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다 보면

봉달이 2018. 8. 21. 14:09

어째 거꾸로 돌아가나? 뒤로 진격의 기무사<4>



3. 특권 의식과 하극상 – 테일 후크(中)


1992년, 폴라 코흘린(Paula Coughlin)이라는 젊은 여성 해군 대위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 35 회 테일후크 심포지움(Tailhook Symposium)에서 대부분이 파일럿들인 남성 장교들에 의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언론에 폭로했다.
그녀의 폭로는 1991년 9월에 벌어진 요란스러운 파티 주말 동안 83명의 여성과 7명의 남성이 폭행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미 1년여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미 해군 당국의 자체 조사는 지지부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무자비한 성추행이 벌어졌지만 자체조사는 지지부진..


듀발 윌리엄스(Duvall M. Williams Jr.) 제독이 지휘하는 해군 수사국(Naval Investigative Service)은 조사 초기, 이번 사건은 주로 낮은 계급의 남성(low-ranked enlisted men)들이 술기운에 저지른 돌출행동이라는, 대단히 상투적이고 무책임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고, 그 직후 이에 동의하지 못하던 해군차관 바바라 포프(Barbara S. Pope)의 면전에다 대놓고 성 차별적 발언을 내뱉었다(여자 파일럿들은 대부분 창녀요!! 큭~~ 하지만 당시 사진들을 보면 저 발언도 얼핏 이해는 된다는..그 상황을 즐기는 것들도 있긴 있었다..)


윌리엄스의 저 발언도 얼핏 이해된다..당시 찍힌 사진들..


이에 홀랑 돌아버린 포프 차관은 해군 장관 헨리 L. 개렛(Henry L. Garrett III)에게 꼬장꼬장 따져댔고 아이러니하게도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게렛 장관은 결국 그녀의 사건 재조사 주장에 동의, 사건은 미 해군에서 미 국방성 감독관 데렉 벤더 샤프(Derek J. Vander Schaaf)에게로 넘어가 자세한 재조사가 수행되었다.
벤더 샤프의 보고서는 1992년 9월에 공개되었으며 사건의 자세한 내용이 담긴 이 보고서의 여파로 사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해군장관 게렛은 션 오키프(Sean O'Keefe)로 경질되었으며, 해군 참모총장 프랭크 켈소(Frank Kelso)의 퇴역, 그리고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NIS 국장 윌리암스 제독과 그의 상관인 존 E. 고든(John E. Gordon) 미 해군 법무처장(The Judge Advocate General of the Navy)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스캔들로 인해 홀라당 날아간 참모총장 프랭크 켈소와 법무처장 존 E. 고든..


결정적으로 이 스캔들에 대한 조사를 주도했던 미 해군 수사국(NIS Naval Investigative Service)은 적절한 조사의 실패는 둘째로 치고, 그 수장이 현역 군인이 이끌던 기관이었던지라 팔이 안으로 굽는 전형적인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이는 인사권의 사슬과 맞물려 민간 감시의 결여로 인해 발생된 문제임이 드러났다.
또한 현역 제독이 수장인 이 기관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눈치만 보던 해군의 다른 조직들과의 협력 부족은 당연했고, 이들이 이를 빌미로 그들의 주도 하에 하향식 문화, 즉, “특권의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게 드러남으로써 이 기관의 임무와 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쉽게 말해 당시 NIS는 미 해군의 기무사였다는 말이다..)


NIS는 수사권과 방첩기능으로 인해 특권의식이 생겨났다..어디나 그런듯..


결국 신임 오키프 해군 장관은 이 기관의 광범위한 수사 기능을 명확히 하기 위해 NIS라는 기관 명칭에 “범죄(Criminal)”라는 단어를 포함시킬 것을 명령했고, 궁극적으로 해군 주도 하의 NIS는 이 사건 이후 민간이 주도하는 수사기관인 미 해군 범죄수사대(NCIS 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로 재편되게 된다.


