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

봉달이 2018. 5. 16. 17:13

네덜란드 역사의 오점.. 반 임호프 사건..



1942년 1월 18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부의 항구 도시 시볼가(Sibolga)에서 네덜란드 선적의 화물선 “반 임호프(Van Imhoff)”가 영국령 인도의 봄베이(Bombay)를 향해 출항했다.
당시 이 배에 승선한 인원들은 네덜란드인 승무원 48명과 독일인 억류자 478명, 그리고 이들을 호송할 네덜란드군 경비병 62명 등을 합해 모두 588명이었다.


1940년 5월,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네덜란드 정부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Dutch East Indies)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을 전원 억류하도록 지시했고, 그렇게 억류된 독일인들은 수용소에 감금되어 엄중한 감시 하에 놓였다.


본국이 자빠지자 네덜란드는 자국 식민지의 독일인들을 감금했다..


하지만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며 동인도 제도까지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자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는 일본군의 침공으로 동맹국 독일인이 이에 동조하여 내부로부터 봉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약 2,300명의 억류자 전원을 가까운 영국령 식민지로 이송할 것을 결정했다. 
1942년 1월 7일과 10일, 2척의 수송선이 각각 독일인 억류자들을 태우고 인도로 향했고, 마침내 1월 11일, 일본군의 동인도 제도 침공이 시작되며 이들이 보르네오 북쪽 타라칸(Tarakan)과 메나도(Menado)에 상륙을 시작하자 이들 호송용 선박이 격침될 가능성도 높아졌지만, 네덜란드군 당국은 수송 작전의 감행을 지시했다.


이것들까지 지랄을 떨자 억류 독일인들의 이송이 시작된다..

 
이 세 번째 독일인 억류자들을 이송할 목적의 선박이 지정되었고, 이 배는 1914년에 네덜란드 노트르담에서 건조된 2,980톤 급 화물선 반 임호프(Van Imhoff)였다.


1914년에 건조된 2,980톤급 화물선 반 임호프(Van Imhoff)..


독일 출신의 네덜란드 인도 총독 구스타프 반 임호프(Gustaaf Willem van Imhoff)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화물선은 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에서 담배, 소금 및 석탄 따위의 물품들을 수송하는데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식민 관청 인원들을 여러 섬으로 이송하는데도 사용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대량의 인원 수송에 적합한 여객선 등은 병력 수송용으로 전용되었고, 이에 네덜란드 식민지 당국은 독일인 억류자들을 이송할 목적의 선박을 따로 준비할 수 없었으므로 결국 이 화물선이 호송 작전의 투입되게 되었다.


여객선은 군대가..그래서 화물선인 반 임호프가 낙점..

  
하지만 화물선이 대량의 인원을 수송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해서 예를 들어 이 선박은 독일인 억류자들을 중간 갑판이나 후 갑판에 대충 철조망을 쳐서 나눈 다음, 이 좁은 선실(?)에 2~30명씩 나누어 수용하도록 하였다.
구명 설비도 당연히 부족해 구명보트는 탑승자 전원을 수용하기에 부족했고 결국 구명조끼 만 전원에게 배포하는 것에 그쳤으며, 독일인 억류자들이 일본군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억류자 이송 중”이라는 식별 표지를 선박에 부착해 줄 것을 희망했지만, 네덜란드 당국은 이 요구를 거절했다.


일본군의 공격이 예상되니 식별 표지를 걸자고 했지만..까임..

 
반 임호프의 선장 헤르만 헉시마(Herman Hoeksema)도 이에 관련해 구명정이 300인분 정도 밖에 없으므로 문제가 있다며 네덜란드군 당국에 이의를 표시했지만 그는 닥치고 즉시 출항할 것을 명령받았다.
마침내 반 임호프는 1월 18일 출항했는데 원래 이런 일은 필연적으로 꼬이기 마련이어서 다음날인 19일 저녁, 이 화물선은 시볼가 서쪽 약 178km 해상에서 일본기에게 발각되며 공격을 받았다. 


