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 디벼보기

봉달이 2018. 4. 26. 15:02

뜬금없는 청산리 전투 당시 일본군 복장..



이번에 또 영화사 의상 관련 부서에서 연락이 와서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투입된 일본군의 복장과 관련한 문의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문의했던 영화는 이후 엎어졌는지 더 이상 연락이 없구요, 이번 영화는 또 다른 영화인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인가? 잘 몰겄슴..-_-;;


좀 더 상세한 내용은 다시 연락이 오면 알려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그 답변 작성하느라 포스팅할 시간이 휑하니 날아가 버린 관계로 혹시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듯 하여 관련 내용으로 포스팅을 대체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
 
1.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나오는 일본군 월강추격대, 남양수비대의 군복은 어떠했나요?


먼저 봉오동 전투의 서막을 연 남양 수비대는 말 그대로 현재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도문(圖們..투먼)시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南陽)에 주둔하던 일본 육군 조선군(조선인 부대가 아니라 조선 주둔군이란 의미..) 제 19 사단 휘하의 국경수비대를 말합니다.



1920년 6월 4일에 독립군 홍범도 부대와 최진동 부대가 각각 북간도 화룡현(和龍縣) 삼둔자(三屯子)를 출발, 월신강(月新江)을 넘어 간도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주둔하고 있던 1개 소대 규모의 일본군 헌병 국경초소지대를 기습 공격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1개 대대 규모의 남양수비대(南陽守備隊)에서 1개 중대가 출동했으나 이를 예상하고 매복한 독립군의 기습에 많은 피해를 입게 되죠.
이에 발끈한 제 19 사단장 타카시마 토모타케(高島友武) 중장은 예하 각급부대에서 인원을 뽑아 1개 대대 규모의 추격부대를 편성, 야스카와 지로(安川二郞) 소좌가 지휘하게 하여 독립군 추적에 나서는데 이 부대에게 줘진 임시 명칭이 월강추격대(越江追擊隊..두만강을 넘어 추격한다는 뭐 그런..)였습니다.


당시 제 19 사단장이었던 타카시마 토모타케(高島友武) 중장..

 

따라서 말씀하시는 두 부대는 따로 독립되어 편제된 부대나 특수 부대 같은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임시적으로 편성되는 임시부대였으므로(2차 대전 시기까지 일본군은 이런 짓을 남발하죠... 이치키 지대니 가와구치 지대니 그러면서..) 복장은 표준 일본 육군 복장과 동일하였으며 따로 부대 휘장이나 패치가 부착되는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만 월강추격대의 경우, 제 19 사단 73연대(97명)와 75연대(123명) 그리고 헌병대대 일부(11명)가 혼재되어 있었으므로 목깃에 부착되는 병과 패치와 연대 표식을 조금씩 달리해야 정확한 고증이라 할 수 있겠죠.


1930년 대만 우서 사건 당시의 일본군..모자를 보면 이것들도 개판..


1920년대 45식 군복 카키색톤 군복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 일본군처럼 45식 군복에둥근 일본군 모자를 착용해도 가능한가? 아니면 컬러를 다르게 해서 차이점을 줘야하나? 하는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1912년(메이지 45 년)에 제정된 45식 군복의 정확한 색상은 황토색(黄土色)이었는데 봉오동 전투가 벌어지기 약 한 달 전인 1920년 5월 28일에 기존의 황토색이 쉽게 더럽혀지고 눈에 띄기 쉽다는 이유로 녹색 계열로 변경합니다.
하지만 2차 대전 시기 일본군복의 색깔인 소위 국방색(国防色)으로 완전히 제식화되며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기간 시간이 걸렸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시기엔 복장변경 계획이 발표된 직후였으므로 여전히 황토색 군복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입니다.

1918년 시베리아 출병 당시의 일본군..군복 색상은 황토색..쉽게 말해 X색..