미 해군 범죄수사대로 재편된 이후부터 이들의 임무는 다시 분명해졌고, 구성원 대부분도 현역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맡게 되었으며, 현역 제독이 맡아오던 국장 자리는 미 비밀 경호국(USSS United States Secret Service) 출신 로이 네드로우(Roy D. Nedrow)가 최초의 민간인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NCIS는 이전의 미 해군 직속 기관이 아니라 연방정부 산하의 수사기관이라는 성격이 훨씬 강하다(그래서 드라마 보면 범인 잡을 때 자신들을 밝히며 “페데럴 에이전트(Federal Agent)!” 즉 연방 수사관이라고 밝히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우린 네이비 머시기 보다는 페데럴 에이전트~~!!

 
한편, 1992년 여름 전미를 들썩인 이 스캔들로 미 해군에서는 4,500명 이상의 진급 대상자들의 인사가 전면 보류되었고, 이 사건 현장에 있었던 14명의 제독을 포함하여 수많은 장교들이 옷을 벗었으며, 이들 사례 중에는 이 행사를 총괄 기획한 미 해군 공중전 부사령관(Deputy Chief of Naval Operations for Air Warfare) 리처드 던리비(Richard Dunleavy) 제독처럼 중장이 소장으로 강등되어 퇴역당하는, 불명예제대에 가까운 사례까지 있었다.


베트남 전에 참전한 파일럿 출신 중장이 강등되며 퇴출되었다..


어쨌든 이 사건은 군대라는 조직이 얼마나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지, 거기에 미 해군이라는 선진 군대에서도 이런 조직 문화가 최근까지도 버젓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경례는 사람이 아니라 계급에 하는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미 보수주의자들의 영웅으로 남아있는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아부지 부시..) 정권 말기에 벌어진 일로,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파일럿으로 참전한 대통령의 후원아래 미 해군과 파일럿들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졌던 시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이는 낭패도 보통 낭패가 아니었다.


아부지 부시는 해군 파일럿 출신이었으니 당연히 해군을 팍팍 밀었다..


어쨌든 이 스캔들도 아부지 부시의 재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결국 정권은 공화당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었고, 이제 정권을 잡은 클린턴 행정부는 이 기고만장하기 짝이 없는 거대 조직에 대수술을 감행하기로 결정하며 나름 날카로운 메스를 집어 들었다.


정권 바꼈다 이기야! 죽어봐라!


이 사건을 계기로 해군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빌 클린턴 행정부는 그 첫 번째 스텝으로 사건의 여파로 경질된 켈소 미 해군 참모총장(정확한 명칭은 해군 작전국장..The Chief of Naval Operations.. CNO.. 임의로 의역함..) 자리에 제러미 마이클 보더(Jeremy Michael Boorda) 제독을 임명했는데, 이때 발탁된 보더 제독은 말 그대로 당시 미 해군의 출세 코스와 기득권 인사 라인,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한참 벗어난 인물이었다.


해군 참모총장에 임명된 비주류이자 갑툭티..제레미 마이클 보더 제독..


이즈음의 미 해군의 참모총장은 해군 항공대가 핵심전력으로 급부상한 2차 대전 이후 1961년 취임한 조지 앤더슨(George Whelan Anderson Jr.) 제독을 시작으로 30년 넘게 대부분 항공병과 출신들이 독점해 왔는데(이때까지 9명의 참모총장 중 잠수병과 2명, 항해병과 1명을 제외한 6명이 항공병과 출신..) 보더 제독은 1970년에 취임한 엘모 줌월트(Elmo R. Zumwalt) 제독 이래 22년 만에 처음으로 참모총장에 임명된 항해병과 출신이었다.


줌월트 이래로 22년만에 항해병과 출신 참모총장이 임명되었다..