이 화물선을 발견한 일본기들은 폭탄 5발을 투하하고 기총소사를 실시했으며 폭탄 1발이 명중된 화물선은 곧바로 항행 불능이 되어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시볼가 서쪽 약 178km 해상에서 일본기에게 발각되며 싸다구를 맞았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선장을 포함한 네덜란드인 선원들과 네덜란드군 경비병들은 구명정 6척 중에 5척을 내렸고 독일인 억류자들이 구명정으로 몰려들자 위협사격을 가하며 접근을 막았다.
이들은 독일인 억류자들을 침몰하는 배에 남긴 채 모두 탈출했고 결국 남은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인들이 배를 버린 후 자력으로 탈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은 약 2시간 후 배가 완전히 침몰 할 때까지 네덜란드인들이 포기한 구명정 1척과 식수나 비상식량이 없는 작업용 소형 보트 2척을 이용해 약 90여명이 탈출할 수 있었으나, 배에 남겨진 다른 억류자 277명은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경악스럽지만 더욱 악랄한 일은 이 이후에 벌어졌다.


독일인들은 냅두고 지네만 토깜..그런데 더한 일이 벌어진다..


반 임호프로부터 구조 신호를 수신한 네덜란드 해군은 다음날, 카탈리나(Catalina) 수상기들을 사고 해역에 파견했고 이중 Y-63이 해상에 떠있는 구명정들을 발견했다.
이들은 즉시 이 발견 소식을 보고했고 인근에 있던 네덜란드 기선 벨롱간(Boelongan)이 오전 9시 20분경, 구명정 발견 장소에 도착했는데, 기가 막힌 건, 이 배의 선장 베르벨링(ML Berveling)이 구명정에 타고 있는 인원들이 독일인들이란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냥 이들을 버려두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이다.


네달란드 해군의 카탈리나 수상기가 구명정들을 발견했는데..크흑~~


당시 벨롱간의 선장은 네덜란드군 당국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


“구명정에 탑승한 인원들이 네덜란드 군인이나 군 관계자, 승무원 혹은 여성이 아니면 구조를 포기하고 외면하라.”


10시 40분, 벨롱간이 구명정의 구조를 회피하고 지나버린 직후, 이 배에 대한 일본기의 공격이 네덜란드 해군의 수상기 Y-63에서 관찰되었지만, 이후 이 회피 사건을 두고 벌어진 공방에서 수차례 일본기의 공격을 받아 구조할 수 없었다는 선장의 주장과는 달리 1발의 폭탄만을 떨어뜨린 후 일본기는 사라졌다고 주장한 Y-63 승무원의 관찰과 일치하지 않음으로 인해 진실은 더욱 그 명확한 본질에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나라에서 니넨 걍 냅두래~~ 독일인들은 걍 냅두고 토깐 벨롱간..


결국 벨롱간이 인질 구조를 회피함에 따라 독일인들이 탄 허름한 보트들은 차례로 침몰하고, 사고 발생 4일 후인 1942년 1월 23일, 천신만고 끝에 인근 니아스(Nias) 섬에서 도착한 독일인 생존자는 겨우 65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416명은 모두 사망했다(생존자들은 다시 네덜란드 식민 정부에 의해 구속..)


더욱 황당한 사실은 이들 독일인 희생자들 중에는 많은 수의 나치 정권 하에서 시민권을 박탈당한 유대계 독일인과 반 나치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1930년대에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들이었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일반 독일 시민으로 간주되어 수용소에 감금당한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반 임호프(Van Imhoff) 사건은 당시 네덜란드 정부와 군에 의해 철저히 은폐 되었으며, 탑승했다 생존한 네덜란드군 감시병들과 선원들은 이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 당했다.


희생자들 중 많은 수가 나치를 피해 독일을 탈출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소수의 독일인 생존자를 통해 독일로 전해졌고 독일 신문에 게재된 후, 1943년에는 나치 점령 하의 네덜란드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서슬 퍼런 나치 정권 하에서 이런 일이 알려지자 반 임호프를 운용했던 선박회사 KPM(Koninklijke Paketvaart Maatschappij)는 즉각 생존자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발표했으며, 이 사건이 워낙 네덜란드 당국에 의해 철저히 의도적으로 은폐되어 있었기에 독일 점령군의 즉각적인 보복은 없었다.


