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 태평양

봉달이 2018. 5. 25. 16:38

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2>



제 2 차 세계 대전 초반, 가장 쇼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한 무기가 있다면 바로 전차(Tank 戰車)를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전에 전차 포스팅..흑.. 마저 끝내야 되는데..곧바로 이어 나가겠슴다..냠~~ -_-;;)


나치 독일의 전격전과 함께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전차는 비록 1차 대전 시기에 처음 발명되어 전선에 투입된, 어쩌면 뻔한 무기였지만 수투카와 같은 지상지원 전폭기와 동시에 운용되며 그 빠른 기동성에 더해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당시에는 거의 완벽한 지상병기로 운용되었다.
전술적으로는 전차를 중심으로 이를 지원하는 보병, 포병 등 여러 병과를 통합하여 편성한 독일의 기갑사단(Panzer Division)이 2차 대전 초반에 그 위력을 발휘하였고, 전차는 지상전의 주력 병기로 그 전술적 가치를 증명했다(여기에 깜짝 놀란 연합국은 전차의 개량과 증산에 착수함과 동시에 육군 편제의 개편을 추진...)

2차 대전에서 가장 쇼킹한 신무기..전격전의 전차..


한편,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이 마주친 소위 “T-34 쇼크”는 이전에 해군이 경험한 바 있는 “전함 드레드노트(Dreadnought)의 출현”과 마찬가지로 기존 혹은 계획된 독일 전차를 완벽한 쓰레기로 만들며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고, 이는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시소게임이 되어 전차의 발전 및 대전차 무기의 빠른 개발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동부 전선에서 소련 전차와 대적하며 공룡처럼 대형화되며 진화를 이룬 독일 전차는 서부 전선에서 미영 연합군의 전차보다 성능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된다.


독일군이 마주친 떼 34는 한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다..


그러나 미군의 전차는 미국의 높은 공업력과 비례하여 대량의 전차를 생산할 수 있는 양산성이 높은 쪽에 주력하여 생산되었고, 5만대 이상 생산된 M4 셔먼 중전차는 높은 기계적 신뢰성과 우월한 병참 능력과 맞물리며 다수의 전차를 전선에 배치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미군과 서방측 연합군은 비록 성능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후달리나 수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질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었다(그래도 전차 승무원의 입장에선 악몽..)


질적으론 틀렸다..대가리 숫자로 승부를..!! 서부 전선의 셔먼..

 
하지만 유럽 전선에서 벌어진 독일 중전차와의 맞대결에서 "종이짝으로 만든 도어 노커" 소리나 들으며 맥을 못추던 M4 셔먼이라 할지라도 전차전에 있어서는 완전 쌈마이 전장이라 할 수 있는 태평양 전선에서는 정글의 맹수로 군림하며 "태평양의 킹 타이거"가 되었다.


 

신세 대역전.. 종이짝에서 킹 타이거로.. M4 셔먼..캬캬캬 


중일 전쟁에서 태평양 전쟁으로 확산되며 본격적으로 2차 대전에 뛰어들기 직전까지도 일본군 내부에서 “전차는 전차로 대응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는 한 웅큼도 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대전차 전투에서 대전차포의 역할은 필수적이었지만, 중일 전쟁에서 상대방인 중국군은 기갑 전력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고, 수많은 무관들이 파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유럽 전선에서 일어난 전차의 진화를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물론 몇몇은 있었지만 본토의 높으신 분들은 이를 쌩 깠다..)


전차? 뭐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정신력의 황군이 기계의 힘을 빌리다니..


오죽하면 관통력을 높이려면 대전차포는 구경이 커져야 하고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덩치가 커져야 하는데 당시 일본군 수뇌부는 그런 대구경 대전차포를 많이 보유하면 다수의 견인차가 있어야 한다며 이에 난색을 표했다(그거 만들 돈이 어딨어? 해군은 전투함! 육군은 항공기! 뭐 그러고 앉았다는..)


강력한 관통력을 가지려면 포가 커져야..그럼 견인차도..그럼 곤란..


