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병기들과 숨겨진 명품들

봉달이 2018. 6. 1. 15:17

위험천만! 항모에 착함하기..USS 차저의 햇병아리들..



미 해군의 호위항모 USS 차저(USS Charger.. CVE-30)는 2차 대전 기간 내내 신참 해군 파일럿들의 이착함 훈련용 항모로 운용되었다.


 
차저는 원래 1940년 3월 14일 펜실베니아주 체스터(Chester)에 위치한 선 조선소(Sun Shipbuilding & Dry Dock Company)에서 9,100톤급 C3형 화물선의 하나인 리오 데 라 플라타(RIO DE LA PLATA)라는 이름의 화물선으로 건조되기 시작했다.
리오(Rio)급 화물선으로 불린 이 화물선은 리오 허드슨(RIO HUDSON), 리오 파나마(RIO PARANA), 리오 데 라 플라타(RIO DE LA PLATA), 리로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라는 4척의 동급 자매선으로 무어-맥코맥(Moore-McCormack)의 주문으로 건조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미국과 남아메리카를 왕복하는 항로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80% 완성 상태로 나란히 정박한 리오급 화물선들..


길이 약 150미터의 각 선박은 196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16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도록 건조되었다.
하지만 1941년 3월 1일 진수된 리오 데 라플라타(RIO DE LA PLATA)를 포함한 4척의 리오급 화물선은 1941년 5월 20일, 미 해군위원회에 의해 미완성 상태로 모두 미 해군에 구입되었다.
미 해군은 이 화물선들을 구입한 다음, 롱 아일랜드 급 호위항모(Long Island class Auxiliary Aircraft Carrier)를 기반으로 한 호위항모로 개조하여 대서양에서 독일의 유보트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던 영국 해군에게 원조하기로 결정했고, 이 배들은 1941년 10월 2일, 버지니아 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Newport News Shipbuilding & Drydock Company)에서 80% 완성된 상태로 미 해군에 납품되었다.


영국 해군의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기로 호위항모로 개조..

 
이곳에서 화물선 리오 데 라 플라타는 영국 해군으로부터 HMS 차저(HMS CHARGER, BAVG-4)라는 함명을 부여받은 다음, 호위항모로 개조되기 시작했는데, 상부 구조물에 선박 길이의 70%를 덮는 경량의 목재 비행갑판을 설치하고, 1대의 항공기용 엘리베이터가 부착되었으며, 비행갑판 아래에 작은 밀폐식 격납고를 설치하고 함 우현에는 소형 아일랜드식 함교가 설치되었다.


차저급 호위항모의 항공기 엘리베이터와 아일랜드..

 
1941년 10월 2일, 영국 해군의 RF 맥카트(RF McArt) 중령이 함의 초대 함장으로 부임했으나 이틀 뒤인 10월 4일, 2차 대전의 양상이 점점 악화일로를 걸으며 미 해군 항공대의 확장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기 시작하자 HMS 차저는 미 해군 항공대 파일럿들의 훈련함으로 지정되며 다시 미 해군에게 반환되었다.
차저는 1942년 1월 24일, 영국 해군의 “BAVG 4”에서 미 해군의 “AVG 30”으로 재분류되었는데 이 함은 미 해군에게 반환된 유일한 영국 해군의 호위항모였으며 1942년 3월 3일, USS 차저로 미 해군에 취역했다.


줬다가 뺏는 게 좀 글치만 우리 코도 석자라서..미 해군에 반환된 차저..


미 해군에 취역한 차저의 운영 지역은 메릴랜드 주와 버지니아 주 인근의 대서양에 위치한 체사피크 만(Chesapeake Bay)이었는데 주 임무는 미 해군 항공대의 신참 조종사와 항모 운영요원의 기초 훈련 임무였다.


미 해군 신참 조종사와 항모 운영요원의 기초 훈련용 항모가 된 차저..

 
당시는 당연하게도 오늘날의 항법 컴퓨터와 같은 보조 장치가 전혀 없었고, 항공기를 항모에 착함시킨다는 것은 코끼리를 타고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작은 널빤지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표현될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으며, 오죽하면 비록 착함한다하여도 파일럿이 “내려서 걸을 수 있다면 좋은 착함이다(To naval aviators, any landing they could walk away from was a good landing)”는 농담이 나돌 만큼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내려서 걸을 수 있다면 좋은 착함이다! ㅠ.ㅠ


차저는 미 해군에 갓 입대한 신참 파일럿 훈련생들에게 좋은 착함 훈련을 시켰지만, 나쁜 착함도 교육의 일부였으며 체사피크 만에 떠있는 차저의 목재 데크는 예비 파일럿들을 위한 최초의 해상 착륙장 역할을 했다.



