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 디벼보기

봉달이 2018. 5. 13. 14:52

과연 놀라운 연합군 창의력의 소산이었나? 파라 더미<下>



1944년 6월 6일, 영국 공군과 SAS(Special Air Service)가 수행한 타이타닉 작전은 핼리팩스와 스털링을 포함한 40여기의 폭격기로 파라 더미와 SAS 요원들을 독일이 점령한 노르망디 인근 지역에 낙하시켜 독일군으로 하여금 연합군의 정확한 침공 위치와 공수부대의 낙하지점 파악에 혼란을 일으키게끔 만드는 작전이었다.
실제 이 작전은 노르망디 지역을 수비하던 독일군 수뇌부들에게 혼란을 주었고, 특히 오마하 비치를 방어하던 독일 제 352 보병사단의 유일한 예비대인 제 915 척탄병연대를 이 마대자루 수색작전에 돌려놓음으로써, 가뜩이나 헬 게이트가 벌어진 오마하 비치의 상황을 그 정도로 누그러뜨리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마하 비치에서 헬 게이트가 열렸지만 그나마 마대자루 덕분에 저 정도로..


타이타닉 작전은 연합군이 의도한 바대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영국 공군의 손실로는 타이타닉 III 작전에 투입된 영국공군 제 149 비행중대의 쇼트 스털링(Stirlings) 2기가 독일군의 대공포에 의해 격추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투입된 12명의 SAS 대원들은 그 중 8명이 영영 복귀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모두 적진 한 가운데에서 포로가 되어 이후 베르겐-벨센 강제수용소(Bergen-Belsen concentration camp)로 옮겨진 다음, 대부분 그곳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입된 SAS 대원들은 8명이 베르겐-벨센 강제수용소에서..


어쨌든 타이타닉 작전에 사용된 파라 더미들이 당시 노르망디의 수비를 맡고 있던 독일군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영화에 표현되는 것처럼 독일 제 84 군단장 마르크스(Erich Marcks) 중장 같은 고위급 장성들도 이런 건 난생 처음 본다는 듯 깜짝 놀라자빠진다는 설정은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게 모다냐? 독일의 고위급 장성들도 이런 건 듣보잡이라는 설정은..흠..

 
웃기게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기만 작전으로 활용된 공수 투하용 가짜 인형들을 세계 최초로 실전에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었다.


1940년 5월에 개시된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침공 작전 당시 독일 공수부대 팔슈름야거(Fallschirmjäger)가 실제 강하 전에 상대방을 혼란시킬 목적으로 짚을 가득 채운 인형들을 투하한 것이 그 시초인데, 당시에는 소수만 사용되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파라 더미는 독일이 원조..사진은 1940년 5월 네덜란드에 투하되는 독일 공수부대


특히, 벨기에의 마지노선으로 유명했던 에방-에말(Eben-Emael) 요새를 독일 공수부대가 간단히 제압해버린 작전에 사용되며 그 위력을 크게 떨쳤다.

에방-에말 요새는 1935년에 완공된 현대식 요새로 벨기에의 전략적 요충지인 리에주(Liège)를 방어하기 위한 8개의 요새 중 가장 새롭고 세련된 방어시설이었으며, 1940년 5월에 개시될 독일의 서유럽 침공 작전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진격로 상에 위치해 있었다(참고 → http://blog.daum.net/mybrokenwing/82)


 

전략 요충지에 위치한 에방-에말은 벨기에의 마지노선이라 불렸던 현대식 요새..

 
1939년 10월 27일, 히틀러는 쿠르트 슈투덴트(Kurt Student) 장군을 급히 베를린으로 호출했다.


슈투덴트는 이미 1913년에 항공기 조종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제 1 차 세계대전에서는 6기 격추기록을 보유한 열정적인 파일럿 출신이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항공기 보유를 금지 당했던 독일의 상황으로 인해 비밀리에 육군에서 항공 기술 확보에 종사했다.
마침내 1933년, 당시까지 그 존재가 숨겨져 있던 독일 공군에 참여한 그는 항공학교에서 새로운 독일 공군에 참여할 인원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고 1938년 4월 1일 제 3 항공 사단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소장으로 승진했다.


슈트덴트는 1차 대전에 파일럿으로 참전했던 팔슈름야거의 아버지..


그해 여름에 히틀러로부터 첫 번째 강하 엽병 사단의 편성을 명령받은 그는 그해 9월 창설된 독일 최초의 공수 부대인 제 7 공수사단(Flieger-Division) 사단장으로 부임했으며 그 직후 히틀러의 호출을 받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히틀러는 에방-에말을 아느냐고 물었고 슈투덴트는 “당연히”라고 대답했다.
이미 에방-에말 요새와 관련해서 독일은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독일 건설업체가 요새 건설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 소위 난공불락의 요새에 대한 많은 세부 사항에 접근할 수 있었다. 


