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다 보면

봉달이 2018. 8. 27. 16:21

어째 거꾸로 돌아가나? 뒤로 진격의 기무사<5>



3. 특권 의식과 하극상 – 테일 후크(下)


1994년 4월 23일, 전 정권인 공화당 부시 정권의 전폭적인 후광 아래 기고만장해져만 가던 해군 내에 테일후크 스캔들이라는 추악한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빌미로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는 차기 해군 참모총장으로 제러미 마이클 보더(Jeremy Michael Boorda) 대장을 임명했다.


그는 미 해군 참모총장에 임명된 인사들 중 사상최초의 비 사관학교 출신에다가 유태인 출신이었던 것에 더해, 당시 미 해군의 최고위직으로 가는 직계 라인인 항공병과나 잠수병과가 아니라 항해병과 출신 장교였다.
또한 그는 ROTC나 해군 학사장교(OCS Officer Candidate School)도 아닌 사병 출신으로 이런 그가 미 해군의 최고위직에 도달하기까지는 당연히 해군 내 꼴통 지배층들에 의한 압도적인 압력에 시달렸다.


최초의 비 사관학교 출신에다가 수병, 거기다 유태인 출신 참모총장..

 

1962년, 그가 임관했을 때, 미 해군은 여전히 ​​은퇴한 제독들이 주도하는 개신교와 카톨릭 출신 백인 장교들의 소위 “흰 장갑 클럽(white gloves club)”이라 불리는 엘리트 기득권층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그 대부분은 미 해군 사관학교 졸업생이었다.
하지만 보더 제독은 임관한 지 9년 만인 1971년, 로드아일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Rhode Island)를 졸업할 때까지 학사 학위조차 받지 못했었다.


어디서 이런 천민 출신 듣보잡이..해군 망하겠네..당시 미 해군 장교들의 시각..


그러나 보더 제독은 미 해군의 최고 직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되었고 훗날 펜타곤에서 그와 함께 근무했던 윌리엄 홀리(William Houley) 제독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그가 자신의 초라한 경력을 통해 자신에게 우위를 선사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해군에 사병으로 입대했던 경력은 결코 단점이 아니며, 나는 그가 가졌던 일반 병사들과의 유대감이 조직 내에서 발휘된 그의 영향력의 근원임을 보았다.”


그가 가진 일반 병사들과의 유대감이 그의 영향력의 근원.. 윌리엄 홀리 제독..

 
그는 스스로의 경력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족으로 고민하며 위축된 한 남자를 보여주기 보다는 유머와 빈틈없는 업무 능력을 사용하여 경력 따위를 내세우는 이들을 이기고, 관료주의를 자제하는 자부심 있는 장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초라한 학벌에 더해 자신의 165cm라는 작은 키에 대한 자신을 낮추는 농담을 자주 사용하여 병사들과의 거리감을 최대한 좁히려 노력했던 인물이었다(그가 존 마자크(John Mazach) 제독의 승진 행사에 참석, 갑자기 의자를 꺼내 거기 올라선 채, 큰 키의 마자크 어깨에 별을 달아주는 모습 같은 세레머니가 그의 대표적인 유머 코드였다..)


키가 무척 작았던 그는 그런 자신의 단점을 오히려 유머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전설적인 해군 파일럿이자 2차 대전 참전용사인 부시를 밀어내고 정권을 차지한 듣도 보도 못 한 아칸소 촌동네 주지사에다 군 미필자인 빌 클린턴의 좌빨 행정부에서 테일후크 스캔들 같은 하찮은 성추행 사건(?) 따위로 수많은 위대하신 제독들(?)을 내치고, 이제는 감히 해군을 개혁하겠답시고 비 해사 출신에다 수병 출신인 보더를 참모총장에 기용하자, 당시까지 미 해군의 주요보직을 차지하고 있던 기득권층인 항공병과 출신 장교들은 이를 참을 수 없었으며 마침내 대놓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미 해군 내에서는 테일후크 스캔들로 퇴임한 프랭크 켈소(Frank Kelso)의 후임으로 일찌감치 차기 해군 참모총장으로 점찍어 놓고 있었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미 해군 항공병과의 자랑이자 리더였던 미 해군 참모차장(the Vice Chief of Naval Operations) 스탠 아서(Stan Arthur) 대장이었다.