따라서 충분한 대전차 방어 병기도 없이 전쟁을 벌인 이것들은 전쟁이 격화되며 연합군이 전선에 대량으로 중전차를 투입하자 이에 상응하는 중전차를 질적 물적으로 보유하지도 못했고, 상식적인 교전 거리 내에서 적 전차를 제대로 저지할 수 제대로 된 대전차 방어수단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못했으므로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 되었다.
전체적인 대전차 전력에 대한 대책과 실제적인 꼬라지가 이 판이었으므로 소부대 단위로 내려가면 대전차 대책은 더욱 서글퍼졌고, 일본군 보병은 미국의 바주카, 독일의 판저파우스트, 영국의 PIAT 등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 대량으로 보급되고 사용되던 보병 휴대용 대전차 장비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상황을 넘어, 아예 구경조차도 못 해봤기에 만약 보병이 연합군 전차와 마주치는 상황이 되면, 한마디로 눈물만이 앞을 가리는 형국이 되었다.


판저파우스트는커녕, 그 허접하다는 PIAT도 없삼..흑~ ㅠ.ㅠ

 
하지만 연합군의 M4 셔먼 같은 중전차와 대적하기에는 전혀 능력이 안 되므로 깔끔히 전쟁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일본군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황군스럽게도 온갖 잔머리를 굴려댔다(바주카 같은 소리 하네..죽창만 있으면 전쟁에 이긴다! 그것이 바로 황군! ㅠ.ㅠ)
물론 그런 황군다운 대전차 전법은 뻘짓 오브 뻘짓이기가 일쑤였고 그렇다면 여기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실시했던 개멍텅구리 대전차 전법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순위를 매겨보기로 하겠다.


어느 것이 가장 막장일까? 순서를 매겨보자!


먼저 5위는 파갑폭뢰(破甲爆雷) 되시겠다. 


당연히 일본군 수뇌부가 보병의 대전차 대응책을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것은 아니어서 태평양 전쟁에 돌입하기 전인 1935년부터 적 전차와의 보병 근접 전투를 궁리하였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99식 파갑폭뢰(九九式 破甲爆雷)였다.


5위...99식 파갑폭뢰(九九式 破甲爆雷)..


이놈은 한마디로 자석을 사용해 적 전차 장갑에 부착시켜 폭발시키는 아주 간단한 무기였지만(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후반부에 나오는 양말 폭탄 비스무리..) 일본 육군은 이런 놈 하나 개발하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고 개발 과정 중엔 택도 아니게도 1939년 1월 만주에서 실시한 영하 40도의 혹한기 폭발 시험까지 들어있었다.


작동 방식이나 위력 면에서 다를 바 없는 놈의 개발기간..5년..-_-;;


어쨌든 1940년 1월에 제식화된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대전차 병기는 보병이 직접 이 지뢰를 가지고 적 전차에 접근하여 차체에 자석을 이용해 부착시킨 다음, 안전핀을 뽑으면 약 5 초 후에 폭발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경우에 따라 안전핀을 뽑은 다음 수류탄처럼 투척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놈은 독일군이 동부 전선에서 KV-1 또는 KV-2, T-34 중전차와 마주치며 급히 개발한 흡착지뢰(Hafthohlladung 吸着地雷)가 먼로/노이만 효과(Munroe/Neumann Effect), 즉, 성형작약탄의 원리를 이용해 140mm의 관통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전차 장갑판 파괴 효과를 오로지 내장된 화약의 폭발 압력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놈이었다.


이런 고급스런 스킬과는 전혀 무관함..독일군의 흡착지뢰..

 

적군 전차의 장갑판에 붙여 폭발시킬 경우, 1개의 파갑 폭뢰는 약 20㎜, 2개의 폭뢰를 겹쳐 붙여도 달랑 30㎜의 관통력을 보인 이놈은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이 투입한 BT 전차의 장갑 두께가 달랑 13mm에서 16mm에 불과하였으므로 일본군 스스로 그 위력이 충분하다고 자평하고 자빠지며 그들 나름대로의 강력한 보병용 대전차 병기로 1940년 1월, 제식 채용되었다.


그냥 단순무식의 극치..폭약에 자석을 달았다! 끝...


이론적으로 5초짜리 시한 신관이면 적 전차에 붙인 다음 충분히 도망갈 시간이 되지만, 여러 대의 적 전차가 서로 엄호하고, 근처에 보병마저 전차를 엄호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할힌골 전투 초기 소련군의 전차 운용은 전차와 보병의 협력이 거의 없이 전차 부대 단독으로 일본 보병이 잠복하고 있는 진지에 침입을 시도했기 때문에 전차에 대한 보병의 직접적인 육박 공격이 상당히 수월했다.


