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 태평양

봉달이 2018. 1. 7. 16:15

과연 일본 본토폭격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가?<2>



1945년 3월, 미군은 군사 목표물이나 군수 공장을 목표로 한 폭격에서 도시 그 자체로 폭격 대상을 확대시키고 있었고 마침내 3월 9일 야간부터 10일 새벽까지 수도 도쿄에 B-29 중폭격기 279기가 1,665톤의 폭탄을 집중 투하하는 대대적인 폭격이 감행되기에 이른다(제 1 차 도쿄 대공습..Operation Meetinghouse)
이 작전에 대한 미군의 전술 작전 임무 보고서에는 이 지역이 “일본의 군수 산업을 주도하는 대기업이 지배, 경영하는 장소”라고 되어있으며, 이에 따라 “대규모 공습 목표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되어있다.


이 지역은 일본의 군수 산업을 주도하는 대기업이 지배하는 지역이다..

 
이 보고서는 곧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의 명언(?)인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란 말과 일맥상통하며, 도쿄 폭격 직전에 민간인에 대한 공습이 아닐까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부하들에게 남긴 아래의 그의 설명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일본의 도시란 이런 식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즉, 가내수공업(home-folks assembly line)이라고 할 수 있다.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나 65호, 63호 너트, 아니면 그 사이에 끼는 모든 개스킷을 만드는 식이다(The Suzuki clan would manufacture bolt 64; the Harunobo family next door might be making nut 64, 65, or 63, or all the gaskets in between.) 그러면 공장에서 나온 키타가와씨가 손수레를 끌고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순서로 부품들을 모아서 가는 거다.”


으흐흐흐..이 아저씨 무서워...ㅠ.ㅠ


다시 말하면 당시 연합군의 도시에 대한 전략 폭격의 최대의 목적은 도시에 분산되어있는 공장에 타격을 주는 것이었고, 이는 직접적인 공장이 목표가 아니라 “공장 규모의 집중된 가내 수공업 지대의 파괴”에 있었으며, 이는 일본 측도 충분히 인정하는 부분이다. 
즉, 당시 일본에는 가내 수공업 수준의 극히 작은 공장이 도시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 소규모 공장에서 생산된 부품을 대규모 공장에서 조립하여 최종적으로 군수 물자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 당시 도시 내에서 운영되던 가내 공장의 모습..


당시 도쿄 인근의 나카지마 비행기 무사시 공장(中島飛行機 武蔵工場), 이외에도 군마현(群馬県)의 나카지마 비행기 오오타 공장(中島飛行機 太田工場), 나고야(名古屋)의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三菱重工 名古屋 航空機製作所)와 엔진 제작소(発動機製作所) 등으로 대표되는 도쿄 인근의 중공업 지대가 입은 직접적인 손상은 소규모 부품 제작 및 집약적 공정의 필수 원천으로 사용된 도쿄 도심의 하청 공장 대부분이 폭격당할 때까지 상당부문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도쿄 산업의 50% 이상이 주거 및 상업 지역에 퍼져있었으므로 이 시기 실시된 폭격은 군수 산업에 투입되고 있던 많은 노동자들을 제거하거나 분산시켰고, 도시 전체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미군의 공습으로 화재가 발생한 나카지마 비행기 무사시 공장..


하지만 이를 인정하면서도 현대 일본에서 주장하는 “무고한 민간인의 살상”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란 것은 바로 폭격이 집중된 지역이 도시의 동쪽 지역이라는 것으로, 이곳은 주로 민간 거주 지역이며 실제 도쿄의 공업 지대는 도쿄만 일대의 조선소와 공업 지대였다는 주장이다.


1945년 3월 도쿄 1차 대공습 시 주요 폭격 지점..