일찌감치 차기 참모총장으로 추대되었던 스탠 아서..하나회냐?


그는 베트남 전쟁에 A-4 스카이호크(Skyhawk) 파일럿으로 참전, 500회 이상의 전투 임무를 수행했으며, 역대 2번째로 많은 11회의 비행무공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과 50개 이상의 항공 훈장(Air Medal)을 수상한 미 해군 항공병과의 전설이었다.

또한 그는 베트남 전쟁 참전 파일럿으로서도 전설이었고 제독 진급 후에도 제 7 함대 사령관 등 요직을 역임했던 항공병과의 리더였으며, 실제 클린턴 행정부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태평양 지역 통합군(United States Pacific Command) 사령관에 지명될 예정이었다(참모차장이면 언 듯 해군의 2인자처럼 보이지만 실권은 거의 없는 자리인지라 이후 통합군 사령관, 해역 함대사령관 등으로 영전하는 게 정상적인 승진 코스..)


아서 제독은 전쟁 영웅에 더해 미 해군 항공병과의 리더였다..


하지만 스탠 아서 대장은 역시 항공병과의 리더답게 그들만의 파티인 테일후크 사건 현장에 있었으며, 거기에 더해 단순한 해프닝이었다는 해군 측의 주장을 열렬히 지지하고 보호하는 입장을 적극 견지하였는데, 그런 그가 해임이나 보직 유임도 아니라 되려 승진한다는 것은 사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내 폴라 코흘린 대위와 마찬가지로 테일후크 사건 당시 성폭력을 당한 헬기 조종사 후보생(Navy student helicopter pilot) 레베카 핸슨(Rebecca Hansen) 중위는 스탠 아서 제독의 태평양 통합군(U.S. Pacific Command) 사령관 영전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지역구 상원의원이던 데이비드 듀런버거(David Durenberger)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테일후크의 다른 피해자 레베카 헨슨도 헬기 조종 후보생이었다..사진과는 무관..


듀런버거 의원의 요청을 받은 클린턴 대통령은 아서 제독의 부임을 유임시켰고, 이후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이 위대한 전쟁 영웅이자 꼬장꼬장 영감은 마침내 열폭하여 다 때려치우고 퇴역하겠다고 발표해버렸다(웃기는 건, 퇴임 뒤 아서 제독이 궁시렁거리며 집에서 소일이나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던데, 그는 퇴임 후 곧바로 초거대 방산기업인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에 입사, 입사하자마자 바로 미사일 및 화기관제(Missiles and Fire Control) 사업 담당 사장에 취임했다..)


아서 제독은 퇴역하자마자 무기상이 되었더라..ㅠ.ㅠ

 
여기에 더해 미국 내의 많은 보수층과 퇴역 해군 장교들은 무려 300명이 넘는 현역 해군 장교들의 경력을 끝장낸 클린턴 행정부의 결정은 일반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보다 그 수위를 훨씬 넘어섰으며, 테일후크 스캔들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해군 장교단을 제거하기위한 구실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레이건 정권 시절, 해군 장관이었던 존 리먼(John Lehman)도 클린턴의 백악관이 해군과 상원 군사위원회(Senate Armed Services Committee)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성폭력 스캔들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장교들의 경력을 모조리 박살냈고 해군의 조직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전직 해군장관을 비롯한 보수파들이 좌파의 농간이라며 펄쩍 뛰었다..


그러자 당시 미 해군 내에서 끗발로는 최고였던 항공병과 장교들은 자신들이 밀었던 참모총장 후보가 잘려나가는 것에 더해 보수층, 즉 자신들의 든든한 빽의 후원을 확인하고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고, 이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그들의 입장에선 듣보잡 신임 참모총장 후보자 보더 제독이 찍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신임 해군 참모총장에 임명된 보더 제독은 취임하자마자 항공병과 출신 장교들의 속을 홀랑 뒤집어 놓는 계획들을 수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계획이 바로 "아스널 쉽(Arsenal ship) 계획"이었다.



