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다 보면

봉달이 2017. 7. 21. 17:07

<일요잡설> 우리에게 문민통제는 그저 듣보잡 단어인가?<上>



제 1 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17년 11월, 프랑스의 전쟁수행능력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76세의 나이로 총리가 된 다음, 당시 기나긴 참호전의 여파로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프랑스 군을 페르디낭 포슈(Ferdinand Jean Marie Foch)와 앙리 필리프 페탱(Henri Philippe Pétain), 조제프 조프르(Joseph Jacques Césaire Joffre) 등을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강력한 전쟁수행 의지를 내보이면서 전시내각을 이끌었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얼마 전까지 프랑스 해군이 보유했던 항공모함의 이름으로도 유명한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로, 그는 2차 대전의 윈스턴 처칠과 루즈벨트, 포클랜드 전쟁의 마가렛 대처 등과 더불어 전시 지도자의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당시 프랑스 정부와 군 최고사령부의 소극적인 전쟁수행 방식을 열라 까대었고 노동자들의 파업 진압을 위해 군대와 경찰을 동원했으며, 특히 1918년 5월, 파리에서 노동자들에 의한 총파업이 일어나자 경찰을 동원, 이들을 모조리 체포한 다음, 홀랑 입대시켜 버린 걸로 유명했다.
또한 직접 병사들이 있는 전선의 참호를 돌아다니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로 유명했지만 적군이나 전투에 겁을 먹는 병사나 탈영병, 패배주의에 물든 병사에게는 인정사정  없었고 당시 프랑스 지휘관들에게 퇴각하거나 도망치는 병사는 무조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이 영감이었다.


 
웃기는 건, 이 양반은 정치 초기에 파리 코뮌을 지지하는 등 좌파 출신 정치인이었고, 이후 군비 증강과 독일을 외교적으로 고립시켜야 한다는 정책을 강하게 주장하는 등 소위 애국보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사회주의자들과는 멀어졌지만, 동시에 군부와 우익 또한 비판하기도 하는 등, 정체성이 희한한, 소위 중도 성향에 가까웠다(하지만 굳이 좌우익을 따지라면 좌익에 가까운..)
어쨌든 그는 “나의 국내 정책은 전쟁을 벌이는 것이고, 내 외교 정책도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고로 나는 항상 전쟁을 벌인다!(My home policy: I wage war, my foreign policy: I wage war. All the time I wage war)”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독일이라면 이를 갈 정도로 강경책을 주장했으며, 또 프랑스의 승리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기에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승리의 아버지(Père la Victoire)” 또는 “호랑이(Le Tigr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마치 군부 독재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강경 발언들과 강경책을 구사하던 그에게도 철칙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아래의 그의 말로 간단히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군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La guerre! C'est une chose trop grave pour la confier à des militaires)”


이 말은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언으로, 오늘날까지도 자주 인용되고 있으며, 쉽게 말해 평시는 물론, 아무리 전쟁통이라도 군은 민간 정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1958년, 드골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정치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라는 발언으로 클레망소의 말을 교묘하게 뒤집어 자신의 정계복귀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문민통제(文民統制), 영어로는 “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라고 표현되는 이 단어는 민간정부가 군대를 통제한다는, 정부와 군의 관계에 대한 기본 방침이며, 군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의미함과 동시에 문민 우위(civilian supremacy)라고도 표현된다.


문민통제는 일단 군 통수권이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정부의 수반에게 있다는 말이긴 하지만, 그 보다도 핵심은 군의 통솔권은 통수권자를 선출한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군대가 국민과 정부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그 본질을 더 잘 표현하는 “Political Control(정치적 통제)” 또는 민주적 통제를 뜻하는 “Democratic Control Over the Military”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가 보다 일반적이다.