 
실제 미군의 폭격 결과 보고서에도 도쿄 폭격으로 파괴 및 손상을 준 공업 목표로 22곳을 꼽고 있는데 이안에는 츠키지(築地) 시장 및 중앙(中央) 도매 시장, 칸다(神田) 청과 시장, 강동(江東) 시장 등 군수 산업 및 군사적 목표와는 거리가 먼 곳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현대 일본에서는 당시 미군이 도쿄만의 공업 지대를 의도적으로 폭격 목표에서 분리하였고, 도심 중에서도 목조 주택이 특히 밀집해있는 변두리 지역에 집중되고 특화된 공습을 실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만 같은 주요 군수 시설은 놔두고 민간 거주 지역만 골라 때렸다~! 빼애액~~!!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미군이 실제로는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하면서 실상과 동떨어진 일본의 군수 산업 등 대기업이 지배하고 경영하는 장소를 폭격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무차별적인 폭격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진짜 목적은 "민간인 거주 지역의 대량 살상을 도모해 전의를 상실하게 하려는 것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출처: 도설 도쿄 대공습(図説 東京大空襲), 사오토미 가츠모토(早乙女 勝元), 河出書房, 2003년)


그렇다면 그들의 이런 주장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이것들이 선량한 민간인만 골라 학살했다! 이게 이노마들의 주장인데..


일단 이 지점에서 인식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먼저, 일반 시민 거주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습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당시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군부 내에서도 큰 저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43년 8월 27일, 미 육군 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Henry Arnold) 대장은 추후 태평양 전역의 항공전 계획과 관련하여 일본의 도시 산업 지역에 대한 대규모의 지속적인 폭격을 주장하였고, 소이탄 사용에 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이때, 국방 연구원(National Defense Research Committee, NDRC) 원장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는 “소이탄 폭격의 결정은 높은 수준의 인도적 측면을 감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소이탄 폭격의 결정은 반드시 인도적 측면을 감안하여야 한다..버니바 부쉬..


따라서 그들에게는 민간인 거주지를 공격해야만 하는 확실한 이유와 타당성이 필요했고, 그것은 당연히 앞서 설명한 대로 일본에서는 도시 가정에서 군수품의 부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각 가정이 군수 공장의 역할도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를 파괴하는 것이 곧 군수품 공장을 두드리는 것이라는 당위성을 제공했다.
이를 다시 말하면 당시 일본의 후진적인 산업 수준으로 인하여 스스로 불필요한 희생을 불러왔다는 것으로도 연결된다(스스로의 산업 구조적 결함으로 피해를 자초했다는 점도 분명하다는..)


항공 산업의 주요 부품은 도시 안의 가내 수공업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당시 도쿄는 도시 내에 민간인 거주지와 군사적 목표물이 무분별하게 뒤섞여 있던 상황이었고(관동 대지진으로 작살난 이후에 재건했는데도 이 꼬라지..) 이런 무질서한 도시계획은 미약한 산업기반만으로 군국주의 산업국가로 진화한 일본이라는 국가의 거대 도시에서 벌어진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유럽이나 미국 같은 당시 산업 국가들과는 달리 일본은 일정 구역에 대규모 공장들을 세우고 이를 채울 산업설비를 갖출 능력이 없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수공업 따위에 의존하였으므로 결국, 민간 거주 구역과 산업 지역이 마구잡이로 뒤섞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게 평화 시의 현대 일본에겐 소규모 정밀 부품 제조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산업적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여기에 더해, 당시 일본에는 당연히 버스나 자가용, 교외까지 연결되는 전철같이 노동자들이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직장과 주거 공간이 도보로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만 하였다.


일본은 교외에 대규모 공장이 건설되고 대량 운송 수단으로 노동자를 투입하는 열강과는 달랐다

 
따라서 당시 일본의 공업지대는 산업혁명 이후의 유럽처럼 거주지역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거의 한 몸뚱이처럼 얽혀있었으며, 특히 많은 노력과 희생을 기울인 폭격 목표였던 일본의 항공기 생산 공장들이 이런 도심에 위치한 소규모 부품 공장들의 지탱으로 여전히 그 가동을 멈추지 않자, 미군의 입장에선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디가 공장이고 어디가 민간 구역인지..사진은 나카지마 비행기 무사시 공장..


결국 민간 지역에 대한 폭격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일본 도시에 대한 폭격을 주장했던 미 육군 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 대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주변의 반대를 일축시키며 밀어 붙였다.