처음엔 소련군이 멍청해서 나름 육박공격이 먹혔는데..


이런 소련군의 머구리식 전차 운용이 빛을 발한 것은 1939년 7월 2일에서 3일 사이에 할하강 연안에서 벌어진 전투로,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제 11 전차 여단의 전차 132대, 제 7 장갑차 여단의 154대, 장갑차 대대의 50대의 전차를 투입하였고 그중 100여대가 일본군에 의해 작살나며 일본군에게 엄청난 희망을 선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파괴된 소련군 전차의 대부분은 94식 37mm 대전차포에 의해 파괴된 것이며 소수만이 일본군 보병이 화염병 및 폭발물을 들고 육박 공격에 의해 파괴된 것이었지만, 일본군 수뇌부는 이 전과를 전통적인 뻥튀기로 부풀렸고 그 결과에 대단히 만족해하며 쾌재를 불렀다.


그것도 대부분 보병 육박이 아니라 94식 37mm 대전차포에 의한 전과..


그 직후 소련군은 이 전투에서 입은 피해와 전훈을 바탕으로 전차 운용 방식을 곧바로 개선했고, 이후 보병과 전차를 합동으로 운용하며 사전 정찰을 통해 일본군 방어선을 미리 파악한 다음, 전차를 앞에 3대, 후방에 2대 식으로 배치하여 일본군 보병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호 연계하여 진지를 제압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렇게 소련군 전차부대가 일본군 보병의 육박 공격을 사전에 봉쇄시키자 그 결과는 당연히 일본군 보병의 육박 공격에 의한 전과가 격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탈탈 털려 혼이 가출한 할힌골 전투 전체를 “승전”으로 포장한 일본 육군은 이후로도 이따위 전법으로 적 전차를 막아낼 수 있다고 자평하며 계속적으로 교육시켰고 결국 이런 의도된 뻘짓은 태평양 전선의 헬 게이트로 현실화되었다.


탈탈 털렸지만 승전이라고 믿어라! 그래서 보병 육박도 믿어야만 한다..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의 기갑 차량이 M3 경전차에서 M4 셔먼 중전차로 전환된 것은 대략 1943년 말로 생각되고, 실전 투입은 43년 11월에 벌어진 타라와 상륙 작전에서 미 해병대의 M4A2 셔먼이 사용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미군의 연대 규모 이상의 상륙 작전에는 모두 M4 셔먼 전차가 동행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전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 육군이 장장 5년에 걸쳐 개발한 자존감 만땅 대전차 병기 파갑폭뢰가 결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판단할 수는 없는데 실제 경전차에는 충분히 위력적이었다는 미군의 보고서도 존재한다.


1943년 말부터 진짜가 나타났다..타라와의 미 해병대 소속 셔먼..


실제 1942년 2월에 버마의 수도 랑군에 침입한 제 33 사단과 제 55 사단을 주력으로 하는 일본 제 15 군을 상대로 영국군이 벌인 전투에서 영국 제 7 기갑여단 소속의 제 2 전차 연대는 약 150대의 M3A3 경전차를 보유했고 대략 6대의 경전차가 일본군의 파갑폭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미 육군 정보부는 보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미 육군 정보부는 최근 버마의 전투 경험에 비추어보아 구구식 파갑폭뢰에 의한 손해는 분명 연합군 전차에 대한 일본군의 주요 위협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전차에겐 먹히기도 했는데..버마 침공시의 영국군 M3 경전차..


하지만 1943년 말부터 미군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며 M4 셔먼 중전차가 투입되기 시작하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고, 제 아무리 태평양 전선이 정글이나 산악 지대 등의 복잡한 지형이 많고, 일본군이 위장의 달인이라서 충분한 은폐와 매복으로 M4 전차에 바짝 접근해 파갑폭뢰를 붙이는데 성공해봐야 말짱 헛방이 되기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이는 지극히 당연해서, 유럽 전선에서 독일 중전차를 만나면 퐁퐁 뚫리기 일쑤였던 M4 전차의 양철장갑은 그중에서도 가장 얇은 부분인 차체 측면마저도 38~45mm에 달해 용하게도 일본군 보병이 이곳을 노려 파갑폭뢰를 붙인다고 하여도 무려 3개(1개 관통력 20mm..)를 겹쳐 붙어야만 하였기에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언제 그거 층층이 붙이고 앉았다냐?)


