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해군의 뻘짓 건함기

봉달이 2017. 7. 24. 21:34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호쇼!... 엥??<上>



"현재 항공모함 전단을 미국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현대전에서 미국 항공모함의 모습이 노출된 것이 많기 때문에 항공모함 자체가 미국에서 개발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은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건조됐다."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은 1921년 진수돼 1922년 취역한 일본의 항공모함인 호쇼(鳳翔)다. 그 이전에도 순양함이나 상선을 개조해 갑판 위에 활주로를 만든 배들은 있었지만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해 세계 최초로 취역한 항공모함은 호쇼가 처음이었다."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해 최초로 취역한 항공모함은 호쇼!! 켁~~


"오늘날엔 항공모함 최강국인 미국은 오히려 항공모함이 뒤늦게 실전 배치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도 항공모함은 전함의 작전을 돕는 정도며 실제 해전은 갖가지 함포를 갖춘 거대 전함이 치른다는 함대결전사상이 훨씬 강했기 때문에 항모전단이란 개념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주만공습에서 일본 뇌격기들의 폭격에 크게 당한 미국은 이후 항공모함을 정신없이 건조해 막대한 항모전단을 구축했다."


이 무슨 헛소리인가?

기사 제목이 이렇다.


"세계 최초 항공모함 만든 나라는 미국?정답은 일본!"

<관련 기사 ->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277&aid=0004040159&date=20170724&type=1&rankingSeq=7&rankingSectionId=100>


요사이 아무리 거짓 정보와 되지도 않는 추측성 보도, 언론의 기본인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편향된 시각의 기사 계제로 기레기라는 말이 난무한다지만 이 따위 내용을 기사라고 내보내는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다.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을 만든 나라가 일본이라고?
크흑...


도대체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저따위 기사를 썼고 도대체 어떤 반응을 얻기 위한 기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자라는 소위 전문 직종 종사자가 독자를 향해 기사라는 공공성 정보를 전달하려면 최소한의 기본적 소양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장 구글 검색창에다가 “first aircraft carrier” 라고만 쳐봐도 정답은 바로 우르르 쏟아진다.


세계 최초 항공모함 만든 나라는?
정답은 영국이다, 이것아!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항공모함은 영국 해군이 순양함으로 건조 중이던 놈을 전면 갑판을 완전히 비행 갑판으로 개조해 1917년 6월에 완성한 19,000톤의 퓨리어스(HMS Furious 47)였고, 전면에 설치된 비행 갑판만으로는 항공기 운용에 불편했기 때문에 준공 즉시 개장에 들어가 1918년 3월에 선미 갑판까지도 비행 갑판으로 만들어 완전히 함 대부분에 평면 갑판을 가진 최초의 항모가 되었다.


하지만 함의 한가운데에 있는 함교와 굴뚝 때문에 이것이 우뚝 솟아 있어서는 착함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차 대전 종결 시까지 발함 전용으로만 운용되었지만 “항공기의 착함에는 갑판에서 구조물을 없앨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통해 이후 건조(혹은 개조..)되는 모든 항공모함의 비행 갑판은 일자평면형 비행 갑판이 채용된다(퓨리어스도 1922년, 함교를 철거..)




                            퓨리어스의 건조 당시와 대개장 이후의 모습..


세계 최초의 일자평면형 비행 갑판을 건조 시기부터 가진 항공 모함 또한 1차 대전 종결 직전인 1918년 9월에 영국 해군이 건조한 아거스(HMS Argus, 49)였고 이놈은 당연히 전작인 퓨리어스에 비해 더욱 완성도 높은 항공 모함이었으며, 함수에서 함미까지의 비행 갑판에 전혀 방해물이 없는 비행 갑판을 갖춰서 이후 나올 항공 모함들의 기준이 되었다.
웃기는 건, 저 기사에서 세계 최초로 항모를 만들었다는 일본 해군은 1919년 1월 24일, 영일 동맹에 따른 영국의 하늘과 같은 배려에 감사하며 직접 영국까지 와서 이 항모를 견학했다(-_-;;;;)



                      세계 최초의 일자평면형 비행 갑판을 가진 항공모함 아거스..