역사상 많은 왕이나 귀족 등 지배계층은 정치인이자 동시에 군인이기도 했다.
전근대 시기에서는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 기능과 국방을 담당하는 군사 기능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고, 무력과 군사력을 항상 독점적으로 장악해 두는 것은 정치권력의 유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따라서 군대 조직은 그저 무력 집단에 불과했으며, 군사 전략과 전술에 대한 이론 체계도 갖추어 있지 않았고, 무기도 원시적인 것이었으므로 이를 위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없어도 작전 부대의 지휘관으로써 이 일이 해낼 수 있었다는 것도 비 전문가인 지배층이 군을 통솔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근세 이후 전쟁이 고도화, 복잡화되는 것과 동시에 이를 위한 군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재의 확보가 급선무였기에 이런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직업 군인이 점차 군의 중추를 차지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당시 군에 남아 있던 왕족이나 귀족 등 정치세력을 군대에서 배제하는 것이 군의 지휘 통솔 합리화에 필요하다는 것이 직업 군인들의 주장이었고, 점차 군과 정치의 분리가 진행되었다. 


군의 전문화, 이것이 현대의 문민 통제로 가는 발판이 되었고 마침내 17 ~ 18세기, 영국에서 최초로 문민 통제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국왕의 군사력 남용과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독재 정치의 영향으로 국왕의 상비군을 위험하게 바라보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의회와 국왕의 권력 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1688년의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과 이듬해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통하여 영국 의회는 스스로가 군대를 통제함으로써 왕의 권력을 약화시키려 시도했다.

 

                        최초의 문민 통제..올리버 크롬웰과 명예혁명..


그러나 의회는 이런 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한 군사에 관한 결정 사항이 너무도 방대해 군대 컨트롤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군의 지휘 감독권을 국왕에게 반환하고 말았다.
이후 1727년, 내각 책임제가 출범한 이후 육군 장관이 취임하지만, 군의 총사령관으로써 인사권과 통수권이 국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육군 장관은 군사 정책에 대한 권한만 위임되며 군에 대한 관할권은 이원화된 채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정부와 군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었고 이는 군의 전문가 집단, 즉, 전문 장교단이 나타난 것에 기인한다.
프로이센의 장교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 자신의 저서 “전쟁론(Vom Kriege)”을 통해 “정치가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임을 주장하며 정치의 군사에 대한 우월성을 논하였고, 동시에 “전문 직업 군인이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전문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기를 요구한다.”며 군사 전문가 조직으로써의 군의 재확립을 요구했다.



이것이 현대 문민 통제의 원형이 되었지만, 동시에 효율적으로 군을 정치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 “무관(武官)을 입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이 클라우제비츠의 말이 후세의 연구자들에 의해 “정치에 군이 봉사하기 위해 무관이 입각해야한다”고 오해되며 일본의 군부대신현역무관제(軍部大臣現役武官制) 같은 골 때리는 방향으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렇게 인류가 근대에 접어 들면서 군의 통제권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 것은 간단히 말해 군대가 닫힌 사회가 되는 것과 쿠데타를 방지하고, 크게는 지네 맘대로 국가 간의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오죽하면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은 가장 강력한 권력의 근원이므로 만약 군이 스스로 인사와 행정을 결정하는 폐쇄적인 집단이 된다면 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정치 세력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만약 이렇게 군이 폐쇄적이고 권력화 된 집단이 된다면, 투명하고 객관적인 인사와 정책 검증은 불가능해 지고, 내부의 파벌에 따라서 정책과 인사가 좌우되며, 이렇게 파벌 간의 대립이 심각해지면 파벌을 타고 무능한 똥별들이 상층부로 올라가 극심한 부패를 일으켜 급기야는 나라를 헬 게이트로 이끈다는 사실은 이미 과거 일본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결국 군이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한 무력의 기반이 되어버리면 본연의 목적인 국가안보 따윈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게 되고, 견제 받지 않는 군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어 그저 개인의 인권, 사회의 공동 가치을 위협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 국가와 나아가 전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악의 근원이 될 가능성마저 갖게 된다.
따라서 문민통제를 받지 않고 군이 독자적 정치세력이 되면 실질적으로 정부를 능가하는 위상을 가지게 되고 더 나아가 여차하면 정부를 무력으로 엎어버릴 수도 있는 소위 “군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국제 정치학자 사무엘 P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 냉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에 관한 이론인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으로 잘 알려진..)의 정의에 따르면, 문민 통제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그 첫째는 소위 “주체적 문민 통제(Subjective civilian control)”로, 민간이 군대에 영향력을 극대화하여 군을 정치에 완전히 종속시키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인이 군사 지도자가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군의 전문적인 능력을 저하 시키게 되고, 결과적으로 안보 체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객체적 문민 통제(Objective civilian control)”가 있는데 이것은 민간의 군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함으로써 군대를 정치로부터 독립시켜 더 전문가 집단화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군인은 전문인이 되기 위해 전념할 수밖에 없고, 정치에 개입하는 위험과 군대의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으며, 또한 현대전은 고도로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전문 분야의 숙련된 직업 군인을 필요로 하기에 훨씬 효과적으로 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선진국일수록 후자의 객체적 문민 통제가 자리 잡고 강화되는 추세이며 군대사회학의 권위자인 시카고 대학의 모리스 자노비츠(Morris Janowitz) 교수는 적절한 문민 통제를 위해 민간 정부는 다음 과정을 수행해야한다고 밝혔다.


