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다 보면

봉달이 2018. 7. 27. 15:31

어째 거꾸로 돌아가나? 뒤로 진격의 기무사<2>



메이지 유신 이래 승승장구하던 일본 군부가 태평양 전쟁 개전이라는 무리수를 두며 몰락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흔히들 사사건건 정치질 하다가 안 되면 뒤집어엎는 “쿠데타”와 “하극상”, 그리고 육해군의 알력으로 대표되는 “군대내 파벌 싸움”을 꼽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저 쓰레기 같았던 이웃나라의 대표적 악습과 악행을 이 땅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
그것도 이 대명천지에, 전 세계에서 정보화가 가장 잘 되어있다는 나라에서 말이다.


윗선의 지시 여부를 떠나, 기무사령부라는 이미 한 번의 전과가 있었던 조직이 또 다시 위계질서를 뒤엎고, 이 땅에서 군(軍)에 의한 통치를 모의하고 기도했다는 자체도 기가 차지만, 이런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밝혀줄 근거를 보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넘겨버린 국방부 최고 책임자의 작태도 황당할 뿐이며, 거기에 더해, 제대로 보고했니 안했니 하며 군 명령체계의 상급자와 하급자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이것이야 말로 학을 띠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노릇이라 하겠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누누이 말해 왔지만 거의 100년 전에 일본이 행했던 군에 의한 통치체제, 소위 “군국주의 체제”는 이미 당시에도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구닥다리 정치 체제였고 이런 강압정치를 통한 선동질과 국민 노예화, 그리고 극소수의 군부 엘리트가 지도하는 시스템은 잘 될 경우, 반짝 성장을 구현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장기간의 정치 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국가 번영을 추구하기에는 택도 없는 체제다.


이거 부럽냐? 인간들아..


1. 그들의 원조는 특고 헌병? 기무사의 기원..


먼저 위수령이니 계엄령이니 하는 목적을 두고 대비계획이라니 시행계획이라니 하며 난리를 치고 나아가 내란 또는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그 문제의 군 조직, 국군 기무사령부(Defense Security Command, 國軍機務司令部)라는 곳은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그 기원은 어떻게 되는지 간단히 알아보고 넘어가겠다.



국군 기무사령부는 해방 이후 이 땅의 현대사에서 최강의 권력기관으로 때로는 국민 위에, 때로는 정치 위에, 때로는 군부 위에 군림하여 왔다.
특무대, 방첩대, 보안사령부, 기무사령부로 비록 그 이름은 변화하였지만 병력 수로 따지자면 1개 사단 규모도 안 되는 이 부대는 두 명의 대통령, 세 명의 정보부장, 두 명의 육군참모총장, 두 명의 여당대표, 두 명의 여당사무총장을 배출할 정도로 막강한 맨 파워를 자랑하는 곳이며,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대가리 계층의 가장 큰 인력공급원이 바로 이 부대였다(이러니 모가지가 빳빳할 수밖에..)


이 조직이 안하무인인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무사가 해방 이후 최강의 권력기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재자가 정권의 안위를 위한 감시기관으로 이 조직을 사유화해 온데다가 군이라는 최강의 물리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위(독재자)로부터의 권력과 밑(군)으로부터의 물리력을 같이 갖추었기 때문에 이 조직은 어쩌면 독재 시대의 중앙정보부보다 더 한 무소불위의 기관이 될 수 있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뻘짓거리..대빵에게 빌붙기..