하지만 세게 최초의 항모 개발국(?) 일본 해군은 이 영국 해군의 항모를 베낀다는 게 단점까지 그대로 베껴버렸고, 이는 이후 일본 해군 항모의 대표적인 삽질이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거스는 최초 계획 시 비행 갑판 양쪽에 앞뒤로 긴 함교를 배치하고 그 사이를 함재기가 발함하고 착함할 예정이었지만, 실용성이 없다고 판단, 갑판 상의 함교를 철거하고 비행 갑판 아래에 설치, 비행 갑판 상부에는 아예 구조물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가 되었다.
그러나 갑판 아래에 위치한 함교에서의 전망이 개판이 되어 항공기 통제는 물론 항해에까지 지장을 주자, 영국 해군은 엘리베이터식 함교를 설치, 항공기를 운용할 때에는 비행 갑판 아래에 있다가 항해 시에는 노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아거스의 엘리베이터식 함교(네모난 컨테이너 비스무리한 거..)


또한 비행 갑판에서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영국 해군의 의도는 갑판에 노출된 굴뚝까지도 철거해 버렸고, 배연로를 선체 좌우로 나누어 함미까지 빼내어 좌우로 배연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러고 보니 뜨거운 배연 연기로 인해 격납고 공간이 많이 줄어든 데다 격납고와 침실 구역의 승무원들이 열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후 이 방식은 퓨리어스의 근대화 개수 시에도 채용되어 같은 불만이 터져 나왔고, 고온의 매연에 의해 가열된 함 내의 거주성은 최악이 되었다.


                                 아거스의 배연 시스템..죽는 거이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일단 베끼고 봐야 했기에 이런 단점마저 그대로 베껴, 앞서 설명한 함교 없는 항모(일본 해군은 엘리베이터식 함교도 없다는..), 거주성 최악의 항모들을 건조했으며 대표적인 것들이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인 호쇼(鳳翔.. 그 뒤로도 줄줄이 나온다능~~)와 진주만 기습 당시 일본 항모 기동부대의 기함 카가(加賀)였다.


                         무작정 베낀 결과..무함교 항모 쇼호와 꼬치 제조기 카가..


“오늘날엔 항공모함 최강국인 미국은 오히려 항공모함이 뒤늦게 실전 배치됐다”는 헛소리도 골 때리는데, 미 해군은 1920년 4월 11일, 19,000톤급 화물선 주피터를 개조하기 시작, 1922년 3월 20일, 미 해군 최초의 항모 랭글리(USS Langley, CV-1 / AV-3)를 취역시켰다.
랭글리는 1936년 10월, 항공 모함으로서의 경력은 종료되었지만, 본 함에서 훈련된 미 해군 조종사들은 뒤이어 건조된 두 척의 항공 모함 렉싱턴(USS Lexington, CV-2)과 사라토가 (USS Saratoga, CV-3)에서 2차 대전 기간 내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1922년 3월 20일 취역한 미 해군 최초의 항모 랭글리..


“이전에도 순양함이나 상선을 개조해 갑판 위에 활주로를 만든 배들은 있었지만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해 세계 최초로 취역한 항공모함은 호쇼가 처음이었다.”는 말도 순전히 뻥이다.
 
앞서 소개한 영국과 미국의 항모들은 순양함이나 상선을 개조해 갑판 위에 활주로를 만든 배들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되고 건조에 들어간 군함 또한 일본의 호쇼가 아니라 영국 해군의 허미즈(HMS Hermes, 95)였다.
허미즈는 일본 해군의 호쇼(1919년 12월 16일 착공, 1922년 12월 27일 취역)보다 무려 2년 가까이나 빠른 1918년 1월 15일에 착공하였지만, 제작사인 암스트롱 휘트워스 사와 영국 해군은 앞서 건조한 항공모함 이글(HMS Eagle)의 운용 실적을 지켜보면서 장단점을 파악, 건조에 반영하며 신중하게 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취역이 호쇼보다 늦어진 것뿐이었다.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에 들어간 최초의 항모 허미즈..


