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다 보면

봉달이 2018. 8. 7. 16:02

어째 거꾸로 돌아가나? 뒤로 진격의 기무사<2>



2. 그냥 대비 계획이라고? - 언싱커블 작전


현재 드러난 기무사의 위수령, 계엄령 문건과 관련하여 보수 야당은 군이 쿠데타를 모의한 것이 결코 아니며 그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비한 예비 계획이라 주장하고 있다.
즉, 이 문건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단순한 검토 차원의 문건이고, 따라서 이 문건을 근거로 기무사를 중심으로 한 군이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런 보수 야당의 주장은 택도 아닌 헛소리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군이 만든 모든 작전 계획이나 대비 계획에 있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계획”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현대에 와서 100%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최고 무력 집단인 군이 저따위 실현 가능성이 제로인 계획, 다시 말해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군 고위 관계자들이 할 일 없어 끄적거린 낙서 따위를 만들고 앉았다면 그것이야말로 100% 세금 낭비이자 전력의 낭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거기다 저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군은 그들이 작성한 모든 계획을 그것이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계획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만을 작성하며(그게 아무리 맨땅에 헤딩이라 할지 라도..) 그 결정은 모조리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군 통수권자, 혹은 엉뚱한 흑심을 품은 군 내부 꼴통들의 “의지”에 달려있을 뿐이다.


요즘 군대 졸라 할 일 없는 모양..이런 거나 장난 삼아 만들고..-_-;;


어떻게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시스템이라 생각되지만 그것이 엄연한 우리의 군 통치 시스템이며 헌법에도 아주 자알 보장되어 있다.


또한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정치적 국가 시스템적으로 발전되어 있다는 선진국에서도 이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존재했고, 굳이 쿠데타의 사례가 아니라 군이 만든 황당한 계획들이 “지도자 혹은 꼴통들의 의지”에 의해 숱하게 실현되어 왔으며, 때로는 포기되기도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다 건너 어느 섬나라의 사례이고 어처구니없게도 소위 그들의 최고 통치자는 지금은 감방에 들어가 있는 우리의 과거 지도자와 상당부분이 닮아있어서, 이분들(?)께서는 목소리만 냅다 지르는 강성 꼴통들과 내시들에 둘러싸여 군이 무슨 짓을 하던 그저 그들에게 동조하며 어벙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또 그런 식으로 권력을 유지했다(그렇다고 죄가 없다는 게 아니다..)


다를 바가 하나 없다..

         
그렇게 그들은 세계대전이라는 헬 게이트로 국가와 국민을 끌어들였고 그렇게 종말을 맞았다.


또한 굳이 저들을 들먹이지 않아도 다른 국가들의 사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은 숱하게 발견되고 있으며, 그때도 군이 만든 그 모든 계획들은 오로지 통수권자 혹은 그들 스스로의 의지에 달렸지 국민은 전혀 그 내막을 모르고 있었다.
선진국의 군이 만든 얼토당토않은 전형적인 예를 들자면(하긴..그런 건 숱하게 많지만..) 영국은 2차 대전이 완전히 종결되기도 전인 1945년 7월에 소련을 침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소련을 침공한다! 누가? 영국이! 흐흐흐흐..쿨럭~ ㅠ.ㅠ


1945년 5월 22일, 영국 전쟁성이 입안한 이 소련과의 전쟁 계획은 딱 보아도 알겠지만 말도 안 되는 작전이었고, 지네가 생각해도 황당했던지 그 작전명을 “상상초월 작전(Operation Unthinkable)”이라고 붙였으며, 그 내용은 영국군과 미군의 연합군이 유럽 동북부를 주전장으로 소련군과 대결한다는 내용이었다(당시 영국은 거의 파산 직전이었다..그런데..흑~ ㅠ.ㅠ)

 
1941년의 모스크바 공방전 이후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대반전을 이루어내었고, 이후 전쟁의 양상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 미국과 함께 소련이 끼어들어 세계 질서를 담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에게 있어 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이 엄청난 전쟁에 소련이 끼어들어 승전국의 주역이 된다는 전개는 결코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었음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그는 볼세비키 혁명과 공산주의 자체를 매우 적대시하던 터였다.