 
1. 군사 목표를 실행 가능한 것으로 한정한다.
2. 정치적 목적에 부합한 군사 교리를 정립한다.
3. 군의 전문성과 전문가로써의 자존심을 고양한다.
4. 민주적 정치 제도의 정통성을 부각한다.


그는 이렇게 해야만 민간 정부가 군의 일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책임을 평가할 수 있으며 군이 이를 인식함으로써 정치의 통제에 따를 것이라 결론 짓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신생국이나 개발도상국, 후진국일수록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 군대의 정치개입 위험성이 높으며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는 나라일수록 문민통제가 잘 이루어지고 이는 역사와 현재의 지구촌 실상에서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현역 군인은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을 겸하지 못하도록 문민통제를 규정하고 있으며, 하나회 등 정치군인들에게 학을 뗀 소위 문민정권에 의해 민간에 의한 군 통제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실장이나 국방부 장관 등을 비롯한 소위 안보 라인은 주로 군인 출신이 차지하고, 특히, 국방부 장관의 경우,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 이후 단 한 명의 민간인 출신도 없어 실상은 무늬만 문민통제 상황이다.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핥고 빠는(저게 보수인가 싶지만..) 정의의 큰형님(-_-;;), 미국의 경우, 1947년 9월 17일, 제임스 포레스탈(James V. Forrestal)이 초대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지금의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에 이르기까지 총 26명의 국방부 장관이 있었지만 이들 중 군 장성 출신은 조지 C. 마샬과 현재의 매티스 장관 달랑 2명뿐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에게 군의 민간 통제를 보장하기위해 현역에서 물러난 후 7년 이내에는 국방 장관에 임명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현재 매티스 장관의 경우 이런 미국 연방법에도 불구하고 3년 밖에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뭐 대빵이 트럼프니까..마샬 장관의 경우 국민과 의회의 열렬한 지지라도 받았지..)



하지만 우리의 경우, 합참의장 하다가 전역 후 1시간 만에 국방장관에 임명된 김태영 장관은 약과로,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두고 임의로 제대한 뒤 바로 장관에 임명된 김장수 장관도 있었다(김태영은 그나마 합참의장 임기라도 다 채웠지만 이 양반은 중간에 때려치고 국방장관이..)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잘되는 나라일수록 국방장관은 군 출신자더라도 군에서 전역한 기간이 길어 사실상 민간인이 된 사람을 임명하려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의 현행 국방장관 임명 방식, 특히 김장수의 사례처럼 군복무 하고 있는 상태의 현역 군인을 바로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 케이스다.



이런 골 때리는 인사체계는 북한과의 대치하는 우리의 절박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있지만. 이러한 의식은 그만큼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국방에 대한 사회적 무지와 무관심일 뿐이라 생각된다.
당장 스위치만 한 번 누르면 수십 분 안에 온 나라가 절딴나는 극단적 냉전시대를 치뤘던 미국은 둘째 치고, 그 최전선에 있었던 서독만 하더라도 독일연방군 자체가 철저한 문민통제 우위를 기반으로 국방전략과 정책을 수행하였으며, 그런 문민통제 때문에 대치하던 공산권 국가들에 비해 전략적 열세나 전력의 열세에 처하는 상황은 전혀 없었다.


