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 태평양

봉달이 2018. 6. 5. 15:15

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4>



앞에 소개한 일본군의 대전차 전법들도 어지간히 황군스럽지 않으면 나올 수 없을 법한 개등신 짓거리였지만, 이제까지 본 저런 똘추 짓거리도 개인적인 순위를 매겨보면 고작 4~5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황당할 따름이다.
이번 순위는 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앉았다는 것도 골 때리지만 하마터면 전 세계적 헬 게이트를 불러올 수도 있었던 미친 짓거리를 이 또라이들은 아무 스스럼없이 구상했다는 것이 학을 띠는 사례다.


까도 까도 끝이 없다..


일본 육군이 중국 전선에서 스스로가 구사한 전술들이 충분히 먹힘을 항가거리며 자조할 때, 이들에게 전차란 어떤 놈인가를 확실히 각인시켜주며 아구창을 털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1939년 5월, 만몽 국경지대에서 발생한 할힌골 전투였다.


이때 소련군은 2개 전차사단, 2개 전차여단, 2개 차량화 보병사단의 전차 약 500대, 장갑차 450대를 동원, 맨몸뚱아리 일본군 보병의 혼을 가출시켰고, 중국전선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육군은 최초의 대참패를 맛보았다.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 돌입하며 동부전선에서 소위 T-34 쇼크를 맛 본 직후 엄청난 혼란에 빠졌듯이 일본 육군도 할힌골에서 소련군의 BT 전차에 작살나며 소위 “BT 전차 쇼크”에 빠졌다.


할힌골에서 일본 육군이 맞본 소위 BT 전차 쇼크..


할힌골 전투 당시 소련군은 T-34와 KV-1 전차 같은 장갑이 두터운 중전차를 아직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비록 상대적으로 빠르긴 하지만 장갑이 얇은 BT-5(전면장갑 13mm..)와 BT-7 (15~20mm..), T-26(15mm..) 등의 경전차와 FAI , BA-3 , BA-6 , BA-10 , BA-20(6~13mm) 같은 장갑차를 다수 투입했는데 황당하게도 이를 상대한 일본 육군은 바로 패닉 상태가 오게 된다.


T-34도 아니고 BT-5(위)나 BA-10 같은 허접을 상대했지만 까무러침..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 육군이 보유하고 있었던 대전차포인 94식 37mm 속사포(九四式 37mm 速射砲)로도 경장갑의 소련군 전차들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실제 1939년 7월 3일, 할하 강 서안에서 소련군 제 11 전차여단에 맞선 일본군 속사포 부대는 트럭 화물칸에 속사포 1문을 올려놓고 이동하면서 포격을 실시하여 50~60대의 소련군 전차 중 41대를 격파한 기록도 있다.
당시 일본군의 대전차 주력 병기인 94식 37mm 속사포는 전후 소련 측이 인정하기에도 “아군의 모든 전차의 장갑을 무리 없이 관통할 수 있으며, 매우 가볍고, 발견하기 어려운 기동 무기”이며 대전차 전투에 매우 효과적인 무기임을 입증했다.


나름 쓸만했던 일본 육군의 대전차 병기.. 94식 37mm 속사포..

 

따라서 이런 결과를 따져보면, 정상적인 머리의 지휘관이라면 앞으로 발전할 전차에 대비하여 우수한 대전차포의 개발과 대량 보유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이노마들의 대가리는 영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할힌골 전투 직후 일본군 수뇌부들이 가장 높게 평가한 대전차 전법은 바로 보병의 육박 공격에 의한 화염병 투척 전술이었으며, 할힌골 전투 당시 일본군의 화염병 육박 공격조는 화염병 2~3개와 수류탄 수발을 가진 2명이 1개조로 참호에 틀어박혀 전차가 접근하면 화염병을 전차를 향해 던지는 방식으로 전투를 수행했다.


그러나! 역시 제일 쓸만한 건 대전차 육탄! 캬캬캬..

