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다 보면

봉달이 2018. 8. 17. 15:11

어째 거꾸로 돌아가나? 뒤로 진격의 기무사<3>



3. 특권 의식과 하극상 – 테일 후크(上)


지난 7월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한 대령이 국방부 장관을 “고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군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한 인간으로서 양심을 걸고 답변하겠노라 호언한 다음, 그의 상관인 현 국방부 장관이 위수령 문건과 관련하여 “거짓부렁을 씨부리고 있다”며 소위 양심고백을 선언해버렸다.



이에 장관은 이 얼척없는 사태에 눈만 끔뻑거리다가 직책상 그의 부하이자 서열상 한참 아래인 “명예로운 군인”의 고백에 황당해하며 자신도 명예로운 군인 출신이라고 일갈한 후 그 발언은 “완전 쌩구라”라고 맞받아쳤다.


솔직히 사건의 내막은 알 수가 없다.

정말 쇼킹한 양심 고백이라 불릴 정도로 한 군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발언할 만큼 정확하고 중요한 “팩트”인지 아니면 하극상에 가까운 “쌩구라”인지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는 점이다.


어째서 이따우 일이 벌어졌는가?


사실 이번 계엄령 문건 사태는 기무사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고 이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맛보고 길들여진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온갖 갑질을 남발한 대가이기도 하다.
기무사의 특권의식은 일찍이 부터 권력 잡기에 눈이 돌아버린 승만탕구가 정권비호의 수단으로 특무대를 중용하고 일본 헌병 출신 김창룡을 초대 특무대장으로 임명, 그가 소위 빨갱이 잡기라는 미명하에 온갖 민간인 탄압과 정치 투쟁에 맹활약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특무대는 박 장군의 쿠데타 직후 방첩부대로 바뀌었고 중앙정보부 창설을 주도했으며, 1977년 국군 보안사령부로 확대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섰다.


혁명? 걍 독재주의의 연장을 넘어 더 강화시킨 지랄이라 본다..

  
이 보안사가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스토리도 조금 뒤져보면 골 때리기 그지없는데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는 출범한지 1년밖에 안 된 민주당 정권을 엎어버렸고 새벽 4시 30분, 국가 주요 기관들을 완전 장악했다.
이튿날인 5월 18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육사 생도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했는데 이는 혁명이라 쓰고 쿠데타라고 읽는 짓거리의 성공을 축하하고 지지하는 행진이었으며, 이 철딱서니 없는 어린 것(?)들을 선두에서 이끈 이가 바로 4년제 정규육사의 첫 기수였기에 지네가 진정한 육사 1기라고 나불대던 육사 11기 출신(이것들은 이후에도 육사 선배들에 대한 은근한 무시를 계속했다..)으로 서울대에서 ROTC 교관으로 근무하던 전두환 대위였다.


애들 끌고나와 쌩쇼한 육사생도 지지 행진..전두환이 주축이었다..

 
당시 전두환은 군이 아닌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쿠데타에 꼭 참가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끼지 못했고 이에 열 받은 그는 박정희의 혁명위원회를 찾아가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며 따지기도 했다고 한다.
뒤늦게라도 쿠데타 세력에 끼어 출세하고 싶었던 그는 육사 생도들이 5.16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한다면 국민들이 혁명(이라 쓰고..)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인정할 것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고(누차 애기했지만 악마는 결코 대갈이 나쁜 게 아니라는..)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육사로 향했다.


새파란 육군 대위 색기가 뭘 안다고 지랄병을..대갈통을 확마..

 
하지만 당시 육사는 육사교장 강영훈 중장의 지시로 이미 쿠데타에 반대하는 분위기였고(강영훈은 이미 제 6 군단장 시절 벌어졌던 4.19 혁명 당시 승만탕구 정권의 전차중대 출동 명령을 거부한 전적이..) 이에 전두환은 육사교장을 뒤쫓아 육군본부로 향했다.
거기서 강영훈 중장은 여러 이유를 들어 새카만 대위 나부랭이의 육사 생도를 동원한 지지 시위 주장을 쌩깠는데 이에 전두환은 곧바로 박 장군의 찌끄레기들에게 달려가 “강영훈이 장교와 생도들에게 금족령을 내려 지지시위를 방해하고 있다”며 날름 일러바쳤다.