따라서 “세계 최초로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며, 그냥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에 들어간 항공모함은 영국의 허미즈였고 일본의 호쇼가 취역이 빨랐던 것뿐이라는 게 맞는 말이다.
허미즈의 취역이 늦어진 것은 착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며 일제히 군비가 삭감되며 공사가 지체되었고, 미완성인 채 취역한 것은 호쇼보다 빠른 1920년 4월이었으며, 이후 지중해 시칠리아 앞바다에서 장기간의 함 운용 시험을 실시, 아일랜드식 함교의 유효성을 재확인 한 다음에야 영국 해군은 같은 해 11월에 의장 공사에 들어가 착공 5년 후에 정식 취역시켰기 때문이다.


                                허미즈 건조에 참고된 항모 이글..


여기에서 저 기사가 얼마나 황당한 지 좀 더 파보면, 당시 일본 해군은 동맹국인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운용에 처음부터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지만, 항모를 일본 자체 기술로 건조한다는 것은 그들의 기술력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항모를 건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연히 순양 전함 공고의 예처럼 영국에 가서 구걸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고 역시나 그렇게 했으며 여기엔 이것들의 고질병인 육해군의 알력 싸움도 한 몫 하였다.


                       영국이 잔뜩 밀어줘 보유한 공고급 순양전함 히에이..


1918년 8월, 일본 육군 항공대는 프랑스로부터 군용 비행기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것을 대가로 프랑스에서 무상 기술 지도를 받는 것을 제안했고, 이듬해인 1919년 1월, 일본에 자크 폴 포레(Jacques-Paul Faure) 중령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 파견 프랑스 항공 군사교육단(Mission militaire française au Japon)이 초청되었다. 
이들 프랑스 교육단은 총원 61명으로 구성되어 도코로자와(所沢)와 카카미가하라(各務原)의 육군 비행장에서 일본 육군 항공대를 지도했고, 이때 일본 해군 항공대에서도 소수의 강사와 학생이 꼽사리 껴서 교육을 견학했다.


  일본에 파견된 프랑스 항공 교육단..가운데 도고 헤이하치로가 꼽싸리 껴 있는게 보인다..


이렇게 육군의 프랑스 항공교육단 초빙 강습에 꼽싸리나 껴서 기웃거리던 일본 해군은 당연히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 해군 항공대에서는 당장에 자기들도 항공 선진국인 영국 해군에서 교육단을 불러 본격적인 항공 훈련을 다시 하자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당시 해군 군무국(軍務局)의 항공 부주임 오제키 다카마루(大関鷹麿) 중좌는 “개별적인 출장이나 파견 교육 따윈 당장 집어치우고 영국에서 신뢰할 만한 강사를 많이 불러 훈련하면 단박에 전원을 교육시킬 수 있다.”며 이의 실행을 요구했고, 해군 군령부도 이를 받아들여 당시 주 런던 대사관에 이의 알선을 의뢰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과 영국은 영일동맹으로 끈끈한 관계였고, 특히 해군 분야에 있어서는 당시 영국이 최신예 순양전함인 공고급 건조에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영국은 호의를 가지고 우수한 해군 항공 전문가들을 엄선해 보내 주기로 결정, 이들 영국 항공 교육단은 윌리엄 포브스-셈필(William Francis Forbes-Sempill) 대령을 단장으로 총인원은 하사관까지 포함, 29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1921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가스미가우라(霞ヶ浦) 해군 항공대에 도착했다.


           영국 항공 교육단 단장 포브스-셈필과 도고..영감탱이 기분 째지냐?