빨갱이 놈들은 모조리 잡아 족쳐야~!! 지극히 그의 개인적인 작전..언싱커블..


게다가 영국군 합동 참모회의와 그 산하의 전후 계획과 관련한 부서들에서도 위 3개국의 장기적인 관계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도 영국군의 고위 장성들은 소련을 잠재적인 적국으로 간주하였고, 영국 외무성 또한 전후 10년 이상의 변화를 생각해 볼 때 소련은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었다.
또한 스탈린으로부터 전후 구상의 입안을 위임받은 막심 리트비노프(Maxim Litvinov) 외무 차관 겸 주미 대사는 이 3개국에 의한 협력과 평화를 강하게 바라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세력 쇠퇴에 따른 세력권 재편의 일환으로 터키에 대한 압박과 패전국 이탈리아의 북아프리카 식민지에 대한 진출을 시도, 영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나마 서방측에 우호적이었던 막심 리트비노프..그래도 걸리적거렸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테헤란 회담 이후 강경한 처칠의 입장에 대해 내심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 말기인 1945년이 되자 폴란드의 전후 처리 문제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소련의 간섭 등 유럽에서 소련의 위협이 커짐에 따라 결국 영국과 연계하여 대항하는 노선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 또한 소련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는 상황이 되자 처칠은 쾌재를 부르며 적극적으로 영국이 소련에 진군하는 작전 계획을 수립하도록 영국군 합동 참모본부(British Chiefs of Staff Committee)에 명령하였는데, 여기서 정해진 개전 날짜는 어처구니없게도 1945년 7월 1일이었으며, 이것이 최초의 영국이 계획한 본격적인 대 소련 전쟁 계획이 되었다.


전쟁 끝나자마자 다시 전쟁을 벌인다! 상상초월 작전..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작전의 실행 예정일로, 개전 예정일인 1945년 7월 1일은 영국의 총선 4일전으로, 이 부분이 바로 이 작전이 국가의 사활을 건 순수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 가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부분이며, 당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전이 포기되며 정상적으로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처칠의 보수당은 노동당에게 정권을 넘겨주며 야당이 되었다(어디와 많이 닮았지 않나?)


처칠의 보수당이 패배하며 정권 이양..흠..왠지 비슷한데?


최근 기무사의 위수령과 계엄령의 세부 계획이 알려지며 논란이 훨씬 가열화되고 있는데, 이 작전 또한 그 세부 내용이 비밀 해제되면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들여다보면, 먼저 당시까지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과 일본(태평양 전쟁 패전 전의 상황..)이 계속 동맹국이 되어 서방측에 대응한다는 것이 이 계획의 주요 전제 조건이었다.
누가 보아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상황이 당시 영국군과 정치권의 수뇌부에서는 엄청난 걱정거리였는지 혹은 희망 사항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최근 우리 기무사가 작성한 계획에 등장하는 촛불 시위대와 태극기 부대의 충돌에 따른 과격 폭동화와 상당부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어쩌면 좀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라던지..-_-;;)


으이고...


만약 태평양 전쟁이 당시까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던 와중에 계획대로 영국이 소련을 침공하였더라면 아마도 소련과 일본은 완전한 동맹국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으며, 이 황당한 계획은 인류를 절멸 상황으로 내몰았을 지도 모르고, 최소한 엄청난 인명 피해는 당연시 되었을 것이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희생이 엄청났을 것임은 당연하다..


다시 언싱커블 계획의 세부 사항으로 돌아오면, 만약 작전 직후 일본과 소련이 동맹 관계를 맺어 연합국과 대립하게 되면, 영미 양국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전쟁 직후 인지라 영미 양군의 사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폴란드 군과 독일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서유럽 국가의 군에 의한 직접 지원은 힘들겠지만 그 군사 기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작전의 요체였다.
물론 당시 소련의 지상군 전력이 영국군과 미군의 그것보다 병력이나 수량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긴 하였지만, 당시 영국 참모본부는 이런 제약은 제한적인 군사 작전에서 신속하게 승리하는 것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이거..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대본영 아닌가?)


저것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신속하게 따귀를 멋지게 후리자! 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영국군은 소련 내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각 산업 간의 물적 네트워크를 공군력을 이용해 단절시키고, 발트 해 연안을 중심으로 한 유럽 북동부에서 대규모 육상 기습 작전을 하는 것이 상정되었다.


