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저것 특집

봉달이 2018. 4. 12. 16:49

<탐사보도> 딘 소장의 잃어버린 땅크를 찾아서..<끝>



17) 에필로그 : 대전과 바스토뉴


미국 미시건(Michigan) 주 그랑 블루(Grand Blanc)에 위치한 피셔(Fisher) 전차 공장에서 제작된 일련번호 S48935 USA 3081532, 75m 단포신 주포 장착 M4A3 셔먼 전차는 승무원들에 의해 “바라쿠다(Barracuda)”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이 전차는 제 11 기갑사단(11th Armored Division) 제 41 전차대대 B 중대 소속으로 유럽에 배치되었고 1944년, 벨기에 아르덴(Ardennes)에서 그 유명한 벌지 전투(Battle Of Bulge)에 참가했다.


 피셔 공장에서 제작된 한대의 탱크가 11 기갑사단 소속으로 벌지전투에 참가했다..

 
1944년 12월 30일, 제 41 전차대대는 툭 튀어나온 돌출부인 “벌지”의 남쪽에서 북쪽 측면을 향해 공격하도록 명령 받았지만, 이 전차의 승무원들이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공격을 시도하던 바로 그 시각, 독일군도 그 방향에서 역습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조지 패튼 중장의 제 3 군 소속으로 반격을 시작했으나..


아무튼 이 공격으로 후몽(Houmont)과 그 인근 마을들은 제 11 기갑사단 B 전투단에 의해 성공적으로 해방되었지만 독일군의 반격으로 그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이 전투 과정에서 월러스 알렉산더(Warace Alexander) 중사가 지휘하는 전차 바라쿠다(Barracuda)는 부대와 떨어지며 낙오되었다.
이들은 전투 직후 곧바로 로버트 아메노(Robert L. Ameno) 대위가 지휘하는 B 중대의 다른 전차들을 찾아 북쪽 르누몽(Renuamont) 마을로 향했지만 그들은 그곳이 이미 독일군에게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당시 바스토뉴를 향해 전진하는 미 제 11 기갑사단..

  
그 마을은 독일 제 5 기갑군의 일부이자 강력한 기갑부대인 총통친위여단(Fuhrerbegleitbrigade.. Fuhrer escort brigade)에 의해 장악된 상태였고, 이 여단의 지휘관은 히틀러 암살 사건인 발퀴리 작전 당시, 주모자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 대령을 베를린에서 체포하며 급출세길에 오른 오토 에른스트 레머(Otto Ernst Remer) 대령이었다.
어쨌든 달랑 1대의 셔먼 전차가 휑한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꿀렁꿀렁 마을로 접근하자 그들은 2대의 독일 4호 전차(Panzer IV)에 의해 곧바로 발견되었고, 당연히 집중 사격의 표적이 되었다.


영화 발퀴리에서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오토 레머..

 
바라쿠다의 승무원들은 이를 인지하자마자 텅 빈 들판에서 반전하여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이들은 눈에 덮여 미처 발견하지 못한 웅덩이에 빠져버렸고, 이제 이 불쌍한 셔먼 전차와 승무원들은 손쉬운 표적이 되어 버렸다.
독일군은 4호 전차의 75mm 포탄은 물론이고 판저파우스트(Panzerfaust)로 무장한 보병까지 가세해 주저앉은 오리 신세로 전락한 이 셔먼 전차를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전차는 그저 손쉬운 표적일 뿐..


결국 항복을 선택한 미군 전차 승무원들은 모두 구출되었지만 전차장 알렉산더 중사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며칠 후 사망했다.
포수 세실 피터맨(Cecil Peterman) 상병과 장전수 데그 호바트(Dage Herbert) 일병도 부상을 입었으며 운전수 앤드류 우르다(Andrew Urda) 상병과 기관총 사수 이반 골드스타인(Ivan Goldstein) 이병은 비록 멀쩡했지만 전차의 승무원들은 전원이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결국 방법이 없었던 전차 승무원 전원이 포로가 되었다..

