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유럽서부

봉달이 2018. 7. 24. 15:42

마켓 가든, 그 실패의 이면...<3>



3) 다리의 점령과 절망의 시작


영국 제 1 공수 여단이 공중으로부터 북쪽의 프리모솔레(Primosole) 교량 인근에 쏟아져 내릴 즈음, 제 3 코만도는 시메토(Simeto) 강 남쪽으로 13km 떨어진 레오나르도(Leonardo) 강의 말라티(Malati) 교량을 습격하는 작전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하여 아그뇬(Agnone) 해변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상륙 작전은 2개 파로 계획되어 있었고, 상륙 제 1 파 병력 중 3분의 1은 곧바로 교량을 장악하기위해 이동하며, 나머지는 해변에 교두보를 설정하고 제 2 파를 기다리면서 이후 추가 부대가 내륙으로 이동하면, 프리모솔레 다리의 공수부대와 접촉하기위한 정찰대를 보낸 직후, 카타니아(Catania) 도로를 따라 7월 14일에 도달할 것으로 계획된 제 50 사단과 연결될 예정이었다.



7월 13일 오후 9시 30분, 제 3 코만도 대원들을 실은 병력 상륙함(LSI Landing Ship,Infantry) 프린스 알버트(HMS Prince Albert)는 예상되는 독일의 고속 어뢰정 E-보트의 공격을 피해 해안에 위치한 뒤, 상륙정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코만도 병력들을 실은 상륙정들이 어둠을 뚫고 해안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자 마침내 육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불꽃의 향연들로 이들은 곧 다가올 자신들의 미래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었다.
당시 북쪽 카타니아에서는 한창 연합군 폭격기의 폭격이 벌어지고 있었고, 서쪽에는 독일 요격기의 기관총탄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으며, 남쪽에는 대공 탄막이, 그리고 머리 바로 위론 공수부대를 실은 수송기들의 폭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병력 상륙함(LSI) 프린스 알버트와 상륙정 운용의 예..


7월 13일 22시, 말라티 다리에서 약 11km 떨어진 해변에 상륙 제 1 파가 도착했으나 이들은 거의 ​​즉시 이탈리아 군 수비수들의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해변에 위치한 두 개의 이탈리아 군 벙커들을 신속하게 극복했고, 피터 영(Peter Young) 소령은 곧바로 부대를 재정비하고는 말라티 다리를 향해 신속하게 출발했으나, 이곳은 선인장과 관목으로 덮여 지형을 식별하기 어려웠던데 더해 야간인지라 지형 파악은 더욱 골 때리는 상황이 되었다.


나중에 장성까지 진급하는 피터 영 소령..이때는 황당했다고.. 


황당한 사례로 이들은 이동 중에 드롭 존으로부터 훨씬 남쪽에 떨어진 한 무리의 영국 공수 부대원들과 마주치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그들에게 자신들과 합류하도록 요청했으나, 공수 부대원들은 이를 거절하고는 원래 목표인 프리모솔레 다리를 향해 북쪽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미군 신참 파일럿이 모는 수송기들이 아군 고사포에 피탄되며 놀란 나머지 목표인 프리모솔레 교량에서 남쪽으로 무려 19km나 떨어진 곳에 낙하시킨 제 3 낙하산 대대와 왕립 공병대대(Royal Engineer)의 일부 병력으로 생각된다.


우오옷~ 그냥 낙하시켜~~!! 쿨럭~~ ㅠ.ㅠ


아무튼, 이런저런 황당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이들은 아그뇬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찾아낼 수 있었으며, 이 철도를 따라 마침내 오전 3시경, 영 소령과 그의 부대는 레오나르도 강을 가로지르는 230m 길이의 말라티 다리 북동쪽 끝에 닿을 수 있었다.


온갖 쌩쇼 와중에도 다리에 도착하기는 도착했다..아직 남아있는 말라티 교..

 
상륙 제 2 파는 해변에 뒤늦게 도착했는데 이는 상륙 제 1 파를 내려놓은 상륙정들이 수송선 프린스 알버트로 향하는 항로를 잃고 밤바다에서 방황하기도 하였으며, 부랴부랴 탄약과 병력을 싣고 다시 해변으로 향한 8척의 상륙정 중 하나가 이탈리아 군 해안포에 피격되며 불타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위 구축함 텟코트(HMS Tetcott)의 연막탄 지원사격으로 어찌어찌 대부분의 병력은 해안에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고, 부대장 던포드-슬레이트(Durnford-Slater) 중령은 경화기로 무장한 소수 병력을 해안에 남겨둔 다음, 곧장 말라티 다리로 향했다.


호위 구축함 텟코트와 코만도의 상륙 작전 모습을 묘사한 삽화..


당시 다리는 콘크리트 벙커로 보호되고 있었는데, 곧 그 허점을 발견한 코만도 대원들이 접근해 수류탄으로 이곳을 지키던 이탈리아 수비대를 패퇴시키는데 성공했고, 다리에 설치된 폭약들도 곧 해체되었으며, 영국 제 3 코만도는 7월 14일 03시 30분, 말라티 다리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아직 남아있는 말라티 다리과 벙커들, 그리고 그 위치..


한편, 제 3 코만도가 확보한 말라티 교량의 북쪽, 퍼스티언 작전의 최종 목표물인 프리모솔레 다리 주변에 강하한 영국 제 1 공수 여단의 전투는 코만도가 해변에 상륙한 직후에 시작되었다.