당시 영미 연합군은 47개 사단(14개 기갑사단 포함)이 투입 가능하며, 소련군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가진 영미 해군력을 동원, 발트 해에서 함포 사격과 함재기 공격을 통해 좌익에 대한 지원을 받으면서 소련군의 우익에 대해 지상군으로 반복적인 공세를 가하는 것이 작전의 요체였다.

당시 170개 사단(기갑 사단 30개, 모두 영미 수준으로 환산..)을 보유한 소련군이 당연히 병력적으로 우월하였기에, 작전 입안자들은 숫적열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전쟁 중의 반소 감정을 이용하여 개전 직후 재무장시킨 독일군 10개 사단을 영미 연합군에 합류시켜 투입하는 것도 계획에 포함시켰다(마치 한국 전쟁에서 중공군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군을 투입하겠다는 것과 같은 모양새..여러가지 한다 증말..)


독일과 싸우려고 소련과 손 잡았으니 소련과 싸우려면..ㅠ.ㅠ

 
이 지상 작전을 통해 영미 연합군은 오데르-나이세 라인(Oder-Neisse line)까지 진출하며 이 직후 전세를 결정짓는 대규모 전차전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 전투에서 영미 연합군이 승리할 경우에는 단치히(Danzig)와 브로츠와프(Wrocław)를 연결하는 선까지 진군이 가능하지만, 패배하면 깔끔하게 전면전으로 전환하는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전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주요 대도시를 점령하고 이어지는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필요가 있었지만, 황당하게도 이들은 이 작전을 계획하면서도 실제 이렇게 되면 영미 연합군은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의 많은 대도시를 점령한 독일 육군의 성과조차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기습하면 승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엔?


또한 전면전으로 전환될 경우, 영미 연합군의 전략 폭격 및 해군력의 압도적 우위 따윈 소련에게 치명적인 요인이 되지 않으며 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에 의한 막대한 군사 자원의 투입과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 국가의 재무장과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따르면 이렇게 전면전이 될 경우 전쟁이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련은 독일과 같은 전략 폭격이나 잠수함 공격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없기 때문에, 영미 측의 기지와 수송루트는 큰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소련 측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지 맘대로 일축하고 있기도 하다(일종의 자기 위안과 타당성 부여 차원..)


저딴 잡 해군력으로 우리에게 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럴까나?

 
또한 유럽 이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중동에서의 제 2 전선 형성을 상정하였는데, 이 지역에서 소련군은 약 11개 사단을 보유한 반면, 영미 측은 인도군 3개 여단 밖에 없었으며 만약 소련군이 이란과 이라크 지역을 점령, 석유 자원을 압박한다면 영국은 방위에 심각한 영향이 예상되었다.
게다가 이미 유럽 남동부에 지배적인 전력을 가진 소련이 터키의 유럽 측 영토를 점령하고 보스포러스(Bosporus)와 다르다넬스(Dardanelles)라는 양 해협을 봉쇄한다면 당장 영미 측에게는 흑해에서의 군사 행동이 제한됨과 동시에 그리스를 홀라당 잃을 수도 있었다.


소련 땅 탐하다가 중동 지역과 남유럽을 홀라당 잃을 수도..

 
결정적으로 영미 연합군의 소련에 대한 기습 침공이 벌어진다면 당장 소련과 일본 사이에 군사적 합의가 형성될 수 있었고, 극동에서는 대륙타통 작전(大陸打通作戦 Operation Ichi-go)같은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의 대규모 공세가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경우, 소련군이 극동에서 일본군과 연합해 연합군에 대한 공격 작전을 수행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지만, 연합군도 유럽 전선에서 벌어진 대 소련 침공 작전으로 인해 대일 주요 작전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므로 태평양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유럽 전선의 확대로 태평양 전선은 교착 상태에..이 뭐병?


결국 소련의 완벽한 굴복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국지적인 땅 따먹기 차원에 불과한 이 작전은 도대체 그 목적성 또한 애매한 것이었다(그저 전쟁의 연기?)
작전 계획서를 읽은 영국 육군 참모총장 앨런 브룩(Alan Francis Brooke) 원수는 이 작전의 성공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1945년 5월 31일에 열린 합동 참모회의에서도 이 작전의 실행은 작전명과 마찬가지로 아예 "생각할 수도 없는(Unthinkable) 것"이라 발언했다.


