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

봉달이 2018. 6. 19. 14:27

나는 공산당..아니, 일본인이 아니에요!



20세기 초의 미국은 결코 중국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할 수 있고 환영받는 나라가 아니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쉬(The California Gold Rush) 시기, 수많은 중국인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시작하자마자 사회적 긴장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은 다른 미국 시민들로부터 일자리를 빼앗기 위해 미국에 온 침입자로 간주되며 일반화되었고 중국계 이민자들은 실직과 정치적, 법적 차별 및 폭력에 직면하게 된다.


 
일찌감치 1882년 5월에 발효된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아예 법으로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자행하던 나라였으며, 당연히 중국계 미국인은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노골적인 폭력과 인종차별에서 벗어나 가족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자기들만의 동네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대도시에선 반드시 찾아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이다.


오늘날 차이나타운은 그들의 생존을 위한 거점이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사회적 비웃음은 물론, 더 이상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항상 확고한 애국심을 미국 정부와 기득권층인 백인들에게 약속해야만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941년 12월 7일에 벌어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하루아침에 바뀌게 된다.


하루아침에 상황을 반전시킨 일본의 헛발질...진주만..


2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개입하며 더 이상 중국계 미국인은 “내부의 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제부터 미국과 중국 이민자들의 공통의 적은 일본이 되었다.
진주만 공격 이후 이제 일본인들이 미국인들의 비난의 중심이 되었고 마침내 중국계 미국인들은 인종 차별에 대한 압박 속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적이 생겼다! 소위 애국보수 운동 중인 미국계 중국인들..


이미 그들의 조국, 중국은 2차 대전 전개 과정에서 미국의 새로운 동맹국이 되었고 일본이라는 공통의 적에 대항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찾기 운동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실수로 인한 자신들에 대한 탄압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중국계임을 나타내는 각종 표식들을 착용하는 등 실수로 일본인으로 오인되는 것을 막기도 하였다.


중국계임을 알려주는 뱃지 달기 운동..

 
여기에 더해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미국인, 아니 아시아계 민족을 제외한 다른 미국인의 눈엔 다 똑같아 보이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구별 방법까지 등장했다.


피아 식별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당연히 이 구별 방법은 과학적인 검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주만 기습 2주일 후인 1941년 12월 22일자 라이프 매거진(LIFE magazine)은 동맹국 중국인과 적국인 일본인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는 전국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고한 희생자로 75,000명의 중국계 미국인을 지목하고 이 혼란의 일부를 풀기 위해, 중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는 신체적 특징을 알려주고 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둘 다 에스키모와 북미 인디언과 관련이 있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점은 미세하며 현대 일본인은 선사시대에 일본 열도를 침략한 몽골계(Mongoloids)의 후손이며, 전에 섬에 살고 있던 토착 원주민의 자손이자 혼혈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인류학자들은 일본인과 중국인의 관계를 독일인과 영국인의 관계처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각 국가별로 특수한 유형을 통해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동맹국 중국인과 극악한 쪽발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그들은 당시 중국 충칭(Chungking) 정부의 경제부 장관 웡원하오(翁文灝 옹문호)와 일본의 총리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얼굴을 대조하며 비교분석해 두 민족을 구분하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전형적인 북부 중국인 대표하는 웡원하오는 비교적 키가 크고 가느다란 신체를 가지고 있다. 그의 피부색은 담황색(parchment yellow)이며, 얼굴은 길고 섬세하게 뼈가 있고, 코는 가늘게 망울을 감고 있다.
일본인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은 도조 히데키로 그는 긴 몸통 구조, 더 넓고 더 단단한 머리와 납작한 얼굴, 황토색의 피부를 가졌고 일본의 평균 유형에 닮았다.



웡원하오는 길고 섬세한 얼굴과 수염이 없는 북부 중국 인류학 그룹을 대표한다. 눈꺼풀 위 주름살은 중국인의 85%에게서 발견된다. 남부 중국인은 둥글고 넓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인만큼 거대하지 않다. 그들의 피부가 더 어둡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설명은 종종 “일본놈(Japs)”이라고 착각되는 필리핀인들에게 더 적합하다.


도조 히데키는 황실의 친척들보다 겸손한 형에 가까운 사무라이다. 전형적인 특징은 그의 짙은 턱수염, 거대한 뺨 및 턱뼈다. 무식한 쪽발이(Peasant Japs)들은 대부분 평평한 납작코(blob nose)를 가진 몽골계다. 이런 특징들은 인류학이 아닌 문화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며 중국인들처럼 현실주의자들의 합리적 평온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도조 처럼 무자비한 신비주의와 유머 없는 강렬한 인상을 보여준다.



진주만 기습 직후의 기사라 내용은 온통 일본인에 대한 혐오와 중국인에 대한 상대적인 우호로 가득 차 있다.


이게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필리핀과 조선을 나눠먹으며 키득거리던 이익 공동체이자 동맹은 졸지에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었고 그 세월동안 국가의 밑바닥에서 온갖 멸시를 받던 어느 “3류 민족”은 순식간에 같은 이웃이자 혈맹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이런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반세기 만인 지금은 또 반대로..


 일본인으로 오인 당하지 않기 위해 중국기를 내걸고 썬탠하는 아가씨..


<사진출처>

http://phillips.blogs.com/goc/2015/06/shuck-and-jive-in-the-gold-rush.html
http://blog.angryasianman.com/2016/06/new-york-lawmakers-ask-obama-for.html

헐~
저 구별법떄로 다 따지고 일본놈으로 판별, 뚜들켜패면 무죄인가요 -_-;;
뭐 이런~
우월주의 완전 쩌네요
w.a.s.p
필리핀과 조선을 놓고 나눠 먹으며 키득 거렸다고 하는 것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말씀하시는 듯 한데 그 자체가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유라시아 대륙을 놓고 벌인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의 마지막 막간극으로서 벌어진 일이고 이때 이런 대결의 일환으로 이미 영일 동맹 및 러일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국제 정세에 너무나도 무지했던 조선 왕조 및 정부 관료들을 탓해야 겠죠..
그런 생각이 이 나라의 법 질서를 가해자 중심주의로 만드는 게 아닐지
엉뚱한 얘기같습니다만 90년말에 아내와 중국에 주재원으로 있었는데 부부동반으로 만났던 호주아줌씨가 한잔되더니, 니 딸 이쁘다. 멋진 남편 만나라, 기도 해줄테니끼니.... 마누라한테...
2~3년전 같이 다른 바이어와 식사할때 배우 조민수 보더니 대학생으로 보더군요.
조민수는 얼굴에 손하나 안대고 딱 봐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50댄데....
사고방식이나, 미추에 대한 관점이 너무나 다르지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당시야 더 말할것도 없겠지요.
그래도 국가관계는 역시 권력자의 이해와 돈과 잇권이 영순위겠다는 생각, 봉달님 포스팅 즐감하며 다시 리뷰하게 되네요. ^~^
누군가에게 자신을 들어내야 살 수 있다니 참 한심하네요 이럴때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듭니다. 인간이 진정 이성적인 존재인가? 이민자가 늘면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서 그 사회가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서 그것으로 편히 사는데 그리고 없어 진다는 일자리는 대부분 내국인은 않가는 자리인데 왜 이민자가 일자리를 뺐고 사회를 오염시킨다는 드립에 넘어가는지 참 답답합니다. 그래도 살겠다고 나는 중국인이라고 외쳐야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