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 태평양

봉달이 2018. 6. 15. 12:42

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5>



만주에서 항공기 승무원 훈련을 실시하고 있던 관동군 제 5 연습 비행대는 1945년 8월 15일, 몽키킹의 항복 방송 이후 관동군 사령부로부터 전투 중지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강간과 강도질에 특화된 군대인 소련군은 일본군이 전투를 중지한 이후에도 잔학한 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여기에 더해 황군의 몸으로써 “어떻게 싸워보지도 않고 소련군에게 항복할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결국 이 부대원들끼리 소련군 전차부대에 대한 별 시덥지도 않은 일격을 준비하는데, 그것이 바로 항공기에 의한 “대전차 카미카제”였다.


이 무지막지한 것들이 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ㅠ.ㅠ


쉽게 말해 소련군 전차에 대해 비행기로 자살 박치기를 감행한다는 이 얼치기 짓은 그 누가 뭐래도 병신 삽질에 지나지 않으며 뭐라고 쉴드를 쳐 줄래야 쳐줄 건덕지가 없는 일이었다.
이와 관련된 사항은 전에 포스팅한 바가 있으니(참고 → http://blog.daum.net/mybrokenwing/437) 이쯤에서 때려치우기로 하고, 단 한가지만 생각해 보자면 비행기로 전차에 박치기 해봐야 1대로 1대 잡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 해 봐야 딸랑 전차 1대가 전부..

 

따라서 이걸 전제로 그냥 비용 대 효과 면에서만 생각해보겠다.


내가 부족하여 이들이 사용한 97식 연습기(九七式練習機)의 정확한 가격을 알아내지 못한바, 비스무리한 놈인 영식 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제로센의 1945년 가격을 대입하면, 이놈 제작 단가가 107,000엔이었고, 오늘날 가치로 곱하기 3,503 하면, 374,821,000엔, 즉, 우리 돈 37억 4,821만원되시겠다.   
37억짜리 비행기를 꼬라박아 부술 수 있는 소련군 T-34 전차 1대의 가격은 1945년에 135,000 루블(ruble)로, 당시 루블화는 고정 환율에 이르기까지 실물 경제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므로 여러 가지 상수를 대입하면 대략 25,000 달러로 추산되고, 이는 현재 우리 돈 2억 6,000만원에 해당한다(참고로 셔먼 전차 기본형이 오늘날 약 607,861 달러, 약 6억 1천만 원 정도..)


37억 VS 2억 6천..이게 사람 대가리에서 나올 생각인지..


따라서 그냥 간단한 산수로도 37억 원 투자해서 7억 원 버는 황당한 장사가 되고, 이 계산도 박는 족족 명중시키거나 성공한다고는 못하니 말짱 엉터리 계산이며, 여기에 더해, 남아있는 자료상으로도 이들이 맨땅에 헤딩해서 얻어낸 전과는 전무하다(이런 걸 쌀 팔아 똥 사먹는 짓거리 라고 한댄다..) 


항공기로 전차를 들이박는다..이게 말이냐, 막걸리냐?


따라서 이런 “항공기에 의한 대전차 카미카제”를 랭킹 2위에 자랑스럽게 올려놓겠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된 자료 조사 중 국내에서 발견된 황당한 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내 보수 언론의 대표격이라 치부되는 어느 양반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관련 내용을 보면(참고 →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62793&C_CC=AZ), 마누라까지 같이 데리고 지랄한 이 내용이 마치 국가를 지키기 위한 장엄한 희생의 표상처럼 떠들고 있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까무러치겠다.


마누라까지 데리고 한 이 지랄 옆차기가 애국이라고?


국가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국민이란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지 국가라는 것이 국민이 목숨을 버려가며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것에 나는 결코 동의하지 못하겠다.
목숨 바쳐 지키자고 난리들 치던데, 국가란 대상이 국민을 지켜주지는 못 할망정, 국민이 목숨을 바쳐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국가를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거 기본 아닌가?

 
따라서 그렇게나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싶어서 환장하신다면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당신들이 먼저 앞장서서 기꺼이 바쳐주기를 권장한다.
그렇게나 애국, 애국 나불거리는 당신들이 뒤에 앉아 나불거리지만 말고, 먼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준다면, 그땐 나도 한번 생각은 해 보겠다.


나라가 통째로 넘어갔소..빨리 행동을 보여주쇼..


