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 전차의 삽질 원인

봉달이 2017. 12. 13. 16:40

2차 대전 초, 연합군 전차부대의 삽질 원인<31>



1차 페르바 공세


- 마지노선의 좌측 끝, 벨기에-프랑스의 국경선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세당(Sedan)이 독일 A집단군(Army Group A)의 하인츠 구데리안(Heinz Guderian) 중장이 지휘하는 제 19 기갑군단에 의해 구멍이 퐁하고 뚫리던 그 순간까지도 겡블루의 프랑스 기병군단은 굳건히 독일군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 이 지역의 공세를 책임진 독일 제 16 기갑군단장 에리히 회프너(Erich Hoepner) 중장은 제 19 기갑군단에 의한 세당 지역 돌파 소식을 들었고,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자기 책임의 전역 상황에 짜증이 나는 가운데, 더욱 가멸찬 노력(?)으로 돌파구를 뚫어 구데리안과 합류하라며 직속상관인 제 6 군 사령관 폰 라이헤나우(Walther von Reichenau) 원수까지 볶아대기 시작하자 뚜껑이 홀라당 열렸다.


구데리안이 저럴 동안 니는 뭐하고 자빠져있노? 성질 돋구는 폰 라이헤나우..


- 1940년 5월 14일 밤, 마침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그는 기갑사단 지원을 위해 2개 보병사단의 합류시간인 하루를 더 기다리지 않고, 견고한 프랑스군 방어선에 보병사단의 보강을 배제한 채 포병과 공중 지원만으로 전차부대를 프랑스 방어선에 던져 넣기로 결정했다.
- 이는 직속상관의 닦달과 적이 더 잘 준비되기 전에 공격하도록 장려한 독일군 교리에 따른 공격이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킨 그는, 여기에 더해 제 6 군 정보부대마저 연합군이 후퇴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를 통과한 독일군 선두 전차부대가 이미 겡블루 서쪽에 도달했다는 미확인 정보를 보내옴에 따라 22시 45분, 다음 날인 5월 15일 08시에 공격을 재개하라는 명령을 제 3 기갑사단과 제 4 기갑사단에게 하달했다(하지만 저 정보는 순전히 쌩뻥카였다..-_-;;)


거 되게 볶아대네..나도 한다면 한다 이기얏! 제 16 기갑군단장 에리히 회프너..


- 이 공격의 최우선 목표는 겡블루의 프랑스군 방어선을 뚫고 철로망이 교차하는 요충지인 틸리(Tilly)를 장악하는 것이었고, 가능한 모든 포병 부대와 공군의 제 8 비행군단(Fliegerkorps)의 지원 하에 6km 전방에 위치한 에르나쥬(Ernage)를 2개 기갑사단으로 양쪽에서 공격하며, 공병대에게는 진격이 중단되지 않도록 연합군이 남긴 교량과 도로를 수리하는 임무가 맡겨졌다.


5월 12일부터 14일까지의 전선의 변화..


- 회프너 중장의 명령을 받은 독일 제 4 기갑사단장 요한 스테베(Johann Stever) 소장은 겡블루에서 에르나주에 이르는 전선에 3개 기갑 대대를 배치하였고 측면 방어를 위해 제 4 보병여단을 준비시켰다.
- 독일 공군의 공중 지원 외에도 포병 연대는 프랑스 방어선에 30분간의 사전 포격을 가한 후 연막탄으로 적의 시야를 가릴 예정이었고 그 직후 그의 전차 대대가 전진함과 동시에 88mm 대공포가 숨겨진 프랑스 대전차 벙커들을 무력화시킬 참이었다(그러나..그들이 예상한 지점에는 프랑스 군의 대전차 벙커 따윈 있지도 않았다는..)

- 동반한 보병들이 철도선을 건너는 순간 조명탄을 발사하면 이 신호에 따라 제 5 전차여단이 수비태세를 풀고 보병들과 함께 니베유(Nivelles) 방향으로 프랑스군 방어선을 돌파할 예정이었다.


88mm로 대전차 포대를 깬다! 흐음..제 4 기갑사단장 요한 스테베(우측)


- 한편, 독일 제 3 기갑 사단장 호르스트 슈툼프(Horst Stumpff) 소장의 계획은 스테베 소장의 계획에 비한다면 확실히 구체적이지 못했는데 그는 보병을 지원하기 위한 소수의 전차들만을 공격에 투입하기로 결정했고 공격 제 1 파는 스투카(Stuka)와 포병의 지원 하에 돌입하며 보병은 전차 앞에 배치되었다.
- 그의 첫 번째 목적은 샤스트르(Chastre)와 누아르몽(Noirmont)을 연결하는 라인 서쪽에 있는 두 개의 언덕을 점령하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전차들은 프랑스군 전차에 대적하거나 돌파구를 뚫기 위한 예비대로 돌려졌다.