 
딘 소장의 땅크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벌지 전투에서 파괴된 셔먼 전차 타령을 읊어대는 게 뭔 짓거리인가 하겠지만, 이 “바라쿠다”라는 이름의, 별 어마무시한 활약을 한 것도 아닌, 그저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작살이 났을 뿐인 미군의 전차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현재 이 전차는 벨기에 바스토뉴(Bastogne)의 중심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농부인 모지어 데니스(Mousier Denis)는 자신의 땅에 버려진 파괴된 전차를 고물상이 돈을 내고 수거해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땅에서 고물상이 전차를 끌고 가는 것보다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벨기에군이 이 전차를 수거해 갈 것을 요구했고, 이런 요구를 접수한 바스토뉴 관광청장은 그 가치를 인정해 이 전차의 구입과 복원을 지시했다.


이후 바스토뉴 관광청이 구입한 이 전차는 복원 과정을 거쳐 시의 중앙 광장인 맥컬리프(McAuliffe) 광장에 1948년부터 전시되기에 이른다.


고물로는 안 팔아! 땅주인의 고집 덕분에 살아남은 바라쿠다..

  
현재 이 M4A3 셔먼 전차는 1944년 12월, 패튼 중장이 지휘하는 미 제 3 군이 바스토뉴의 포위망을 뚫은 전투를 상징하는 유물로 남아있고, 매년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전차를 찾고 있다.
어쩌면 이 파괴된 전차는 벌지 전투에서 연합군의 반격을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유물”일 수도 있고, 그래서 보존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차체 곳곳에 피탄 자국이 남아있다..기록을 봐도 딱히 자랑스러운 놈은 아니지만..


하지만 벨기에 아르덴 지역에는 탱하니 놀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벌지 전투의 “부끄러운 역사”를 간직한 유물, 그것도 전차가 버젓이 보존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전차는 벨기에 아르덴 지역 후팔레즈(Hueffalize) 북서쪽 약 15km에 있는 위브린(Wibrin) 마을에서 볼 수 있다.



1944년 12월 16일, 눈보라치는 겨울 날씨로 인해 독일군의 공격은 없을 것이라 낙관하며 탱자거리고 있던 미군 방어선에 독일군의 불벼락이 쏟아졌고 이후 이 전투는 벌지 전투로 알려지게 된다.
당시 독일군의 최종 목표는 앤트워프 항구를 점령해 연합군의 보급로를 끊고 항구에 적재된 연합군의 물자를 노획하는 것이었으며 이 공세에 맞춰 창설된 독일 제 6 기갑군은 뫼즈 강에 걸린 교량들을 점령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독일 제 6 기갑군은 안트워프로 향하는 교량들을 점령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알려진 이 작살난 셔먼 전차는 75mm 주포를 가진 M4 전차 후기형 모델로 보이며 미 제 84 보병사단에 소속으로 생각된다.
당시 독일 제 116 기갑사단의 일원으로 이 공세에 참가한 판터 전차 승무원 한스 헤로스트(Hans Herost)는 이 전차가 똑똑이 기억난다며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우리는 미군이 매설한 대전차 지뢰 때문에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들판과 초원을 가로 질러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위블린 마을의 교회에서 약 1,000미터 떨어진 언덕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지금은 전쟁 기념물이 된 그 셔먼 전차를 보았죠.”


위블린 마을의 교회 인근에서 작살난 셔먼 전차..지금은 전쟁 기념물로..


“작은 주포(75mm 단포신 주포..)를 가진 이 탱크는 우리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농담으로 그런 미군 전차를 노크 장치라고 불렀죠(knocking device..자기들 전차를 맞춰봐야 그저 똑똑 노트할 뿐이라고,..-_-;;) 아무튼 그 전차를 발견하자마자 옆에 있던 판터 전차가 사격을 가했고 철갑탄이 그 전차의 전면장갑을 꿰뚫었습니다. 두 번째 포탄이 전면 장갑에 맞고 튀어오르며 주포를 찢어놓았고, 세 번째 타격에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불이 붙었죠. 우리는 불타오르는 그놈을 버려두고 진격을 계속했습니다.”


판터에겐 그저 도어 노커일 뿐..하지만 반대로 걸리면 종이 상자였다..