내가 볼 때 이 작전은 완벽한 뻘짓거리요..앨런 브룩(좌측)..


하지만 6월 10일, 처칠은 이런 군 수뇌부의 의견을 들은 후에도 만약 미군이 유럽에서 전면적으로 철수하고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포함한 저지대 국가까지 소련군이 진출할 경우엔 어떡할 것이냐고 노발대발 했다.
결국 영국 참모본부는 7월 11일, 영국 본토 방위 작전 계획이라는 명칭으로 계획을 약간 수정한 후 작전 계획서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서는 소련군은 위협이 될 해군력이나 상륙작전 경험이 없고 공군에 의한 공격의 영향도 제한적이며, 로켓 병기에 의한 공격을 제외하면 향후 몇 년간은 소련군에 의해 영국 본토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시끄럽고~!! 계속 추진~~!!


어쨌든 이 계획은 약간 완화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그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그 직후인 7월 16일, 미국의 핵실험이 성공하며 그 이틀 후인 7월 18일, 루즈벨트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해리 S 트루먼과의 회담에서 만약 소련과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원자폭탄으로 소련을 싸그리 청소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은 처칠은 마침내 자신의 계획을 재고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달에 벌어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고, 8월 9일, 소련이 태평양 전선에 참전하자 마침내 이 처칠의 황당한 계획은 실현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걱정마쇼, 전면전 필요없고 핵으로 두들기면 된당께! 대소련 핵폭격 계획..


하지만 누가 보아도 제 정신 가진 사람이 보았다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계획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저 비상시에 대비한 그냥 끄적거린 낙서에 불과하다고 말 한다면 이 또한 골 때리기엔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영국의 저 “대 소련 침공 계획”과 마찬가지로 기무사의 “위수령과 계엄령 검토 계획” 또한 엄연히 실행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이며, 그 내용이 아무리 황당하다 하여도 군에서 만든 작전 계획 중에 그 실행을 목표로 작성되지 않은 것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걍 한 번 끄적거려 본 거예요오~~ 지랄한다 증말..


또한 역지사지의 개념으로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현재의 진보 정권이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진영이 국가의 안보와 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 군을 동원해 이들을 격리시키고 특정 지역에 계엄령을 발동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게 유출되었다고 한다면?


이게 서울이 아니라 대구라면 어쩔건데?


그래서 이건 그냥 비상사태에 대비한 “실행 가능성이 없는 대비 문건일 뿐이다!”라고 한다면 당신네들은 가만있겠는가?
하긴 가만있어야지 어쩌겠어?

똑같은 논리인데.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았으면 한다.


<다음 편에 계속>


이게 답이라고? 생각이란 걸 좀하고 살자..



상상초월 작전
정말 상상 초월이군요
다들 전쟁 끝났고 집에갈 생각만 하고 있는데 다시 전쟁 터트리면 국민과 하급 병사들이 그저 동의 할지요
아마도 전역 전날 복무기간 연기나 마찮가지, 더우기 실전 ㅜ.ㅜ
그거야 말로 죽는 거이지요..ㅠ.ㅠ
처칠이 우익 꼴통인 줄은 알았지만 이럴정도인줄은 몰랐네요
거의 화신에 가깝다고 전 생각합니다...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네요
세계구급으로 어마어마할 위기를 초래할뻔한 일이 있었다니!
실제 실행하려 했었죠..
백만분의 일 가능성으로 저렇게 되었더라면 패튼은 물 만난 고기가 되었겠군요. 유럽은 오십년 동안 거지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은 확실히 무인지경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실제 실행되었다면..흠..ㅠ.ㅠ
작전 실행후 확실히 영국은 거러지 개망이 뻔할듯 그런데 미국이 동의를 할런지 트루먼이 그냥 쌩 깠을 듯 그럼 영국은 그대로 새가 되고 소련이 유럽을 지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도 그 부분을 생각해 보았는데...
저 시기까지만 하여도 워낙 동맹에 대한 맏연한 의무감이 있었던 지라..
알 수가 없습죠..
아직 중편인데 솔직히 말하면, 이글을 쓰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컬러코드 계획을 소개하면서 미국이 캐나다를 가성적군으로 상정하고 군사계획을 세운걸 소개한게 봉달이님이었다는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심지어 컬러코드 작전 중엔 자국내 작전도 있었고 그것이 봉달이님이 소개한 그 유명한 보너스 아미와 개또라이 맥아더, 눈물의 꼬붕 아이젠하워였습니다. 놀랍게도 반쯤 실현되어버렸죠.
더 놀라운건 컬러코드 작전은 기무사 같이 첩보조직이 세운것도 아니고, 합동사령부에서 세운 작전입니다. 한마디로 더 상위조직이 세운거라는 겁니다.

