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의 졸장들

봉달이 2014. 9. 10. 12:38

위대한 작전의 신 구 일본 장교 "츠지 마사노부"입니다..
이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냐면 종전시까지 계급이 고작 영관장교였음에도 장성들도 하지못한 위대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지요..

 


1. 소개

- 이름 츠지 마사노부

- 구 일본군 장교. 최종 계급은 대좌(우리의 대령). 전후 국회의원. 

- 자칭 "작전의 신"(여기서 자칭이 중요)

- 무능함 때문에 미OSS의 비밀요원이라는 썰이 있음

-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무다구치 렌야와 더불어 국립묘지에 안장하자는 헛소리도 나옴.

- 인간 과부제조기이자 의지드립의 선구자이며 간신.

- 인간관계
  끼리끼리 논다고, 도조 히데키는 이놈을 매우 신임.
  치치시마섬 식인사건(미군포로를 처형후 그 인육을 먹음)을 명령한 다치바나 요시오와 당시 인육을 안주삼아 술처먹은 진정한 한니발 렉터박사 마토바 스에이사무하고는 호형호제하던 사이.
  그리고 미얀마의 도살자 기무라 헤이타로와도 친했음.
 
2.활약상

 상식을 무시한 채 근성을 강조 "일본군의 정신력은 대단하고, 적군은 나약한 정신력을 가졌기에 백전백승한다(?)라는 주장을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부르짖음.
 물론 이와 같은 정신승리와 근성론은 당시 일본군의 행동양식이었지만 츠지 마사노부가 그 시초.
 현대전에 있어 미친짓의 대명사인 "반자이 어택"의 이론적 토대를 다진, 그러므로 일본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기에 근성론 = 츠지 마사노부로 통함.
 
 1) 노몬한 전투

- 당시 관동군 작전참모였던 츠지 마사노부의 작전계획은 심플.. 근성으로 돌격한다!(그것도 허허벌판에서..1차대전시의 기관총앞 닥치고 돌격으로 보면 되겠음. 이때는 그보다 더한 소련군 탱크앞으로...)

- 일선 지휘관들의 이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지맘대로 결재도장 찍고 작전을 실행.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대참패(당시 소련군 지휘관은 그 유명한 게오르기 쥬코프)

- 결국 일선부대 연대장이 줄줄이 할복 자살. 일부 일본군 병사들(부사관과 장교 포함)은 처벌이 두려워 탈영, 만주 일대의 마적단이 되기도 함. 

 

                 노몬한 전투에서 노획한 일본군 전차를 살펴보는 소련군과 일본군 포로들

- 그런데, 츠지 마사노부는 패전을 보고하면서 "소관의 작전계획은 완벽했으나 일선 지휘관들의 졸렬한 지휘와 감투정신의 부재로 패전."이라고 대본영에 보고.(역시 멋진 놈!!!)


 2) 싱가포르 전투
- 여기서 그는 작전참모가 최전선에서 전차에 타고 근성의 돌격을 몸소 보여줌(진짜 근성은 있구나싶지만 사실 약한 적앞에서만 그렇게 함.이후 한번도 그런적 없음.이때부터 스스로를 작전의 신이라 명명) 

                  싱가포르 함락 당시 일본군에 항복하는 영국군

-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은 시내의 화교 20만 명 중 항일분자로 판단된 6,000여 명을 대량 처형. 전후 관련자로 기소된 장교들은 모두 싱가포르 함락 직후 츠지 마사노부가 들이닥쳐 처형을 독촉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잠수)

- 이후 츠지 대신 당시 총사령관이던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이 사건 및 이후 벌어진 필리핀 학살 등의 책임을 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감.

- 어찌 되었든, 싱가포르에서 학살을 자행한 츠지 마사노부는 말레이 전역이 종료된 1942년 3월에 동경으로 돌아가서 승진함.


3) 콰달카날 전투

- 악화되어가던 전황 파악을 위하여 대본영은 작전의 신(!)인 츠지 마사노부를 과달카날로 파견.

- 가와구치 소장의 필사적인 2차 공격마저도 압도적인 미군의 화력에 밀려 패배한 상태에서 "근성으로 험난한 밀림을 빠르게 돌파한 뒤 대원 모두 착검한 채 야습한다."란 근성론을 기반으로 한 작전계획을 세움.

