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 태평양

봉달이 2018. 6. 28. 14:14

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끝>



1945년 4월 15일, 마닐라 공략에 파견되었다가 루손 북부 전선으로 돌아온  미 제 37 사단이 제 33 사단과 협공에 나서 서해안에서 바기오에 이르는 국도 9호선의 대부분을 확보했다.
이제 일본군에게 바기오에 도달할 수 있는 도로를 차단할 수 있는 곳은 야그야간에서 불과 남동쪽으로 1.5km 떨어진 이리산 강(Irisan River) 협곡의 최후 방어선뿐이었다.


남은 건 바기오 코앞의 이리산 협곡 뿐..


당시 바기오에 있던 일본 육군 제 14 방면군 사령부 휘하에 남은 유일한 기갑 전력은 제 2 전차사단으로부터 파견된 전차 제 10 연대 제 5 ​​중대 소속 전차 5대뿐이었고, 방면군 사령관 야마시타 토모유키(山下奉文) 대장은 황당하게도 이들에게 이리산으로 가서 접근해오는 미군 전차에 대해 카미카제 공격을 가하도록 명령했다.
이것이 전차가 인류전쟁사에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적 전차에 대해 아군 전차를 이용해 의도적이며 상부로부터 명령에 의해 계획적으로 “박고 죽자, 몸통 박치기!”를 감행한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전차로 적 전차를 박아라~!! 야마시타 토모유키..희번덕~~

 
물론 본격적으로 전차 간의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한 2차 대전사를 살펴보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초근접한 상태로 서로를 발견하여 몸빵을 벌였다거나, 동부전선의 쿠르스크 전투 당시와 같이 수많은 양측의 전차들이 최대의 속도로 서로에게 달려들어 미처 파괴되지 못한 전차끼리 박치기를 감행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쿠르스크 처럼 좁은 곳에 수많은 전차들이 얽혀 박치기도 하고..


또한 독일군이 무인 소형 차체에 폭약을 장착하여 유선 컨트롤으로 적의 토치카나 장애물을 파괴할 목적으로 개발된 골리아테(Goliath) 같은 물건을 가지고 적 전차에 공격을 시도하거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해안방벽 파괴에 사용할 목적으로 전면에 폭약을 장착한 영국군의 엘리게이터(Aligator) 공병전차 같은 것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이런 건 있었지만..전차 공격하는 골리아테(위)와 엘리게이터 공병전차..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적 전차에 대해 박치기를 감행할 생각으로 폭약을 설치한 전차에 실제 병사가 타고 적 전차에 돌진해 “들이박고 죽자”식의 공격을 감행한 사례는 전쟁사를 탈탈 털어 이 사례가 유일하다.


1945년 4월 15일, 달랑 5대 남은 전차 제 10 연대 제 5 ​​중대 전차들 중에서 총대가리 야마시타의 명령에 의해 소위 “전차 특공(戦車特攻)”을 감행할 97식 중전차 1대와 95식 경전차 1대가 선정되었다.
또한 이 박치기 특공을 감행할 병사 11명도 선정되었는데 이럴 땐 항상 그렇듯이 장교들은 쏙 빠지고 없으며(가장 높은 계급이 준위..) 17~18세의 육군 소년 전차병 학교(陸軍 少年 戦車兵学校) 출신이 그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제 고삐리에 불과한 애들에게 특공을 하랍신다..땅크 학도병??

 
선두 전차는 95식 경전차(차장 니와 하루히토(丹羽治一) 준위 외 4명..)였고 그 뒤로 97식 중 전차(차장 니시 토시요시(西利良) 병조장 외 5명..)가 뒤따라 자폭 공격을 감행하도록 계획되었으며, 이들은 전차 전면에 약 1m 정도 돌출된 장대에 10kg 폭약을 2개 장착한 다음, 여기 연결된 수류탄 신관으로 충돌 즉시 폭약을 기폭시킬 예정이었다.
이 박치기 특공대는 4월 16일 이리산 계곡으로 이동해 야간에 대나무 숲에 매복했고 다음 날인 17일 오전 9시 30분, 9번 국도를 따라 셔먼 전차를 앞세우고 전진하는 미 제 37 사단 148 연대 2 대대의 2개 중대 병력을 발견했다.