하지만 육군의 프랑스 교육단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공짜는 아니어서 일본 해군은 이들을 초빙하기 위해 아브로 육상 연습기/수상 연습기(AVRoe 504 K/L Trainer), 글로스터 스패로우호크 함상 전투기(Gloster Sparrowhawk Carrier Fighter), 파날 팬더 함상 정찰기(Parnall Panther Carrier Reconnaissance-plane), 블랙번 스위프트 뇌격기(Blackburn Swift Carrier Torpedo-Bomber), 솝위스 쿠쿠 뇌격기(Sopwith Cockoo T.Mk.2 Carrier Torpedo-Bomber), 슈퍼마린 씰 수륙 양용 비행정(Suprmarine Seal Amphibian Flying-boat) 등등 총 100여기에 이르는 각종 영국산 항공기를 구매하여야 했다(하지만 당시 일본 해군 항공대는 달랑 수상기 밖에 사용하지 않았기에 이들 영국산 항공기를 보고 엄청난 쇼크를 먹었다고..)



공짜는 없다! 당시 일본이 수입한 글로스터 스패로우호크 전투기와 블랙번 스위프트 뇌격기..

 
이들 영국 교육단은 일본 해군 항공단에게 단지 항공 관련 기술만을 전수한 것이 아니라 항공모함 건조의 핵심 기술인 비행 갑판 건조 기술도 지도했으며, 동시에 일본 해군은 호쇼의 건조사인 미쓰비시를 통해 영국 해군의 퇴역 장교 프레데릭 러틀랜드(Frederick Rutland)를 항공기 설계 고문의 명목으로 고용하도록 하여 항모 착함 기술 등 항모 운용 기술들을 일본 해군 파일럿들에게 교육시켰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항모라는 호쇼는 건조부터 운영까지 모조리 영국의 지원과 조력이 있었고, 만약 저런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지원이 없었다면, 저 시기 일본의 항모 보유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는데 저게 무슨 소리인지 당췌 얼척이 없을 뿐이다.


                 일본 해군이 파일럿 교육 교관으로 고용한 프레데릭 러틀랜드(좌측)..


또한 “오늘날엔 항공모함 최강국인 미국이 항공모함을 뒤늦게 실전 배치됐고 2차 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도 항공모함은 전함의 작전을 돕는 정도며 실제 해전은 갖가지 함포를 갖춘 거대 전함이 치른다는 함대결전사상이 훨씬 강해서 항모전단이란 개념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소리도 얼척없긴 마찬가지다.


“1939년까지도 항공모함은 전함의 작전을 돕는 정도”라고 저 기사에서 떠들어댄 미국은 이미 1934년에 하원 해군 소위원회 의장 칼 빈슨(Carl Vinson)이 제출한 1차 해군 확장법이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매년 7,600만 달러의 예산으로 100척 이상의 군함 건조가 승인되었고, 이 해부터 항공모함 호넷(Hornet)을 포함 순양함 2척, 구축함 14척, 잠수함 6척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이 1 차 해군 확장 계획은 공식 명칭이 “워싱턴과 런던 군축 조약의 제한선까지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것에 관한 법(Construction of Certain Naval Vessels at the limits prescribed by the treaties signed at Washington and London)”으로, 이름에서 보듯이 군축 조약 하에서 상한선까지 이빠이 군함을 만드는 계획이며, 단순한 군비 강화라기보다는, 대공황 시기의 경제 부흥 정책 즉, 뉴딜 정책의 일환인 공공사업으로서의 측면이 컸다.

 


                  칼 빈슨 의원과 그의 제안으로 건조되기 시작한 항모 호넷..


그 4년 후인 1938년에는 일본이 워싱턴 조약과 런던 조약을 발라당 깨버리며 사실상 무제한 경쟁 체제로 돌입하자 해군 확장법(The Naval Expansion Act of 1938)을 통과시켜 해군력의 25% 증강을 도모했는데, 그 주요 골자로는 사우스다코타 급 전함 3척과 더불어 에식스 급 항공모함 1척 외에 신형 함정 65척, 총 40만 톤에 이르는 함정의 건조, 항공기 3,000대 생산을 계획한 것이었다.