독일업체가 건설에 참여..미츠비시 건설에 코레히도르 요새 건설을 맡긴셈..


히틀러는 자신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며 그 아이디어란 바로 “공중으로부터의 습격”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에방-에말과 인근 교량을 점령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슈투덴트에게 물었다.
슈투덴트는 문제점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도록 생각할 시간을 요청했지만 바로 이튿날 새벽, 그는 글라이더로 목표에 접근하여 요새를 점령하는 계획을 입안하여 보고했고, 히틀러는 곧바로 임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공중으로부터의 습격! 히틀러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이후 1940년 5월 10일, 실제 에방-에말 요새에 대한 침공이 실시되기까지 약 반년 동안 요새 함락 계획은 철저히 연구되고 보완되었으며, 현대 전쟁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팔슈름야거의 에방-에말 공략 작전은 글라이더 침투 같은 획기적인 전술과 성형 작약탄(Shaped Charge 成形炸藥彈) 같은 신병기가 최초로 사용되는 등의 복합적인 작전이었음에 더해 이 작전 과정엔 파라 더미라는 새로운 기만작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글라이더 투입과 성형 작약탄이 최초로 사용된 에방-에말 공략 작전..


에방-에말 요새 함락 작전 당시 글라이더 11기와 96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브로엔호벤(Vroenhoven) 교량을 점령하였으며, 공수부대의 수송을 담당하기도 했던 게르하르트 샤흐트(Gerhart Schact) 중위는 쾰른(Cologne)의 비행장에서 수송기들의 이륙을 지휘 감독했다.
그는 “수송 계획에는 에방-에말에 아군의 글라이더가 착륙한 직후, 목표로부터 40km 떨어진 곳에 파라 더미들을 투하하는 임무가 들어있었으며 이 기만 작전은 결정적인 작전 초기, 많은 벨기에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회상했다.


샤흐트가 점령했던 멀쩡한 브로헨호벤 다리를 건너 진격하는 독일 기갑사단..


파라 더미를 사용하여 적의 방어선 뒤에 의심과 혼란을 발생시키는 이 아이디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군이 최초로 도입하였고 실제 에방-에말 요새를 직접 점령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루돌프 비치히(Rudolf Witzig) 대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철저한 준비의 특징이자 독창적인 계획의 완결판은 알버트 운하 서쪽에 여러 가지 제복을 입힌 파라 더미를 떨어뜨리는 계획이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계획은 벨기에군 명령계통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다.”


파라 더미는 대성공! 에방-에말 점령 직후 히틀러에게 훈장 받는 비치히..


 한편, 2차 대전 초기, 네덜란드와 벨기에서의 공수 작전에만 독일군이 파라 더미를 사용했던 것이 아니어서 이들은 전쟁 기간 중 수차례에 걸쳐 이런 기만전술을 사용했다.
프랑스 침공 이후 독일은 영국 점령 작전인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때 정확한 상륙 지점을 숨기고 영국군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1940년 8월 13일, 스코틀랜드에 파라 더미가 투하되기도 하였다.


독일도 똑같이 영국 침공을 위한 기만 작전으로 파라 더미를 사용했다..


또한 1944년 12월, 히틀러가 계획한 최후의 묵직한 한방인 아르덴 공세, 즉,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에서도 파라 더미가 사용되었다.


이 작전에서 독일군은 제 12 SS 기갑사단이 미군의 방어선을 뚫고 도착할 때까지 주공격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사용하기로 계획하였고 슈퇴서 작전(Operation Stösser..바다쇠오리..)이라 명명된 이 작전은 원래 1944년 12월 17일 03시에 시작되었다(기상 악화 및 연료 부족으로 하루 연기..)

프리드리히 폰 데어 하이테(Friedrich von der Heydte) 중령이 지휘하는 1,300명의 독일 공수부대는 말메디(Malmédy) 북쪽 약 11km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인 바라크 미카엘(Baraque Michel) 교차로에 낙하하여 연합군의 증원과 보급품 유입을 차단하고 제 12 SS 기갑사단이 미군의 방어선을 뚫고 이 지역을 점령할 때까지 약 24시간 동안 이 지점을 유지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폰 데어 하이테의 공수 부대는 주요 교차로 점령이 목표였으나..


어쨌든 이 작전은 전투 경험이나 낙하 경험이 거의 없는, 무늬만 공수부대인 병사들과 때마침 불어 닥친 악천후, 마찬가지로 경험 부족인 수송기 조종사들로 인하여 완전히 개털이 되었고, 강하한 1300명의 부대원들은 온 동네에 흩뿌려져 겨우 300명 정도만 모여서 눈 덮인 숲속을 헤매며 게릴라 활동이나 하다가 종말을 맞았다.