  
당시의 상황 설명과 현재 남겨진 전차의 상태로 보아 이 전차의 승무원들은 독일 전차의 일격에 전원이 그 자리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버려진 이 전차의 잔해는 벌지 전투 초반, 미군의 안일함과 당시 셔먼 전차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유물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 전차는 셔먼 전차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유물이 되어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흔히들 한국 전쟁을 두고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사견으로 한국 전쟁은 기억하지 않는 전쟁이라기보다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전쟁”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잊혀지게 만든 전쟁이 아닐까?


우리는 이 땅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들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그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 그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는 기억하지 못한다기보다 그 세월 동안 이 땅에 존립하였던 수많은 정권과 그 위정자들에 의해 기억하지 못하도록 강요받거나 혹은 교육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차단 당해왔음이 더 큰 원인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부끄러운 건 아는 모양이구나..


흔히 말하는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이기에 그런 식으로 잊혀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일수록 더욱 보존해야만 하며, 그 이유는 당연히 그런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에라이...할말 없음..


지금 포스팅한 딘 장군의 대전 전투는 어쩌면 부끄러운 역사일 수도 있고 그가 파괴했다는 전차의 위치 따위는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미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벨기에 정부는 “자신들의 땅에서 벌어진 미군과 독일군의 전투”라는, 우리 위정자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어쩌면 쪽팔려 환장하는 저런 흔적들을 뭐 한다고 저렇게까지 보존하며 후대에게 가르치고 그 교훈의 표상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렇다면 벨기에라는 나라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나라였던가?


굳이 답은 하지 않더라도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읊어댄 딘 소장의 “잃어버린 땅크”는 그 정확한 위치가 아닐 수도 있고, 이는 대전 시나 국방부 같은 관계 기관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금방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여태 우리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사이 보니 대전 시에서 구 대전 시가를 근대화 역사 거리 조성 사업 어쩌니 하면서 새롭게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인 모양이던데, 기왕이면 딘 소장의 전차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어 그 자리에 전국에 쓸데없이 방치되어 있는 T-34/85 전차를 당시 상황에 맞게 복원하면 어떨까 싶다.


요사이 저런 사업도 벌인다고 하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늘날 벌지 전투의 흔적을 찾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스토뉴의 셔먼 전차를 보러 몰려가듯이 대전에서 "딘 장군이 때려잡은 T-34 전차"도 어쩌면 역사적 증표이자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비록 딘 소장이 파괴했다는 원래의 전차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시된 것인지 버려진 것인지 모를 T-34 전차들도 발견할 수 있고, 협상을 통해 이를 그 자리에 전시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면 많다..사천 항공우주박물관의 핑크 땅크..이거 모냐? 모던 팝아트냐?


그리 되면, 이 땅의 밀리터리 매니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한국 전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또는 대전 전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참전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전 전투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생생이 남아있다..덮는다고 덮히는 게 아녀..


아무튼 관계 기관의 적극적인 검토를 바라면서 이 시리즈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얼마 전 쫓겨난 여왕마마의 1심 선고가 내려지자 청와대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고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끝>





<사진 출처>

https://military-historian.squarespace.com/archive-1/2016/4/8/battlefield-visit-osan
http://www.11tharmoreddivision.com/i_ourhistory.html
http://usautoindustryworldwartwo.com/Fisher Body/fisherbodygrandblanc.htm
https://en.wikipedia.org/wiki/Otto_Ernst_Remer
http://www.businessinsider.com/battle-of-the-bulge-nazi-germany-world-war-ii-photos-2016-12
http://tank-photographs.s3-website-eu-west-1.amazonaws.com/wibrin-m4a3-sherman-tank-belgium.html


장편의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반복 될 것 같네요 ;;;;;
그럴지도요..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해야죠...
바스토뉴에서 눈치는 챘는데 자칭 애국 건전보수들께서 이런걸 기념하셔야 하는게 아닌가요 쓸데없이 다른짓하지말고
그래야 정상인데 말이죠...
.... 아주 오래 전부터 졸자가 목이 쉬도록 부르짖어 봤지만 .... 다들 먹고사는 일이 바빠서 별 관심들이 없읍디다....