전차를 앞세우고 슬금슬금 전진한다..


마침내 니와 준위의 95식 경전차가 모퉁이를 튀어나와 돌격을 감행하자 깜짝 놀란 미군의 선두 전차 조종수가 방향 전환을 시도하다 그만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며 전복되었고 일본 경전차는 그대로 다음 전차를 향해 돌진했다.
이때 승무원 외에 전차 뒤에 타고 있던 병사 2명은 이불 폭탄(蒲団爆弾)이라는 방석 모양의 조잡한 폭약을 안고 뛰어내려 적 전차에 돌입하여 자폭하도록 계획되어 있었지만, 그 중 1명인 나카야마 야스오(中山誉雄 당시 17세..)는 미군 전차의 포탄을 맞고 폭발한 포탑과 함께 날아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리산 협곡의 다리와 지형..저 모퉁이에서 갑자기 팍~!! 옴마야~~

 
그렇게 95식 경전차는 미군의 선두 전차를 놀래켜 절벽 아래로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직후, 미군 전차의 반격으로 포탑이 홀랑 날아갔지만 차체만 가지고 그대로 돌격을 감행, 후속 전차를 들이받는데 까지 성공하였다.
그 뒤를 이어 니시 병조장의 97식 중전차가 2번째로 탈탈 거리며 나아갔는데 웃기는 건, 이미 앞선 95식 경전차가 2대의 셔먼 전차를 절벽으로 전복시키고 정지시키는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미 95식 경전차의 자폭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두 번째 셔먼 전차에 돌입, 2대의 전차가 1대에 박치기를 감행, 결론적으로 2대의 전차 자폭으로 적 전차 1대를 잡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이 무슨 병신 짓거리인지...-_-;;)


흠..정상적으로는 안되서 잔꾀를 부렸다만..2대 박아 1대 잡았다능~


이 공격으로 일본군 전차에 타고 있던 10명 중(1명은 이 공격 직전에 이미 부상으로 열외..) 포탑과 함께 날아간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은 카미카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조리 전사했다. 
전과 면에서 당시 일본군의 셈법으로 본다면, 이 작전은 이미 굴러다니는 강철관이 되어있던 일본군의 허접 전차 2대로 난공불락의 킹 타이거, 셔먼 전차 2대를 잡은 셈이니 어쩌면 성공작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정글의 킹 타이거를 2대나 잡았다! 캬캬캬 쿨럭~~


그래서 그랬는지, 이후 이들의 상관인 제 5 전차 중대장 사쿠라이 타카오(桜井隆夫) 대위도 약 일주일 후인 4월 23일 밤, 화약 드럼통을 실은 전차 2대와 지뢰를 지닌 특공반을 지휘하고 선두에 서서 미군 기지를 공격하다가 셔먼 전차의 포격을 받아 홀라당 전사했다(흑~~)


그래서 한 번 더 해 보았더니...묵사발..ㅠ.ㅠ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라면 도무지 생각해낼 수 없는 이런 똘끼 충만한 짓거리는 전술 면으로 보나, 그 어느 면으로 보나 그저 상상을 초월하는 등신 짓거리에 불과하다.


먼저 당시 전황부터 생각해보면, 이 전투가 벌어지던 1945년 4월의 상황에 이르면 1944년 11월에 이미 함락된 마리아나 제도로부터 떠오른 B-29 폭격기의 일본 본토 폭격이 시작된 지 오래였고, 이미 1달 전인 3월에 이오지마가 떨어졌으며, 3월 26일에는 오키나와 상륙 작전이 개시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제 일본 본토가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정신적 지주(?), 몽키킹이 언제 사로잡히거나 뒈질지도 모르는데 대본영이 필리핀 루손 따위에 대해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하였으며 실제 레이테 전투가 폭망하면서 그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진지 오래였다.


상황이 이판인데 특공까지 시켜가며 바기오 지켜서 어따 쓸려고?