 

하지만 이는 인명의 경시 차원을 떠나 비용 대 효과 면에서도 영 머구리 짓거리였고 실제로도 일본 육군의 높은 평가와는 정반대로 소련 측은 이 따위 쌩양아치 짓거리에 그다지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소련군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휘발유를 넣은 유리병을 전차에 투척하는 전법을 사용했지만 이 전법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7월에 벌어진 전투에서 파괴된 제 11 전차여단의 전차 20대를 조사한 결과, 대전차 포격을 받기 전에 화염병에 의해 파괴된 것은 불과 2대에 불과했다.”라고 되어있다.


니네 평가와는 달리 우리가 보니 피해는 별로..


따라서 일본 육군이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했다는 보병 육박돌격에 의한 전과는 이 기록을 놓고 보아도 달랑 10%에 불과했고, 나머지 대다수는 대전차포에 의한 것이었지만 당시 일본군 대가리들은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싸그리 무시했다.

그 이유야 지극히 당연하게도 대전차포 개발이나 대량 보유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었으며 반대로 언제든 불러 모을 수 있는 쫄따구들은 그저 1전 5푼(一銭五厘)짜리 징집영장 한 장이면 언제든지 주구장창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싼 거 언제 만들고 있냐? 엽서 한 장이면 적 전차가 한 대! 쿨럭~

 

그렇다고 그저 대전차 소모품으로 쓰려한다면 당장 반발이 일어나겠기에, 이들은 온갖 대국민 프로파간다를 동원, 보병이 전차를 육탄 공격으로 격파하는 용감한 모습을 강조했고, 이를 우상화시켰다.


하지만 소련군 또한 도통 바보들은 아니어서, 전투 초반 몇 번 일본군의 이런 육탄 공격에 피해를 입자 새로운 전술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군의 대전차 진지 대책으로 전차 소대를 앞줄에 3대, 뒷줄에 2대의 형태로 운영하는 아주 심플한 대책의 수립이었다.
이는 앞줄의 전차를 공격하기 위해 일본군의 속사포 혹은 육탄 공격조가 노출되면 뒷줄의 2대가 이들을 소탕한다는 간단한 전술로, 특히 이 전술은 화염병이나 대전차 지뢰를 가지고 숨어 있다가 육탄 공격을 감행하려는 일본군 보병에 큰 효과를 발휘했고, 이 전술이 도입된 직후부터 일본군의 육탄공격은 참호에서 머리를 쳐들자마자 탈탈 털리며 거의 무력화되었다(여기에 더해 소련군은 전차의 머플러를 개조하는 등, 여러 가지 대책도 함께 시행했다..)


소련군이 전술을 바꾸자 구멍 파고 들어 앉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탈탈 털린다..

 
이후 일본군 보병에 의한 화염병 투척 공격의 전과는 급감했고, 초기 전투에서 나름 효과를 발휘하던 이 전술이 점점 막장이 되어가자 일본 육군 제 23 사단장 코마츠바라 무치타로(小松原道太郎) 중장도 전투 일지에 “적의 우수한 전차 출현. 화염병 육박 공격도 효과 없음”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일본 육군 수뇌부의 생각은 영 달라서 사람 목숨을 돌같이 여기는 그들답게 보병에 의한 육박공격이라는 이 “싸고 효과 빠른 전술”을(무슨 두통약이냐?)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이에 대한 대책으로 별 거러지 같은 아이디어를 내놓게 된다.


개띨띨이 코마츠바라(위..처 웃기는..확마!)도 인정했건만 여전히 닥돌~~!!

 
그것이 바로 보병이 육박 공격하되(돈이 들지 않으므로..-_-;;;), 화염병보다 그 효과가 확실한 대전차 투척병기의 개발이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대전차 청산가리 수류탄, 일명 “치비탄(ちび弾)”이었다.