국가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나 오늘날의 분위기를 보면, 마치 국민이 희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며 그 위에 그저 군림하는 존재로만 보여 안타깝다. 

아무튼 저 미친 사이코 짓거리도 2위에 그친 것은 그나마 전쟁 말기, 윗 대가리들의 혀놀림에 영혼을 지배당한 어린 것들의 푸닥거리이고 군의 명령에 의한, 즉, 강요된 것이 아닌, 자발적 또라이 짓이었으므로 그나마 2위에 그치고 만 것이다.


실제 그 짓거리를 한 어린 것들이다..애국 영감님들, 저들의 눈을 똑똑히 좀 보소들..


대망의 1위는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짓거리이며, 여기에 더해 이 짓은 상부의 명령에 의한 정규군 작전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생각으론 삼류 전쟁 영화에 써먹기에도 황당한 또라이 짓거리였다.


1944년 여름, 일본 본토로 향하는 현관인 사이판과 티니안, 그리고 괌이 잇따라 미군에게 넘어가면서 이제 일본군에게 있어 전황은 악화일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다음 목표는 필리핀이 될 것임이 눈에 빤히 보이고 있었다.



마침내 대본영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육군 제 2 전차사단에게 필리핀 방어를 위해 루손으로의 이동을 명령했고 이때가 1944년 7월의 일이었다(일본군은 전차 사단도 없고 죄다 맨몸뚱아리 보병사단만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있던데 일본 육군은 패전 시까지 4개 전차사단을 보유했음..)

당시 제 2 전차사단은 이미 사단 주력인 4개 전차연대 중 제 11 전차연대를 소련군 방어를 위해 쿠릴 열도로 이동시킨 상황이었고, 결국 남은 제 6, 제 7, 제 10 전차연대와 기동 보병연대, 기동 포병연대 및 기타 부대를 가지고 필리핀으로 이동했으며, 사단장은 이와나카 요시하루(岩仲義治) 중장, 전차 여단장은 시게미 이사오(重見伊三雄) 소장이었다.


일본 육군도 전차사단이 있었다! 전차 여단장 시게미 이사오..

 
하지만 이미 연합군의 잠수함과 항공기에 의해 수송로가 대부분 차단된 상황 하에서 이 사단의 필리핀 이동 자체가 역경의 연속이었는데 제 10 전차연대(연대장 하라다 카즈오(原田一夫) 중좌..)의 경우, 바시 해협(Bashi Channel)에서 제 2 중대가 승선한 수송선이 침몰하며 병력 3분의 2를 잃었고, 제 5 중대는 병력 상륙 직후 수송선이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실려있던 전차가 모조리 수장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정과 레이테 섬에 일부 병력을 떼어내 파견시킨 것까지 더해져(제 6, 제 10 전차연대에서 각각 1개 중대..) 1945년 1월 6일부터 시작되는 루손 전투(Battle of Luzon) 직전, 사단의 전체 전력은 병력 약 6,500명, 전차 약 200대, 야포 23문, 자동차 약 1,400대 정도였다.


중국에선 끗발 좀 날렸지만 필리핀으로 이동하는 동안 당연히 털릴만큼 털리고..


보유한 전차의 대부분은 47mm 주포를 탑재한 97식 개(九七式改) 전차, 일명 치하 전차(チハ)였고, 포격 중대는 대전차 능력이라곤 개뿔도 없는 57mm 고사포 탑재 97식 전차였으며, 전차 장갑은 중요 부분이 50mm로 증강된 것이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표준 치하의 전면 장갑 두께는 25mm, 측면 25mm~20mm..)


박스아트는 멋지구리 한데..실제로는 정말 종이박스였다..97식 전차 치하..

 
필리핀 전투는 1944년 10월 17일에 벌어진 미군의 레이테(Leyte) 섬 상륙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대본영은 평소부터 필리핀 전투야말로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분기점으로 보아 작전명도 쇼호(捷号) 작전, 즉, “승리하는 작전”이라 명명하고는 이에 대한 대비에 나름 만반을 기하고 있었다(승리 좋아하시네..김칫국 벌컥~~)
이런 대비의 하나로 가뜩이나 없는 최정예 제 2 전차사단까지도 필리핀으로 급파되었으며, 필리핀을 관할하는 일본 육군 제 14 방면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대장은 제 2 전차사단을 포함해 최대한 많은 전력을 루손(Luzon) 섬에 집중, 이곳에서 결전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양키들이 레이테에 상륙했지만 우린 루손에서 쇼부 본다!

