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전의 요새들

봉달이 2017. 12. 26. 15:31

좋은 부동산이 나왔는데 투자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살면서 가끔 느닷없이 이런 전화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서해안 어디에 좋은 부동산 물건이 나왔는데 투자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대부분 이런 전화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렇게 좋은 물건이면 직접 투자하시지, 왜 나한테?”



하지만 최근 해외 매스컴에서 정말 그 정도의 여윳돈만 있으면 투자하고픈 물건이 나왔다.
그것은 바로 영국령 채널 제도(Channel Islands)의 건지(Guernsey) 섬에 거의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는 독일군 대서양 방벽 벙커!


우옷~~!! 이런 건 땡긴다..


전에도 채널 제도에 관해선 포스팅 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를 참조하시면 되고(http://blog.daum.net/mybrokenwing/315), 1940년 6월 30일, 채널 제도를 점령한 독일 국방군(Wehrmacht)은 기존 영국군의 방어 시스템을 평가, 섬의 방어 시설들이 현대전 상황 하에서 사용하기엔 지극히 구식화되었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당시 독일 국방군 사령부는 1940년 가을에 영국을 침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에 섬에 대한 방어 설비 투자는 그저 낭비 요소가 될 뿐일 것으로 판단, 섬의 요새화는 깔끔하게 포기하였다.


금방 영국 잡아 먹을텐데 방어시설은 무슨..돈만 든다..냠~~

 
하지만 해가 바뀐 1941년이 되자 영국 침공의 가능성은 완전히 나가리가 되었고, 되도 않는 소련 침공으로 인해 이제 서부 전선은 완전히 수비적 성격의 전역으로 변모되었다.
이에 따라 동부 전선에 집중하는 동안 유럽 상륙작전 같은 연합국의 역공세에 대비한 병력과 장비를 줄이기 위한 방어 장치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고, 특히 영불 해협에 위치한 채널 제도는 졸지에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웃~~ 이거 상황이 요상하게 되어 버렸다!!


1941년 6월 2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뜬금없이 국방군 사령부에 채널 제도의 지도를 요청했고 그 즉시 이는 제공되었으며 6월 13일, 그는 이곳의 섬들에 추가적인 병력 배치를 지시하고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이곳의 방어가 부적절하고 전차와 해안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 직후, 나치의 대규모 전문 노가다 조직인 토트 조직(Todt Organization)에게 제도의 큰 섬 각각에 200~250개의 현대적 벙커 건설에 착수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으며, 서부 요새 감독관(Westbefestigungen)은 건설에 대한 감독 책임과 동시에 공사 진행 보고서를 격주마다 힛총통에게 직접 제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채널 제도에 철의 방어선을 건설하랍신닷!!

 
독일군이 대량으로 건설한 벙커의 표준 설계안인 “레겔바우(Regelbau..영어로 standard design)” 시스템은 600가지가 넘는 유형의 각종 벙커와 해안포대에 대한 계획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 각각은 방어 구역에 성격에 맞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진행되어 가면서 디자인도 점차 업데이트되었고, 직각으로 디자인된 출입구, 장갑화 된 공기 흡입구, 30mm 두께의 강철제 문, 환기구, 전화기, 목재로 장식된 7개의 내부 벽 및 비상 출구와 같은 표준화된 기능이 통합되어 있었다.


독일군의 거의 모든 구조물은 레겔바우라 불리는 표준 계획에 따라 건설되었다..


히틀러의 명령이 하달된 직후부터 건지 섬은 방어에 유리한 각 지역을 조사한 후, 건설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건지 섬에 대한 방어 설비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유형으로 나뉘어졌는데 방어 거점인  영구 벙커(Ständige Anlage.. Permanent constructions)는 최소 2m 두께의 콘크리트 천정과 벽으로 건설되었고 중간 거점인 보조 벙커(Verstärkt feldmässig.. Reinforced field-type constructions)는 1m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 천장과 벽, 보조 요새인 야전 벙커(Feldmässige Anlage..Field-type constructions)는 시멘트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 40cm두께의 콘크리트 천장과 목재를 사용하도록 구성되었다.