이 양아치들은 적의 전차를 보병이 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보병용 대전차 병기나 대전차포의 개량 같은 것이 아닌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을 생각했고, 이의 즉각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할힌골 전투가 끝난 직후인 1940년, 일본 육군 참모본부는 육군 기술연구소 화학반에 자신들의 구상을 담은 병기의 개발을 지시했고, 내부에 청산(青酸, 시안화수소, Hydrogen Cyanide..흔히 청산가리라 부르는..)과 구리 분말을 충전한 유리공에 불과한 이 간단한 무기는 불과 두어 달 만에 그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두둥~~ 그렇게 탄생한 대전차 청산가리 수류탄..치비탄..흑~~ ㅠ.ㅠ

 
주로 보병용 대전차 무기로 사용되지만 토치카나 콘크리트로 보호된 야포 진지 등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 무기는 내부에 있는 병력을 청산가스로 중독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놈의 이름 치바탄은 “소련군의 BT 전차를 단 한 발로 홀랑 뒤집는다.”는 의미로 BT를 거꾸로 읽은 TB, 즉, 일본어로 “치비(テベ)”가 되었다(아..골 때리는 색기들..)


단 한 발로  BT 전차를 홀랑 뒤집는다! 그래서 치~비~! 아.. C-BA..ㅠ.ㅠ


그 구조는 지극히 간단해서 지름 10cm 정도의 유리공에 청산과 구리 분말을 채운 것으로 청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해되며 독성을 잃는 성질이 있었지만, 육군 기술연구소에서는 황산구리 분말을 함께 넣어 청산의 분해를 방지했다.
이놈은 전차를 향해 투척하면 유리 용기가 깨지면서 청산가스가 전차 엔진의 배기를 통해 내부로 침투하고 전차 승무원들은 청산을 들이 마신 직후, 호흡이 멈추면서 전차 내부의 병력이 사망하는 효과를 노린 놈이었다.


요따우로 생겨 먹었다..나 어릴 때 들고 다니던 보온 도시락 아녀?


전차와 견교하게 보호된 토치카 등에 투척하지만, 접근이 어려운 경우에는 전용 투사기를 사용해 여러 발을 집중 사격하는 것도 연구되었고 일반 부대가 사용하는 것 외에 공수부대 같은 기습 효과를 노리는 부대가 사용하는 것도 기대되었다.
보병의 일반적인 소화기는 전차나 토치카 등에 대해 무력하지만 치바탄은 일격에 섬멸을 기대할 수 있으며, 공수부대의 기습작전 시엔 은밀하고 신속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 똘팍들은 생각했다(당연하지..화학무기인데..-_-;;;)

치바탄 연습 장면..염소를 향해 투척~~!!

 

마침내 겁도 없이 이 위험천만한 무기의 대량생산에 돌입한 이것들은 1941년 4월에 이르면  히로시마 현 다케하라(広島県 竹原) 인근에 위치한 일본 육군의 화학무기 전용 공장 오오쿠노시마(大久野島)에서 다른 화학무기 외에 이 대전차 청산가리 수류탄만 87,000발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일본 육군의 화학무기 전용 공장 오오쿠노시마..


하지만 이런 걸 개발하고 자빠지는 것도 황당한데 더욱 골 때리는 것은 당시 일본군은 이것을 그저 보관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 전장에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당시 제발 상대가 화학무기를 써주기만을 바라며 독가스를 못 써서 안달하던 처칠의 영국군을 상대로 말이다(처칠의 가스탄 사용과 관련한 대표적인 발언.."나는 비문명화된 종족들에 대한 독가스 사용을 적극 지지한다!".. 크흑~~~ ㅠ.ㅠ 참조 → http://blog.daum.net/mybrokenwing/668)


이것들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만..안 그래도 근질거려 죽겠는데..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 남방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말레이로 향하는 호송선단의 선상에서 병사들을 상대로 이 청산가리 수류탄을 설명하는 강습회가 열렸고, 당시 강사 중의 하나였던 일본 육군 제 5 사단 11연대 소속 오치 하루미(越智晴海) 소위는 훗날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는 빨간 선이 그어진 나무 상자에서 직경 15cm 정도의 원통형 캔을 꺼내 뚜껑을 열고 직경 10cm 정도의 녹색 유리 공을 꺼냈다. 구슬 속에는 투명한 액체가 약 3분의 1 정도 들어있었다.
나는 이 유리 공을 들고 병사들에게 설명했다.
“유리 공이 깨지거나 공기에 닿으면 맹렬한 청산 가스가 발생한다. 사용할 때에는 소대장 이상의 명령에 의한다. 적 전차 또는 토치카 공격에 사용한다.”