“전쟁이란 대충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당연히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인자한 인상의 할배가 말했다.."전쟁은 곧 헬이야~~"


하지만 이전에 설명했던 바대로 당시 미군이 민간인의 희생 따윈 감수하고 무조건적으로 도시를 폭격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1943년 2월, 일본 도시의 건축 특성에 적합한 폭격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아놀드 대장은 전략 분석위원회(Committee of Operations Analysts, COA)에 이에 따른 연구 및 검토를 요청하였고 1944년 10월, 이들은 “극동지역의 경제 목표에 대한 추가 분석 보고서(Revised Report of the Committee of Operations Analysts on Economic Targets in the Far East)”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본토를 포함한 태평양 전역에서 첫 번째 폭격 목표로 항공 산업과 관련한 군수 시설로 지정하고 있고, 두 번째 목표로 도시에 산재한 공업 지역, 세 번째 목표가 기뢰의 공중 투하를 통한 통상 항로의 차단으로 되어있다.
아놀드 대장은 이 보고서를 채택했고 실제 미군의 전략 폭격 작전도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당연히 도시 폭격과 민간인의 살상이 최우선 목표는 아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군의 연구 분석 그룹..항공대는 전략 분석위원회(COA)가 주축이었다..

 

이번 포스트의 주제이자 두 번째 목표인 도시에 산재한 공업 지역 폭격과 관련하여, 미 전략 분석위원회는 1944년 9월, 혼슈(本州)의 여섯 도시에 대한 폭격 효과와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정리하여 “일본 6개 도시에 대한 성공적 공격의 경제적 효과(Economic Effects of Successful Area Attacks on Six Japanese Cities)”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도쿄, 요코하마(横浜), 가와사키(川崎), 나고야, 고베(神戸), 오사카(大阪)라는 일본의 6개 대도시 지역에 대한 대규모 폭격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이론적 연구를 수록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 도시들에 대한 공습은 단기간에 완료될 수 있어야 하며, 그 이전에 소도시에 대한 시험 폭격 작전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은 작전에 들어가기 전, 목표 도시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실시했다..

 
하지만 미 합동 참모본부 산하에서 전략 폭격 계획을 수립하던 합동 목표 그룹(Joint Target Group, JTG)은 이 견해를 무시했으며, 이들은 여전히 일본의 항공 산업 지역에 대한 공격은 고폭탄을 이용한 정밀 폭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까지도 유럽 전선의 종결이 급선무였지 태평양 전선은 뒷전이었기에 미 육군 항공대의 대부분은 합동 목표 그룹의 정책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한 도시에 대해 한 번의 폭격으로 대규모 파괴를 불러올 수 있는 전력을 가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정책은 지극히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투덜거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먼저 나치부터 어케 해결해야 되지 않겠니?

 
또한 윗선에서 주장하는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는 타이밍을 계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고, 전략 분석위원회(COA)는 1944년 6월 8일, 만족할 만한 전력을 가질 수 있는 시기는 1945년 3월이 되어서야 가능하다는 계산을 내 놓았다.
미 전략 분석위원회는 합동 목표 그룹이 주장하는 동일한 계획 요소를 사용하여 계산한 결과, 그들이 제안하는 고폭탄은 기대한 효과를 얻기에는 폭탄 무게가 너무 무거웠으며 적절한 단계적 조정을 하기에는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


전력이 다 갖춰지면?? 그게 언젠데요??


이런 이론적 고려 외에도 1945년 초에 이르면 종전을 일찍 불러올 수 있는 프로파간다 상황에도 문제가 발생했는데, 필리핀에서의 승리와 이오지마의 점령을 이용하여 이런 성과물들과 다가오는 패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일본 대중에게 알려 항전의지를 꺾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실제 일본 본토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당시 대다수의 일본 대중들은 대본영에서 내보내는 엉터리 조작과 선동 방송에 세뇌되어 있었고 여전히 전장 상황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는 차단되어 있었으므로 아무런 불안 요소 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황군은 무적군대다! 국민들은 걱정 하덜덜 마시랍~!!