 
이윽고 1941년 7월, 제 19 요새 공병단(Festungspionierstab.. Fortress Engineer Staff)이 건지 섬에 도착하였고 군수 장관이자 토트 조직의 수장인 프릿츠 토트(Fritz Todt)도 10월 초에 직접 섬을 방문하는 등, 이 섬에 대한 방어시설 건설 계획은 제 3 제국 내에서 초유의 관심사가 되어갔다.


마침내 제널 제도 방어시설 건설계획이 최종 결정되어 히틀러에 제출되었고 1941년 10월 18일, 총통(Fuhrer) 주재 회의에서 확정되어 섬의 "영구적인 요새화"를 14개월 이내에 완료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비록 1942년 2월, 비행기 추락 사고로 토트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대로 건설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알버트 스피어(Albert Speer)가 이를 대신했다.


채널 제도의 건설 예정지를 둘러보는 독일군 관계자..스피어 주도로 건설은 계속되었다..

 
공사의 빠른 완료를 위해 1942년 후반, 독소 전선에서 사로잡힌 수천 명의 소련군 포로들이 섬에 도착했고, 그 외에도 점령당한 폴란드인, 프랑스 남부에 살고 있던 알제리인, 1,018명의 실직한 프랑스인, 약 1,000명의 프랑스 유대인, 그리고 내전에서 패한 후 스페인을 떠난 스페인 공화당원들까지 채널 제도의 대서양 방벽 건설에 동원되었다.
전체적으로 16,000명의 노동자가 채널 제도로 옮겨졌으며 그 중 7,000명이 건지 섬의 방어 시설 공사에 투입되었고, 1944년 1월, 4,500명으로 감소한 노동자 숫자는 전쟁이 끝나는 그날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1941년 10월부터 시작된 건설 공사는 1942년에 이르면 수백 군데의 현장에서 빠르게 진행되었고, 레겔바우(Regelbau)라는 표준화된 계획을 사용하였기에 각 현장은 노동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각 방어 위치는 특정 요구에 맞는 방벽 및 시설물들이 건설되었으며 벽, 바닥 및 천장의 두께는 표준 계획을 최대한 사용하였으나 일부 지역에는 방어 목적이나 지형에 맞게 몇 가지 계획이 수정되었다.
이 구조물들의 공기 정화 시스템, 샤워 시설, 가스 방지 도어, 전화기, 잠망경 및 배선과 같은 요소들은 완전히 표준화되어 있었고, 희대의 망작이 되어버린 프랑스의 마지노선(Maginot Line)에서 무장과 같은 일부 자재가 철거되어 이식되기도 하였다.


희대의 대뻘짓 마지노선에서 많은 설비를 이식받았다..


건지 섬에 건설된 여러 방어시설물들 유명한 것 중 하나로 미루스 포대(Batterie Mirus)가 있는데, 최초 수립된 계획에서 프랑스 북서부의 중요 항구인 생 말로(Saint Malo)를 보호하기 위해 건지 섬에는 38cm 해안포로 구성된 3개의 포대가 필요했지만 당시 독일군의 상황에서 이를 공급할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노르웨이 침공 기간에 나르빅에서 포획한 핀란드의 수송선 니나(SS Nina)에서 제정 러시아 제국 시절, 드레드노트급 전함 알렉산드르 III세(Imperator Aleksandr III)에 장착되어 있던 12인치 함포(Obukhovskii 12"/52 Pattern 1907)를 해안포용으로 핀란드에 수출하기 위해 적재한 것들이 발견되었고, 독일은 이를 활용해 건지 섬의 해안포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마땅한 놈이 없어 러시아 전함에 장착되었던 놈을 갖다 쓰기로..전함 알렉산드르 III세..