당연히 박 장군 일파들은 전두환의 편을 들어주었고 강영훈 중장은 구금되었으며 이후 그는 “반혁명 장성 1호”로 낙인찍혀 서울형무소에 100여 일간 수감된 다음, 육군 중장으로 예편되었다. 
그렇게 하여 1961년 5월 18일, 육사 생도들은 자신들의 주자에 의하면 정통성 있는 육사 선배인 전두환의 설득과 강압에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고, 이는 5.16 쿠데타의 정당성 부여에 엄청난 계기가 되었으며, 이 공으로 겨우 30살짜리 대위였던 전두환은 박정희의 신임을 얻어 무려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이 되었다.


"구국의 일념으로 혁명"을 벌였다는 것들이 한다는 짓..춤바람난 아녀자 구속..

 
이후 그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 참여 권유를 거절하며 “군대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로 가뜩이나 귀여운 놈이 호감이 급상승하며(?) 군에서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전두환과 몇몇 동기생들이 조직한 군내 사조직이 하나회로 확립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였으며, 그와 하나회는 군 내부의 박정희 친위대를 표방, 정권의 비호 아래 계속 승승장구하였다.


이 인간의 눈엔 뵈는 게 없었다..보라! 별들 사이에서 저 당당한 꼴통적 자세를..


마침내 1979년, 그는 당시 대한민국 군의 게슈타포라고 할 수 있었던 핵심 요직이자 “보이지 않는 옥상 옥 조직”인 국군 보안사령부의 사령관이 되었다.
그리고 10.26 사태로 여대생, 여가수와 밀실에서 씨바스리갈 빨던 어느 국가의 최고 영도자께서 같이 술 빨던 지 부하에게 어이없게 홀라당 암살되자, 그는 이 권력의 공백 시기를 이용해 자신의 멘토이자 정신적 지주 겸 권력의 근원을 제공한 이를 똑같이 모방해 12.12라는 쿠데타를 벌였고, 그렇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또 다시 군대가 지 부랄 주무르듯 맘대로 주물럭거리는 군부 국가로 회귀했다(웃기는 건 사건의 주모자 김재규도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관 출신이다..) 


보스를 암살한 부하도 보안사령관 출신이었다..


이 12·12 사태 때 전두환의 쿠데타 성공에 결정적인 지원을 했던 보안사는 이미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이 시기에 와선 아예 대놓고 대한민국 최고 실세가 되었으며 실제 보안사 출신들이 대통령과 감사원장, 안기부장, 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에 대거 등용됐고 이 판에 기무사 요원들에게 특권의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군 내부 소수 조직이 가진 일련의 특권 의식은 대부분의 하극상 사건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며 이는 굳이 우리 군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암행의사를 흉내내 마패 비슷한 걸 만들기도..기무사 출도요~~!! 큭..


일본군 같은 막장 쓰레기 같은 군대는 말 할 것도 없고, 미군 같이 나름 민주적이며 합리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오늘날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군대 내에서 마저 최근까지도 발생했던 일이다.
흔히 “테일후크 사건(The Tailhook Scandal)”이라고 알려진 미군 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막장 사건은 이후 하극상 사태로까지 발전하며 미국과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미군 역대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당당히 꼽힐 만큼 희대의 대사건이었던 이 스캔들은 특히 미군 최고의 전투요원이자 엘리트로 인정받는 파일럿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의 명칭인 “테일후크(tailhook)”라는 것은 항공기가 항모에 착함할 때, 항공기의 속력을 줄이고 기체를 잡아주는 어레스팅 와이어(Arresting Wire)를 잡아채기 위해 항공기 꼬리에 달린 고리 같은 모양의 장치로, 어레스팅 후크(Arresting Hook)라고도 하며, 주로 해군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미 해군과 해병대의 파일럿 장교들은 이 단어를 가져와 그들만의 친목 조직인 테일후크 협회(Tailhook Association)라는 걸 만들었다.


항모에 착함할 때 어레스팅 와이어를 잡아채기 위한 장치인 테일후크..

 
1956년, 현역 해군 조종사들이 결성한 이 친목 조직은 이후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에 본부를 둔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했고, 비록 막장스러운 구석이 다분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하나회처럼 서로 뒤를 봐주고 끝내는 쿠데타나 일으키는 성격의 암적인 조직까지는 아니어서 해군참모총장과 해군장관도 자주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미 해군에서는 유명한 모임이었다.
이 협회는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연례회의와 심포지엄을 열어 전 세계에 퍼진 미 해군 승무원들이 이 듣도 보도 못 한 동남아시아 한 구석탱이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한 정보를 교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장학회를 만들어 해군 파일럿과 그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여러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적어도 1991년까지는 그렇게 알려졌었다..)