 
하지만 택도 아니게 루손을 버리고 레이테에서부터 시작된 필리핀 전투는 이에 앞서 벌어진 “대만 항공전(台湾沖航空戦)”에서 일본 해군 항공대가 미군의 항모 기동함대, 즉 미 주력 함대에 괴멸적 타격을 주었다는 엉터리 정보로부터 시작된 헛짓거리였다.


미군은 레이테 섬 상륙 직전인 1944년 10월 12일부터 3일간, 배후의 싹을 자르기 위하여 대만의 일본군 비행장들을 공습했고 이에 따른 일본 해군의 반격으로 대만 항공전이 벌어졌다.
이때 일본 해군은 항공기 약 700기와 많은 조종사들을 잃은 반면, 미 해군 기동부대의 피해는 미미했지만 대본영 해군부는 “적 항모 11척 격침. 8척 대파. 미 항모 기동부대 괴멸.”이라는 엉터리 대전과를 발표했다(대만 창공전 참조 → http://blog.daum.net/mybrokenwing/306)


미 항모 기동부대를 괴멸시켰다! 이런 양아치 가튼 것들..


해군부는 발표 직후인 10월 16일, 전과 재판정을 실시하여 대전과가 오인임을 확인했지만 육군에게 쿠사리를 열라 먹을 것이 두려워 두루뭉술 넘어갔고 이 대전과를 믿었던 일본 육군은 미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여 미군이 레이테에 상륙한 직후에 바로 일전을 치루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이때야 말로 모든 전력을 레이테 방면에 집중해야한다는 이 대본영의 판단으로 기존에 야마시타가 수립했던 모든 계획은 모조리 휴지 쪼가리가 되었고 레이테에 모든 전력을 집중 투입하는 것으로 홀라당 변경되기에 이른다.


해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그래서 야마시타의 계획은 전부 백지화..

 
필리핀에 미군이 교두보를 마련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일본 해군의 조바심에 결국 연합함대도 모든 전력을 탈탈 털어 레이테 만으로 치고 들어간다는 작전을 세웠고, 육군도 쇼호 작전 수립 시에 예비대로 남겨 놓았던 제 1 보병사단까지 긁어 이곳에 투입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익히 알려진 바대로 이런 일본 육해군의 이런 피눈물 나는 헛지랄은 결국 콩가루가 되었고 미군은 레이테에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11월 중순이 되면, 이 모든 노력은 완전한 허사가 되었다.
레이테 전투에서 일본 해군은 불침 전함(?) 무사시(武蔵)를 포함한 전함 3척, 즈이가쿠(瑞鶴)를 포함한 항모 4척,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11척, 잠수함 3척, 항공기 약 500기를 시원하게 말아 먹었고, 일본 육군은 5개 사단 약 84,000명이 투입되어 79,261명이 홀라당 콩가루가 되는 괴멸적 피해를 입었다.


전쟁에서 정보는 생명이다..과장된 보고로 탈탈 털리는 일본군..


사태가 이 지경이 될 조짐이 보이자마자 루손를 빨리 단단하게 만들지 않으면 피똥 싸겠다는 제 14 방면군의 조바심이 시작되었지만 대본영의 레이테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대본영은 레이테를 증원하기 위하여 제 23 사단, 제 10 사단, 제 19 사단까지 필리핀에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이 부대들이 레이테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황은 끝장났고 결국 이들은 루손에 배치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답시고 한바탕 난리를 벌였지만..


레이테에 남겨진 일본군 병력들은 뒤통수에 해당하는 오르모크 만(Ormoc Bay)에 미군이 상륙하자 이제 그 운명이 정해져 버렸으며, 결국 1944년 12월 15일에 이르면 미군은 루손 섬 남서쪽 민도로(Mindoro) 섬에까지 상륙하기에 이른다. 
모든 전력을 레이테에 투입한 후 탈탈 털려버리고 이제 와서 루손에서 결전을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으며 결국 일본 육군은 “버틸 만큼 최대한 노력한다.”는 방침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셔먼만 오는 게 아님..타라칸에 상륙한 호주군의 마틸다 전차..