아스날 쉽 계획은 보더 제독이 참모총장에 취임한 직후인 1995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차세대 신형 전투함 계획으로, 쉽게 말해 원양 항해 능력을 갖춘 대형 선체에 대량의 미사일(주로 대지 공격용)을 수직발사관(VLS..Vertical Launching System)에 탑재하는 함을 건조한다는 계획이었다.
아스날 쉽의 시작은 1988년에 발행된 미 해군 협회지 프로시딩(Proceedings Magazine)에 조셉 멧칼프(Joseph Metcalf)라는 퇴역 제독이 자신의 주장을 발표한 것으로, 미 해군의 정책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지만 큰 주목을 받긴 했다(하지만 이런 컨셉은 미 해군에 채택되지 않았고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


수상함에다가 미사일 발사관으로 도배를 하자! 아스널 쉽 계획..


당시까지 보편적인 수상 전투함의 컨셉은 대공 수상용 센서와 광학 센서, 수중 음파 탐지기 등 다양한 센서들을 장비함과 동시에 아군의 정보도 수집하여 전투 시에는 이들로부터 정보를 종합적으로 정리 통합한 후, 공격 대상을 선택하고, 공격 명령이 내려지면 각 개별 함정이 각자 사격 관제 장치를 이용해 미사일이나 함포 등을 제어, 병기를 발사하거나 유도한다는 것이 기본 컨셉이었다.
그러나 이 컨섭을 계속 유지하려면 레이더를 비롯한 고가의 장비와 정보를 분석한 후 공격을 결정하기 위해 고도의 훈련을 받은 다수의 승무원, 그리고 역시 고가인 전술 정보 지원 시스템 등등이 필요했고, 함대를 조직해 대지상 공격을 시도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모든 함에 이러한 능력을 각각 부여할 필요성이 있었다.


온갖 센서들을 모든 주요 함정에 다 갖춰야한다! 당시 수상 전투함의 기본..


바로 이 부분에서 의문점이 생겨났고 아스날 쉽은 건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제외한 고가의 전자 장비를 탑재하지 않는 것에 더해, 공격 목표의 탐색, 추적 및 목표 설정과 관련된 모든 기능을 생략하며, 결정된 공격 목표에 대한 정보는 이지스 함이나 이와 유사한 지휘 능력을 갖춘 함정에서 받아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예정되었다.
이는 자함의 무기 사용과 관련한 판단 기능을 완전히 다른 함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고가의 전자 기기와 함께 승조원도 조함과 간단한 유지 보수 정도의 기능을 유지하는 인원만으로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함이 오로지 타격 능력에만 집중할 수 있고,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용도 절감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아스널 쉽엔 센서 그딴 거 필요없어~~!! 걍 미사일만 때려 박는다!

 
아스널 쉽의 개념이 고안된 배경에는 당연히 공동 교전 능력(CEC Cooperative Engagement Capability) 시스템의 개발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시스템은 아군의 수상함은 물론 잠수함이나 항공기가 획득한 정보까지 공유하여 함대의 능력을 높이고자 미 해군이 개발한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아군의 여러 정보를 동시에 공유함으로써 기존까지는 발견할 수 없었던 수평선 너머나 그보다 더 먼 거리의 목표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여기에 더해 아예 자체적인 정보 획득 센서를 갖추지 않고도 아군의 센서들을 통합하여 관련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쉽게 말해 레이더를 가지지 않고도 레이더를 갖춘 함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앞으로는 자체 센서 따위 필요없다 이기야! 그것이 바로 공동 교전(CEC) 시스템!