지식백과에 따르면 이 부대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직할 군 수사 정보기관으로 군사보안지원, 군 방첩, 군 관련 첩보 수집 및 처리, 특정범죄 수사 등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 기원을 보면, 1945년 11월 설치된 국방사령부 정보과, 1946년 1월에 설치된 남조선 국방경비대 정보과를 확대 개편하여 1948년 5월 27일 창설된 조선경비대 육군정보국 정보처 특별조사과가 모체이며, 정부 수립이후인 1948년 11월에 조선경비대 특별조사대를 확대 개편하여 1949년 10월, 육군 직할의 특무부대(特務部隊, CIC)가 창설되었다고 한다.
어떤 자료를 보면, 미군정 시절 미 육군 제 24 군단 소속 방첩부대(CIC..Counter Intelligence Corps)를 모델로 하였다고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순전히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거리를 넘어 그저 정당화 내지 미화의 차원으로 보인다.


이 조직을 모델로 했다고? 에구구..농담도 심하셔~~


내가 보기에 이 조직의 모델은 군국주의 시대 일본 군부가 민간의 방첩기능을 수행하던 악명 높은 비밀 정치경찰조직인 특별고등경찰(特別高等警察..흔히 특고(特高)라고 하는..)을 그대로 카피해 군 조직 내에 만든 “특고 헌병(特高 憲兵)”이라 생각된다.


어떤 이는 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든 정보부대인 “특무 기관(特務機関)”이 이 조직의 전신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인 국군정보사령부(國軍情報司令部 Defence Intelligence Command)가 존재하고 있기에 그 성격에 있어 기무사는 특고 헌병에 더 가까운 조직이라 할 수 있겠다.
가뜩이나 악명 높은 일제 헌병대인데 그 앞에 특고라는 글자까지 붙었으니 이 양아치 조직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는지는 구구절절 설명하면 입 아프므로 이쯤에서 그냥 넘어가겠다.


헌병이라는 글자 앞에 특고까지 붙었다..뭔 설명이 필요한가?


문제는 왜 기무사의 전신이라는 특무대가 미군의 방첩대를 닮지 않고 일본군의 특고 헌병을 닮아갔는가 하는 부분이 되겠다.


당시 특고 헌병에게 고문 당해 사망한 소위 일본 빨갱이..으이고..

 

1945년 해방 직후 남한에 진주한 미군 방첩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부터 일제 헌병과 경찰 출신 조선인을 훈련하여 미래의 한국군 비밀 정보 요원으로 육성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미군정의 쓸데없는 지랄도 지랄이지만 더 황당한 건, 이때 국부께선 이런 시도를 완전히 변질시켜 이 조직을 완전히 그의 사조직으로 운영했고 국가 전복 세력을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그의 정적을 감시하고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양반 요새 이런저런 말이 많던데..걍 낙향에서 국부나 모시지..

 
이 쓰레기 영감이 그의 정권 수립과 동시에 행한 가장 병맛스러운 짓거리가 일제 부역자들, 즉, 친일파의 대거 기용이었는데 당연히 특무대는 그 온상이 되었고 이곳은 경찰과 더불어 특히 악질들만이 모인, 소위 악의 축이었다.  


이미 당시 한국군 헌병대는 일제 경찰 고등계나 일본군 헌병대 등에서, 해방 뒤엔 좌익과의 투쟁에서 예민한 권력 감각을 체득한 친일파 쓰레기들로 바글거렸고, 이들이 “군대의 정치 간섭”이라는 패악을 끼치기도 전에 이미 육군 정보국 특무과를 중심으로 일제 경찰과 헌병출신들이 결집하고 있었다.


나중에 특무대와 헌병대는 경찰과 함께 승만탕구 정권의 3대 파수꾼으로 불리게 된다.


특무대와 함께 승만탕구 정권의 3대 파수꾼 헌병대와 경찰..