또한 문제의 저 기사에는 2차 대전이 벌어지고 난 후에도 미국은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진주만에서 뒤통수를 처 맞고서야 난리를 친 것처럼 써놨는데 이 또한 택도 아닌 소리다.
유럽에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 6월, 독일군이 프랑스를 자빠뜨리자 미 해군 작전부장(Chief of Naval Operations) 해롤드 스타크(Harold Stark) 제독은 곧바로 해군의 대규모 확장 계획을 제안하였고, 미 의회에서는 당장 이를 받아들여 다음 달인 1940년 7월, 필요한 예산 조치가 취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양대양 함대법(Two-Ocean Navy Act)이었다.


                        미 해군 작전부장 해롤드 스타크(Harold Stark) 제독..


이 계획은 대서양과 태평양 모두에서 독일과 일본에 대항하는 해군을 건설한다는 계획으로 법안 통과 즉시 착수되었는데 여기엔 몬태나 급(Montana Class Battleship) 전함 5척(이후 항모 건조에 집중하기 위해 건조 중지), 아이오와 급(Iowa Class Battleship) 전함 6척, 알래스카 급 대형 순양함 6척, 순양함 27척, 구축함 115척, 잠수함 43척 등 총 133만 톤의 함정 건조와 15,000대의 해군 항공기 제조가 결정되었다.


문제는 진주만에서 처맞기 훨씬 전에 계획된 이 계획에서 기자가 말하는 "함포를 갖춘 거대 전함으로 전쟁을 치른다는 함대결전사상에 올인"하던 미 해군은 전함은 12척 건조하면서 에섹스 급(Essex class aircraft carrier) 항모는 무려 18척을 건조한다고 계획했다는 점이다.
물론, 저 기사에서 사실인 것도 있는데 전쟁 발발 후 미 해군은 항모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원래 18척 건조 예정이던 에섹스 급 항모를 32척이나 발주, 전쟁 종결에 따라 취소된 8척을 제외한 24척이 1942년부터 1950년 사이에 취역했다.




미 해군이 일본과 전쟁에 돌입하기 전에 기존 전력은 놔두고 순전히 신규로만 건조하려 계획한 저 물량만으로도 당시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총 전력인 147만 톤에 필적하는 숫자였으며, 미국을 상대로 껄떡거리던 일본 해군으로써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압도적인 물량이었다.
이는 런던 해군 군축 조약에 의해 정해진 대미 70%의 전력에 불만을 가져 탈퇴를 주장한 일본 해군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되는 것으로, 미 해군이 계획대로 함정들을 완성시켜 보유하게 되면, 일본 해군은 자신들의 건조 계획대로 야마토니 뭐니, 모조리 다 건조한다고 대미 50%로 전력이 떨어지는 황당한 결과가 된다는 얘기였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이 계획을 완성시켜 전력 대비가 더 불리하게되기 전에 단기 결전을 치러 어떻게든 쇼부를 보려고 지랄한 것이 일본이 대미 개전을 결의한 요인이 되기도했다.


그런데 함대결전사상에 올인하던 미 해군이 항모 따윈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고?
 
살다 살다 저런 헛소리는 처음 들어보며 저 기사가 나가자 해당 기사와 연결되는 포털 사이트에는 “역시 일본이 최고!”라는 댓글들로 난리가 났다.


“일본이 항공모함을 만들었을 때 조선 최고의 테크놀로지는 소달구지였다 이것은 반박불가 팩트이다 고종이 자동차 타보고 싶어서 농민들 쥐어짜서 쌀 수만섬 퍼주고 자동차 한대 수입했는데 도로가 없어서 경복궁에서 이틀 타다가 식상해서 운전 때려친 거 이것도 팩트다!”
“이래서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생기는 거다.과학기술 및 공학을 천대하고 무조건 그 놈의 관과 쓸데없는 서책이나 보는 걸 중요시했던 무능하며 쓰레기 같은 한민족!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충 이런 댓글에 하다하다 이런 댓글까지..


“심지어 일본은 잠수항모도 만들고 있었음!”