이는 지난 세월 동안 내내 해군 내의 중요 보직들에 항공병과 출신 장교들(또는 소수의 잠수병과 출신..)이 포진해있었다는 얘기로 가뜩이나 테일후크 스캔들로 된서리를 맞은 항공병과 출신 고위 장교들에게는 엄청난 쇼크였으며, 자신들의 라인이 독점하다시피한 해군 최고위직에 항해병과 제독이 임명되었다는 것은 그들 입장에선 대재앙과 같은 사태였다.
특히 당시까지 미 해군은 아이오와 급 전함(Iowa class battleships) 재취역과 니미츠 급 항모(Nimitz-class aircraft carriers) 추가 건조로 대표되는 600척 해군 계획(The 600-ship Navy)을 추진한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시작된 공화당 보수 정권의 확실한 밀어주기와 비호로 전력의 극대화는 물론, 정치적 권력까지 엄청나게 비대해져 있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 권력의 정점에는 항공병과 출신 고위 장교들이 포진해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정권이 바뀌며 표면화되기 시작한 자신들에 대한 간섭은 이들의 격렬한 저항을 야기 시키기에 충분했다.


할배 전함까지 부활시켜주며 보수 정권은 해군을 열라 밀어줬다..


가뜩이나 입이 튀어나와 있던 당시 미 해군의 상황에서 새로운 적으로 등장한 좌빨 정권에 의해 참모총장에 임명된 보더 제독은 1978년 미 해군에서 여군의 전투함 승선이 허락된 이후 남녀 차별을 철폐하는 해군 개혁의 선봉장이 되었고, 그의 시기에 여군의 처우와 위상이 전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고 평가되었으니 테일후크라는 성 스캔들로 난장판을 벌인 항공대 출신 장교들에게는 그의 등장은 곧 사신(死神)의 등장이나 다름없었다.


성추행 땜에 난리났는데 새로운 보스는 여군 친화론자..이런 된장..


하지만 수십 년간 조직의 최대 파벌이자 가장 막강한 기득권을 유지해온 이들이 고작 윗대가리 하나 바뀌었다고 그렇게 호락호락 머리를 숙일 리가 만무했다.


이때 해군 참모총장에 임명된 보더 제독은 클린턴 정부의 입장에서는 최대 장점이었지만 해군 고위층과 그 추종자들 입장에선 결정적인 취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해군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1939년 11월 26일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 벤드(South Bend)에서 옷가게를 하는 부모 슬하에 우크라이나 이민 3세로 태어난 그는 17세인 1956년, 미 해군에 입대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사병으로 입대한 해군에서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쳤다(정규 학력은 중졸이란 얘기..거기다 그는 미 주류 사회의 따돌림을 받는 유태인이었다..)


그는 중졸 학력의 사병 출신이었다..사병 시절의 보더 제독..

 
이후 그는 1962년, 추천된 우수한 사병이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Newport)에 위치한 해군 장교 후보생 학교(The Navy's Officer Candidate School)에 입학할 수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미 해군 통합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선정되었고,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한 그는 구축함 포터필드(USS Porterfield DD-682)에 부임, 전투 정보 센터의 장교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4년, 그는 구축함 존 R. 크레이그(USS John R. Craig DD-885)의 병기장교로 임명되었고 이 구축함은 1965년 3월부터 베트남에 배치되어 베트남 연안의 전투 임무와 작전에 투입되었다.


병기장교로 참전한 존 R. 크레이그와 베트남에서 함포사격 직후 모습..

 
첫 번째 베트남 전 참전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71년, 미 해군 대학을 거쳐 로드아일랜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사일 구축함 브룩(USS Brooke DEG-1)에 배치되었으며, 1972년 10월, 구축함 브룩을 포함한 제 7 함대가 베트남을 향했고 그의 두 번째 베트남 참전은 1972년 11월에 시작되어 1973년 2월에 끝났다.


두번째 베트남 전 참전.. 미사일 구축함 브룩..


1975~77년까지 구축함 패러것(USS Farragut DDG-37)의 함장으로 근무한 그는 1981년, 12척의 구축함을 지휘하는 제 22 구축함 전대장(Destroyer Squadron 22)을 거쳐 1984년, 마침내 준장으로 승진하며 해군 제독이 되었다.
1991년 11월, 해군 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1991년 12월, 연합군 남유럽 사령관(CINCSOUTH - Naples, Italy) 겸 유럽 주둔 미 해군 사령관(CINCUSNAVEUR – London)에 임명되어 남유럽의 NATO 부대를 지휘,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유엔의 제재를 실행하는 작전에 투입되는 모든 나토군 전력을 직접 이끌었다.