                   
이는 현대의 우리 군의 경우만 보더라도 디지털 위장 군복으로 변경한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해서 순식간에 전군 장병들에게 이를 보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아무리 정규군이라 해도 조선군의 경우는 국경 수비대의 성격이 강한, 소위 후방 병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는 “둥근 일본군 모자”란 게 어떤 것을 지칭하시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러일전쟁 시기의 일본군 군모를 지칭하신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라 봅니다.
만약 45식 둥근 군모와 2차 대전 직전의 위로 솟은 독일식(체코식이라고도 불리는..) 일본 장교 군모를 말씀하신다면 전자가 맞으며, 후자는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대두되기 시작한 1920년대 후반부터 장교들의 권위의식을 상징하기 위해 유행되기 시작한 물건이었으니까요.


1900년대의 모자(위)나 30년대의 솟을 모자(?)는 나오면 안됨..

 

2. 기병부대 설정에 있어 45식 군복에 연두색 병과장 착용하고 장교들은 부츠 착용, 부사관들은 가죽 각반 착용을 해도 공증 상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병 하사관들의 경우 장교들의 가죽 장화보다 짧은 반장화(半長靴)라는 것과 박차 부착을 위한 작업화라는 것을 착용하기도 하였는데요, 전투 시에는 하사관이나 병들은 가죽 각반 착용이 더 흔했다고 합니다.



3. 조명지원 포탄 지원하는 포병들이 등장하는데 현재 군대의 보병 화기중대처럼 보병에 포함된 화기라 생각하고 레드 병과장을 사용해도 될까요? 아니면 포병병과장인 노란색을 사용 해야할까요? 주특기금장도 부착해야 할까요?

 

봉오동 전투에 참가한 일본군 병력엔 포병대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말씀하시는 부분은 청산리 전투로 생각되는데요.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일본 육군 제 19 사단의 편제를 보면 포병 병력으로는 야포병(野砲兵) 제 25연대 1대대와 2대대 그리고 산포병(山砲兵) 제 1 중대 병력들이 보입니다.
당시 포병들은 오늘날과 같은 편제가 아니라 엄연히 독립된 병과였으므로 비록 야포병 제 25연대가 제 19 사단의 휘하 병력이라 하여도 병종은 엄격히 구분되었습니다.



따라서 포병 병력은 포병을 뜻하는 노란색 병과장에 25연대를 나타내는 아라비아 숫자 25 금장을 부착하여야 맞는 고증입니다.


야포병 제 10 연대 소속 대좌의 복장..


참고로 당시 일본 육군이 사용한 대표적인 주력 야포는 38식 야포(三八式野砲)나 혹은 31년식 산포(三十一年式速射砲)였으므로 고증에 좀 더 신경 쓰신다면 이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우리나라 전쟁 영화에는 난데없는 뜬금포 장비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므로..)


당시 일본군의 주력 야포였던 38식 야포(위)와 31년식 산포..


4. 자료 검색하는 도중 철모 사용이 1930년대부터 사용한 걸로 알고 있는데 1930년 전에는 둥근 일본군 모자를 착용하고 전투에 참여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일본 육군이 철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28년경부터라고도 하고, 이때에는 프랑스 군의 헬멧을 모방한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1930년에 전쟁영화에 흔히 일본군이 쓰고 등장하는 90식 철모가 제식화 되어 2차 대전 패전 시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들은 30년대 중후반이 되어야 화이바를..그전엔 걍 벙거지 부대..


5. 연대마크 및 주특기금장은 장교 부사관 병 모두 채워야 할까요? 부사관부터 채워야 할까요?


당시 일본군은 연대 급 부대에 소속된 경우에는 장교, 하사관, 병에 구별없이 전원이 병과별 금장과 소속 연대 마크를 부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소속 연대 마크를 부착하지 않는 예외적인 특별한 경우는 참고본부나 군 사령부에 속한 병력 또는 헌병 병과와 같이 연대급 부대가 없는 경우 등이 있었을 뿐 나머지 전원은 소속 연대 마크를 부착하고 있었죠.


사진처럼 몽키킹 시종무관 같은 경우엔 연대 마크가 없음..


또한 병과별 금장(색깔로 구분되는..)은 전원이 부착하였습니다.