 
이것이 일본 육군 제 2 전차사단이 목전에 둔 루손 작전 직전의 상황이었다(그래..상황이 개떡 같았네..일단 그건 인정..)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s://www.toei.co.jp/release/tv/1205929_963.html
http://girlschannel.net/topics/447579/2/
https://smnd.sk/guban/
https://thearmoredpatrol.com/2016/02/28/tank-myths-russian-t-34/
http://wps.pearsoncustom.com/wps/media/objects/2428/2487068/atlas/atl_ah5_m008.html
https://blog-imgs-45-origin.fc2.com/d/o/u/dousissgru/tiha.jpg

이런 저런 개인적인 일로 포스팅이 늦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양해 드립니다.
속편을 속히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포스팅 감사 (--)b
이런 저런 개인적인 일로 포스팅이 늦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캬캬캬캬
오홋 일빠다 감솨히 보겠습니다
흠..축하 축하..
왜 축하해야 하는 지 몰겠지만요..
전차없는 전차 중대, 함재기 없는 항공모함...맙소사
원래가 그런 집단입니다..
남아 있는 기록 필름중에 항공모함이나 전함에 날아드는 카미카제 특공대 비행기가 항모와 전함등에 충돌해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공포화에 격추 되거나 엉뚱하게 바다에 그대로 추락하는 경우도 많이 있더군요.그대로 바다에 떨어지는 경우는 무의식적인 공포때문에 파일럿이 조종간을 자기도 모르게 너무 밀거나 너무 당겨서 그대로 바다로 추락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대 전차 카미카제라는 얼척없는 전술(?)이 전과나 기록이 없는 이유중에는 그런 경우도 있을려나 모르겠습니다.그나저나, 그런 어처구니 없는 전술(?)이 일상화 되는 황군이라니 참 그들의 뻘짓은 이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바쁘실텐데 포스팅 감솨.
전차로 항공기를 잡았다는 건 들어봤어도 저 따위 뻘짓(의도적으로 저려려고 시도한..)은 저 사례에 외에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조갑제에 올려져 있는 글... 설마 한국인이 쓴 것은 아니겠지요? 그냥 산케이에서 주저리 주저리 한 것을 그냥 생각없이 번역한 것 맞겠지요? 저걸 왜 번역했는 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어보면 디스하려느뉴목적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조갑제는 일본 극우 구로다와 아주 절친이죠. 그리고 조갑제가 젊은 시절에 일본 자위대와 연락 관계를 유지했답니다.
https://namu.wiki/w/%EC%A1%B0%EA%B0%91%EC%A0%9C#s-2
그리고 일본 극우들이 조갑제를 엄청 좋아해서, 조갑제가 쓴 글들을 번역해서 자기네 사이트에 올리기도 합니다.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죽어서 호국(護国)의 혼이 되겠다가 주제이니..
전혀 디스와는 무관한 듯 합니다..
저런 걸 찬양 고무라고 하나요?
저도 몇년 동안 저에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살았지 뭡니까?
하하하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자존감을 가지고 사시길..^^
국가가 국민을 지켜줘야지 국민이 목숨 바쳐 국가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라면, 도대체 그 국가는 무엇으로 국민을 지켜준다는 말인지... 용병으로?
난독증이 있으신듯..

The object of war is not to die for your country but to make the other bastard die for his.

조지 패튼의 말임..
번역은 직접 하시길..
남편은 소련군에 항복하여 포로가 된다. 신혼의 젊은 아내는 소련군에게.......부부동반특공,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어찌보면 황당하지만 강제던 자발이던 일본인의 감투정신은 역사이래 유래가 없었을 것입니다.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일본인의 감투정신을 조롱꺼리로 비웃지만은 마십시오. 그런 군인 민족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일본인의 감투 정신이라...
많이 본받으시고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기원하지만 행여 우리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꼭 제일 먼저 감투 정신 발휘 하시길..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할힌골에서 일본군이 탈탈 털리자 감투 정신 투철한 츠지 마사노부가 그랬다는군요..
"소관의 작전은 완벽했으나 현지 지휘관들의 감투 정신 부재로 패전"

감투 정신 발휘하시길 꼭 기원합니다..
특히 저 스토리에 나오는 가족 포함해서 말이죠..
그냥 폭탄 매달고 정상적인 폭격을 하라고......
격추당해서 못 살아돌아갈게 확실할때 들이박는거야 사실 미군도 했지만 그거야 마지막 길동무고......
거 폭격 천번만번도 할 비행기를 일회용으로 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