더불어 위 짤 중에 병력투입 사진은 실제로는 기무사 문건에선 존재도 안한것으로 임태훈이 지 맘대로 만들어서 언론사에 뿌린겁니다. 뭐 실제로 기무사에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가 안됐겠지만,

기무사 문건에서 핵심은 이 문건에 대해서 검토와 승인이 언놈까지 올라갔었나, 이지, 기무사가 저런 계획을 세운다는게 개쓰레기 짓으로 묘사하는 모양이라서 적어봅니다.
기무사가 저런 계획을 세운다는게 개쓰레기 짓으로 묘사하는 모양이라서 적어봅니다.
라고 말하셨는데 기무사가 저련 계획을 세우는게 개쓰레기 짓 맞습니다
기무사가 어떤 일을 하는곳인지 굳이 말씀안드려도 잘 아시리라 생각 합니다
저게 기무사가 할일 맞나요
설령 걱정이되어 건의를 할수는 있지만 군을 맘대로 배치한다는것 자체는 월권이며 개쓰레기 짓 맞습니다
기무사 맘데로 저렇게 배치가 가능한가요?
그럴려면 그전의 전제조건이 어떻게 되야 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어짜피 정당성은 없지만 군에 대한 통치권이 있는 합동 사령부와 조직의 일개 분과에 불과한 기무사가 저런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같은지요?
기무사가 계획은 세우는게 쓰레기가 아닙니다. 기무사가 계획을 세우는데, 언놈이 정치적인 외압을 넣는게 문제인거죠.
기무사가 아니면 국내 소요사태에 군이 투입되야 되는 경우, 그 계획을 누가 세운다는 말인가요? 그냥 아무런 계획 없이 되는 데로 흘러가게 두면 됩니까?
국내에선 한번도 그런일이 없지만, 광기에 빠진 군중들이 국가를 전복하게 되면, 그냥 두면 되요? 그럴 수록 치밀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모두가 덜 다치게 되는 것인데, 대한민국은 과거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놈이 전두환입니다.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 당하고, 국가보안의 제일 대빵이 개판이 되버린 시점에, 면밀한 대책 따위 아무것도 없으니,하나회 같은 패거리들이 득세 하게 되는 겁니다.
그 당시 보안사가 정해진 작전매뉴얼에 입각해서 제대로 처리를 했다면, 518같은일이 일어났겠습니까?

그리고 애초에 기무가사 입안하는 계획이라는건, 결국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승인을 해줘야 계엄이고 군사작전이고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기무사가 꼴리는데로 군통수권 ㅈㄲ, 이제부턴 운전대는 내가 잡는다. 이렇게 지 맘대로 못한다는 말입니다.

더불어 말씀 드리는데, 기무사는 군대를 동원하자는 계획은 세웠지만, 위에 나오는 그림은 임태훈이 지 맘대로 소설 쓴거 그린 겁니다. 계획서엔 저런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참총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군사작전 계획에서 어느 사단을 어디에 배치한다는 작전을 누가 짭니까,

게다가, 짜도 됩니다. 그럼 문제가 터졌는데 대통령이 기무사가 국가보안 사태에 대해서 작전 제출하라고 하면, '아, 네 꼴리는 대로 대충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래야 됩니까?


누구나, 내가 지금 평화롭게 사는데, 나에게 총칼을 겨누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기분이 ㅈ같은건 매한가지 일겁니다. 저도 그래서 저런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외압이 있었냐는 알고 싶습니다. 그랬다면 조져버리고 싶은것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단순히 저런 계획이 있었다는 것에 펄떡 뛴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원래 저런일 하라고 있는게, 기무사, 디펜스 시큐리티 커맨드 입니다.