 
아무튼 일제경찰 및 헌병 출신들을 육군정보국의 특무과(특무부대의 전신)로 대거 끌어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은 1948년 가을부터 시작된 군내 좌익분자 색출 작업, 소위 숙군(肅軍)작업이었다(뭐 언제나 그렇듯이 주요 계기는 빨갱이 팔이다..)
당시 소령으로 특무과장이었던 김안일(金安一)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숙군작업으로 전문 수사요원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어 경찰관들을 특채하게 되었다. 수도청 사찰과 형사들과 일제 헌병 출신들이 수십 명 들어왔다. 경찰 출신들은 주로 일제 때부터 경험자였다. 노엽, 이진용(李珍鎔, 일제 경찰관 출신), 도진희(都晋熙, 일제 경찰 출신), 장보형(조선군 헌병 출신), 장복성(일제 경찰 출신) 같은 이들이 이때 특무과로 들어왔다.”


당시 특무과장 김안일..5.16때 쿠데타 합류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노엽은 1905년생 평양 출신으로 해방 당시 조선군 사령부(일본 조선 주둔군..한국군 아니다..) 원산 헌병대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었으며, 당시의 계급은 특무조장(지금의 준위..)으로, 당시 한국인으로는 일본 헌병대에서 가장 높은 계급에 오른 이였다.
지 말로는 그는 원산에서는 주로 대소(對蘇) 방첩업무에 종사했고, 독립운동가의 탄압은 본 임무가 아니었다고 하였지만 이런 작자들 말은 믿을 수가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 하고, 그의 증언에 따르면 해방 당시 헌병 보조원을 제외한 일본군 정규 헌병(일본 헌병은 모두 상등병, 즉, 하사관 이상..)인 한국인은 전국에서 달랑 30여 명뿐이었다고 한다(자랑이다 자슥아..)



해방 뒤 북한에 소련군이 들어오자 그는 탄압을 피해 서울로 내려와 약 3년간 상업에 종사하다가 졸지에 한국군 대가리가 된 채병덕, 이용문(李龍文) 등 평양 출신 일제 뽀시래기들의 설득으로 여순 반란사건, 아니 제 14 연대 반란사건 직후에 벌어진 숙군작업 시기에 특무과 요원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이때 이것들은 육사 제 8 기 특임반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장교로 임관했으며, 일제시대 흥남헌병대에서 근무했던 김성하, 용산헌병대 조장 출신 최태화, 관동군 헌병 하사관 출신 이옥봉, 청진의 고등계 형사 출신인 고영섭 등이 함께 1949년 1월 특무과에 장교로 들어가게 된다.


대단한 껀수가 걸렸다..제 14 연대 반란 사건..

 
이후 이것들이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는 안 봐도 블루레이니 일단 넘어가고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자 승만탕구에 대한 짜웅이나 돌격대장 노릇 등 여러 면에서 경찰에 눌려 있던 군대의 정치적 비중이 갑자기 급속도로 커졌다.
이 새로운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 승만탕구의 발가락을 열심히 빨며 순식간에 신임을 얻고 권력을 휘두르게 된 이가 바로 김창룡(金昌龍)이었다.


두둥~~ 이 인간이 나타났다..

 
이 인간은 1916년 7월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1937년,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헌병대의 군속이 되었는데 이때 딱가리 짓을 졸라 열심히 했는지 3년 뒤엔 관동군 헌병보조원이 되었다.
그 뒤 온갖 짜웅 과정에서 꽤 많은 실적을 올려 무려 정규 헌병, 즉 헌병 하사관이 되었다(주로 항일 중국인 조직을 상대하는 정보수집 업무에 종사했다고 하는데 알 수가 있나? 중국인만 한정해 했다고? 차라리 파리가 새라는 걸 믿겠다는..)



김창룡이 일본군 헌병 시절 벌였던 짓거리와 관련해 훗날 김창룡을 암살한 부하이자 같은 일본 헌병 출신인 허태영이 군교도소 안에서 쓴 <김창룡 저격 거사 동기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김창룡은 일제시대 북만주에서 악질 일본 헌병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애국독립투사를 투옥했으며, 중지(中支.. 중국 중부)방면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으로 일할 때는 포로를 학대한 친일전범이다.”