포획된 러시아제 함포들은 독일로 보내져 에센(Essen)의 크룹(Krupp) 사에서 육상용 해안포로 재설계되었고, 이후 250kg의 고폭탄을 사용하면 51,000m, 405kg의 철갑탄을 사용하면 32,000m 사정거리를 갖는 해안포로 개조되었다.
완성된 포신과 포탑을 건지 섬까지 옮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어서 전용 열차를 이용, 생 말로(Saint Malo) 항구로 이동된 이 거대 떡대들를 바지선으로 건지 섬으로 이동시킨 다음, 51톤짜리 포신과 18톤의 포탑을 설치 위치로 옮기기 위해 다시 48개의 타이어가 달린 트레일러에 올려야했다.


이거 옮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ㅠ.ㅠ


이 트레일러는 한 문의 포신을 싣고 Sd.Kfz 하프트랙 장갑차 4대를 사용하여 사람의 걷는 속도인 시속 8km로 견인되었으며 해당 위치에 설치된 거대 크레인에 의해 포대에 설치되었다.

1km x 0.75km의 지역에 4문의 해안포대가 건설되었으며 최소 1.54m, 최대 두께 2.7m의 거대 포대를 건설하기위해 콘크리트 믹서가 주야를 불문하고 가동되어 45,000m³의 콘크리트가 쏟아져 내렸다.


독일 측 기록에 따르면 건지 섬에서만 616,000m³의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고 되어있고, 대서양 방벽(Atlantic Wall) 전체에서 사용된 콘크리트의 약 10%가 채널 제도에서 사용되었다.


건지 섬을 방어하기 위한 거대 해안포 설치하기..이 무슨 난리판?


한편, 30.5cm K.14(r)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된 4문의 해안포대는 각각 360도로 회전할 수 있는 장갑된 포탑, 후방에 두 개의 출입구, 사격 시 포대원의 뇌진탕 사고를 줄이기 위해 분리된 전후방 섹션, 탄약 운반용 트랙이 있는 진입로, 탄약고, 환기실, 발전기 실, 연료 저장고, 난방 시설, 포대장 실과 포대원 공간, 화장실 및 세탁 시설과 창고로 구성되어 있었다.
포대의 위장과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대부분의 구조물이 지하에 묻힌 가운데, 노출된 부분 중 1번과 3번 포대는 건물로 보이게 위장되었고, 2번과 4번 포대는 그물과 가짜 나무와 관목으로, 지상에 건설된 3개의 예비탄약 벙커는 창문과 문이 그려져 일반 가옥처럼 위장되었다.


 

미루스 포대의 구조도와 가옥으로 위장된 포탑..


또한 미루스 포대는 관측과 사격 통제를 위해 자체적으로 뷔르츠부르크(Wurzburg) 레이더를 보유한 채널 제도의 유일한 포대였고, 대공 방어를 위해 인접한 수십 문의 20mm 대공포를 제외하고도 섬에 골고루 분산 배치된 88mm Flak 대공포 6문의 지원을 받았으며 3개의 60cm와 2개의 150cm 탐조등은 야간 조명을 제공했다.


이 포대에는 대포 1문 당 72명의 해군소속 포대원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1942년 4월 13일, 완공 이후 첫 번째 시험 발사가 제 2 포대에서 행해졌다.
이 첫 번째 시험 발사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너무 가까이에 근접한 공식 사진사가 발사 충격으로 도랑에 내던져져 뇌진탕을 일으키는 골 때리는 사고도 발생했으며(-_-;;) 이 지역의 민간인들은 이 포들이 발사될 때마다 창문을 열러놓지 않을 경우, 유리 창문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미루스 해안포의 사격 모습..이거 찍다 골로 갈뻔 했다고..


지휘 센터는 풍속, 기압 및 발사 범위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고려한 기계식 컴퓨터를 사용했고 데이터 계측기는 이러한 결과를 계산했으며, 사격 통제실은 24시간 동안 계속 운용하기 위해 18명의 근무자가 교대 근무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경비와 유지비용, 인력이 투입된 이 포대는 실전에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거의 유일한 전과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일, 코탕텡(Cotentin) 반도를 순찰하기 위해 접근한 영국 해군의 소형 어뢰정들을 향해 사격을 가한 일이었다.