전혀 전쟁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들은 이때도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폭격을 한낱 유희거리로 여겼는데 이는 이 시기 미군의 폭격이 시가지가 아닌, 시 외곽의 군수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정밀 폭격을 가장한 명중률이 형편없는 폭격이었다는데 있었다.
당시 일본 국민들은 심지어 근방 뒷산이나 건물 옥상에 올라가 폭격을 구경하거나, 심지어 이 폭격 구경(?)을 위하여 미군 폭격기가 날아오는 날짜(보통 3일 간격..)까지 헤아려 가며 애타게 기다릴 정도였고, 다른 지방에서 어디가 공습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자기 동네가 아니므로 무심한 투로 “또 폭격인가...”라며 남 일으로 치부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 어디 폭격하는 가보네..강 건너 불구경..ㅠ.ㅠ


따라서 당시 미군의 입장에서 이런 무지한(?) 일본 대중에게 “전쟁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고 이를 각인시켜줄 수단이 반드시 필요했고 또한 이런 목적들 이외에도 주요 도시에 대한 대규모 폭격은 교외에 있는 공장에 대한 정밀 폭격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런 내용들을 통해 아놀드 대장이 얼마나 많이 흔들렸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외곽 공장에 대한 정밀 공격의 실패보다는 그 영향력이 적었을 것임이 확실하고, 어쨌든 이런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그의 사령부는 전면적인 일본의 도시 폭격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무지몽매한 것들에게 불벼락을 내려 전쟁의 실체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전략 분석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1944년 1월 3일의 나고야 폭격과 2월 4일, 고베에 대한 시험 공습의 결과는 확실한 결론보다는 “여러 장단점의 분석 문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놀드 대장의 명확한 대도시 폭격에 대한 지시는 2월 19일에 이루어졌다.

 
여전히 ​​엔진 공장 등에 대한 정밀 폭격이 최우선 순위였지만 선정된 도시 지역에 대한 공격은 조립 공장과 나고야, 오사카, 가와사키보다 먼저 도쿄가 1차 표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당시 미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인 항공기 생산 공장이 이 지역 주변에 밀집되어 있었고, 부품 공장인 소규모 공장들이 도쿄 도심 지역에 몰려 있었으며, 당시 전황에 무지한 일본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키고 선전 효과가 가장 뛰어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지 민간인의 무차별한 살상이 결코 그 목표가 아니었다.


목표는 도쿄..한 방에 끝장낸다..!!


물론, 불필요한 민간인의 사상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고, 미군 측도 이에 따른 공포심 유발과 항전 의지의 약화를 노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그저 무차별적 민간인 공격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전쟁이란 상황 인식의 유무를 떠나 “전략 폭격”이란 전쟁 수단의 기본 개념조차 모르고 따불대는 헛소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 폭격이라는 전략적 시각으로 볼 때, 일본 도시에 대한 폭격은 서로 어떤 식으로 결부되어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s://cs.stanford.edu/people/eroberts/courses/ww2/projects/firebombing/targeting-civilians.htm
https://www.library.pref.nara.jp/event/booklist/W_2007_02/hitosyowH190401.html
http://jfkfacts.org/a-note-on-curtis-lemays-actions-on-nov-22/
http://blog.goo.ne.jp/ryuzou42/e/de12af0cde4c2ab8b21d518b3bcdbf8c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29_target_cities_in_Japan.png

르메이
항상 시거를 물고 눈알을 부릅뜨고 사진을 찍는군요
욕을많이 먹어서 그런지 84세까지살았네요
일단 인상 자체가...
근데 딸래미는 아주 좋아 죽었다고 합니다..
고슴도치도 지 세끼는..캬캬캬
저기 애니메이션 사진은 "반딧불의 묘" 한 장면 같군요.
십여년 전에 그 걸 보고 한동안 우울했었습니다.
꼬마애기와 그 오빠 애가 굶어죽는 이야긴데, 어찌나 끔찍하던지.
그 애니는 보는 내내 우울했습죠..
문제는 그런 비극을 불러온 원인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타당한 모티브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찝찝하긴 했습니다..
진짜 반전은 그 남매 얌전히 자기 이모댁에 붙어 살았으면 생존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이죠.
당시 일본전시가요인'뭐냐 또 공습이냐?' 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근데 현실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youtu.be/ae-1m6ZkZEg
캬캬캬캬캬 이 노래는 첨 봤네요..
역시나..쿨럭~~ ^^
작년 일본 여행갔을 대 NHK에서 동경 대공습 편을 보여주더군요. 딱 봐도 민간인 지역에 엄청 폭탄이 떨어졌다는 식으로 ... 내가 보기엔 지가 먼저 때려놓고는 "내 주먹이 아파요. 사과하세요"라고 우기는 꼴인 것 같습니다.
일본의 논리를 제대로 거덜내 주신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