꼭꼭 숨었다가 죽기를 각오하고 붙여봤지만..어머나, 이게 뭐람? ㅠ.ㅠ


하지만 이런 허접한 물건일지라도 미군 전차병에게 심리적 효과는 있었던 모양으로 이후 이오지마 전투나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된 미군의 전차를 보면 자석식 지뢰가 붙여지지 않도록 차체 측면에 통나무를 붙인다던지 아예 콘크리트로 공구리를 치는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미군식 찌메리트 코팅..-_-;;)


그래도 불안감은 주었다는..나무판떼기 셔먼과 공구리 셔먼..


어쨌거나 저쨌거나 10명이 한 놈을 잡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파갑폭뢰의 머저리 짓거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감행해봐야 아무런 효과도 볼 수 없는, 한 마디로 삽질 대마왕이었지만 이런 짓거리가 겨우 5위에 랭크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실제 벌어지지도 않았던 폴란드 기병대가 전차에 돌입한 것이 인종적 멍청함을 보여주는 짓거리였다고? 에구구..)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s://www4.atwiki.jp/battlefield1942/sp/editx/145.html
https://www.rbth.com/blogs/2015/05/12/how_russia_blunted_the_german_blitzkrieg_43057
http://www.elgrancapitan.org/foro/viewtopic.php?f=12&t=17519&start=7260
https://relicsfromthefront.co.uk/products/triple-shell-wooden-crate-with-markings-for-75-inch-kwk40-shell-used-by-german-panzer-4-tank-and-stug-3-assault-gun-found-in-normandy-from-the-battle-in-the-summer-of-1944
http://shanxi.nekoyamada.com/?p=119
https://ja.wikipedia.org/wiki/%E4%B9%9D%E4%B9%9D%E5%BC%8F%E7%A0%B4%E7%94%B2%E7%88%86%E9%9B%B7
https://ww2aircraft.net/forum/threads/anti-tank-weapons.590/page-3

먹고 살기와 술병 때문에 포스팅이 늦었습니다..
지나간 답글은 내일 달아 드리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데 건강 잘 챙기시길 빌어요~^^
봉달님! 지금 건강이 문제가 아닙...
아니, 살살 하세요. 문득 미안해지네요. (--)a
그래도 좀 더 분발! (^^)b
이러저리 뭔가 발목을 잡는 게 많이 생기네요..캬캬
.... 참 난감한 것이... 저 왜군들의 뻘짓을 지금의 우리는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끝난지 20년이나 지나서 벌어진 월남전에서 베트콩들이 미군전차와 장갑차에 대항해서 똑같은 짓을 했다는 것이고....

대부분이 왜군과 똑같이 뻘짓임이 입증되긴 했지만.... 결국 전쟁에선 미군이 때리다 지쳐서 기권하고 물러났으니...

월남사람들이 초강대국 과 싸워서 이겼다는 정신승리를 부르짖으며 딸딸이 치는 거야 이해는 하는데....그 댓가가 너무 엄청나고 참혹했었죠...
저희도 마지막 대전차 공격무기는

휘발유를 병에 넣어 화염병을 만들어 투척하는것도 있었음
그보다 베트남 전의 베트콩들이야 아예 게릴라 전을 전략으로 내세웠지만 당시 저것들은 정규전을 전략으로 내세웠음에도 하는 짓이 저 꼬라지였다는 게 좀 안타깝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봉달님의 레파토리는 그 끝이 어딘지 대체 궁금합니다..
그..저도 잘 몰겠는데요? ㅎㅎ
다음편엔 자돌폭뢰나 대전차 총검술?
ㅎㅎㅎㅎ 글쎄요?
저 폭팔물 외곽에 붙어 있는 4개의 추가 자석인가요? 저런 위치에 있으면 부착점이 조금만 굴곡이 있어도 못붙일거 같은데
네모 상자 전차만 염두에 두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