해방 이후 김창룡은 북한에서 친일파 더하기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하며, 서울까지 내려온 그는 만주군 출신 장교 박기병(朴基丙)의 소개로 원용덕(元容德, 뒤에 헌병 총사령관)의 추천을 얻어 제 5 연대 사병으로 들어갔다가 육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 임관했다(잘 돌아간다..)


 
제 1 연대에 배속된 그는 정보소대장이 되어 군내의 좌익색출을 담당, 승만탕구 무리들의 인정을 받았고 제 14 연대 반란사건 이후 육군내의 좌익세력을 제거하는 대규모 숙군작업이 시작되자 무려 소령이 되어 육군 정보국에 근무하던 이 자슥은 이 작업의 실무 책임자로서 일했다.


숙군 작업에 걸려 처형되는 한국군..지랄도 풍년이다..


이때 악명을 날린 김창룡은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사건이 발생, 체포된 안두희가 사건 이튿날 밤, 육군 정보국 특무과(SIS : Special Investigation Section, 특무대의 전신)로 넘겨져 조사를 받게 되자 그를 직접 심문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노마는 안두희를 보자마자 “안(安) 의사, 수고했소.”라고 했다고 하며, 부하 직원들에게도 안두희를 잘 봐주도록 당부했다고 한다.


이 색기는 안 끼는 데가 없었다..진정한 썩은 문어발..


어쨌든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김창룡은 1950년 8월 1일, 부산 CIC 대장으로 임명됐다가 서울 수복 뒤에는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었는데 이때 했던 일이 바로 승만 썩을 영감이 토깐 후 이 영감탱이의 말만 믿고 한강 인도교가 끊어진 서울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을 체포하고 닦달하고 고문해 빨갱이 부역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1950년 10월 초 부터 1951년 5월까지 김창룡은 숙군 때와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소위 부역자들을 처벌하기 시작했고, 당시 내무부 치안국 자료에 따르면 1950년 말까지 검거된 인원만 15만 3825명, 자수한 인원 39만 7090명으로 총 55만 915명이 부역 혐의를 받았다고 하며, 이 가운데 서울지역에서만 1,298명이 처형됐다.


그러나 진정으로 북한과 협조한 사람들은 이미 북한군과 함께 북으로 올라가고 없었다.


아주 악의 화신 짓거리만 골라한다..부역자 처리반..이런..


이후 그는 평양지구 특무대장으로 발령받았으나 1.4후퇴 바람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합동수사본부장 일을 계속했다.


이때 당시도 계엄 하에서 합동수사본부장은 사실상 수사권을 독점한 자리로 승만 썩을 영감과의 직통보고 루트를 갖고 있었고, 이 직통 보고라인이야말로 권력이 나오는 원천이었으며, 이 자리를 이용해 이 색기는 최전선이 아닌, 후방에서 독재자의 측근에 머물러 있으면서 권력을 지 맘대로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 아닌가? 보안사령관(지금의 기무사..) 두화니가 박통과 늘 직통하고 합수부장이 되어 나라를 뒤집은.. 그렇다, 모든 것엔 원조가 있다..)
김창룡은 직속상관인 참모총장이나 국방부장관을 무시하고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따위의 월권을 자행했고 비위사실의 보고내용도 사감에서 나온 것이 많았으며 수집한 정보들을 군사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세력 확장에 이용했다.



또한 그는 지휘관 사이를 이간시켜 장성들을 분열시켰고, 이때부터 특무대는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지휘관들을 감시하는 데 열중했다.


김창룡의 측근에 달라붙어 똑같이 권력을 휘두르며 지랄하던 부류들은 대부분 세 가지 출신으로 나눌 수 있는데, 관동군과 만주군 헌병 출신자, 조선군 헌병 출신자, 그리고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들이었다.
여기서 더 골 때리는 건 같은 쓰레기들끼리 이들은 서로 반목했다는 사실이며 웃기게도 이는 일본군의 대표적인 지랄병인 알력다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전쟁 당시 같은 헌병끼리라도 조선군 헌병들은 관동군이나 만주군 헌병들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었다고 한다.


