호응한 장쉐량(張学良)이 일본 배척 운동을 격화시켰고 이는 10만의 자국민을 이주시켰고 20억 엔의 국비를 투입한 만주의 이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 또한 제 1 차 5개년 계획에 착수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소련의 위협에 대한 우려는 육군 내부에 만몽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려고하는 주장을 낳았다. 
- 거기에다가 이제 막을 수 없는 파도처럼 되어버린 군축의 풍조는 워싱턴 조약에 의한 해군 병력 감축과 육군의 야마나시, 우가키 군축을 거쳐 마침내 이 시기 런던 해군 군축이라는 그 정점에 도달했다.
- 이때 이 꼴통적 사조직 결성의 원동력이 된 것이 바로 케말 파샤의 혁명과 개혁을 일본에서 실현하자는 야심에 불타고, 터키(주재 무관)에서 이를 지켜본 후 귀국한지 얼마 안 된 하시모토 긴고로였으며, 이후 그가 이 모임의 우두머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시모토의 정신적 지주였던 무스타파 케말 파샤..문제는 쿠데타라는 방법만 똑같았다는 거..


- 하시모토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육군에서 러시아 정보 전문가로 성장했고 사색가라기보다는 행동우선주의적 성격 그리고, 이론과 계획 따위는 그저 골칫거리로 치부하였으며, 그가 신봉하는 케말주의라는 것은 군부 쿠데타에 의한 정권 탈취였고 이는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의 소위 봉기주의와 비슷했다. 
- 당시 그의 눈앞의 관심은 대외적 팽창보다 쿠데타를 통한 국내 개혁이었고 같은 시기 관동군은 만주와 몽고의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한다는 소위 만주 선행주의가 우선이었으므로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같은 육군 내의 꼴통들이었지만 그 입장을 달리했다.


                            만주부터 먹어야 한당께!! 관동군은 만주 우선주의~~~


- 훗날 하시모토 일파의 최초의 쿠데타 계획이 실패하면서 이들은 어쩔수 없이 관동군의 음모에 참여, 국내에서 만주 사변의 실행을 지원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일단 국내를 뒤엎자는 국내 선행주의를 그 모토로 하였다.
- 마침내 1931년 3월, 하시모토를 중심으로 국가를 홀랑 뒤집어엎자는 쿠데타가 모의되었고 이들은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계획하였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blog.goo.ne.jp/raffaell0/m/201502
https://ameblo.jp/tank-2012/entry-12215466200.html
https://www.phpschool.com/gnuboard4/bbs/board.php?bo_table=talkbox2&wr_id=933203
http://china-redtour.com/doc/man.html
https://www.writeopinions.com/hms-ladybird

참, 운도 좋았네요. 요즘 세상에 저러고 있으면 국제적인 표적이 되어 일신이 망가지는 건 물론이고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했을텐데. 그러고 보면 매는 일찍 맞는게 낫다는 말이 여기도 통하는지?
매는 안 맞는 게 최선...흐~~
80년대에 간행된 옛 일본근대사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전개되는 모양과 등장하는 단체 이름이 낯설지 않아 별나다 생각했는데,
봉달이님글로 사진첨부해서 다시 보니 참, 대단하네요. 이렇게 더 재미있을 줄이야. ^^
남의 나라 삽질이야기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요. 타산지석, 반면교사, 강건너 불구경..
타산지석...제가 이런 포스트 올리는 가장 큰 이유입죠...
시기적절게 또 등장해주네요. "알자회"
이것들은 어떻게 해야 뿌리뽑을수 있을까요. 에휴~
알자회..독사파....쩝...
알자회는 90년대에 이미 탈탈탈 털려서 팔다리 없는 식물인간과 같은 존재니 걱정할 필요 없고, 독사파는 이번에 알려졌으니 적절히 칼치면 될듯 하네요.
흠..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게..ㅠ.ㅠ
애독자 입니다 나중에 봉달이님 이글을 출판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ㅎㅎ
님을 알기전까지 전쟁사 및 얽혀있는 정치이야기가 지루했는데 너무 알기 쉽더군요 이런부분은 다른분들에게도 공감이 가야 한다고 생각듭니다 ...
나중에 그런 기회가 있으면 모르겠지만요..흐흐..
아무튼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