거기다 해상 보급로가 단절된 상황에서 후방으로부터의 보급이나 지원 병력의 투입 따윈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당시 상황 하에 루손에 남은 떨거지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밀림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게릴라전을 벌여 미군의 전력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놓는 것뿐이었는데, 이런 사정은 그 누구보다 제 14 방면군 사령관 야마시타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바기오가 전략적 요충지라 자신들은 떠벌리고 있지만(웃기는 게 루손 북부 곡창지대로 가는 길목이라 그렇다고..여길 지키며 농사지으면서 버틸려고??) 이미 당시 상황은 도시를 지키며 정상적인 정규전을 벌일 능력이 제로였던 그들이 이딴 자기 소모적인 전투를 구상하고 자빠져있다는 게 황당할 뿐이며, 더욱 황당한 건, 야마시타 또한 일찌감치 밀림 속에 처박혀 빨치산 짓거리나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는 점이다(실제로도 그랬고..)


왜? 농사 지으면서 버틸려고? 크흑~~


따라서 그들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전술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아군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임과 동시에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미군을 자극해 지속적인 소모전을 강요하는 것이었지만 이때 벌인 짓거리를 보면 그저 자존심에 상처 받을까봐 벌인 쓰레기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 일본에서 발간된 몇몇 전사들을 보면, 이때 이리산에서 벌인 일본 전차 특공대(?)의 애국심 가득한 희생 때문에 미군의 진격이 약 1주일간 지체되었고, 이들이 먼지같이 가벼운 목숨을 버리며 번 시간으로 인해 바기오에서 성공적인 철수 작전이 가능할 수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런 소리는 잠깐만 머리를 굴려보면 한마디로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 자랑스런 땅크 특공대가 무려 1주일이나 적을 지연시켰다! 진짜로?


이들은 도로를 가로막은 파괴된 전차 4대(이것도 헛소리..미군 전차 1대는 도로 옆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치우느라고 미군의 진격이 1주일이나 지체되었다고 하는데, 이딴 헛소리는 그저 전사나 전쟁에 무지한 대중들을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자극하고 고무시키고자 하는 사기질에 불과하다.
실제 이리산에서의 전투로 인해 미군의 진격이 약 1주일가량 지체되긴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 협곡을 둘러싼 고지 위에 자리 잡은 일본군을 깨끗이 소탕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지 미군의 공식 전사 그 어디를 살펴봐도 전차 치우느라 그랬다는 내용은 단 1줄도 보이지 않는다(아예 그런 언급 자체가 없다는..During the engagement the Japanese lost two light tanks. The day's work cost the 148th Infantry about 10 men killed and 75 wounded; the Japanese lost over 100 killed... 이게 전부다..)


산속에 짱박힌 잔당 솎아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을 뿐..

          
간단하게 생각해 보아도 당시 그 전력이 극도로 증강되어 있던 미군의 공병 능력으로 전차 잔해 치운다고 1주일씩 잡혀있을 리가 만무하며(걍 도저 전차로 밀어버리면 된다능~~), 이따위 소리는 그저 그들의 주특기(..이자 우리 어느 꼴통 집단의 주특기이기도 한..)인 대국민 우민화 공작의 현실판으로 생각된다.  
실제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리산 부근의 도로가 협소했기 때문에, 쌍방의 전차 4량이 폭발 연소하며 그 잔해가 미군 전차 군단의 침공로를 방해하여 탱크 잔해 제거에 난항을 겪은 미군은 약 1주일간 발이 묶였고, 그 동안 바기오의 사령부는 대량의 부상병과 군수 물자와 함께 정연하게퇴각 할 수 있었다.”고 씨부리고 있다.


탱크 잔해 치우느라 1주일 걸렸다고? 필리핀 전선의 미 공병대..


또한 일본의 전사들이 “전차 박치기(戦車の頭突き)”라고 부르고 있다는 이 행위만 놓고 보아도 약간의 군사적 지식만 갖고 있다면 얼마나 골 떼리는 지 당장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들 말로는 밀림 속에서 기습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화염병이나 급조 폭약, 혹은 대전차 지뢰를 가진 보병 육박이 훨씬 그 은닉성에서 나을 것이며 기동성 면을 놓고 본다면 바기오에 남아있던 숱한 고급 장교용 자가용에 폭탄을 싣고 돌입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전술 면에서 본다면 전차들은 토치카에 엄폐시킨 다음, 미군 전차들이 다리를 넘는 순간 교량을 폭파하고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짓거리는 그저 전쟁 후 전함 야마토가 남아있다면 해군의 수치라고 생각해 자살적 돌입을 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제 14 방면군 사령부는 바기오가 함락 당했는데 도시 내의 전차가 그저 빈둥거렸다면 수치라고 손가락질 받을까바 두려워 그저 지랄이나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차라리 시가전을 시키지 그랬어?)