그렇게 설명하자 “던진 뒤에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질문이 나왔고, “던진 후에는 바람을 피해 도망간 뒤 숨을 참아라.”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것을 각 분대에 두 발씩 지급한 뒤 허리춤에 묶어두라고 명령했다.


화학병기나 수류탄이나 매 한가지..걍 던지고 숨는다..아무 생각 없다는..


현재 일본의 방위 연구소에 남아있는 <남방작전을 위한 배당 자재표(南方作戦の為の配当資材表)>라는 자료에 따르면, 말레이 공략을 책임진 제 25 군에는 치비탄 1만발, 필리핀 공략의 제 14 군에는 3천발이 할당되었던 반면, 버마 공략을 책임진 제 15 군에는 이 가스탄의 공급이 배제되었으므로 총 1만 3천발의 화학무기가 실제 전장에 투입되었고, 이는 그 해 생산량 8만 7천발의 약 20%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남방작전에 투입되는 부대들에게 실제로 보급되었다..약 1만 3천발..

 
이게 이렇게 보급만 되고 사용되지는 않았냐면, 또 그것도 아니어서 이 무데포 거러지 군대는 실제로 이 화학무기를 전장에서 사용했다.


태평양 전쟁 개전 당일인 1941년 12월 8일 새벽, 제 18 사단(당시 사단장은 그 유명한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흑~~ -_-;;) 보병 제 56 연대를 기간으로 하는 타쿠미 히로시(佗美浩) 소장의 타쿠미 지대(佗美支隊) 병력 5,300명이 말레이 반도 북단의 코타 바루(Kota Bharu) 해안에 상륙을 시작했고, 오전 1시 30분, 해안선에서 영국군 제 9 사단 제 8 여단 병력 6,000명과 교전을 시작했다.


말레이 북단의 코타 바루(Kota Bharu) 해안에 타쿠미 지대(佗美支隊)가 상륙..

 
당시 이 해안엔 영국군에 의해 강력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어서 일본군의 상륙 1파는 두 명의 대대장을 포함 다수의 사상자를 냈으며, 상륙 2파 또한 대대장이 상륙과 동시에 전사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전사자 320명과 부상자 538명이 발생하는 대 피해를 입었지만 타쿠미 지대는 8일 정오까지 교두보를 확보하고 당일 밤에 폭풍우를 기회삼아 야습을 감행, 비행장을 제압함으로써 다음 날에는 코타 바루 시내를 점령할 수 있었다.


당시의 악전고투를 그린 기록화와 코타 바루 시내에 들어선 일본군..

 

이때 타쿠미 지대는 영국군의 강력한 방어선과 견고한 토치카를 제압하기 위해 야습 작전에서 치비탄을 사용했으며 이를 근거로 하자면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개전과 동시에 화학무기를 사용한 셈이 된다(이런 겁대가리 상실한 것들..)

또한 말레이 작전에 투입된 근위사단 제 4 연대는 1월 21일에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군의 M-3 경전차와 장갑차에 맞서 제 1 대대가 “치비탄을 이용한 육탄전을 감행, 7대를 격파 하고 100여명을 살상했다”고 보고하기도 한다(대대의 전투 상세 보고서에 따르면 1월 15일~26일까지 치비탄 10발을 사용했다고..)


어째 잘 나간다 했더니 이것들이 극악스럽게도 독가스를 던졌다..


하지만 남방작전 전체 기간을 통해 보면 보급된 수량에 비해 실제 치비탄이 사용된 양은 극히 적었는데 예를 들어 제 5 사단 전체의 소비량은 불과 34발에 그쳐 사단 전체 보유량에 비해 소비량은 극히 적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사례가 2차 대전 전체를 탈탈 털어 정규군이 전장에서 민간인이 아닌 상대 정규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쓴 유일한 사례였다(아주 또라이가 따로 없다는..)


하..이런 양아치들..할 말 없음..