 
하다못해 인도와 대립하며 쿠데타로 해가 지고 쿠데타로 해가 뜨는 쿠데타의 천국, 파키스탄도 국방 장관으로 민간인 출신이 수두룩하고, 더 웃기는 것은 우린 상상도 못하겠지만 이 나라엔 나르기스 세티(Nargis Sethi)라는 여성 국방장관마저 있었다(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Pakistan_Secretary_of_Defence)


여기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장충단 공원에서 한, 제 7 대 대통령 선거 유세 연설 중 일부를 보자.


“여러분! 군인 출신이라야만 군대를 통솔할 수 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이스라엘 군대, 250만 인구 가지고 1억 5천만 아랍 연합군과 싸워서 연전연승한 이스라엘 군대를 통솔하고 있는 사람은 73살 먹은 마이어라는 할머니이고, 인도는 인디라 간디 여사가 3군 총사령관이오. 민주주의는, 민주국가의 군대는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에 복종하는 것이오.”



우리도 이미 70년대에 저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문민통제는 중요시되고 있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이는 요원한 얘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특히 적폐 청산과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현 정부마저 여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특히 사생활로 수많은 구설수에 오른 현 장관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가 해군 출신을 임명하는데 반발하는 육군을 향해 “그럼, 민간인을 앉히겠다!”고 협박하고 의구심을 품는 야권과 국민들엔 “대체할 인물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으며 육군이 해군 출신 국방장관을 반대한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민간인을 앉히겠다는 것이 어떻게 협박이 될 수 있으며(오히려 당연한 거 아닌가?)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것은 또 무슨 망언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에 4성 출신 퇴역 장군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 것이며 그 바가지만한 인재 풀 안에서 적격자를 고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솔직히 이번 정부가 잘 되길 바라지만 이런 인사를 보면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고 현 정부가 앞으로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폐 청산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현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혹시 청운을 꿈을 안고 군에 몸담은 분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닌가 싶은 노파심에 한마디 더 하자면, 만약 제 말로 인하여 상처 입으셨다면 군에서 빨리 나오기를 추천한다.
군이란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곳이지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





그러고 보니 민간인출신 국방부장관은 상상도 못했네요. 다른나라는 다들 하는건데 이런걸 생각도 못하다니 정말 구태에 물들어 버린거 같습니다.
한번 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금번 대선에서 비록 투표는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문대통령과 이 정권이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몇몇 장관인선과 관련해서는 정말이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만 믿고 노대통령의 말처럼 "이쯤되면 막 가자는 얘기지요." 아닌가요? 한편으론 장관 후보자들중에서 부패하지 않으면서도 유능한 인재가 그렇게나 없나 싶어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별게 아닐수도 있지만 십수년간 잘못 알려진 말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노통은 "이쯤되면 막 가자는 얘기죠"라는 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이쯤되면 막하자는 얘기죠"라고 했죠. (https://www.youtube.com/watch?v=kUUPZ1xYv-s) 한음절 차이지만 '막가자'는건 말 그대로 막장으로 가자는거고 '막하자'는건 계급장 떼고 제한 없이 하자는 말이 됩니다. 사소한거 하나라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고 싶어하던 당시 언론들의 왜곡중 하나죠.
그 맥락에선 별 차이는 없었을 것 같네요. 그 차이를 구별한 사람도 없었고 저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는데.. 노통은 20년 묵은 정치인이면서도 저런 캐주얼한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그 버릇때문에 자기 정책을 구현하는 데는 곤란을 겪었어요. 문통 조심하는 걸 보면 거기서 많이 배웠다고 봐야죠.