배울 건 하나도 안 배우고 이런 삽질만 고스란히 이어받은 이것들은 조선군 헌병 출신과 관동군 헌병 출신자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일으켰고, 김창룡은 지가 관동군 헌병 출신이라 조선군 헌병 출신들을 중용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결국 조선군 헌병 출신인 부하 허태영에게 총 맞아 뒈지고 만다(흠..박장군도 그러다가..참 희안하게 닮는다..)


이런 걸 인과응보라고..훗날 박장군도 저러다가 지 부하에게..

 
김창룡이 죽자 승만탕구는 마치 히틀러가 나치의 기무사인 SD(Sicherheitsdienst)의 수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처럼 징징거렸다고 하며, 그에게는 1계급 특진, 육군 중장이 추서되었고, 장례는 국군 최초로 ‘국군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조기가 게양되는 등 여러 가지 이례적인 조치가 취해졌는데 더 해, 이 인간은 놀랍게도 국립 현충원에 아직도 자빠져있다.


이런 걸 데자뷰라 하지 않나? 이승만과 히틀러, 그리고 그의 딱가리들..


이후, 육군 특무대는 4·19 혁명 직후인 60년 7월 20일, 육군 방첩부대로 그 명칭이 변경 되었지만 1961년, 김종필을 비롯한 5·16 군부 쿠데타 세력은 쿠데타 직후, 미국의 CIA를 모델로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쌩구라를 까며 무소불위의 정보기관을 만들었는데 이때 설립된 중앙정보부의 주축 대부분이 “일제 특고 헌병”의 후예들인 특무대 요원들이었다. 
1968년 9월 23일에는 육군 보안사령부(해·공군은 보안부대)로, 1977년 10월 7일에는 각 군 보안부대를 통합한 국군 보안사령부로 바뀌었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초창기의 지랄병들은 그대로 전통으로 굳어졌다.



그러다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이 언론에 폭로되는데, 이것이 소위 <국군 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당시 폭로된 사찰 대상 명단은 무려 1,300여 명이었고 골 때리게도 이 명단엔 당시 집권당 대표였던 김영삼도 끼어 있었다.

결국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바꾼 것도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이 역시 그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기무사와 국정원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의 현대사라고 표현될 만큼, 김구 암살과 조봉암 사형 등으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음습한 음모 정치의 모든 과정은 이 두 기관을 제외하고는 설명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 편에 계속>



한편에 다 쓸려고 했는데 글도 길어지고 이런 글 쓰다보면 열 받아서리..
가뜩이나 날 더운데 혈압 올라 자빠질까바 부득이 2~3편으로 나눕니다..

왠만하면 정치 사안과 관련된 글은 안쓸려고 했는데..쩝..-_-;;
봉달이님 내공에 항상 감탄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별 말씀 다 하십니다..감사합니다..^^
그 전까지만해도 모씨가 혁명 발언을 했으니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주장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번 공개 문건 보고 그런 생각들 싹 접었네요
헌법상 최후의 견제 수단인 국회까지 무력화시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게다가 군인권센터에서 그린 병력 배치도 보고 설마 기무사가 아무리 미쳐도 이 나라 전방 기동부대 다 빼서 경상도까지 보내겠냐 싶었는데 그냥 그게 사실인거 보고 어이가 없었죠 수기사 경상도로 보냈다가 북괴가 얼씨구나하고 쳐들어오면 참... 대체 누가 빨갱이고 누가 간첩인지...
참..그게..헷갈립지요..-_-;;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역사는 절대로 정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황군보다 더한 모습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시를 잘 해야 겠죠
국민들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데 동감합니다..
선우종원 오제도 사진 바뀌었습니다.정정해 주세요 둘다 거기서 거기라 바뀌어도 상관없기는 합니다만
내가 이곳을 끊임 없이 찾는 이유가 오늘의 내용 때문입니다 ,,,
봉달이님 만큼 궁금했던 내용들을 이렇게 알려주는 곳이 드물지요 ,,,
또한 상당 부분의 의식이 같아서 동료같은 생각도 있고 ,,,
계속되기를 항상 바람니다 ...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거듭 감사 드립니다..
기무사 역적들은 조선스타일로 해야하는데..
거열 + 8도 효시
그리고 이미 뒤진 역도들은 부관참시 쇄골표풍