오히려 저런 계획이 없다면, 그런데 정말 역사에도 어쩌다가 있는 일이 생겨버린다면, 코피 쏟을 것을 순대 쏟는겁니다. 더군다나 그걸 자국 역사로 배운게 우립니다.
더불어, 국군의 경우엔 모든 작전의 초안은 기무사, 정보사, 가끔은 사실상 외주나 다름 없는 국방연구원 등에서 나옵니다. 이것들이 모여서 합참으로 가고, 그 작전을 승인하고, 넘버링 붙이는건 합참에서 합니다.

따라서 기무사가 계획을 쓴다는게 전혀 이상할게 없는 겁니다.
합참 입장에선 안쓴놈이 게으른 놈인거죠.
제가 요새 좀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로 인해 답글이 늦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뀨뀨 님의 주장엔 여러 가지 잘못 곡해하고 계신 부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제가 예전에 소개한 미국의 컬러코드 계획을 말씀하시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기무사의 계엄령 또한 잘못된 것이 없다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는 제 포스팅의 의도와도 상반되며 오늘날의 이 사태를 합리화시키지도 못합니다.

미국의 저 계획이 최초로 입안된 시기는 영일 동맹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으며 미국이 신생 강대국으로 열강에 진입하기 시작한 시기였죠.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선 영국이고 일본이고 영국의 가장 막강한 동맹국인 캐나다 건 모조리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던 시기였기에 저런 계획을 세운다는 게 영 애먼 짓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컬러코드 작전은 기무사 같이 첩보조직이 세운 것도 아니고, 합동사령부에서 세운 작전, 즉 한마디로 더 상위조직이 세운 것이 맞습니다(당시 미국 전쟁성이 세운 계획이죠..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기무사는 첩보조직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 계획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합법성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는 없습니다.

또한 보너스 군대 사건도 내부 소요를 군을 동원해 진압하기 위한 계획 중에 하나였고 오늘날 현대 미국에선 사정없이 까이는 사건이었죠.
당시 1차 대전 참전 군인들이 보너스를 요구한 것을 두고 공화당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맥아더가 빨갱이 폭동이라며 군대를 동원해 뭉개버린 것이 보너스 아미 사건인데요, 이 무지막지한 일로 인해 공화당 정권이 민주당 루즈벨트 정권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따라서 포스팅에도 설명하고 있는 언싱커블 작전이나 컬러코드 계획이나 검토 수준이 아니라 실행 계획이었고 실제로 실행되기도 했으며 제가 지적하고픈 내용은 국가 권력의 실행자를 잘못 뽑아놓으면 언제든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우매한(?) 국민이 다치고 억압받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기무사가 아니면 국내 소요사태에 군이 투입되야 되는 경우, 그 계획을 누가 세운다는 말인가요? 그냥 아무런 계획 없이 되는 데로 흘러가게 두면 됩니까? 라고 하셨는데요..

국군 기무사는 국내 소요사태를 관장하는 부대도 아니고 계엄령을 관할하는 조직도 아니며 첩보조직도 당연히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디펜스 시큐리티 커맨드, 즉 국군 기무사는 방첩 기관이지 정보를 소집하고 민간을 사찰하는 조직이 결코 아니며 군의 정보 관련 업무를 관할하는 곳은 국방정보본부 예하 조직인 국군정보사령부(國軍情報司令部, Defence Intelligence Command, KDIC, 약칭: 정보사)이죠.
쉽게 말해 정보사가 첩보기관, 즉 미 중앙정보국(CIA) 같은 역할을 군에서 수행하고 기무사는 미 연방수사국(FBI)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입니다(그것도 오로지 군대 내에 한해서..)
또한 미군에서 방첩 임무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미 육군 방첩정보대(United States Army Counterintelligence)으로 이들은 오로지 방첩 기능에만 특화되어 있으며 냉전 초기인 50년대에 우리의 방첩대와 같이 그런 극악한 일을 벌인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문제들을 일으켰기에 지금은 그 권한이 엄청나게 축소되어있죠(거기다 우리처럼 통합시켜 힘을 키워준 게 아니라 육해공군으로 분산..)
다시 기무사가 아니면 누가 그런 비상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하냐고 말씀하셨는데 기무사가 그런 문건을 작성한다는 자체가 중대한 권한의 남용이고 탈법입니다.