- 이전의 공격에서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을 경험한 가와구치 소장은 "이런 정신나간 계획은 전멸을 불러올 뿐이다!"라며 좀더 합리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

- 하지만 츠지 마사노부는 "미군은 비행장에서 테니스나 치면서 놀고 있고, 가와구치 소장은 감투정신이 부족하여 소극적인 지휘를 한다."라고 대본영에 보고, 가와구치 소장은 본국으로 송환.

- 이후, 츠지 마사노부의 지휘로 이루어진 밤의 반자이 어택은 당연히 전멸로 끝남.

- 그런데 싱가포르에서와는 다르게 뒤에서 돌격!을 외치던 츠지 마사노부는 최전선에서 굶어 죽는 병사들을 보자 바로 대본영에 철수를 주장.

- 이게 무슨 근성없는 소린가 하지만, 츠지 마사노부는 이때 과달카날에 있었음. 즉 자기가 살아남으려면 후퇴해야 한다는 점을 귀신같이 깨달았던 것.

- 이후 과달카날 전투는 완전한 참패로 끝나지만, 그 와중에 그는 말라리아에 감염(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음)되어 본국으로 후송.


4) 전쟁 말기

- 중국과 버마전역에서 근무

- 좀 조용한 듯 했으나 버마 미치나전선에서 구원군을 보내준다는 헛소리로 일본군수비대에게 옥쇄를 종용

- 이후 미치나 수비대를 지휘한 미즈카미 겐조 소장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수비대를 철수시킨 뒤 자결.(대좌가 장성을 죽음으로 몰고감..역시..)

- 사실을 안 츠지 마사노부는 철수해온 미즈카미의 부관을 미친 듯이 구타.


5) 패전 이후

- 방콕에서 패전을 맞은 뒤 자결은 커녕"아시아 속에서 민족의 재건을 위해서는 살아 남아 아시아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승려로 변장 잠적. 

           승려로 변장하고 숨어다니던 시절의 츠지 마사노부...근성론은 다 어디 팔아 먹고.. 

- 중국으로 건너간 츠지 마사노부를 이상하게도 연합국 소속인 국민당 정부가 숨겨줌(이래서 미OSS 비밀요원이라는 썰이...)

- 1948년 상하이를 거쳐서 일본으로 귀국, 다시 잠적. 이후 전우회나 사찰, 우익단체 등에 숨어 지내고 광부생활도 함.

- 그러다 1950년에 전범 시효가 풀리자마자 그 사이의 도주생활을 무슨 자랑거리인 마냥 쓴 자서전 "잠행 3천 리"를 발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됨.

- 1952년에는 이시카와에서 중의원으로 당선됨.

- 4선 의원으로 잘나가다가 1959년에 기시 노부스케(아베 할배)에게 공격받고 자민당에서 제명을 당함(비슷한 것들끼리 싸움). 이후 전국구 참의원으로 전환해 다시 당선.

- 츠지 마사노부는 호치민을 만나겠다면서1961년 4월 4일 일본을 떠난 뒤 동남아에서 실종됨(이상한 놈은 최후도 이상함)


6) 불멸의 저서 - "이것만 읽으면 전쟁에 이길수 있다"(これだけ読めば戦は勝てる)

 

           대본영이 전군에 배포, 교육자재로 썼던 불멸의 저서 "이것만 읽으면 전쟁에 이길수 있다"

                   싱가폴 전투에서의 자신의 활약상(?)을 기록한 책(과달카날은 왜 안썼냐?) 

- 태평양전쟁 직전에 저술..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음.

- 주 내용
  미국과의 전쟁은 승리한다.
  비행기와 전차와 자동차와 대포의 숫자는 미군이 중국군보다 훨씬 더 많으므로 주의해야 하지만,
  구식인 것이 많을 뿐더러 그 무기를 쓰는 병사들이 약하므로 쓸모가 없다. 
  야습은 연합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미군은 장교는 백인이지만 하사관 이하들은 잡종이라 규율이 콩가루다(먼 소리?)

- 이후 대본영이 이 책자를 전군에 배포, 교육자재로 쓰게 함

- 이 내용이 곧 반자이 어택과 카미카제 자살대공격의 이론적 기반이 됨.

그가 근성론에 기반하여 창안한 "대전차 총검술"..근성만 있으면 총검으로 전차도 때려 잡는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面白くて有益な情報です。일본에 산 적이 있어 일본역사 및 사회에 관심이 많은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