온통 신참들로 구성된 이 부대는 날씨마저 안 도와주며 데꿀멍~~


하지만 이 미숙하기 짝이 없는 작전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는데, 온 동네에 공수부대원들이 흩어져 강하했기 때문에 독일 공수부대의 낙하가 아르덴 전역에서 보고되었고, 연합군 사령부는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으로 믿었다.
이것은 연합군 내부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 시켰고, 결국 방어선에서 독일군의 주공세에 맞서야할 병력들이 엉뚱한 후방의 숲속을 뒤지게 만들었으며, 미 제 1 보병사단 18연대 전체 병력 3,000명과 300대의 전차가 며칠 동안 이 유령 독일 공수부대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야만 했다.


그래도 연합군은 온통 난리 부르스..당시 독일 공수부대 수색에 나선 미 제 1 사단..


여기에 독일이 의도적으로 투하한 300개의 파라 더미들까지 이 난장판에 가세해 더욱 연합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벌지 전투에서 독일의 공수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런 기만 작전은 전체 계획에서 가장 성공한 것들 중의 하나로 남았다.
전후 독일 공군 원수 알브레히트 케셀링(Albrecht Kesselring)은 파라 더미 작전과 관련해 “놀라움에 대한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파라 더미에 의해 정확한 위치 파악이 힘든 공수부대의 출현과 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는 루머에 따른 공황은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파라 더미..그땐 정말 환장하는 일이었다..알브레히트 케셀링..


미군 또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아니지만 그 직후인 1944년 8월 중순에 벌어진 남부 프랑스 상륙작전인 드라군 작전(Operation Dragoon)에서 이 “오스카(Oscar)”란 별명의 파라 더미들을 사용했고, 그 직후 독일 선전 방송의 유명 여성 아나운서 액시스 샐리(Axis Sally)는 라디오를 통해 이 파라 더미들을 “악마 같은 앵글로 색슨 정신의 산물”이라고 불렀다(그런데 알고 보면 지네가 젤 먼저 사용했으므로..악마 같은 게르만 정신의 산물..ㅠ.ㅠ) 


두둥~ 오스카라 불린 미군의 초기형 파라 더미..닮긴 닮았다..


태평양 전선에서도 1943년 9월 5일, 미 제 503 공수 보병연대 제 1 대대와 3 대대가 가 뉴기니 쿠나이(kunai)에 낙하할 때, 일본군 수비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인근 지역에 파라더미가 투하되었다.

이후 미군은 석고로 만들어진 몸체 안에 와이어와 플라스틱 링을 넣어 관절이 접히는 새로운 파라 더미를 개발하였고(액션 피겨의 원형?) 이것들은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이 사용했다고 한다.


점점 발달하며 액션 피겨의 원조가..사진은 현처리님 블로그에서 무단 불펌..


또한 1960년대 베트남전에서도 이용되어 북베트남군의 전초기지와 베트콩 활동 지역 주변에 투하했고, 1990년 걸프전에서는 미 특수부대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새로운 파라더미를 사용했으며,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사용한 바 있고, 현재에도 미군은 대규모 공수부대 훈련 시에 파라 더미들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라 더미는 지금도 사용중..위는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공수 테스트용 더미..

 
어쨌든 이 “파라 더미”란 물건의 최초 개발자는 독일군이었고 최초로 실전에 투입한 것도 독일군이었으므로, 비록 쫄따구들에게까지 알려질 대중적인(?)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화 “가장 긴 날”에 묘사된 것처럼 에리히 마르크스(Erich Marcks) 중장 같은 군단장급 고위 지휘관조차 난생 처음 보는 물건 보듯이 뻥 찌는 것은 조금 과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국군의 파라 더미로 인해 독일군이 급격한 혼란을 겪은 것 또한 사실이므로 굳이 팩트를 따져 보자면, 독일군 고위 장성들은 파라 더미 그 자체에 놀란 것이 아니라 연합군이 의도한 바대로 이로 인해 유럽 침공 작전이 어디에서 벌어질지 그 정확한 장소를 유추해 내는데 혼란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잘팡질팡한 것으로 추측된다.


시초가 자기들인데 저렇게 펄쩍 뛰는 건 좀 오버..


뭐, 굳이 꼬투리를 잡자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다 쓰고 보니 결론이 좀 그러네..냠~~ -_-;;;)




앞서 댓글로 몇몇 분이 문의해 주셔서..


영화 <The Longest Day>는 일본에서 개봉 당시 <사상 최대의 작전(史上最大の作戦)>이라 의역되었고 이게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었죠.