계엄령의 주무부서는 어디까지나 합동참모본부로, 기무사는 계엄령을 검토할 권한이 없으며 따라서 기무사가 군의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합참을 배제한 채, 계엄령을 계획하고 심지어는 계획을 통해 합참에 병력을 배치시키려고 했다면 당연히 군법회의에 회부되어야 마땅한 사안입니다.
국군조직법의 시행령 중, 합동참모본부 직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죠.

제2조(임무) 합동참모본부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관장한다.
제12호 "계엄과 관련된 업무",
제11조(군사지원본부) 제2항 "본부장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분장한다."
제5호 "민군작전, 심리전, 정보작전, 사이버작전 및 계엄업무“

하지만 기무사는 계엄과 관련한 임무(그게 문건 작성이든 뭐든 간에)를 수행한다는 직제나 규정 자체가 없으므로 이는 분명한 월권행위입니다.
군에서의 월권행위는 명령권의 위반이니 이는 하극상이라 할 수 있고 곧 군사 반란이라 보아도 무방한 행위로 간주되죠.
마지막으로 인용한 사진은 임태훈이 수장으로 있다는 군 인권센터라는 곳이 작성한 것이 분명하고 그 내용도 자신들이 임의적으로 만들었다고 확인한 것으로 압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근거없는 자료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무사가 작성한 내부문건 원본에 그래픽화하지 않았다 뿐이지 관련 내용은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어있기 때문이죠.

참조→ “계엄임무수행군 판단 및 편성”
https://drive.google.com/file/d/16lqGWbvtb1vyrfQ0AibhZ3twwdD6cTOB/view

따라서 이번 사태는 기무사라는 군의 일게 조직이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상급기관인 국방부와 합참을 배제한 채로 자신들의 임무와는 무관한 계엄령 관련 문건을 작성한 자체가 군법 위반이며 더 나아가 군의 체계를 무시하고 임의로 무력을 동원하려 했다면 이건 엄청난 문제이죠(저걸 작성할 당시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은 지네가 시킨게 아니라고 하고 미국으로 도망간 기무 사령관은 지가 시킨 거라 하니..)

아무튼 좀 더 시각을 달리하실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참..
합참 입장에서 안쓴 놈이 잘못이라셨는데..
안쓴 게 아니라 충분한 계엄 관련 매뉴얼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주무부서는 합참 계엄과라네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지금 감옥에 있는 할매가 시켰으면 아마 그 메뉴얼대로 시행했을 걸로 생각됩니다..
골 때리게도 말이죠..
기무사가 계엄문건 작성하는 기관입니까? 군은 늘 통수권의 계텅과 질서가 엄격한 곳이어야 하고 이것이 문란해지면 유니폼 걸친 건달양아치로 전락합니다.
힙참의 민사업무부서내 계엄과가 할일을 왜 방첩대전복잔문인 기무사가 해야하죠? 월권이자 직권남용이고 이건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용납할수 없는 중죄입니다.
민주사회는 역시 군,민 ,관 모두의 수백가지 계회과 반론으로 모든것이 어렵게 꾸불 꾸불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끙끙 거리면서 슬그머니 목적을 성취하는것으로 많은 안건은 지나간후에는 웃기고 저능 스럽지만 당시에는 무척 진지했을겁니다
결론 나왔군요. 기무사 문건은 모반의 구체적 증거이며 군사정변 계획서다. 그럼 가담자를 확인하고 처벌할 일만 남았습니다. 과거 어떤 검새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해서 국민적 절망을 느끼게 한 적 있는데, 일단 실패한 쿠데타 하나 확실히 처벌하고 갑시다
동감합니다!
1. 닭이 탄핵된 후 청와대 기어들어가서 2일간 버로우한것이, 계엄령 터져서 자기자신을 구하러 오는걸 기다렸다는 말이 있더군요.
2. 대한민국 군인이 하는짓거리를보면, 군바리란 단어가 붙어있을수밖에 없음.
닭마님이라..그랬을지도요..
네가 꿈꾸던 "지상락원" 세상에서 살아보니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