당시 차저에서는 테일 후크(Tailhooks)가 착함 와이어를 놓쳐 항공기가 바다에 빠지고 착륙 장치가 붕괴되며, 프로펠러가 갑판을 작살내고, 조종사가 지나치게 높은 각도로 착함을 시도하여 튕겨나는 일은 거의 매일 발생하는 일상이었고 이런 사고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터지고 고꾸라지고 빠지고..일상 다반사..

  
당시 차저에는 해군 소속 카메라맨이 상주하며 이 모든 훈련 상황들을 기록했는데 에드워드 L. 왈거(Edward L. Walger)는 이들의 일원이었다.
그는 북아프리카 침공 작전인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에 참여하기 위한 병력호송선인  테스커 H 블라이스(USS Tasker H. Bliss AP 42)를 타고 있다가 1942년 11월 12일, 독일 잠수함 U-130이 발사한 어뢰를 두들겨 맞고 침몰한 사고에서 살아남은 운좋은 생존자들 중 하나로 이후 차저에 배속되었다.


테스커 H 블라이스에 탓다가 운좋게 살아남은 에드워드 L. 왈거..


그가 남긴 사진들을 통해 우리는 2차 대전 중 차저에서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의 사진들은 당시 신참 파일럿과 항공 대원들이 직면하고 견뎌야했던 위험을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차저의 비행갑판에서 훈련된 인원들은 이후 2차 대전의 바다에서 수송대 호위와 대잠 작전은 물론, 미 해군 항공대가 펼친 수많은 성공적인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했다.


너무 낮게 착함을 시도한 사례..


반대로 너무 높게 착함을 시도하면..ㅠ.ㅠ


기타 일상 다반사인 갖가지 사고들..모두 차저에서 촬영..


또한 미 해군의 항모 차저는 새롭게 개발되는 미 해군의 신형 기체들의 테스트용 항모이기도 하였다.


프로펠러와 터보제트 엔진을 결합한 미 해군 최초의 전투기 라이언(Ryan) XFR 파이어볼(Fireball).. 1944년 12월..


 

세계 최초의 대량 생산 헬리콥터 시콜스키 R-4.. 사진은 영국 해군용으로 제작된 호버플라이(Hoverfly) I의 테스트..1944년 11월..


1942년 8월, 노퍽(Norfolk) 해군 공창에 전함 뉴욕과 나란히 정박한 차저..


2차 대전 종전 시까지 훈련항모로 사용된 USS 차저는 1946년 3월 15일 퇴역 처리되었고, 1947년 1월, 상업용 선박으로 판매되었으며, 이후 여객선으로 개조되어 페어씨(Fairsea)라는 이름으로 주로 유럽 – 호주간 항로에 투입되었다.
여객선 페어씨는 1969년 1월 29일, 파나마에서 엔진실에 화재가 발생했고, 예비 부품이 없었던 관계로 결국 이탈리아에서 스크랩 처리되었다.



다른 항모 갑판원보다 훨씬 똥줄타겠군요
비행기 에서 보는 항공모함은 정말 밤톨만하게 보인다네요

미해군 조종사들의 이착륙 실력이 공군보다 좋다는 애기는 당연한것 같네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게 아니겠지요!!
항모 이착륙사고로 인한 비전투손실도 무시 못하겠습니다
아일랜드거 귀여워요~ㅋ
착함 기술이 많이 발전한 지금도 해군 조종사들은 착함을 "통제된 추락"이라고 한다죠.지금도 그런데 그때는 어땠을까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느 다큐에서 보니 해군 항공대 사상자 중 전투 손실보다 이 착함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가 더 많았다고 하더군요.미 해군 항공대 파일럿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항모 착함은 아무리 반복해도 절대 쉬워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저 배는 거디에서 운용되었을까요? 미시간호는 아닌가 봅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대로 메릴랜드 주와 버지니아 주 인근의 대서양에 위치한 체사피크 만(Chesapeake Bay)에서 운용되었습니다..
주로 대서양에서 영국으로 보내지는 수송선단을 보호하기 위한 항모의 조종사 양성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미시간 호에서는 태평양 방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