그로 부터 일주일 후, 대가리들이 싹 토까버린 바기오는 거의 무혈 점령된다..

      
마지막으로 이 짓거리를 행한 인물을 보면, 그저 전차전에 무지하거나 숱한 일본군 똥별 중에 하나로 평가받는 인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조차 그나마 낫다고 평가받는 야마시타 토모유키(山下奉文)가 직접 이런 명령을 내렸다는 점이 특히 주목을 끈다.
그는 1941년 1월, 4개월간 동맹국 독일을 시찰한 시찰단 단장으로 독일의 발전된 무기들을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하였으며, 당대에 전차와 관련해 최고 전문가였던 하인츠 구데리안(Heinz Wilhelm Guderian)과 오랜 시간 전차 전술과 관련하여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독일 가서 이것 저것 많이 듣고 배웠다며?

 
그래서 일본군 장성들 중 극히 드물게 현대전 혹은 전차전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그가 최정예 전차부대에 내린 명령은 바로 전차 박치기(戦車の頭突き)였다(흑~~ ㅠ.ㅠ)


일본 육군 최정예 전차부대에게 내린 명령은 전차 박치기..


실제 이 박치기 특공대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카야마 야스오는 이들이 바기오에서 아리산으로 떠나기 직전, 야마시타로부터 직접 술잔을 받았다고 한다.
요사이 일본군의 카미카제를 두고 효율성이 어쩌니 하며 떠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내 사견으로 당시 그들에게 카미카제란 효률성을 따질 계제가 아니라 그저 자존심의 문제였고, 전쟁에 지는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 지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군의 이름으로, 또는 국가의 이름으로 쫄따구들은 장렬히 나가 죽으라는 일종의 발악에 불과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유일한 생존자 나카야마 야스오..무슨 자랑이냐?


일본 해군의 에이스 출신인 이와이 츠토무(岩井勉)의 회고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카미카제 출격 전, 우가키 마토메(宇垣纏) 제 5 항공함대 사령관의 이별 연설이 있은 직후, 모 하사관이 이렇게 물었다.
“오늘 공격에서 적함에 폭탄을 100% 명중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폭탄을 명중시키면 돌아와도 좋습니까?”
이에 대해 우가키 중장은 질문을 듣자마자 곧바로 그건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 하사관은 우가키 중장의 답변을 듣고, 특공기에 탑승하기 직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들은 바대로 앞으로 2시간 반 남은 목숨이군요. 그럼 먼저..”


폭탄을 명중시키면 돌아와도 되나요? 안돼~~ 우가키 마토메..


이거 장렬하게 생각되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해줄 말은 없으며 어쨌든 나는 이 “전차 박치기”가 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이라 생각한다(이보다 더 한 게 있으려나?)

 
<끝>



<사진 출처>

http://tothosewhoserved.org/usa/ts/usatse04/chapter15.html
https://alchetron.com/Battle-of-Luzon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Triumph/USA-P-Triumph-25.html
http://innerspacecenter.org/2017/01/rediscovering-history-the-uss-independence/
https://ameblo.jp/jtkh72tkr2co11tk317co/entry-12319445266.html

