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 전차의 삽질 원인

봉달이 2017. 12. 19. 15:24

2차 대전 초, 연합군 전차부대의 삽질 원인<32>



독일 전차부대의 패퇴와 모로코군의 분전


- 독일 제 16 기갑군단장 에리히 회프너 중장에게 있어 1940년 5월 15일에 감행한 공세는 거의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 보병의 대대적인 보강 없이 실시된 공세는 프랑스군 방어선과 접촉하자마자 녹아내렸고 특히 “전격전의 신화”와는 전혀 걸맞지 않게 양철 장갑의 I호, II호 전차들은 프랑스군의 대전차포에 속절없이 터져나갔다(어떤 경우엔 기관총에도..흑~ ㅠ.ㅠ) 


이거 소문과는 다르쟈나? 기관총에 관통당한 4호 전차의 포탑..


- 그러나 프랑스 전역 전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공권은 완전히 독일군의 손에 있었고, 비록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프랑스 방어선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히진 못했으나 그들의 노력은 방어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 하늘을 가득 메운 독일 루프트바페의 항공기에 대항하여 프랑스 공군(Armée de l'Air)은 달랑 2개 전투기 중대만을 배치했고, 프랑스 제 1 군과 제 4 군단이 보낸 소수의 정찰기들은 전투 지역에 접근하자마자 독일의 전투기와 대공포에 의해 나가 떨어졌다.


이곳이라고 별 다를 건 없어서 독일 공군이 완전히 제공권을 장악했다..

 
- 이날 새벽, 프랑스 제 4 군단은 지상 정찰대로부터 약 300대의 독일 전차가 방어선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적의 공격이 06시에 시작되어 08시부터는 방어선 전면에 슈투카의 폭격을 받고 있다고 제 1 군 사령부에 알렸다.
- 그 직후, 독일군의 일부가 제 2 모로코 연대(2nd Moroccan Regiment)가 방어하던 철길을 넘었고, 제 1 보병사단의 방어구역인 페르바(Perbais)와 샤스트르(Chastre)가 함락위기에 몰려 군단의 북쪽 측면을 위협받고 있다는 보고도 연이어 도착했다.


프랑스 방어선의 변화..5월 15일의 독일 공세 당시 방어선은 제일 좌측..X 표시선..


- 한편, 프랑스 제 4 군단장 앙리 에이메(Henri Aymes) 중장은 각 사단에 보병을 지원하기 위한 1개 전차 대대를 각각 배치하고 예비 보병 대대들도 투입할 것을 즉각 명령했고 페르바(Perbais)의 심각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제 3 경기계화 사단(DLM)의 전차 여단으로 하여금 독일 전차부대에 대한 즉각적인 반격을 원했다.
- 하지만 골 때리게도 제 3 경기계화 사단장 피에르 드 라 폰트(Pierre Jules André Marie de La Font) 소장은 이미 제 3 군단장 드 라 로렌시에(de La Laurencie) 중장이 에이메(Aymes) 중장에게 알리지 않고 그의 전차부대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이게 당시 프랑스군의 고질적인 문제..실질적인 전력은 한줌에 불과한데(2개 경기계화 사단과 4개 보병사단..) 옥상옥 조직은 3개 군단, 1개 군..이러니 서로 뒤엉켜 개판오분전이 된다는..)


이노무 군대는 어케된 게 전력은 얼마 없는데 대가리 꼰대들은 바글바글..


- 한편, 주방어선인 철도를 속절없이 돌파당했다고 알려진 에르나주(Ernage)의 제 1 모로코 사단(1st Moroccan Infantry Division)은 사실과는 달리 독일 제 3 기갑사단의 공격을 끈질기게 방어하고 있었고 제 7 모로코 연대는 페르바에서 격렬한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 1939년 10월, 3개 장거리 정찰연대를 모체로 창설된 제 1 모로코 사단은 그 즉시 프랑스 육군의 엘리트 부대 중 하나가되었다.
- 10개 연대로 구성된 모든 모로코 보병 연대는 1939년 가을까지 프랑스에 배치되었고 제 1, 제 2 및 제 7 연대는 제 1 모로코 사단 소속으로, 다른 7개 연대는 7개의 각기 다른 사단(4개 북아프리카 보병사단과 3개 프랑스 사단..)에 분산 배치되었다.


 전선에 배치되는 제 1 모로코 사단 병사들..끌고가는게 양?


- 프랑스군은 법적으로 모든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현지인 병사들을 징집할 수 있었지만(실제로 그렇게 했다..) 모로코에서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프랑스의 보호령(French protectorate)인 모로코는 실제 권한은 없었지만 여전히 국가의 상징적 원수인 술탄(Sultan)과 법령을 가지고 있어서 자원자만 병사로 모집할 수 있었고 법적으로도 모로코 연대는 술탄 군대의 연장으로 간주되었다.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에서도 패튼이 술탄과 함께 얘네들 분열 구경하는 장면이..