걍 울고 싶을 뿐입니다...

http://blog.naver.com/gsdrkhc/90017325392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기 보다 자신과는 별 연관이 없다고 여기기에 그런듯 합니다..
알고보면 우리 스스로와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말이죠..
봉달님...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천안에는 그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마틴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마틴거리'를 만들었고 오산시에서는 죽미령에 미군의 초전기념관을 만들었지요.대전전투는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정규사단과 북한군정규사단이 사단간 전투를 벌인 장소인데 봉달님 의견처럼 역사적인 장소에 안내표지판을 비롯한 파괴 된 T-34전차 실물( 또는 모형)을 전시해 둔다면 대전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될텐데...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시간 만들어서 봉달님이 포스팅 한 장소를 한번 답사하고픈 마음입니다. 긴 글 잘읽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고생 많았고요....(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딘장군과 대전전투'의 상세 정보를 알게 되어 가장 큰 소득..)
땅크는 고물상과 아이들이 엿바꿔 먹어서 없습니다...ㅠㅠ 그러니 체코체 t34라도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다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론 현대사에 역행하는 게 두려워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nuts의 발언자 제임스 맥컬리프 준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광장같군요

전시장의 전차도 고증(도색)은 쌈싸먹은지 삼만년이라 -_-
미국은 역사가 짧아서 기록을 잘한다
이런말을 하죠
근데 우리는
역사는 긴데 정작 기억해야할 역사는 어디로갔는지 모르겠네요
누구를 위한 역사인지
반만년 ㅎㅎ
사사오입도 아니고
천단위를 만단위로 상승

후훘~
역사는 흐른다~~~~~~
맥컬리프 준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광장이 맞습니다..
기억해야할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게 문제입죠..
이번 봉달이님 씨리즈를 보면서

6.25 전사 자체가 미국 자료가 없으면 남아있는게 없다는것이 얼마나 한심한가요

우리땅에서 벌어져 수백만명이 죽었는데도 -----
극히 공감합니다!
왜 우리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기록을 번역하고 자빠져 있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방법이 없었던 전차 승무원 전원이 포로가 되었다..

라는 제목의 사진은 포로가 된 미군 전차병의 사진이 아니라..
벌지전투에서 미군에게 포로가 된 독일군(미군 복장을 하고 미군교란임무를 맡았던)의 사진 같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저 사진은 1944년 12월 19일 벌지 전투가 벌어진 벨기에에서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들이 맞습니다..
물론 저 사진은 포스트에 언급된 전차 바라쿠다의 승무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아쉽기 그지 없네요.

계룡 IC로 진입해서계룡대로를 타고 시내 쪽으로 오다 보면, 계백로와 만나는 연화교차로가 나오는데, 교차로 밑을 통과하면 바로 왼쪽에 팬텀기가 스탠드 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팬텀기가 처음에는 원래 고유번호와 도색/마크을 갖추고 있어서, 지날 때 마다 "아, 내가 정비중대장 할 때 정비했던 비행기일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블랙이글 도장으로 바뀐 겁니다. 그 덩치 큰 팬텀기가 블랙이글 도장을 하고 있으니 어찌나 촌스러운지.
이건 그냥 커다란 장난감 비행기, 스탠드 위에 올려 놓은 꼬라지랄까.
하여간 누가 그런 결정을 했는지, 뭔가 보존하겠다는 의식은 밥말아 먹었는지, 참 아쉽습니다.
비행대의 전통이란것이 있는데 그걸 통쨰로 없애버렸네요 ㅜ.ㅜ
저도 봤는데 좀 다른 생각이 들었는데 블랙이글을 띄우려고 하다보니 누군가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고 멀쩡한 팬텀을 바보로 만든거죠 대구에도 팬텀이 있는데 원래도색으로 잘 있습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팬텀과 블랙이글을 동일 도색하는데 들어간 노력이 팬텀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지요 마치 백전노장 노병에게 디지털 전투복입히고 공개행사는 기분입니다. 노병 팬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블랙이글에게도 도움이 되는 행동은 아닌거 같습니다. 진정으로 기념하고 싶다면 원래도색 기체 번호 부대마크 도색하고 큼지막한 기념표지로 ,
노병 팬텀을 기념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물론 제 생각 같은건 전달도 않되 겠지만.
몇 년전 청주기지에서 퇴역한 팬텀기도 블랙이글 도색을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뭔가 의미을 부여하는것은 좋은데 곡예비행팀은 팬텀기를 운용한 적이 없다는게 함정이라는 겁니다.