이번 대통령의 인사는, 송영무는 진짜 잘못이지만, 나머지 인사는 제 생각에는 그 정도면 개인사가 더 부패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내게는 안 부패한 사람이 있다!" 며 공약한 것과 야당할 때 비토한 이유로 든 걸 지가 씹어드시고는 뻔뻔하게 잘 난 척 해서 복장을 뒤집어놔서 그렇지, 인사 자체는 이제 일하는 걸 보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어그로를 쌓아 놓고는 팩트폭력이라며 야당들의 과거 발언을 들어 당정이 만든 법안을 통과시키라 압박하던데, 정치판 몇 십 년 보고 있자니 자리바꾸며 하는 짓은 똑같아서 누구 편들어줄 생각이 안 들더군요.
어쩌면 저 정도 수준도 그나마 봐줄만 한 수준이라 자위하는 게 복장 편할 듯 합니다..
또한 문통도 몰랐겠죠..무슨 수사기관이 아니라면..
스스로 토해내지 않는 한...
오늘도 잘 일고 갑니다. 확실히 레밍이라고 말한 녀석 덕분에 문민통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그 문민조차 저런 녀석들이 섞여있을거란 생각에 뒷골을 잡게 하네요.
그노마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더만요..
하긴 그 동네에 뭘 더 바라겠습니까만...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관행 얘기를 제쳐 두고 제도만 가지고 생각하면, 국방부장관이 대통령 다음 서열로 군정권과 군령권을 다 가진다는 게, 완전한 민간인을 임명하는 데 걸림돌이 된 게 아닐까요.

미국은 독립전쟁 이래 민병대 전통이 강한 나라면서 지금도 헌법에 시민의 무장 권리를 명시한 "전투종족"이라서 민간인 국방장관이라 해도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 우리는 군제대한 사람 중에도 이 나라에 군대가 필요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쩝.. 군가산점 논쟁때도 보면 찬반은 둘째치고 들고 나오는 논리가 정말 머릿속을 아득하게 만들더군요.

아, 보직싸움도 있을 겁니다. 국방부 장관이니까 장군이 승진해야 하는 자리라는 생각. 이건 군대만이 아니라 조직 생리죠. 옛날에, 소방본부였던가 소방청이었던가 정부조직개편하며 소속을 바꾸려 한 적이 있었는데, 위에서 반대한 이유 중 하나가, 그렇게 개편하면 소방조직의 수장 직급 대우가 한 계단 내려간다고(..) 소방관의 자존심이네 뭐네 한 것까지 군대랑 판박이였어요.

어쩌면 우리의 정부 기관 거의 대부분이 그럴 걸로 보입니다만...
특히나 그놈에 기수 문화...
제 생각엔 적폐 중에 적폐로 보입니다...
그 기수 문화라는 게 일제 시대의 잔재죠...
일본 육사와 해군 병학교에서 나온...
현대 일본에선 사라진 문화인데 우린 아직도 그러고 있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걸 가지고 일제탓은 그만 해야죠.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 풍습 아시쟎아요.
일본놈들 그런 것도 그 전에 없던 걸 병학교니 하는 조직에서 만들어낸 건 또 아닐 겁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이건 군인과 정치인 사이의 문제라기보다는 국민전체의 인식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방장관은 군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뿐더러,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민간인 국방장관에 그렇게까지 호의적인 반응은 몇 없더라고요 사회에 만연한 낙하산 인사의 이미지가 강하게 연상되는 탓이겠지만..
아마 북쪽 돼지색기와는 팽팽한 대립 때문에 그런 걸로 보입니다만...
특히 어르신들...
하지만 그건 소위 윗분들이 말하는 핑계일 뿐 전혀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죠...
저로서도 현 시점에서 민간정치인들로 장관임명의 인재풀을 더 늘린다고 한들 국민여론에 흡족한 후보자가 더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가뜩이나 정치인들 군면제 비율이 높아서 다른 부 장관임명때 병장만기전역한 후보자도 제대로 못찾아서 공분대상이 되는나라에서 국방장관에 맞는 정치인이라.. 상속재벌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경영자출신을 데려다 앉힐 놈도 마땅찮고..
굳이 데려다 앉히자면 교수출신 정도일까요.. 근데 교수들 장관시키는 것도 이쪽 트유의 정치문화라..ㅎㅎ
흐..공감합니다...
제가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을 임명하자 주장하는 데에는 그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군에서 전역하는 많은 부사관이나 장교 출신들이 마치 낙오자로 찍히고 스스로도 그렇게 자괴감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한편으론 코메디 같은 일인지...
그렇다고 정부기관에서 그런 인재들을 흡수하려하면 또 군부 독재시대의 잔재니 낙하산이니 하며 난리칠 것 같고..
아무튼 여러가지로 난제이긴 하네요...
.... 본좌의 정신건강 을 위해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루하루가 거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보니 뉴스를 안본지가 오래 되어 현상황을 잘모르지만...