- 대부분의 자원 신병들은 시골 출신이었으며 이슬람교도인 이들은 겉으로는 프랑스 군에서 배급하는 포도주를 거부했지만, 실제로는 행복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이들 술에 맞들인 일부가 모로코 청년들의 자원입대를 주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같이 죽자~~ 뭐 그런 거..)
- 4년간의 복무기간을 조건으로 이들은 입대했고 이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은 대부분 프랑스 인이었다.


전원 자원자로 구성된 모로코 식민지 병사들..사진은 1915년..


- 그러나 1918년, 모로코에 설립된 메크네스 군사학교(Meknes Military School)를 통해 모로코 출신 장교들이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상당수의 초급장교들이 하급단위 부대의 지휘관이 되었고 이런 점들이 강한 단결력과 견고한 사기로 사단을 결합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그래봐야..)
- 또한 1940년 2월, 모로코 보호청 토착민 국장이었던 알베르 멜리어(Albert Raymond Mellier) 소장이 새로운 사단장이 되면서 많은 모로코 출신 장교들과 병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유창한 아랍어를 구사하는 그는 정면에서 자신의 사단을 이끌었다.


군사학교가 생기며 현지인 장교들이 배출되었지만..그래봐야 모로코판 만주 군관학교..

 
- 1940년 5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제 1 모로코 사단은 프랑스 제 1 군에 속한 제 4 군단의 일부가 되어 벨기에로 보내졌고 이들은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명성을 이어받은 전통의 사단으로 주로 프랑스인 예비군을 보충한 모로코 정규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예를 들어, 제 2 모로코 연대는 2,357명의 병력으로 925명은 프랑스인과 1,432명의 모로코인들로 구성되었으며 간부들은 주로 프랑스군 예비역들이었고 일부 모로코인들은 초급장교로 승진한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장교들은 프랑스인이었으며 또한 대부분이 예비군이었다.
- 앞서 밝힌 바대로 멜리어 소장은 2월 말부터 사단장이 되었는데 그는 매우 활동적이며 모로코 보호청의 요직을 거친 관계로 현지인에 대한 이해가 깊고 특히 아랍어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 그러나 프랑스 정규군에 비해 장비나 보급 면에 있어 후달리는 식민지군 특유의 전력 부족 현상은 어쩔 수가 없어서, 특히 편제상 48문을 보유해야 할 27mm 대전차포는 달랑 25문만을 보유했고, 휘하 연대에는 소수의 대공포가 있었지만 사단 직할 대공포 대대는 아예 없었으며 수송력에 있어서도 프랑스 정규군에 비해 많은 부분이 부족했다.


허접 장비로 무장한 식민지 부대..당시 그들의 대전차포를 촬영한 희귀 사진..

  
- 에르나주에서 당일 벌어진 전투 당시, 모로코 사단의 2개 연대는 통합된 지휘 체계로 운영되었으나 제 2 모로코 연대는 노출된 지형에 위치하여 있었던 관계로 최전선에 있던 7개 소대가 모두 후퇴하지 않고 위치를 지켰으나 오후 12시 경, 결국 모두 분쇄되고 말았다.
- 겡블루(Gembloux)에 있던 제 1 모로코 연대는 독일군의 폭격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며 결국 철도를 따라서 도시 서쪽의 시가지로 밀려났지만 끝까지 도시를 지켜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당시 이 지역 프랑스 방어선의 부대 배치도..

 
- 이 시점까지 제 1 모로코 사단은 큰 타격을 입고 있었는데 식민지 병력들에게 있어 중요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모로코인 장교들의 손실이 특히 컸다.
- 제 2 모로코 연대 제 2 대대는 철도를 따라 2개 중대가 방어전을 수행했는데, 30대의 전차와 20기의 항공기가 지원하는 독일군 대대병력에 의한 공세에 제 2 중대를 지휘하던 모로코 출신 중대장이 전사하고 후임으로 투입된 장교마저 중상을 입었으며 결국 제 2 대대의 2명의 중대장이 모두 전사한 13시 30분경, 방어선은 함락되었다.


- 제 7 모로코 연대 제 1 대대는 에르나주에 있는 철도선을 따라 2개 중대가 포진해 있었고 마을 남쪽에 있는 제 1 중대는 06시경 독일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고 북쪽의 제 2 중대는 독일 제 3 기갑 사단의 전차와 보병의 공격에 더해 대대적인 포격에 난타 당하고 있었다.


겡블루 방어선에서 전사한 모로코 병사들의 묘지..