이럴땐 온고지신이 참 그립네요
거참...그들 자신들은 억울하다 생각할지도요..
문재인은 솔직히 맘에 들지않긴한데 기무사 조져버리는건 찬성합니다ㅎㅎ
ㅎㅎㅎ
기무사는 나치의 친위대외 비슷한 조직~~~
동감합니다..
사진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아마 어느 산골 아니면 어느 동굴에 영혼이 되었겠지요 참고로 제가 겪은일인데 할아버지 사촌께서 우체국집배원이었는데 우체국장이 남로당원이 이어서 인민군 치하에서 우체국장이 시키는데로 일하다 좌익 부역자로 몰려서 위에 사진처럼 인천 형무소에 수감이후 행방불명입니다. 그런데 놀라운건 모든 집안사람들이 전부 알고는 있는데 아무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게 아마 반공논리로 공포로 이 사회를 지배한 폭거인데 여기에 김창룡 노덕술 오제도 이런 인간들이 아주 중요한 한 몫을 한것입니다. 그러고도 자신들은 애국을 했으며 지금도 자신의 행동을 그 자손들 까지 정당화하고 있으며 생전에 단 한순간도 반성 비슷한것도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천수를 다하였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일까요 이런 사회에서 기무사의 행태가 나오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역사를 과거를 청산하고 반성하지 않은 댓가를 두고 두고 치르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반대하시면 언제든지 반론을 받겠습니다.
찬성...캬캬캬
대다수의 군필자들은
군시절에 이놈의 보안사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은 없을겁니다

초소장 근무할때 인수인계 사항중 중요한게
보안대 차량 잘 숙지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경례잘해 통과 시키는것임

제 마음같아서는 이기회에 아주 없어졌으면 좋으련만---
대표적인 옥상옥 조직 + 게슈타포지요..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지것 쓰신 글들을 읽어보며
참~ 아니다 싶었는데 이전에 읽어오던것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건들이 나오는군요
참~내~
고양 금정굴 학살
이게 무슨 킬링필드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저런 사껀이 또 있었다는게,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게 정말 놀랍네요
그것 말고도 덮힌 사건들은 무궁무진 합니다...
기무사 하는 짓이 정말 일본 군부를 빼다 박았네요
내란 일으키기, 내각 뒤엎기, 알력 싸움하기, 국민 감시하고 겁주기, 빨갱이 사냥하기 등등...

이것들이 어떻게 한국내에, 군내에 파고들었는지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특고헌병을 언급해주셔서 한국내의 일본 헌병대의 활동을 찾아봤습니다
기무사가 벌인 모든 짓 (국민감시, 재판을 초월한 징계 혹은 구류, 국민자유권제한, 언론통제, 사회주의 및 공화주의 탄압 등)
이것들은 전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통독부의 행태를 빼다박았습니다
기무사가 조선총독부에서 강한게 영향받은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네요
그 대가리가 김창룡이었으니..
아마 일본 특고 헌병과 거의 똑같은 조직이라 보시면 되실 듯..
두고봅시다? 생각에는 문재인은 ? 틀림없이 전임자들과 별차 없이 ??더하면 더 꼼수부려 기무사를 국방부 사회 안전처로 키워 적화 통일에 한몫을 담당
언제나 한결 같네요..
어떤 면에선 존경스럽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