1빠...ㅋ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흐흐..꾸벅~~
아뿔사, 놓쳤네요. ㅋ . 봉달님, 포스팅 감사, 땡규, 그라시아스! (^^)b
흠..
이젠 스페인어까지..
반사입니다...
reflejo..캬캬
어짜피 진거 그냥 지면 쪽팔리니
파리 목숨 몇개쯤 버려서 '난 할만큼 했어~' 하는 체면치레용 자살세레머니군요
완전 "나가 죽어라~'네요
제 생각엔 그런듯...
비밀댓글입니다
먼저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특정 개인이나 특정 사이트에 대한 비하 말씀은 가급적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씀하시는 블로그도 제가 알기로는 남들이 신경쓰지 않았던 분야에 대한 오랜 연구와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들이 축적된 곳이라 알고있습니다...
물론 제가 보는 관점과 좀 다른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제 3 자인 제 블로그에 이런 댓글을 다는 건 좀 그렇네요..
적폐친일이라....야마시타를 빨아 대는게 어느 글에 있는지 알수 있을까요?
찾아보란 말은 거절입니다. 10년 가까이 써진 글에서 찾는 다는 건....
.... 저 블로그가 태평양전쟁에 관한 한 대단히 심도 깊은 내용이 많아 본좌도 자주 들락거리는 데 "야마시타 토모유키를 엄청 빨아대는.." 글을 본 적이 없읍니다.

그러니 대체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는 지 근거를 밝혀주시오.

만일 직접 찾아보라고 한다면 근거를 밝힐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 남의 동네 와서 다른 사람을 근거도 없이 헐뜯은게 되니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될겁니다

쟤들이 아직도 기미가요를 국가로 쓰고 심심하면 욱일기를 매고 나오는 행태를 보면 우리가 개돼지로 살았던 것보다 더 심한 상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21세기에도 나아지지 못할 듯......
당시의 저런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왜곡만 시킨다면 아마도...

감사합니다..
언제봐도 놀랍지 않은 황군 그런데 한국군이 자꾸 생각나는데요 제가 내부자라서 그런건가요 포스팅 감사합니다.
점점 나아지겠죠..
내부자라서 그런듯..캬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웃기다못해 슬프군요
저런걸보면 일본은 윗사람들의 위신을 위해 전쟁하고 있던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치 봉건시대 군주가 자기 위신을 위해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처럼요
일본 육해군대립도 사실 봉건시대 영주들의 대립으로 보면 더 명쾌하게 이해되는 구석도 있고 말이죠

일본은 그냥... 근본부터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걸 고칠 생각이 없는 정도를 떠나, 뭐가 잘못되었는지 인식도 못하는 것이구요. 그리고 이건 지금도 계속되고 있죠
봉달이님 분탕은 죄송합니다 적폐란 표현 들어간 댓글은 삭제하고 약간의 착오가 있었네요 https://blog.naver.com/imkcs0425/60108030948 다른 일본군 장교가 농사짓는걸 착각한듯 하네요 물병님은 참고하시고 현처리님은 변호사나 변호사 친구 있으신가요 아니면 대사님과 서로이웃인가요 봉달이님 블로그에서 현처리님 무서워서 댓글도 못달겠네요
.... 아직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며 표현의 자유는 보장이 되어있지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릅니다.

진골 밀덕,역덕이 가장 못참는 것이 역사왜곡이며 없는 사실을 조작하는 것입니다. 이건 아닌데 기라고 우기면 진골밀덕들 전부가 거의 돌아버립니다.

본좌가 그 블로그를 자주 들락거리며 본 바에 의하면 "야마시타 토모유키를 엄청 빨아대는 ...." 글을 본 적이 없읍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의 글이 있는 듯이 말을 했으면 당연히 그에대한 근거를 밝혀야만 하고 만일 사실무근일때는 그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고 과정입니다

본좌가 무서워 댓글도 못달겠다고 하셨는데 자신의 말과 행동이 정정당당하면 뭐가 무섭습니까? 내가 조폭도 아니고 보편타당한 상식과 지식을 가진 사람인데 상대의 말이 합당하다면 언제나 존중하고 인정하며 살아왔읍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변호사 친구를 언급하니 하는 말인데 친구가 아니라 매제가 대형로펌 법무법인 태평양에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읍니다만 대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저 대사라는 양반과는 일면식도 없고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며 서로이웃 관계도 아닙니다.

내말을 못믿겠으면 내블로그에 와서 직접 확인 해보십시요.
본좌 블로그의 서로이웃들 끼리는 아주 정답게(?) 댓글놀이를 하는 사이인지라 댓글들만 확인 해봐도 진위를 확인 할수있을 겁니다.




잘 읽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