우린 전차는 아끼고 보병 닥돌로..흐흐..제 3 기갑 사단장 호르스트 슈툼프..


- 마침내 5월 15일 아침, 회프너의 제 16 기갑군단은 동원 가능한 모든 전력을 짜내어 공세에 나섰다.


- 계획된 독일 공군 스투카(Stuka)의 급강하 폭격과 독일 포병의 사전 포격이 07시 30분부터 시작되었고 정확히 30분 후인 08시, 제 4 기갑사단의 전차들과 보병들이 프랑스군의 포격 방해 없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 마침내 08시 10분에 보병들이 철로를 건넜음을 알리는 백색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08시 20분, 침묵하고 있던 프랑스군 대전차포가 돌입하는 독일 전차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하자 독일군의 공세는 즉각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겡블루를 향해 전진하는 독일 제 4 기갑사단..꾸역꾸역 나갈 땐 좋았는데..


- 독일군 공세는 주로 지형이 전차 사용에 더 유리한 프랑스 제 1 경기계화사단(1e DLM) 지역에 집중되었고, 뷔제(Beuzet) 인근의 프랑스 제 15 보병사단(DIM.. division d'infanterie) 제 4 보병연대를 공격한 독일 전차들은 프랑스군의 47mm 대전차포에 의해 구멍이 숭숭 뚫리며 허무하게 주저앉았다.
- 당시 독일 제 16 기갑군단이 프랑스 침공 당시 보유한 618대의 전차 중 당시 기준으로도 허접한 I호 전차 252대는 아예 논외로 치더라도, 234대의 II호 전차 대부분이 장갑을 새로운 기준인 30mm로 변경시키지 못했고, 결국 프랑스의 21구경 37mm 대전차포에게 마저 간단하게 관통되는 수준이었다(III호 전차와 IV호 전차는 몽땅 합쳐봐야 달랑 132대..)


5월 15일, 에르나주로 돌입하는 독일군 2호 전차..탈탈 털린다..

  
- 당시 프랑스 군의 기계화 보병연대는 3개 기계화 보병대대가 소속되어 있었으며, 제 1 기병 군단의 보병 전력은 6개 보병 대대였고, 이들은 대전차포를 소수 장비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1개 사단마다 25mm 대전차포 12문, 47mm SA37 대전차포 8문 및 25mm 대공포 6문이 전부였다. 
- 프랑스 기병 군단은 단 2개의 75mm 야전 포병연대만이 군단 직할 부대로 소속되어 있었고, 그 중 1개 포병연대만이 25mm 대전차포 12문을 장비하고 있었을 만큼 빈약한 전력이었지만 이런 허접한 전력에게 마저 독일 전차사단은 피X을 싸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프랑스 군이 장비한 47mm APX 대전차포..감당이 안 된다..

 
- 09시 30분이 되자 독일 제 36 전차연대(36th Panzer Regiment)가 프랑스군의 대전차포에 의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제 35 전차연대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09시 45분, 엄청난 손실을 입고 제자리에서 빌빌거리게 되었다.
- 이들에게 제 5 전차여단 사령부가 무전으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공격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attack hopeless)”라는 회신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오전 10시, 제 12 보병연대의 휘하 대대들이 겡블루에 위치한 철로까지 진출하였지만, 더 이상의 전진은 급속도로 느려졌으며 수많은 손실이 발생, 결국 오전 11시, 보병에 의한 공세도 중단되었다(이후 무선 연락망마저 끊어졌고 전차들이 밀려나면서 이들도 차례차례 격퇴된다는..)


크흑~~ 방어선 돌파의 주역이라고 만들었는데..안습..ㅠ.ㅠ


- 훗날 독일 제 3 군 사령관이 되는 제 5 기갑 여단장 헤르만 브라이트(Hermann Breith) 대령은 당시 공격의 선봉을 맡은 제 35 전차연대와 함께 지휘전차에서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 그의 회고에 따르면 프랑스군의 반격이 시작되고 전차들이 맥없이 주저앉기 시작하자 오죽하면 그는 휘하 장교들 중 일부에게 자신의 전차를 벗어나 보병들을 지휘해서 프랑스군의 대전차 포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전차를 버리고 대전차포를 공격하란 명령을 내린 헤르만 브라이트 대령..