- 마침내 대대장은 계획된 철수 노선을 따라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들은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 제 2 모로코 연대 제 2 대대 프랑스인 감독장교 고바드(Goubard) 중위의 목격담에 따르면, 당시 독일 공군 슈투카의 급강하 공습은 초기에 모로코군 병사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심어주었지만 곧바로 그들은 이에 대한 대처법을 습득, 실제 공격을 받았을 때만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지며 이를 회피하는 법을 배웠고 이후로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였다고 되어있다.


여전히 독일 공군의 슈투카들이 맹위를 떨쳤지만..대충 방법을 알았다, 이기얏~!!

 
- 이때까지 프랑스군의 대전차 방어는 화력이 부족했음과 동시에 속도마저도 느렸지만 오히려 이런 점들이 장점이 되어 독일 전차 중 일부가 단독으로 시가지에 돌입하도록 유도하는 작용을 하였다.
- 이렇게 보병의 지원 없이 시가지로 들어선 독일 전차들은 모로코군 보병들의 근접 공격에 속수무책이 되어 7대의 전차가 각개격파 되었고 이웃한 프랑스군 제 110 연대는 이에 고무되어 독일 제 3 기갑사단의 북쪽 측면을 분쇄하는데 성공했다.


멋도 모르고 시가지에 들어섰다 근접 공격에 데꿀멍~


- 이후 독일군의 공세가 한풀 꺾이는 조짐이 보이자 멜리어 소장은 그의 방어 섹터가 건실하고 서서히 독일군의 추진력이 떨어져간다고 판단하고는 꼬르티-누이몽(Cortil-Noirmont) 인근에 방어선을 치고 있던 제 1 보병사단과 연계, 군단 예비군인 제 7 대 모로코 연대 제 3 대대와 제 3 경기계화 사단의 전차 여단을 사용하여 주요 위치를 회복하기로 결정했다.
- 또한 그는 방어선의 재형성를 위해 사단 예비대를 탈탈 털어 제 2 모로코 연대 제 3 대대와 제 35 전차 대대도 동시에 투입할 것을 결정했다.


이제 반격할 때가 왔다~~!!

 
- 이제 독일 제 16 기갑군단은 이날의 첫 번째 공격이 거의 실패로 돌아갔음을 절감해야 했고 보병 사단들은 프랑스군 방어선에 침투하려는 시도가 완전히 좌절되었음이 역력해졌으며 독일 제 7 보병사단은 리말(Limal)에서, 제 31 보병사단은 와브르(Wavre)에서 새로운 위협인 영국 원정군 부대들이 전투에 투입되기 전에 부대를 재편성해야만 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새로운 위협인 영국 원정군의 가세에 대비해야 했다..


- 이에 따라 독일 제 16 기갑군단장 회프너 중장은 일단 부대를 철수시켜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이날 정오에 새롭게 공격을 가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genealegrand.pagesperso-orange.fr/haspres/haspres_3945.htm
http://www.gembloux-autrement.be/news/il-y-a-75-ans-la-bataille-de-gembloux-14-et-15-mai-1940/
http://www.ordredelaliberation.fr/fr/compagnons/les-unites-militaires/le-2e-regiment-d-infanterie-coloniale
http://aufildesmotsetdelhistoire.unblog.fr/2012/05/17/le-14-mai-1940/

https://www.squadron.com/ICM-1-35-Moroccan-Goumier-Rifles-1943-ICM35565-p/icm35565.htm

또 1빠 ! (--)b
(이거 맨날 봉달님 블로그만 열어 놓고 있는 걸로 사람들 알겠네)

모로칸들도 분전을 했군요. 신기한 내용입니다. 포스팅 감사해요~~~
아니었나요? 전 그런 줄로 알았는데요..캬캬
훗날 강간에 특화된 군대로 소련군과 함께 유명세를 타는 흑역사도 있지요..
독일 이탈리아 여인들의 공공의 적이 된다는..
무쟈게 축하드리오며 아울러 메리 크리스마스하시오며 해피 뉴이어하심으로서 한민족의 기개와 정기를 온세계에 두루두루 떨치시길 바랍니다....ㅎㅎㅎㅎ

근대 메리하고 해피는 견공의 존함이 아니신가?..... 허긴 타조가 멍멍하는 세상이니......
위의 구미에병 사진은 갱블루가 아니라 43년 이후 이태리 전선 사진 같습니다. 철모가 프랑스제 아드리앙 헬멧이 아니라 영국군용 브로디 헬멧이군요.

배우 아드리앙 브로디의 부모가 아들의 이름을 지었을 때 이런 헬멧에 대한 네이밍을 알고 지었을 지 궁금해집니다.
저도 이상했습죠..사진 원본에 그렇게 나와있어서..암튼 제 실수입니다..
아드리안 브로디 작명의 내막은...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닌 걸로..캬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