어쩌면 이런 상황을 통해 당시 일본군이 화학탄의 사용에 특히 신중을 기한 걸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 이유는 극히 허탈해서, 빈약하기 그지없는 구조의 케이스에 든 유리 공은 격렬한 전투 중에 너무도 쉽게 깨져 나갔고, 허리에 차고 뛰어다니던 치비탄이 깨지며 누설된 가스로 아군 병사가 사망하는 경우가 빈발하자 그게 무서워서 사용할 수 없었던 것에 불과했다(그럼 그렇지...잘만 만들었으면 실컷 던지고 돌아다녔을 듯..)
예를 들어, 제 16 사단의 필리핀 바탄 반도 공략전을 취재한 기자의 수기에 따르면, 바탄 요새의 방어력이 강력하여 제 14 군은 치비탄을 포함한 독가스의 사용을 고려했지만, 당시 전선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투척한 독가스에 의해 아군도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을 우려해 중단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도 써보려 했지만 너무 가깝다..잘못하다간 우리가 자빠진다..

 
또한 1941년 10월에는 연일 격렬해져만 가는 과달카날 전투에서 전세를 뒤집기 위해 대본영은 이 지역을 담당하던 제 17 군에 치비탄 500발을 할당했지만, 위에 설명한 것처럼 엉뚱하게 지네가 자빠지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이르면 서서히 미군의 능력이 드러나며 화학전 능력에서 일본을 훌쩍 뛰어넘는 연합군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생겨 결국 극히 드믄 경우 이외에는 거의 사용이 중단된다(하지만 무타구치 렌야의 임팔 작전 도중 영국군의 발렌타인 전차를 향해 사용되기도 했다고..)


과달카날에서도..그런데 들켰다간 아작날 듯..


마침내 1944년 7월 14일, 도조 히데키(東条英機)가 육군 참모총장 명령으로 대본영의 지시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치비탄을 포함 모든 화학 무기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시켰고, 각급 부대가 보유한 화학탄은 모두 본토로 후송할 것을 전 군에 명령했다(대륙 지시 제 2061 호(大陸指 2061号)..)


우째 제 정신 돌아올 때도 있는 듯..독가스는 쓰지 마라...도조~~


이러한 전선의 사정이 반영되어 일본 육군의 청산가리 대전차 수류탄 치비탄은 1941년의 8만 7천발 생산을 정점으로, 이듬해인 1942년에는 5만 5천발, 1943년에는 2만 5천발 생산으로 그 생산량이 격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며 이제 카미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실시되던 1944년 중반에 이르면, 아니나 다를까 다시 이 지랄병이 발병하면서 4만발의 대량 생산이 계획되었다.

여기에 더해, 당시까지 치비탄에 무관심하던 일본 해군마저도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눈이 홱 돌아버려 사이다병에 액체 청산을 채운 허접 청산가리 수류탄 "4호 특약병(4号特薬ビン)" 1만발을 급조하기에 이른다.

안 쓰긴 개뿔..이젠 유리 병도 없어서 도자기로 청산가리 수류탄을..

 
물론 이것들은 모두 본토 결전에 대비한 것들이어서 비축되었을 뿐, 더 이상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고, 그렇게 패전을 맞이한 것은 일본에게 있어 엄청난 행운이었는지 모른다(열도 전체가 가스 쑥대밭 안 된게 어디냐?) 
거기에 더해 개전 초기 양아치스럽기 그지없는 치비탄의 사용이 연합군에 의해 발각되었다면, 당연히 후퇴를 거듭하던 연합군의 보복 공격을 불러왔을 것이고(연합군이 화학무기가 없어서 안 쓴게 아니다..보유량은 훨씬 많았다는..), 그렇게 되었다면 1차 대전에 이어 2차 대전 또한 생화학 무기라는 대량 살상 무기의 무차별적 사용으로 확산되어 새로운 헬 게이트를 열어 젖혔을 것이 틀림없었다.


니넨 참 행운아들이라 생각해..에휴..그때 걸렸어야 했는데..