- 그러나 이런 명령도 헛되긴 마찬가지여서 방어선에 프랑스 증원대가 도착하고 대전차포가 추가되자 완전히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져버렸으며, 브라이트의 지휘 차량은 첫 번째 피격에서는 관통되지 않았지만 두 번째 피격에선 완전히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브라이트의 회고에 따르면 “푸른빛이 우리 차량을 벼락같이 횡단했다”고.. 오메~~깜짝이야..)
- 브라이트 대령은 이 피격으로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승무원들도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남겨진 독일 전차들은 차례로 타격을 받으며 불타올랐으며 결국 뿔뿔이 흩어져 피난처를 찾는데 집중해야만 했다.


구멍 슝숭..이 꼬라지인데..지휘 전차 따위야..


- 당시 제 35 전차연대 제 4 전차 중대장이었던 폰 융켄펠트(von Jungenfeld) 대위는 속수무책으로 퍼져나가는 부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그가 헬 게이트를 뚫고 에르나쥬의 철도선에 도달했을 때엔 이미 중대의 모든 대형 차량이 파괴되었으며, 연대장 하인리히 에베르바흐(Heinrich Eberbach) 중령으로부터 모든 전차의 발이 묶였다는 무전 연락을 받았다.
- 에베르바흐 중령은 그의 부하들에게 “우리 전차들은 장애물 앞에 발이 묶였으며 프랑스군의 전방위 사격은 우리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따라서 더 이상 진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진전은 불가능하다..제 35 전차 연대장 하인리히 에베르바흐..


- 독일 전차들이 속수무책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더 이상 전차의 엄호를 받기가 불가능하게 된 독일 제 12 보병연대도 진격 명령에 위배되는 무단 철수를 단행했고, 사령부에서는 그들의 퇴각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으며, 제 36 전차연대가 프랑스 ​​제 15 보병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론찌(Lonzee) 인근의 철도 제방을 이용한 공격 시도도 프랑스군의 대응 직후에 가루가 되었다.


- 독일 제 4 기갑사단이 이렇게 탈탈 털리며 피X을 싸는 사이 09시 15분, 제 3 기갑사단의 보병부대들이 페르바(Perbais) 점령을 목표로 전진하기 시작했지만, 이들 또한 제 4 기갑사단과 마찬가지 상황에 빠지게 된다.
- 제 3 기갑사단은 주력인 제 29 전차여단을 예비대로 후방에 두었기 때문에 이들의 전투는 제 4 기갑사단과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전차없는 공세를 계획한 기갑사단..제 3 기갑사단..


- 5월 15일 아침, 제 3 보병연대 제 3 대대는 에르나주 북동쪽에 있었지만, 에르나주 북쪽과 북서쪽에 각각 위치했던 제 1 대대와 제 2 대대가 공격을 위해 야간에 북쪽으로 너무 멀리 이동하며 부대 간의 격차가 벌어졌고, 결국 독일의 두 기갑 사단 사이엔 1~2km 정도의 공백이 생겼다.
- 따라서 제 3 기갑사단은 의도한 것과는 달리 페르바(Perbais)에서 프랑스 제 1 보병사단 제 110 보병연대와 더 많은 교전을 벌이게 되었고 이날 아침, 독일 제 3 보병연대 1대대가 마을 북쪽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자 프랑스군의 사격으로 바로 전열이 무너졌다.
- 08시, 더 많은 항공 지원과 포병의 지원 포격이 끝난 직후, 제 2 대대가 계획에 따라 전진했지만 이들도 프랑스 방어선에 도달하자마자 떡이 되었고 결국 독일 보병에 의한 공격은 차례대로 실패한 셈이 되었다.


3,4 기갑 사단의 공격 방향..3 기갑사단이 너무 북쪽으로 우회했다..그래서 갭이..


- 일이 이따우 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회프너의 제 16 기갑군단 사령부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실패의 책임을 놓고 싸움박질이 시작되었고, 일부 참모들은 제 4 기갑사단의 전차들이 대전차 장애물이 충분히 제거되기 전에 성급하게 돌입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벌어졌다고 비판했으며, 프랑스계 군단 참모장 발터 샤를 드 볼리외(Walter Chales de Beaulieu) 소장은 제 3 기갑사단이 전차를 남겨두고 보병만으로 공격에 나선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질을 해댔다(뭐.. 이것들도 별 수 없다는..이래서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는 독일의 전격전에도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다는 거..)


실패를 놓고 지네끼리 격론이..중앙이 브라이트, 우측이 샤를 드 볼리외..