차라리 원 도색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의미있죠.

궁금한거는 방위성금헌납기들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혹 그 팬텀기가 방위성금헌납기면 이 문제는 민원을 제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J85는 어떤 엔진이였나요????
J85 시리즈는 F-5에 장착되는 터보제트 엔진으로, 나름 작은 사이즈에 우수한 출력을 내서 F-5로 하여금 가성비 높은 3세대 전투기로 활약하게 만들었죠. 곧 F-5는 FA-50으로 대체될 겁니다.

팬텀은 J79엔진! 큰 덩치에 고출력입니다. 한 때, 팬텀을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게끔 한 엔진이죠. 물론 팬텀도 조만간 퇴역!

F-16과 F-15는 원래 같은 엔진을 쓰는 개념인데(F-15는 두개),KF-16, F-15E, F-15K 등으로 진화하면서 여러 타입이 있습니다. (F100 시리즈, F-120 시리즈, PW에서도 만들고 GE에서도 만들고)
말씀하신 사례도 문제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곳에 거의 버려지듯 전시되어 있는 것들도 부지기수죠..
마산 수출 자유지역 후문 입구에 조그만 공원 같은 게 있는데 거기에 난데없이 M107 8인치 자주포가 뙇~~!!
그리고 얼마전 방문한 여수 자산공원 정상에는 4연장 대공포(흔히 승공포라 불리는..)가 2기나 뙇~~!!
저기에 저런 것들이 왜 있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봉달님의 주장에 백프로 공감합니다.

대전 시장이 이 포스팅을 봐야 하는데...

제 조카가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국제학교 다니는데...
거기 다니는 베트남 애들이
자기 나라가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것도 모른다 하데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멍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베트남이 그 지경이라니 이해가 않되네요 프랑스에 시달린 세월에 투쟁한 세월이 얼만데 사회주의 공화국이 그렇다니 한심하네요
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_-;;;
부끄러운 과거를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역사를 그렇게 다루면 나중에 더 심한 댓가를 치른다는 걸 알아야 할텐데, 꼭 요직에 있는 사람들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아랫것"들이 모르게 만들려 하는 게 정답일 듯 합니다...
나의 실책을 아랫것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 이건가요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이러니 쓰레기 같은 과거를 반복하지요 실수는 가리고 쓸데없는건 만들고 역사가 무서운지는 아는 걸까요
왜 일본제국은 실패 하였는가?-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엇그제 이책을 뒤적거리다 100쇄가 넘게 인쇄된 나름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을 새삼 알았습니다.근데 내용을 보면 "반성하는 척!만한다."라는게 책을 읽어본 저의 생각입니다.실패와 오욕의 역사도 역사의 일부분이고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처절한 자기 반성이 뒤따라야 하는데 봉달님의 딘소장 시리즈를 읽으면서 저는 내내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 가 계속 연상이 됐습니다.반성하는 척 하거나 두루뭉실 덮으려거나 미화 하려는 행태 이땅에서 그리 멀지않은 현대사인데도 제대로 된 사실 확인이나 반성이 따르지 않으니..봉달님이 애쓰시며 나름 쉽게 재미도 곁들여 가며 풀어 써 주셨는데도 읽는내내 고구마 100개쯤 먹은듯한 답답함이 밀려 들었습니다.우리능 언제쯤 제대로된 반성과 교훈을 얻을수 있을까요?
당장 가까운 문제도 해결 못하는데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교훈... 먼나라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뉴스 보니까 딱 00~07년도 뉴스랑 너무 똑같아서 소름 돋을 정도던데 바로 지금 북괴에 사과 하라는 말도 감히 꺼내지 못하는데 과연 가능한 얘길지 모르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정말 되풀이 되는 법이죠.

부끄럽다고 감춘다고 해봐야 더 큰 피해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할 듯 싶습니다.
대단합니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파에게 적대적이지 말아요.
좌우 날개가 있어야 날듯이~
젊은=파괴
황혼=지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