세상 바뀌자 바로 항의~!! 사진은 일본 점령 하의 자카르타 독일인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KPM이 발표한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점점 드러나자 독일 점령군 사령부는 그 즉시 이 회사를 급습, 이 수송에 투입된 약 30명의 직원들을 체포했고 KPM는 사망자와 생존자의 가족들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명령받았다(하지만 이 돈은 나치와 독일군이 중간에 홀랑 삥땅쳐서 가족들은 그걸 구경도 못했다고..)


독일 사령부가 낌새를 채고 즉각 탈탈 턴다..그러나 배상금은 배달 사고..ㅠ.ㅠ


2차 대전 종결 후인 1953년, 독일인 생존자들은 반 임호프의 선장 헤르만 헉시마를 살인 혐의로 네덜란드 검찰로 고소했고 그 2년 후, 네덜란드 법무부는 해당 건의 조사를 고등법원 검사장에게 명령했지만, 이듬해 불기소 처리되었는데, 그 이유는 전시 상황 하에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는 것이었다(내리기 힘들어 버린 구명정 1척을 독일인들을 위해 남겨두었던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짐..)

1964년, 이 사건을 소재로 네덜란드의 진보성향 공영방송(잉? 진보성향의 공영 방송? 햐...) VARA의 프로듀서 헤르만 윅볼드(Herman Wigbold)와 딕 베르키크(Dick Verkijk)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지만, 당시 냉전 체제 하에서의 동맹국 서독과 괜한 갈등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방송이 금지 당했다.


빨갱이를 막아야 하므로 우리끼리 싸우면 안되에~~


이에 분개한 딕 베르키크는 해당 다큐를 위해 조사한 결과들을 네덜란드 일간지 “헷 파롤(Het Parool)”에 기고했고 이후 독일에서도 유명 잡지 “슈피겔(Der Spiegel)” 등을 통해서도 다루어지면서 이 사건은 결국 널리 알려지게 되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네덜란드와 독일 양측에서 많은 조사와 발굴을 통해 이 사건은 점점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고, 2017년 12월, 네덜란드의 BNN-VARA 방송사는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삼부작으로 방송했다.


뚜껑이 홀랑 열린 베르키크가 동네방네 나발을..


그리고 1984년, 네덜란드 국립 전쟁 기록 연구소(Nederlands instituut voor oorlogsdocumentatie.. NIOD)는 자신들이 발간한 18,000 페이지에 이르는 대작 자료인 “제 2 차 세계 대전 중의 네덜란드(The Kingdom of the Netherlands During World War II)”를 통해 이 사건을 밝히며 “네덜란드 역사의 오점”이라 자평했다.


사실을 인정한 내덜란드 정부 기관 NIOD가 역사의 수치라고 평가..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그저 막연한 평화민족이자 선진국이라고만 생각해오던 네덜란드가 전쟁 중에 벌인 잔악한 사실들을 목도하게 되고,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인류가 보편타당하게 추구해야 할 최소한의 인류애와 도덕성을 저버리고 이를 은폐하게 되면 언젠가는 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며 비난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역시나 네덜란드답게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며 역사의 곡류를 바로잡고 처절한 반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와 반대되는 종족, 아니 국가가 우리 바로 이웃에서 오늘도 헛소리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답 없는 색기들을 이웃이라고..게다가 같이 나발 부는 저것들은..


덧붙여서, 반 임호프의 선장 헤르만 헉시마와 벨롱간의 선장 베르벨링을 세월호의 선장 최준석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제 아무리 “국가의 지시”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벌인 반인륜적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 볼 수 있다.
하물며 아직까지 세월호란 이야기만 나오면 악몽이 떠오르며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그 항로에 새로 투입할 여객선이 중국산 중고 선박이라는 정부 발표를 보고 얼척 없음을 금치 못하는 사람이 과연 나 하나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산 중고 선박..이거 모하자는 거냐? 이건 좀 건들지 말자...


이딴 뻘짓이 관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의 소산인지 아니면 이 나라의 썩은 관행인 전관예우의 지랄(새로 지정된 해운회사 대표가 전직 해양수산부 차관이랜다..니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라다운 나라를 지향한다는 지금의 정부가 할 짓은 못되는 듯하다.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사진 출처>

http://vanimhoff.info/timeline.php?scale=n
https://gerard1945.wordpress.com/tag/nederlands-indie/
https://ww2days.com/dutch-surrender-east-indies.html
http://www.baselmission.org/ueber-uns/geschichte-der-basler-mission/van-imhoff/
https://ws-clave.deviantart.com/art/Catalina-Netherlands-1-540234368

엄청나게 바쁜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1빠 (--)b

!!셀프 경축!!