조종사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장학금도 주고 하는 멀쩡한 모임이었는데..


하지만 이 모임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미 해군의 최대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은 해군 파일럿들 사이에 자신들만의 엘리트 의식과 특권 의식이 자리 잡게 되었고(냉전 이후 핵잠수함 승조원들 사이에도 비슷한 의식이 생겨난 것처럼..) 이를 더욱 공고히 함과 동시에 사기 진작이라는 이름하에 이들의 기를 살려주며 합리화시켜주는 모임으로 이 모임이 변질되어 갔다는 점이다.


이 해군 조종사라는 엘리트 의식이 특권의식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리고 1991년 1월 16일에 개시된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이 미군의 압도적인 항공 우세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이 작전에서 큰 몫을 담당한 미 해군과 해병 항공대의 현역 파일럿들과 퇴역 항공대 장교들 약 4,000명이 모여 1991년 9월 8일부터 12일까지 제 35 회 테일 후크 협회 심포지엄(Tailhook Association Symposium)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었다.


하지만 나름 승전을 축하하고자 벌어진 이 화기애해한 모임은 그 시작 무렵부터 분위기가 싸해졌는데, 이는 여군은 전투기에 태우지 않는다는 당시 미군의 꼴통스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전투기 파일럿의 로망을 접고, 헬리콥터 조종사로 진로를 바꿔야만 했던 폴라 코흘린(Paula Coughlin) 대위가 승리에 취해 참석한 많은 이들이 모인 파티 석상에서 미 해군 참모총장 프랭크 켈소(Frank B. Kelso II) 제독을 향해 왜 여성은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냐며 공개적인 돌직구를 날렸기 때문이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어 헬기 파일럿이 되어야 했던 폴라 코흘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해군에서 복무했고, 특히 해군 항공대 전투기 조종사로 26년간 복무했던 아버지를 동경하며 자랐던 그녀는 해군 전투기 조종사를 동경하며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기에 이런 돌직구를 날렸는데, 문제는 이 질문을 받은 켈소 제독의 대답으로, 이 영감은 살짝 흠칫했지만 “계집애들이 전투기를 타든 말든 우린 파티나 합시다!”라며 대놓고 그녀를 면전에서 작살냈다.


이후 거침없이 술을 들이붓는 난장판이 벌어졌고 그날 밤, 라스베이거스 힐튼 호텔 3층에서는 파티가 난장을 넘어 추잡한 상황에 이르렀으며 이런 상황은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불러오고 말았다.


헛소린 집어치우고 파티나 벌이자! 당시 미 해군 참모총장 프랭크 켈소..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남성 파일럿과 참가자들은 “우리가 넘버 원(We're No. 1!)”이라 선언한 뒤, “갑판을 치워라(clear the deck)”라는 신호로 일제히 코흘린 대위를 비롯한 여성 참가자(대부분 장교..)들을 복도로 밀어냈다.  
복도 양측으로 남성 파일럿들이 빽빽이 늘어선 가운데, 복도 중앙으로 밀려나간 여성 참가자들은 200명이 넘는 남성들 사이로 떠밀리며 옷이 찢겨나가는 가운데 온갖 성적인 폭행을 당했고, 이런 일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일사분란하게 벌어진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거의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었으며, 실제로 미 해군 내에서 이런 여성에 대한 집단 성추행을 “장거리 달리기(run the gauntlet)”라 불렀다(당시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여기로..https://www.pbs.org/wgbh/pages/frontline/shows/navy/tailhook/vic50.html..엉덩이와 가슴을 주무르고 옷을 찢고..등등 아주 난리판도 이런 난리판이 없다..)


남성 파일럿 무리 한 가운데로 여성 장교들을 밀어넣는 장거리 달리기..

 
더욱 놀라운 일은 복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태연히 지켜보고 있던, 아니 이를 오히려 일정 부분 부추겼으며 이를 묵인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해군장관 헨리 로렌스 가렛(H. Lawrence Garrett III)과 해군 참모총장 프랭크 켈소였고, 특히 비록 이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사건이 벌어진 지근거리의 스위트룸에 있던 가렛 해군장관은 해군차관 시절인 1987년부터 “성희롱에 대한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 of sexual harassment)”을 떠벌리고 다니던 인물이었다(복도에서 저 난리법석이 벌어지고 있는데 방에 있다고 과연 몰랐을까?)