여단장 제럴드 라스베리(Gerald Lathbury) 준장은 23시 30분 경, 교량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곳에 떨어졌는데 고작 60m 높이에서 강하한 그는, 다행스럽게도 부드럽고 평평한 땅에 떨어지는 바람에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 직후, 여단 본부 병력들과 합류한 그는 제 2 대대 소속 약 50명의 병력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갔는데, 교량 근처에 접근하면서 그는 이미 제 1 대대가 그곳에 집결해 있음을 알게 되어 기뻤지만, 동시에 그는 온전히 작동하는 무전기가 단 한 대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마켓 가든과 완전 판박이..무전이 안 된다~~흑~)


이거 나중에 또 겪을 듯..라즈베리 준장과 머나먼 다리, 아른헴..

 
시간이 지나면서 공수 부대 소그룹들이 속속 교량 인근으로 집결했고, 라스베리 준장은 제 2 대대장에게 원래 그들의 임무인 다리를 내려다보는 고지로 병력들을 인솔해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린 다음, 소대 병력을 강가에 배치했다(이때 고지 점령의 임무를 띠고 병력을 인솔한 제 2 대대장이 바로 마켓 가든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존 프로스트(John Frost) 중령이었다..-_-;;)


당시 2대대장이 이 양반이었다..존 프로스트 중령..큭~ -_-;;


이때의 전투를 피터 스테인포스(Peter Stainforth) 중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적군은 다리 양쪽 끝에 철조망을 설치했지만 우리는 폭탄으로 그것을 제거했죠. 교량의 점령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교량의 양쪽 끝에 있던 적군의 벙커는 신속하게 장악되었고 그곳에는 전 주인이 버린 유용한 무기가 들어있었습니다. 이탈리아제 50mm 야포 2문과 독일군의 75mm 대전차포는 우리의 방어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당시 확보한 벙커(사진 우측)는 이후 독일군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데..


7월 14일 04시 30분, 영국 제 1 공수여단은 여러 난관을 뚫고 프리모솔레 다리를 장악하는데 성공했지만 진정한 고행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제 2 대대 140명의 병력들은 교량 남쪽 “쟈니(Johnny) 1, 2, 3”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고지 3개를 확보하고, 500명의 이탈리아 군 포로를 잡았지만 대대는 정상적인 전력을 거의 갖지 못했다. 
제 3 대대는 공수 과정에서 최악의 고통을 겪었고, 단지 소수의 병력들만이 다리에 도착했으며, 대부분의 장교가 사라진 가운데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다리를 장악하고 있기 위해 편제를 해체하고 제 1 대대에 합류해야만 하였다. 


3대대의 원래 임무는 때려치우고 다리 지키는데 합류..


한편, 이 시각, 남쪽 말라티 교량을 확보한 제 3 코만도에게 먼저 시련이 닥쳤다.


그들이 교량을 점령한 직후 독일 제 15 기갑사단의 일부로 구성된 슈말츠 전투단(Kampfgruppe Schmalz)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타이거 전차의 직사포탄이 교량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이 터오기 시작하자 이탈리아 군 병력과 함께 더 많은 독일 전차와 기갑 척탄병 연대 병력이 도착했으며 오전 5시 20분경, 박격포와 전차포로 인한 사상자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코만도 지휘관 던포드-슬레이트 중령은 자신이 상황을 빠르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몽고메리가 큰소리 치며 이날 아침이면 바로 도달할 것이라던 제 50 사단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늙다리 이태리 군대만 있다며? 이것들은 모냐?

 
결국 해변에 남아있던 병력들까지 말라티 교량으로 불려왔고 코만도는 소규모 특공대를 편성해 독일군의 측면을 치려고 시도했지만 쏟아지는 화력 앞에 끝내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코만도가 겪은 시련의 주요 원인은 바로 독일군의 타이거 전차였는데, 교량의 반대 편 숲속에서 88mm 전차포탄을 마구 날려대는 이 괴물은 당시 코만도가 보유하고 있던 유일한 대전차 화기인 피아트(PIAT) 로켓 발사기의 사정거리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그곳과 같이 활짝 열린 지형에서 그놈에게 접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마켓 가든이랑 완전 똑같지 않은가?)


타이거 전차에 이걸로 답이 나올 리가..피아트는 근처도 못간다..


많은 부하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상태에서 던포드-슬레이트 중령에게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국 그는 살아남은 부하들에게 소그룹으로 나눠 아군 전선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고, 제 3 코만도는 150명 이상의 병력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거나 실종되었지만, 그나마 영국군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이들의 처절한 저항으로 인해 말라티 교량이 폭파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www.walkingthebattlefields.com/2012/04/operation-husky-sicily-1943.html
https://en.wikipedia.org/wiki/Landing_ship,_infantry
http://www.wikiwand.com/en/British_airborne_operations_in_North_Africa
https://military.uli.asia/primosole-the-1st-bridge-too-far-green-vs-red-devils/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Fustian

"일찍 일어나는 새는 하루종일 피곤하다"는...
일찍 들어왔더니,
오랜만에 1 빠 (^&^)/

포스팅 감사, 봉달님.
별 말씀을요!
영겁처럼 느껴지는 더위를 잊게 해주는 봉달님의 글,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존 프루스트... 지못미...
흐흐흐..-_-;;;;
폭염을 식혀주는 봉달님 포스팅 늘 감솨!! 더운 날씨에 무리하지 마시고 건필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바보짓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반복한거네요. 머나먼 다리가 영화화 된게 이해가 갑니다
걔네들 정서상 이정도면 곱씹죠. 한국전쟁 그 무수한 십질들은 언제 곱씹아볼려는지 우리는.

글쎄요...
일단 우리 조직은 반성이란 걸 하면 마치 죄인이 되는 듯 생각해서리..
혹은 가오가 떨어진다고...
두근두근 다음화 언제나오나요 흥미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