 
실제 연합군 측도 그런 낌새를 챈 적이 있었는데 1942년 1월, 영국 육군 정보부가 미국과 소련에 통보한 정보 보고에 따르면 “전투 중 일본군 병사를 총검으로 찔렀는데 그것이 벨트에 달고 있던 용기를 관통하자 가스가 누출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연합군 수뇌부는 전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인데 가스탄을 사용한다는 것도 의심스럽지만, 아무리 단순무식한 일본군이라 해도 위험천만한 독극물을 유리 용기에 넣는 것도 모자라 병사 개개인이 갖고 다니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를 묵살했다(그래서 걍 자결용이라 치부..하지만 그게 레알이었다능..그런 반응은 황군을 무시하는 처사얍!)


설마 이딴걸 들고 그런 미친 짓을 할리가..그건 황군을 무시하는 처사요~~


어쨌든 그저 전차 잡을 무기 만드는 것이 돈 들고 귀찮았던 일본 육군이 선택한 이 양아치 짓거리는 전 세계적인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었고 들키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던 이 개똘팍 짓거리를 대전차 삽질 랭킹 3위에 선정한다.


여담으로, 훗날 일본의 대표적인 삐딱선 방송국인 <TV 도쿄(テレビ 東京)>의 설립자가 되는 당시 일본 육군 참모본부 참모 츠노다 토모시게(津野田知重) 소좌가 도조 히데키 암살을 기도했을 때, 그는 일본육군의 화학 무기에 관한 교육을 담당하던 나라시노 학교(習志野学校)에서 들고 나온 치비탄을 사용해 도조를 암살할 계획이었다.


도조 암살에 써 먹으려 했다는..츠노다 토모시게(위 좌측)..


그는 거사일을 1944년 7월 25일로 잡았는데 기이하게도 도조가 가스 무기 사용금지령을 내린 1944년 7월 14일 직후인 7월 18일에 도조 내각이 자빠지며 계획은 미수에 그쳤다.
따라서 어쩌면 도조 히데키가 일본 육군이 개발한 희대의 뻘짓 무기, 대전차 청산가리 수류탄의 마지막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_-;;)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www.picluck.net/user/saint_paul_1994/732324796/1253797107866465828_732324796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halkhin_Gol_Soviet_tanks_1939.jpg
http://tomboy205.cocolog-nifty.com/blog/2010/04/2010-1868.html
http://www.isiatama.com/ryusyoki/s2.htm
http://www.nagai-bunko.com/theme/chibidan.htm
http://rekishi-memo.net/worldwar2/murray_singapore_capture_battle.html
http://mokuou.blogspot.com/2015/08/blog-post_8.html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Bataan

아니 그럼 이게 삼등이면 1등 2등은 얼마나 기발한 무기가 '정강황군'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참고로 무기가 아니라 전술입지요..
그런걸 전술이라 불러야 하나가 문제이지만요..
1위와 2위는 도대체 무엇? ㄷㄷㄷㄷ
흐흐흐흐 글쎄요...
이런 뻘짓을 생각해냈다는것에 놀라고, 이게 2위도 아닌 3위라는것에 또 놀라고...저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더이상가는 뻘짓은 없을거 같은데요
전 더 이상가는 게 있다고 생각해서요..
뭐 개인적 판단이지만 말입니다..^^
치바가 아니라 치비 아닌가요?
일어로 써있는 것도 그렇고 BT를 뒤집어 읽은 것도 그렇고
흑~ 제가 눈에 뭐가 씌었나 봅니다..-_-;;;;
제가 알던 할힌골 이야기는 나왔는데, +알파가 무궁무진하군요.
정말 얘네들의 똘끼스런 창의성은 칭찬합니다.
다음 글 기다립니다. 속히~~~
ㅠ.ㅠ
지금처럼 축적하신 결과물로 출판하시면 합니다. 일본 외무성 꼭지가 돕니다.
흠..국제 소송 들어오면 곤란한데요...
사기 친 건 없지만서도..
한데, 이것은 민간에서 했기에 국가가 개인에게 소송을 한다? 가능한 이야기 아닙니다. 그리고 어띠까지나 fact 근거해서 하는것인지라, 승소할 근거 별로 없습니다. 국제 소송을 걸어온다? 외교부에서 알아서 지원할것인바 그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