후반 내용을 보니,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듯.
너도 나도 안전의식을 고취해서 선진시민 됩시다.
엄청나게 바쁜 와중이시겠지만..
500원 입금하셈..
앗차! 흔적을 남기지 말았어야 했는디.....
중국 중고선박이라고요? 옆구리에 DANGER이라고 쓰여있는 것 같네요. 근데 모국이 공격당했고 억류대상자가 어떤 성분인지 모른다면 저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지......
물론 오늘날의 시각으로 모든 걸 판단해서는 안되겠지요..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백인-독일인이니 사과했고 일이 이렇게 왔지 네덜란드 놈들도 제국주의하던 것들이라 근본적으로 일본놈들이랑 똑같습니다.피해자가 유색인종이었으면 그래서요 깔깔깔로 끝났을겁니다.
그 정도까진 가지 않았을 걸로 보입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상황을 보자면 전쟁이 임박하자 중립을 선언했지만 영, 프, 벨기에와 달리 독일에 우호적 이었죠. 전략적으로 쳐들어 올리 없다고 생각했기에....전쟁에 대비 한답시고 독일에 무기를 발주하기 까지 했으니....
그러다 독일에 뒤통수 맞자 빡돌아 버린거죠....
그래서 중립이라는 게 보통의 판단이나 준비로 선언해선 안되는 짓입지요..
후반부 인천-제주 선박운영 내용보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언론사에서 기사도 나오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글이 올라왔네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30461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 보니 이거 심각해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다분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생각은 님부터 먼저 하시길......
왜 새선박이 중국하고도 드래곤인지 잘 모르나 본데
그날 주변에서 구조는 커녕 얼쩡 거리기만 하고 증거사진이나 찍어
재주도 좋게 실시간으로 방송 언론에 돌리기나 하며
해양구조법에 명시된 강제 이행조항 구조행위는 하지 않고도
처벌은 커녕 신기하게도 진상규명 세력들도 모름 척 입 다물며 넘어가 주고
그 3척의 선명 중에 "드래곤" 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선박이 등장하는게
아직도 우연이라 생각하며 사고 나자마자 구언파 출신 해경럼이 중국 상하이 출장가서
인양업체 알아보고 요란떨어 논란유도 한 시체인양 언딘 이후 선체인양 수의계약도
상하이 셀비지 결정된게 아직도 우연이라 생각하고 새선박도 하필 중국에 드래곤....
이렇게 우연이 겹치면 뇌가 있다면 생각이란 걸 한다면 이 정권도 결국 재난 사기극에
주범인 걸 아직도 모르는 주제에 먼 자랑이다고 누구에게 항의 하시나여
뇌가 있다면 무슨 연유로 형사적인 처벌을 각오하고도 하필이면 빤스차림으로 먼저
탈출한 엽기적인 선장과 초등생도 아닌 고 2 나 된 것들이 죽을거라 문자나 날리고
충분히 터지는 음성통화로는 고작 112에나 해대며 절대 가족에게는 안 하였고
고작 안내방송 따위 믿고 가만 있다가 300명이나 죽었다는 얼척없는 사기소설극에
아직도 속고 있는거 자랑아니니 님의 뇌 나 점검하시길...
도대체 무슨 뜬금포인지?
일단 문장부터 시작과 끝이 어딘지? 마침표랑 띄어쓰기에 유의해 주세요.
아침부터 수고 많으시네요..
이런 쓰레기 잡글은 딴데가서 쓰세요..
이해해 주는 사람들 모이는 곳 있쟈나요?

신경질 날려고 구럼..
몇번을 글을 읽어봐도 이해가 안되는게 여기다 왜 이런 댓글을 단건지 도통 알수가 없네... 앞 뒤 문맥도 안맞는 이런글 여기저기 쓰는거 자랑아니니 정말로 님의 뇌나 점검하시길.....^^
바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