처음부터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의역하였든지, 아니면 원제 그대로 <더 롱기스트 데이> 혹은 <가장 긴 날>이라 하였으면 저도 그렇게 썼을텐데, 섬나라에서 의역한 게 그대로 넘어온 지라 기분 나빠서 저는 <사상 최대의 작전>이란 영화명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유는 그게 답니다(베리 심플..캬캬~ 쿨럭~~ ㅠ.ㅠ) 



<사진 출처>

http://savingprivateryan.wikia.com/wiki/Omaha_Beach
http://www.annefrankguide.net/nl-NL/bronnenbank.asp?aid=8956
http://www.ww2incolor.com/german-paratroopers-fallschirmjager/DdSuiW_30_1.html
https://sofrep.com/15282/storm-detachment-koch-at-eben-emael/
http://wikimapia.org/429680/Fort-of-Eben-Emael
https://www.rafmuseum.org.uk/research/online-exhibitions/history-of-the-battle-of-britain/operation-sealion.aspx
https://www.worldwarmedia.com/2017/02/09/operation-stosser-kampfgruppe-von-der-heydte-in-the-ardennes-part-i/
https://historykey.com/the-only-doll-who-fooled-the-nazis-during-ww2/
https://ridiculouslyinteresting.com/2012/11/01/wwii-parachute-crash-test-dummies/



푸학... 일단 1빠 찍고...

푸학.. 일단 1빠 답하고..
축! 경축 (^^)b

요즘 제가 열라 노가다 하며 노예처럼 살다보니, 1빠를 놓치는군요.

푸화학 @@.... 에방에말 요새에 공중강습 아이디어를 첨 낸 인간이 힛총통이었다고라고라???

쿠르트 쉬투덴트가 오히려 힛총통에게 배운 꼴이 되는데... 내 살다살다 내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대전초기 독일 연전연승, 승승장구 할 때 도저히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일들이 연거퍼 벌어졌는데... 그래서 본좌가 내린 결론이 "이미 그렇게 되도록 예정 되어 있었다"입니다.

저때 히틀러는 난다긴다하는 쟁쟁한 독일 장군들도 경악하고 찍소리도 못할 정도의 기막힌 통찰력, 번뜩이는 통찰력을 보여 줬는데...이건 겨우 전령병 출신의 상등병 나부랭이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전략이 아닙니다.

본좌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어떤 존재.. 그 어떤 존재가 개입한 결과 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게..
힛틀러가 지 대가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슈트덴트를 갑자기 따로 부를 일이 없었겠죠..
슈트덴트의 아이디어였다면 그가 면담 요청을 했던가 했어야..

암튼 갑자기 대가리에서 뭔가 빡~~!! 하고 튀어나오는 건 역시 힛총통이 전쟁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봅니다..
물론 갑툭튀한 힛총통의 아이디어를 다듬는 건 역시 프로이센의 후예..난다긴다 독일군 장성들이 아닐까나..
에방-에말도 자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실현성이 있나 싶어 슈트덴트를 부른 걸로...

슈트덴트도 깜짝 놀라서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죠..
이게 뭔 헛소리인가 싶어서 말이죠..
생각해보니 낙하산은 온 동네 흩어져버려 좁은 요새 안에 집중 투하하기가 힘들고 보안책으로 생각한 게 글라이더라고..

아무튼 공중으로부터의 습격이란 최초 아이디어는 힛총통이, 글라이더라는 보안책은 슈트덴트가 냈으므로 에방-에말 습격작전은 저 둘의 합작품인 셈입니다요...
푸허허허...액션피규어의 원조....


저거 낙하산 메고 나무에 걸린 얘 사진도 있는데... 갸 사진을 불펌하시지 ㅋㅋㅋ
펌을 못하게 해 놓으셔서 여기저기 흩어진 것 중에 그나마 나은 걸 고른 거임다...-_-;;
오잉???.. 우클릭이 안되나여??? 확인 해보겠음다..


근데 포스팅 볼때마다 깜딱깜닥 놀라는게 저 파라더미를 독일 먼저 썼다는 걸 첨 알게 되었으니...증말 학을 띠겠음다


힛총통 초기에 통찰력은 굉장했죠. 근데....
그 통찰력이 아집이 되죠..
60, 70년대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제목은 일본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원제목과는 다른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영화만이 아니고 서적들도 일본에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별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차용한 게 찝찝했을 뿐입니다..
사상 최대의 작전은 나쁘지 않은 의역이라고 보는데.....
의외로 열도식 초월 번역이 괜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문과 이과도 그렇고
더쿠의 나라여서 그런지 별 쓸모 없는 쪽으로 은근 괜찮은 경우가 많음
ㅎㅎ 그럴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