해군장관이 평소 떠벌린 건, 성희롱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었다..ㅠ.ㅠ


비록 코흘린 대위는 이 복도에서의 장거리 달리기가 고난의 끝이었지만 이후 조사 결과 밝혀진 미 국방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83명의 여성과 7명의 남성(!) 참가자가 이곳에서 성추행과 성희롱, 그리고 강간의 희생자가 되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스캔들의 사후 처리로, 코흘린 대위는 곧바로 자신의 직속상관인 미 항공 테스트 센터(Naval Air Test Center) 사령관 존 스나이더(John W. Snyder..그녀는 이 양반의 부관이었다..) 제독에게 이 사건을 보고했지만, 그는 “니가 술 취한 파일럿으로 가득한 호텔 파티에 간 것이 문제(That's what you get for going to a hotel party with a bunch of drunk aviators)” 즉,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간 거쟈나?”라며 그녀의 항의를 상큼하게 깔아뭉겠다.


사건을 보고한 그녀에게 직속상관은 이렇게 말했다..알면서 갔쟈나? ㅠ.ㅠ


비록 그녀의 항의로 이 사건의 공식 조사는 시작되었지만 그 누구도 여기에 대해 더 이상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수사 속도는 느려 터져만 가는 가운데 마침내 이 사건의 처리가 지지부진하다는 보고가 미 해군 인적자원 관리 담당 차관(Assistant Secretary of the Navy (Manpower and Reserve Affairs)) 바바라 포프(Barbara S. Pope)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다.


동아시아 어느 나라에선 말도 안되겠지만..해군차관 바바라 포프..

 
같은 여성으로써 이 스캔들 혐의에 대해 적절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우려한 그녀는 그 전미 시청율 1위에 빛나는 미드로 유명한 NCIS(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의 전신, 미 해군 수사국(NIS.. Naval Investigative Service) 국장 듀발 윌리엄스(Duvall M. Williams Jr.) 제독을 불러 이 사건의 처리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 자리에서 윌리엄스 제독이 답한 대답이 걸작이었는다.

가뜩이나 계집애들(?) 문제로 골치 아파 죽겠는데 이 아지매까지 상관이랍시고 따불거리는 데 열 받았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꼰대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미 해군 수사국장 듀발 윌리엄스 제독..

 
“지금 뭘 잘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여성 파일럿들 대부분이 스트리퍼나 누드 댄서가 아니면 창녀요!(a lot of female Navy pilots are go-go dancers, topless dancers or hookers!)”


<다음 편에 계속>



이런 저런 개인적인 사정과 행사들로 포스팅이 많이 늦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
간만에 포스팅, 감사 드려요.

제가 중대장 하던 시절, 기무대 중사/원사에게 굽신굽신 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저 쓸 데 없는 기무대, 언제 없으지나 했는데, 드디어 없어지나요?

소문만 들었던 테일후크 스토리의 자세한 내막을 이제 알게되나 싶었는데,
"다음 이시간에..." 이렇게 끝나다니, 맹렬한 속도로 후속을 올려주세요~~~
전투 부대에서는 중대원들이 볼때는 중대장은 아버지나 하늘같은 존재 입니다

보안대 잡놈들이 중대장에게 어영부영 맞먹는거 보면
이세끼들 전쟁나면 니들 먼저 보내 버린다고 생각들수 도 있어요

계급사회인데 보안사는 이번에 잘 정리되였으면 합니다
그런 옥상옥 조직이 왜 필요한 건지...
주말에 포스트 하나더 올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해요..ㅠ.ㅠ
늘 목을 빼고 기다리다 정독하고 무릅을 탁! 칩니다

뼈있는 글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이군도 이런저런 진통끝이 오늘날에 이르렀군요
진통없는 전통은 없지요..
우린 항상 진통을 외면해 왔기에 전통이 없는 건지도..

아..전통은 있네요..
전대갈..치매 걸렸다던데...
육사색히들 지네 사관학교재학기간을 군복무로 간주하는 개버릇부터 인정하지 말아야죠. 민병사미 87년임관한 색히가36년군복무운운하는데 주댕이를 찢어버리고 싶었다능.
글탐 고등학교 때부터 교련 훈련 받은 저희는 군복무 8년 한 건가요?
민병삼이가 87 임관이었어요? 경례 한 번 받을 수 있었는데...... 곧 죽어도 안했을라나?
죽어도 안했을 듯 합니다..
영관 장교를 기무사 중사 나부랭이가 떡주물 듯 하는 데니까요..
답답합니다...아직도 이런 글이 있다니...
군 실상을 얼마나 알고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잘 아시는 군 실상은 대체 어떤데요?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