문민통제...에 대해선 개인적으론 영사미가 대통령이 된 1993년을 기점으로 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국방부장관 나부랭이에는 관심도 없는데.....포스팅 맨앞에 등장하는 "조르쥬 클레망소" 때문에 확 뒤집어졌읍니다....


"조르쥬 클레망소".... 이 양반때문에 젊은날 수없이 고뇌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적이 많아(?) 본좌에겐 참 난감한 인간이었읍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있는데 1978년 본좌가 고2때 "드레퓨스 사건"이란걸 처음 알게 되었고 당시 서구 문명세계 전체를 뒤흔든 그 엄청난 드라마에 취해서 광적으로 파제끼다가 알게 된 이야기들인데 그 엄청난 사건에서 핵심적인 주인공 세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사람이 조르쥬 클레망소였읍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내건 공화정이 탄생한 이후 프랑스인들은 그 국시 하나를 지키기위해 수없이 많은 피를 흘렸고 그때문에 국시란 말에 대한 느낌과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그 국시를 지키기위해 당시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인간취급도 못받던 유태인들에게까지 국가 공민의 자격이 주어지자 유태인들은 그 비상한 지적능력을 바탕으로 사회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 상층부로 진입하게 되었는데....

따라서 유태인들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이 허락되어 상당히 우수한 인재들이 프랑스 육사에 진학하여 장교로 임관되어 군생활을 하였는데.... 보불전쟁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읍니다..

신생프러시아 제국에 수도가 점령당하고 거액의 배상액을 물어내고 알사스 로렌지역까지 빼앗기자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내건 대혁명의 나라, 그 프랑스가 정신줄을 놓고 광적인 쇼비니즘 국수주의가 창궐하였는데 그 와중에 불행한 드레퓨스 사건이 터집니다...

이 드레퓨스 사건에 대해 논하자면 석달열흘을 떠들어도 부족하지만 시간관계상 간단히 요약하면 당시 프랑스 육군 방첩대가 파리주재 독일대사관 휴지통에서 찢어진 문서 하나를 획득했는데 그 문서를 복구한 프랑스 방첩대는 발칵 뒤집어 지게됩니다.

당시 프랑스 육군이 개발한 최신 대포의 성능에 대한 정보가 담긴 문서였기에 이것은 간첩사건이자 반역사건이었읍니다... 그 문서에 있는 내용으로 보아 그 문건을 작성한 사람은 명백히 프랑스 육군 포병장교였기에 방첩대가 눈에 불을 켜고 용의자를 찾던 중 드레퓨스란 유태인 포병대위가 여기에 걸려들어 간첩에 반역자란 너무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생을 조지게 되었는데...


이 사건은 단순히 한개인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수년후 서구 유럽전체를 뒤흔든 엄청난 사건으로 비화하게 되는데...이 사건때문에 프랑스는 내전 일보직전까지 갈 정도의 초대형 사건이 된 이유가 바로 그 국시-자유 평등 박애를 지키려는 싸움이었는데 그 장렬한 투쟁에서 핵심적인 세 주인공이 "에밀 졸라" "삐까르 소령"그리고 "조르쥬 클레망소"였읍니다...

당시 그들은 자유 와 인권 정의를 위해 모든것을 바쳐 헌신한 민주투사였었고 결국 오랜시간이 지난후 드레퓨스사건이 정의의 승리로 끝났을 때 당시 서구문명사회의 모든 지식인들이 열광하였으며 세 주인공에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바쳤읍니다만.... 정의의 화신, 민주투사 였던 바로 그 조르쥬 클레망소가 후일 수상이 되어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여 2차세계대전의 씨앗을 뿌린 사람이 되고 말앗다는 것이 너무나 서글픈 아이러니 입니다...

악마와 싸우다보니 악마를 닮아버렷다는 이 어이없는 아이러니가 다른 사람도 아닌 드레퓨스사건의 영웅 조르쥬 클레망소에게서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나 속이 쓰리고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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