나머진 장교이건 쫄따구이건 전원이 부착..


이상 질문해 주신 것에 부족하나마 답변 드렸구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시려면 아래 서적들의 구입을 추천 드립니다.
아마존 같은 곳에서 구입하시면 될 듯하고 제가 가지고 있으면 기꺼이 빌려드릴 수 있겠으나 제가 군복이나 군장 같은 것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서 가지고 있질 못하네요.


아무튼 앞으로도 전쟁 관련 작품이나 독립 운동 관련 영화가 제작될 경우에도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사항이오니 가급적 구입을 추천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大日本帝国陸海軍 軍曹と装備 明治・大正・昭和 カラー版/武器 軍服 勲章など>
<大日本帝国陸海軍〈2〉―軍装と装備 明治・大正・昭和 (英語)> 大型本  – 2010/10
中田忠夫(著)
<日本の軍装 1930~1945> 大型本  – 1991/11/30 中西立太(著)
<日本海軍軍装図鑑 [増補版]> 大型本  – 2014/7/7 柳生悦子(著)




그당시 일본군에게 조명탄이 쓰였는지도 고증해야 할 부분인것으로 보입니다.
아 맞네요 당시 일본 육군에게는 조명탄이란 게 없었습니다 1920년에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이 조명탄을 쏜다면 틀린 고증이 됩지요!
1차 대전 직후 일본이 영국으로부터 소량의 조명탄을 수입한 적은 있으나 그들이 마적떼 취급했던 독립군 진압 작전에 그 귀하디 귀한 조명탄을 사용했을 리는 없었을 듯 하네요
게다가 조선 주둔군인 19사단에 조명탄이 보급되었을 확률도 거의 희박하구요
패튼 대전차군단"에 스페인제M47(?)에 철십자달아 판처와 티거대신 등장하기도 했고, 머니먼 다리도 그렇고 다른 영화도.. 달러단위로 억억대고 CG가 발달한 요즘니 고증이 쓸 만 하지.. 저런 사정을 알기 전에는 옛날 국군 영화에 이거 미군전차인데 왜 북한군이냐며 씹기도 했지만, 그래서 장비 고증 기대는 요즘은 안 하게 됐습니다. ^^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돼요!
머나먼 다리...
엄청난 대작이기도 했지만 당시 사정으로 봐서 고증에도 엄청 신경 썼다는 게 보이는 영화입죠..
다만 티거까지 만들어 내는 건 좀 그랬었나 봅니다..
아른헴 다리 위를 실가동하며 전투씬을 찍어야 했으니..더미 전차로는 불가능 했을 수도..
암튼 전 요즘도 저 영화 가끔씩 봅니다..
고증이나 내용도 훌륭하지만 언뜻언뜻 보여지는 영국인 특유의 시니컬한 블랙 유머가 너무 맘에 듭니다..캬캬
차라리 국뽕을 넣을지언정 신파만 넣지 말아라 ㅜㅜ
충무로에서 역사물이나 대체역사물로 영화 찍는다고 하면 대체로 말아먹는 스토리가
억지 웃음이랑 억지 신파 쑤셔넣다가 망하는듯.. 대표적으로 인천상륙작전;;
아차피 처음부터 '우리는 전쟁이 배경인데 봐봐 원래 신파야'
라고 찍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사실상 유일한 성공작 아닌가요
요즘 나오는 영화들 보면 차라리 포화속으로가 괜찮은 작품으로 보일지경
신파 싹뺀 갓영화 남한산성 망해서 2020년까지는 신파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글쎄 영화 내용까진 제가 잘 몰라서..-_-;;
청산리전투 당시,
일본군 포병 장구류에 관해 알수있을까요?
영화마다 일본군 군복 색상이 황토색으로 나오고 초록색으로도 나오고 했었는데 원칙은 황토색이 맞았군요. 하기사 헌병용 검은색 병과장도 고증에 맞게 제대로 나오기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요. 그 전 영화들을 보면 육군 보병이 헌병경찰로 나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