                                 잠수 항모라..크흑~~~~ ㅠ.ㅠ


처음엔 기자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기사를 작성해서 이런 쓰레기 기사가 나온 걸로 생각했지만 달려있는 댓글들을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 한 생각이 든다.
구글링 한 번이면 대부분 알 수 있는 저런 정보들을 확인도 한 번 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으며, 어쩌면 댓글들로 보아 어떤 다른 속셈이 있었던 걸로 생각된다는 건 나만의 시각일까?


이 따위 기사를 내보낸 기자의 저의가 참으로 의심스럽다.


<다음 편에 계속>


 

  

80년대에 나온 책과 TV프로그램에서도 제대로 가르쳤어요. 일본산 컨텐츠때문이 아닐까요.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일본 영상물에 직역해 붙여놓은 개인제작 자막같은 것들.
어디 가서 호쇼가 세계 최초 항모~ 이런 소릴 했다가 바보돼보면 배우는 게 있겠죠. ^^
이상하게도 저런 이들은 스스로의 논리가 잘못 되었을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죠...그게 문제...
허미스가 먼저 건조된건 맞지만 진수가 늦었기에 호쇼가 세계최초의 항공모함이라 보는건 맞다고 봐야될듯합니다. 이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항이라 해당기사가 잘못됐다 보기에는 어려워 보이는군요.
어떻게 보면 현대의 항공모함의 모습을 잡아준건 의외로 영국보다 프랑스가 선구적일 수가 있습니다. 1927년 진수된 베아른이 이전까지 나온 항모들 중 가장 발달된 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미즈의 경우에는 불균형한 대형 아일랜드가 크나큰 단점으로 이야기 되기에 항모로서 아쉬운 면이 존재했죠.
물론 베아른은 개수 및 확장이 불가능하여 2차대전당시 잉여한 함선이 됐다는게 함정이랄까요. =_=ㅋ

한번 베아른에 대해서 글을 작성해 보시는 것도 재밌는 꺼리가 될거 같습니다. ㅋ
다음에 기회되면 한 번 건드려 보겠습니다..^^
헐~ 집중기획!!
정답을 말한 리플은 삭제 시켜 버리고 일본 발가락 빠는 글들만 있군요
발가락 빨기...흑~~ ㅠ.ㅠ
풋.. 잠수항모? 잽스 희대의 개삽질이 70년 지나니 업적으로 포장되네
허긴 주구장창 빨아대는 세계최고의 전함 야마토도 있으니 뭐
안타깝죠...
불쌍히 여길 일이지요
맞습니다...
봉달님, 기사를 제대로 읽으셨습니까?
기사발췌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은 1921년 진수돼 1922년 취역한 일본의 항공모함인 호쇼(鳳翔)다. 그 이전에도 순양함이나 상선을 개조해 갑판 위에 활주로를 만든 배들은 있었지만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해 세계 최초로 취역한 항공모함은 호쇼가 처음이었다]
분명 항모로서 건조된 최초는 "호쇼"라고 쓰여 있습니다.봉달님이 언급한 "아거스"와 "퓨리어스"는 각각 상선과 순양함을 개조한 놈들이지요.기사에도 분명 개장항모로서가 아니라 항모로서 설계 건조된 최초의 항모가 호쇼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야 말로 본문 제대로 안 읽었죠? 취역이 늦어져서지 허미즈 자체가 빨랐을뿐더러 일본은 스스로 항모 만들 능력 없었어요.
설계, 건조부터 허미스가 훨씬 빨랐고 취역이란 부분은 본문에도 써있지만
진수하고 맞물려 운용 또한 더 빨랐네요 단지 정식이란 부분에서 차이는 영국과 일본 해군의 운용 차이점이라고 보면 될듯
그리고 애초에 보고 배낀 쪽이 원판보다 빨리 만든다는게 어불성설임
결국 '정식' 한 단어에 줄줄이 낚인 일뽕의 한계인데 이 역시 일본애들이 잘하던 짓거리임
ㅇㅇㅇ//항모의 정의와 최초라는 타이틀의 기준에 따라 순위가 바뀔수 있겠으나 봉달님이 지적한 기사는 그 내용상 "항모로서 설계건조되어 최초로 취역한 항모는 호쇼"라고 했으니 기사의 내용은 정확히 사실에 부합합니다. ㅇㅇㅇ님은 "정식"이라는 단어에 줄줄이 낚인 일뽕의 한계라하셨는데 그런 단어를 쓴건 당신이지요. 취역이 몇달 빨라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일본이 차지한것이 못내 아쉬운거 같은데 일본은 이미 1차대전때부터 와카미야라는 수상기모함을 운용하며 탄착점 관측이나 정찰 심지어 폭격임무까지 수행하며 그 유용성을 입증했습니다. 일본이 항모의 유용성에 대해 영국보다 늦게 알았으리라는 생각은 편견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이해가 안 된다니..