이때 한 발의 30.5cm 포탄이 경비정들 인근에 떨어져 2척의 선박에 경미한 피해를 입힌 것이 이 돈 잡아먹는 하마가 달성한 전과의 전부였으며 이후, 연합군 사령부는 위하 함정들에게 이들 포대로부터 안전 거리를 유지하도록 명령했다.


포대를 방어하기 위한 고사포와 지휘 센터..


장거리 화력 투사를 위한 대구경 해안포인 미루스 포대와 같은 거점을 제외하고도 섬의 대부분의 해변에는 진입하는 적의 상륙 선단을 저지하도록 고안된 중소 규모 해안포대들로 빼곡이 둘러쳐져 있었다.


건지 섬에 설치된 독일군의 방어 시설물 배치도..


해안에 건설된 포대들 중 대부분은 프랑스에서 대량으로 획득한 프랑스제 10.5cm K331(f) 포들을 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었고, Type R631과 같은 벙커들은 동축 기관총이 장착된 체코제 Pak 4.7cm 대전차포가 설치되었다.
한편, 채널 제도의 방어를 위해 1940년 11월에 창설된 독일 제 319 보병사단이 채널 제도 방위를 담당했으며, 제 16 기관총 대대(16th Machine Gun Battalion), 제 213 전차대대, 해군과 공군의 병력들이 추가로 보강되었다.


 

프랑스제 10.5cm K331(f) 대전차포를 운용하기 위한 Type R631 벙커..


1944년 9월의 이 지역 독일군 배치 상황을 보면 건지 섬에만 10,980명의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건지 섬의 민간인 수는 23,000명이었으므로 민간인 2명당 1명꼴로 독일군이 주둔한 셈이 되고, 80명 당 1명꼴이었던 프랑스와 비교하면 황당할 만큼 많은 수의 독일군이 주둔한 셈이 된다.
하지만 앞 선 포스트에서 설명하였듯이 히틀러의 대서양 방벽 중 파 드 칼레(Pas-de-Calais)와 함께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우린 이곳은 노르망디 상륙 이후 연합군의 봉쇄 작전을 통해 철저히 고립화되어 전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 중요한 곳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최악의 삽질로 그 운명을 맞았다.


섬 인구 3명 중 1명이 독일군일 정도로 바글거렸지만...쩝~~

 
한펴, 2017년 10월 26일자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dailymail)은 1942년 건지 섬에 지어진 12명의 독일 병사를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벙커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기사 원문 →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5019685/Huge-Nazi-bunker-Guernsey-goes-sale-155-000.html)

기사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12명의 병사를 수용하기 위해 설계된 R622 혹은 R621 쉘터로 생각되는 이 벙커는 2개의 숨겨진 출입구가 있으며 5cm 및 8cm 박격포를 옥상이나 인근에 거치해 사용하던 구조물이다.



기사에 따르면 원래 이 벙커는 공기 정화 시스템, 샤워 시설, 화장실, 가스 방지 문, 전화기, 잠망경 및 비상 탈출구가 설치되어 있었고, 12명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방, 샤워실, 수납장 및 탈출구가 현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벙커와 인근 토지를 합해 8,100 제곱미터 즉 2,450평에 달하는 이 매물은 창문은 없지만 물과 전기가 여전히 공급되며, 건물 내부 벽에는 여전히 “Achtung, Feind hort mit!(조심해, 적들이 듣고 있다!) 같은 전쟁 기간에 쓰여진 독일군의 표어와 가스 공격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적은 인쇄물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부동산 매물로 나온 독일군 벙커의 내부 사진..

  
이 매물에 대해 지역 부동산 중개회사인 스와퍼(Swoffers) 사의 부동산 중개인 스콧 잉그루일(Scott Ingrouill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제 2 차 세계 대전의 일부를 직접 소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현재 주인은 약 10년 동안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재미로 그것을 샀습니다. 이 벙커는 전쟁 직후, 잠시 창고로 사용된 것 외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해안은 당시 기관총 벙커와 해안포 포대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벙커는 순전히 병사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상에 있지만 흙으로 뒤덮여 있어 공중에서 잘 볼 수 없도록 설계되어있죠.

놀라운 공기 순환 시스템이 있고 그 당시에는 정말 진보된 기술이었습니다.