  
- 독일군이 사전에 계획한 Ju-87 슈투카의 급강하 폭격과 포병의 사전 포격도 프랑스군 방어선을 전혀 침묵시키지 못했는데 당시 그들이 가지고 있던 프랑스군 포대에 관한 위치 정보는 대부분이 실제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고, 관측을 위해 파견한 달랑 1기의 정찰기는 프랑스 전투기가 나타나자 꽁지를 뺄 수밖에 없었다.
- 10시 30분에 이르면 이제 후방에 위치한 독일군의 중포 대대(heavy artillery battalion) 마저 프랑스군의 반격에 노출되었고 11시 18분, 그들의 접근 경로와 예상 위치에 날아든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제 16 기갑군단 사령부는 아군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투카의 정밀 급강하 폭격도 부정확한 정보에는 그저 헛방일 뿐...


- 당시 전선에 파견되어있던 독일의 한 종군기자는 이 공세에서 단 1개 대대만이 목표 지점인 철도선에 도달했고, 이들은 곧바로 프랑스군 전차와 보병의 역습에 직면했으며, 독일군 대전차포 대원 중 일부는 프랑스군 전차에 사격을 해보지도 않고 장비를 유기하고는 도주했다고 기록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www.ami1rc.org/his151.htm
https://www.worldwarphotos.info/gallery/germany/artillery/flak-88/
https://forum.axishistory.com/viewtopic.php?t=230024
http://www.fotolibra.com/gallery/1255301/
https://2eguerremondiale.fr/evenements/front_ouest/bataille_de_france/invasion_de_la_belgique
http://www.gembloux-autrement.be/news/il-y-a-75-ans-la-bataille-de-gembloux-14-et-15-mai-1940/
https://ww2aircraft.net/forum/threads/best-tank-gun-for-year.41444/

오늘은 제가 1등!! 캬캬~~ 쿨럭~~ -_-;;;

중단 기간이 오래되었으나 대충 이어 붙여서 보시길..
그리고..

대만 시리즈는 제 부주의로 자료들을 날려먹는 바람에 다시 준비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해가 바뀔 판에 광복절 타령 하는 것도 그렇고..
아예 내년 광복절로 미룰까 생각 중입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_-;;
아차, 놓쳤네,

프랑스 군도 상당히 분전한 부분이 있었다는게 놀랍네요.
포스팅 감사합니다. (^-^)b
찾아보면 꽤나 있습니다..
덩케르크 외곽 방어를 맡았던 프랑스 군의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죠..
아~ 얼마만의 돌아온 포스팅인가요^^
감격의 눈물이 ㅜ.ㅜ

전격전의 신화가....
네. 그냥 신화네요
이때 이후 북아프리카에서는 롬멜이 반짝했고 러시아에서는 고군분투

회프너가 이때 용케도 짤리지 않는군요
저땐 연전연승의 축제 분위기였던지라..
프랑스 작전이 끝나고 논공행상 과정에서 독일군 원수들이 무더기로 탄생하는 그런 분위기였으니..
긴급 태클입니다. 음, 일과시간에 땡땡이로 이러는 거 들키면 안되는데...... 하여튼, 전선 상황을 서술하면서 "오른쪽, 왼쪽" 이라 표현하는 것은 부정확하니 "북쪽, 동쪽"과 같은 식으로 바꿔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수 주제에 별 생각을 다 해봤습니다. 잘못 태클하면 레드카드 받는데 이래도 되나 몰러?
알겠습니다!
앞으로 유념하겠습니다..

레드카드는 무슨..
일단 옐로카드 살짝..ㅋㅋ
영어식 표기로 지명을 찾아보며 읽어 가는데 ,,,,
구글의 한글 표현 지명과 발음 차이가 있군요 ,,,
늘 ,,, 감사히 봅니다 ... 추운날 건강 조심하세요 ,,,
저도 많이 신경쓰이는 부분인데..가급적 자세히 알아보고 표기하겠습니다..
틀린 부분은 바로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차 대전초,연합군 전차부대의 삽질원인"
연재를 시작한게 벌써 작년 4월 26일 이네요!

봉달이 씨리즈와 함께한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앞으로도 많은 부탁합니다!!!
흑~~ 너무 질질 끌었죠?
빨리빨리 정리하겠습니다..-_-;;
폰 라이헤나우가 러시아에서 급사 하지 않고 6군 지휘를 계속 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적어도 파울루스와 같은 비참한 패배는 당하지 않았을 지도..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제 생각엔 폰 라이헤나우라도 히틀러의 "옥쇄"명령을 거부하진 못했을 듯 합니다..
또한 거부했더래도 결과적으로 제 6 군의 파멸을 막을 수는 없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