먼저 기사 제목인 “세계 최초 항공모함 만든 나라는 미국?…정답은 일본”에서 정답은 일본이 아니라 영국이라는데 의의는 없을 거라 봅니다.
만약 저것조차 부정한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지적하시는 “항모로서 설계 건조되어 최초로 취역한 항모는 호쇼”라는 것에 대한 반박을 간단히 재설명 하겠습니다..
먼저 일종의 언어유희와 비슷한 것인데, 해당 기사에는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은 1921년 진수돼 1922년 취역한 일본의 항공모함인 호쇼(鳳翔)다. 그 이전에도 순양함이나 상선을 개조해 갑판 위에 활주로를 만든 배들은 있었지만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디자인하고 건조해 세계 최초로 취역한 항공모함은 호쇼가 처음이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세계 최초의 항모는 호쇼라고 못을 박아두고 있습니다.
웃기는 소리죠..

어쨌든, 호쇼가 “항모로서 설계 건조되어 최초로 취역한 항모”가 되려면 먼저 “항모로써 설계되어”의 “항모”가 어느 개념의 항모까지를 말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며, 이 또한 그 어떤 경우를 대입해 보아도 호쇼는 최초가 되지 못합니다.
포스팅에도 언급하였지만 호쇼는 수상기 모함으로 설계되고 기공되었다가 “평면형 갑판”을 가진 항모로 변경 건조되어 취역한 군함입니다.

호쇼가 세계 최초의 항모가 되려면, “평면형 갑판”을 가진 현대적 형태의 항모로 설계되어 건조된 최초의 군함이라야 합니다.
이것도 일단 말이 안 되는 소리긴 마찬가지로 그러려면 앞의 저런 수식어가 달린 세계 최초의 항모여야 맞는 소리지 그냥 “세계 최초의 항모”는 아니죠.
두 번째, 순양함이나 상선을 개조해 갑판 위에 활주로를 만든 배들은 항모가 아니라는 소리를 굳이 인정한다고 한다면, 수상기 모함에서 항모로 변경된 호쇼도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소리가 됩니다.
세 번째, “평면형 갑판”을 가진 현대적 형태의 항모로 설계되어 건조에 들어간 최초의 군함은 영국의 허미즈죠.
따라서 호쇼는 현대적 형태의 항모로 설계되어 건조에 들어간 최초의 군함은 영국의 허미즈지만 취역은 호쇼가 빨랐으므로 세계 최초라고 우길 수 있을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호쇼는 현대적 형태의 항모로 설계되어 건조에 들어간 게 아니라 수상기 모함이었으므로 이것도 세계 최초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수상기 모함도 넓은 범주에서 항모이므로 “항모로서 설계 건조되어 최초로 취역한 항모는 호쇼가 맞다!”라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겠죠.
지당하게도 수상기 모함도 항모가 맞습니다.
항공모함이란 말 그대로 항공기를 운용하는 모함이므로 수상기 모함은 항모가 아니라고 한다면 수상기는 항공기가 아니라는 소리겠죠.
따라서 그런 주장엔 당연히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상기 모함으로 설계되고 건조된 역사상 최초의 “항모”는 1913년 11월에 기공되어 1914년 12월에 취역한 영국 해군의 아크 로얄(HMS Ark Royal)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또한 일본이 1차 대전에서 와카미야라는 수상기 모함을 운용해 봤으므로 항모의 유용성에 대해 영국보다 늦게 알았으리라는 생각은 편견이라셨는데 그렇게나 항모의 유용성에 일찍 눈 뜬 일본 해군이 와카미야를 수송선에서 수상기 모함으로 개조한 건 1913년의 일이었고 이후 열강의 해군들이 말씀하시는 항모의 유용성에 눈을 떠 각종 수상기 모함과 항모들을 줄줄이 개조하거나 건조할 때, 일본 해군은 무얼 했을까요?
평면형 항모는 건조할 기술이 없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다른 수상기 모함이라도 보유하려고 노력했을까요?
일본 해군은 항모의 유용성을 너무나 일찍 알았는지 10년 후인 호쇼의 건조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호쇼의 취역까지 일본 해군의 유일한 항모는 와카미야이었음이 이를 증명하죠..