 
이후 테일후크 스캔들의 여파로 해군 참모총장 프랭크 켈소가 물러나며 1994년 4월 23일,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25번째 미 해군 참모총장에 임명된 그는 미 해군에서 사상최초의 비 사관학교 출신 참모총장이자 유태인 출신 참모총장이었다.
이렇게 그는 중졸 학력의 이등병 출신으로 미 해군의 최고위직까지 오른 용자이자 비 사관학교 출신에다가 돈지랄이면 몰라도 미 주류 사회에서 멸시받는 계층인 유태인(요샌 안그런가? 도람푸와 그 딸래미 꼬락서니를 보니..)으로서 울트라 하이클래스까지 다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미 해군의 최고위직에 이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라는 나라에선 지금은 꿈도 꾸질 못할 얘기지만 초창기에는 상선 선장 출신 국방장관도 있었고 그 사위는 씨름 선수가 육군 장성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으며 독립군 잡던 쪽바리 헌병 하사관 출신도 장성의 자리에 오르는 멋지구리한, 능력만 있다면 계급을 파괴하는 찬란한 전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계급 고착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가졌건만 지금은..이런.. C브랄..


어쨌든 보더 제독의 참모총장 기용은 바닥 계층 출신의 승리이자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일이라 기대되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버리듯, 당시까지 미 해군의 중요보직을 모두 독점하고 있던 해군의 주류(?)들이 이런 비주류의 승승장구를 가만히 눈만 뻐끔거리며 대가리를 숙이기를 기대한다는 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일등~^^/ 좋은 글 잘 보고 있슴돠~ㅎㅎ 태풍 온다는데 얼른 또 올려 주세요~
-_-;;;
닫힌 사회에서 거대집단을 좌지우지하는 소수파가 눈멀고 귀먹는건 필연같네요
상궤에서 벗어난채로 암석같은 편견으로 변화를 거부하는것도 그렇고, 특권층은 한번 생기면 깨뜨리는것도 어렵단 것도 똑같구요
미해군의 처리과정을 보는건 우리가 배울만한 지침이 될것같습니다
넵 저도 그 부분을 파고파서 포스팅 중입니다!
봉달님, 포스팅 감사^^
노비처럼 일하는 고달픈 와중에도 봉달님 글 보는 재미로 노가다 함.
노비처럼 일하신다니요 고급 인력께서 노비는 제가 노비죠 풀깍고 쓰레기 버리고 캔 수거하고 고급인력이 노비라니 말도 않됩니다 노비처럼은 제가 하는짓이 노비입니다.
흠..노비 대결인가요?
큭, 외모로 보나 처지로 보나 제가 승!
수정하겠습니다. 저는 노비가 아니고 좀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승입니다. 의문의 1승이다
보더라는 인물 소싯적에 내무반 구석에서 걸레질하며 보던 리더스다이제스트 속 인물이네요 다음편은 꼴통들의 역습인가요
스포일러 금지..ㅋㅋ
소위 비주류 출신 중에 실력과 능력이 충분함에도 직힘 졸업장 훈장이나 표창장 등에 집착하는 분들이 의외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분도 ... 아쉽네요
의외로 많다고 봐야겠죠..
좋은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테일후크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후일담이지만 끝은 매우 불행하게 되었네요.

사이트 올립니다.

[사회]잠수함과 몰래 카메라1: 해군참모총장은 왜 자살했나
http://www.ddanzi.com/ddanziNews/60013694?t=20151217084158
네..그랬습니다..

딴지는 아니지만 저 글에서 오류를 지적하자면 “월남전 당시 보더 제독은 소해함인 패럿(USS Parrot) 함에 함장으로 참전을 했고 그 공로로 참전 기장을 받은 것”으로 쓰여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아마 나무위키를 참고해서 그렇게 쓴 걸로 보이는데요..
보더 제독은 패럿 함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게 아니라 구축함 존 크레이그(USS John R. Craig DD-885)의 병기 장교로, 미사일 구축함 브룩(USS Brooke DEG-1)의 부함장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해 참전기장 2개를 받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