이 매물은 저장 공간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구매자가 이 시설을 숙박 시설이나 휴가 시설로 개조하는 것을 추천 드리며 필요할 경우, 충분히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할 것입니다."


건물과 주변 대지를 합해 2,450평..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궁금한 한 가지.
이 벙커의 가격은 얼마일까?


단돈 155,000 파운드, 우리 돈으로 2억 2,324만원에 모시고 있다고 한다.
혹시 관심이 있으면 문의해 보시길(저는..마음은 굴뚝같지만 그 정도 여유는 없어서..흑~ 슬푸다..ㅠ.ㅠ)


 


참고로 채널 제도는 대서양 방벽의 유적이 가장 잘 보존된 곳 중 하나이므로 혹시 유럽 여행을 계획 중인 밀덕 분들은 시간 되시면 한 번쯤 둘러 볼만한 곳이라 생각된다(자연 풍광도 짱이라고..)


이상, 채널 제도 부동산 협회와 관광 공사의 지원이라곤 쥐꼬리만큼도 받지 않은 봉달이의 유익한 밀덕 투자 안내 코너였습니다.




<사진 출처>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228050/
http://www.livingwiththeenemy.com/fortifications.htm
http://www.amc.af.mil/News/Features/Display/Article/787549/operation-neptune-the-normandy-landings/
http://www.learning-history.com/world-war-ii-fortified-channel-islands/
http://www.bbc.co.uk/news/world-europe-10632543
http://sp.lyellcollection.org/content/362/1/203
http://www.occupationarchive.co.uk/media.details.php?mediaID=683
http://www.nationaltrust.gg/bbcr4-the-reunion-covers-wwii-occupation-of-the-channel-islands/

인터넷 되고 영어 잘하면 가서 살아볼 수도......
용기를 내어 보셔요~~ 캬캬
저 거 내부 인테리어 비용과 자재, 인력을 육지에서 실어와야 하는 비용, 모두 합치면, 수십억밖에 안 들겠네요.
이 참에 제가 한번... 아차, 아직 아파트 대출금도 다 못갚았지.
뭐 뒷산에 묻어두신 제공호 엔진 하나 내다 파시면..
아차, 공소시효 아직 안 지났나요? 캬캬
한국에 있는 J85 곤로는 고물상으로... 상태 다 메롱할걸요???ㅋㅋㅋ
2억이면 서울에서 10여평 빌라값밖에 안되네요 -_-;;
이참에 좁은 빌라 팔아 영국에서의 전원 생활을 꿈꿔 보아요~~ ㅋㅋㅋ
대출 좀 해주세요 ㅎㅎㅎ
흠..차라리 제가..
로또야으~~~~~~
긁어봅시다!!
돈만 많으면야.. ㅋ
공감 ㅋ
판세가 바뀌니 이 동네가 졸지에 백령도+백마고지급으로 승격해서 나바론요새로 둔갑하는구만요. 종전까진 평화의 섬.. 남태평양에 있었다면 반은 아사했을려나요...
아마도 그랬을 듯합니다..
매물 손봐서 오미자나 복분자 와인숙성고 만들고 농장,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고 흑염소방목, 꿩사육하고 살고 싶은디 판로가 없겄지요?
요사이 자꾸 해외귀농하고 싶단 생각이....+_+b
판로가 없으면 자급자족이란 방법이...
해외 귀농보다 국내 귀농을 도모하심이..
뭐 꼭 농사 짓고 살아란 법도 없으니까요..ㅋㅋ
육지에 장보러 갈 때 타는 헬기나, 요트라도 한 대 끼워주면 구매의사 있습니다
은행에서 저한테 대출해줄 생각이 있는지는 아직 안물어봤지만요
그런 걸 끼워 준다면 제가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먼저 구매하겠습니다..
단, 영국이 받아줄지는 아직 안 물어봤지만요..캬캬
던이 없어서 슬푸신것 같은데 술 퍼서 아쉬운 맘을 달래시길...
썰렁해서 죄송합니다... - - ;;
펭귄 펭귄~~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