혹시 이해가 안 되시는 다른 분 계십니까?
기자의 의도야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반미감정이죠, 뭐. 문제는 일본내 반미적 우익 기고자들만도 못한 실력이니 그것 참.

그리고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되어서 "완공"된 최초함이 호쇼인 것은 맞긴 합니다. 완공만 따지면 말이지요. 게다가 일반인들은 완공일만 따지지 설계 시작 시점이나 건조시작일 같은 것은 관심도 없습니다. 밀덕후라면 모를까...
하지만 기자가 모름지기 기사를 쓸 때 저런 식으로 해서는..
Chief of Naval Operations 는 해군작전국장이 아니라 해군참모총장입니다.
약자로 CNO라고 하지요. 직역하면 해군작전국장인데 해군참모총장이 맞습니다.
넵 우리 식으로 하자면 해군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직책이죠..
하지만 전 왠만하면 해당 당사자, 혹은 당사국이 호칭하는 명칭을 따르자는 생각이어서요..
구 일본 해군의 경우,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직책은 해군 군령부장(이후 군령부 총장)인데 이를 일본 해군 참모총장이라 의역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 하는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퓨리어스야 일찍 알고 있어서 저 기사가 황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1항공함대 창설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모두 칭찬일색이더군요.

최소한 진주만 공습 ~ 미드웨이까지 "함대항공"이라는 측면에서 최첨단에 있었다,

함대항공의 운영이라는 면에서 기존과 궤를 달리한 선구자적인 면이 있었다,

내지는 시대를 앞서 함대항공이라는 수단을 전략적으로 의미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등의

평이 많은데 혹시 이를 달리 볼 여지가 있을까요?
물론 달리 생각해 볼 여지는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항모로만 구성된 독립 부대를 운용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미드웨이까지의 제 1 항공함대의 편제를 보면 항모와 구식 구축함으로만 구성되어 있죠..
따라서 함대 방어는 오로지 함재 전투기에 의존한다는 것인데...
처음엔 제법 먹혔을 지도 모르겠지만 미드웨이의 사례를 보아서 아시듯 일본의 엄호 전투기들은 낮은 고도로 접근하는 뇌격기를 차단하느라 고고도의 급강하 폭격기를 놓치죠..
이걸 마의 5분이니 어쩌니 하는데..

물론 그것도 결정타였지만 좀 더 파고 들어보면 항모와 구식 구축함들의 자체 방공 능력이 너무나 허접했다는 거..
이후 전함과 순양함들을 편제한 제 1 기동함대라는 걸 만들지만..이때도 따로 국밥이긴 마찬가지..

자세한 건 조만간 좀 더 보충하여 포스팅으로 대체하든지 하겠습니다..
(^^)b...;;
이런 내용은 널리널리 퍼트려야 합니다. 요즘 미쳐버린 일뽕들 땜에 너무 피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