아스널 쉽과 관련하여 여러 종류의 컨셉이 연구되었지만 대부분 미사일을 척당 최대 500발 이상 탑재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고, 이런 많은 공격무기의 자체 보유는 배송 시스템과 미사일을 해안 및 전방 지역으로 운송하는 물류 시스템에 대한 부담 없이 지역 분쟁에서 다양한 임무에 실질적인 화력 지원을 장시간 제공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그 건조비용이 배수량에 비해 저렴한 것도 장점이었는데 약 2만 톤의 배수량을 가진 아스널 쉽의 1척당 건조 비용은 약 5억 5,000만 달러로 예상되었고 이는 당시 니미츠 급 항공모함이 선체 건조비용만 약 45억 달러에 달하고(탑재 항공기 비용 제외..) 이지스 함의 약 10억 달러에 달하는 건조비와 비교해서도 매우 낮게 평가되었다.



또한 유지비를 절감할 조건들을 추가하고, 탑승하는 승무원이 적기 때문에 인건비가 억제되며, 예상 승조원이 약 50명으로, 그 배수량에 비해 매우 적었기에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피해를 입었을 시 긴급 처치..)에 할애할 인원이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아예 선체 구조를 이중으로 건조하여 피해를 입을 경우, 승무원에 의한 대응이 충분하지 않아도 쉽게 함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침몰되지 않도록 구상되었다.


걍 미사일 발사통 함정이므로 인원수가 적다..그래서 피해에 대비해 이중 선체로..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무기 체계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꼴통들의 저항을 불러왔고 실제 아스널 쉽 계획에서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문제점과 불안한 요소가 적지 않게 있었다.


먼저, 아군 함정의 정보에 따라 관제하는 시스템이 이론적으로는 제대로 기능한다하여도 실제로는 예상치 못한 시스템의 고장이나 운영상의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고, 기능이 여러 함정이나 항공기 등에 분산되는 점에서도 그 신뢰성에 있어 의심이 여지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아스널 쉽 1척에 함대의 대지상 미사일 타격 능력 같은 공격 능력을 집중시켜 버리는 것도 위험 분산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는데, 만약, 아스날 쉽 자체의 데이터 링크 시스템이 피해를 입거나 고장이라도 난다면 탑재하는 모든 타격수단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다른 함이 건재하여도 함대의 타격 능력이 격감해 버린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CEC고 뭐고 다 좋은데 그게 고장난다면?.. ㅠ.ㅠ


하지만 이 계획이 같은 해군 내에서 지지를 잃고 헤매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해군의 주류층인 항공병과 장교들의 결사반대 때문이었다.

보더 제독은 이 계획을 수립할 당시까지 미 해군의 항모전단에 대한 절대적 의존을 줄이고 다양하고 저렴한 화력투사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항모전단에 대한 의존을 줄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해군 내 항공병과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이에 당연히 미 해군의 항공병과 장교들은 길길이 날뛰며 아스널 쉽 계획의 문제점 찾기에 혈안이 되었고, 실제 이 계획은 그들만의 관점으로만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도통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계획인 것만은 아니었다.


항모 전력을 줄인다고? 두고 보자..우린 한 놈만 팬다 이기야!

 
먼저 투사 능력 면에서 보면, 아스날 쉽은 미사일을 최대 500발 이상 탑재가 가능하고 그 투사 능력 또한 일반 수상함에 비하면 월등하였지만, 함재기에 의한 반복 공격이 가능한 항공모함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또한 비용 면에서 보면, 아스날 쉽이 사용하는 주요 타격수단은 주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BGM-109 Tomahawk)을 비롯한 미사일들로, 제트 엔진 등의 추진 장치에 레이더 등의 유도 장치를 탑재하는 이런 미사일들은 항공기가 주로 사용하는 유도 폭탄에 비해 상당히 고가이며 무유도 멍텅구리 폭탄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대량으로 사용되는 유도 폭탄 JDAM이 발당 약 2만 1,000달러인데 비해, 토마호크는 약 57만 달러로 이미 금액의 자릿수 자체가 틀리고, 함재기라면 공중 급유를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침투가 가능하지만 토마호크의 사정거리는 최대 2,000km 정도로 깊은 내륙까지 타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하지만 세계의 많은 주요 도시가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있는 것을 고려하면 무조건 단점이라고 하기엔..)


토마호크와 멍텅구리 폭탄의 가격비교라..흠...


여기에 더해 대량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장기간 지속적인 타격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 첫날, 이라크을 향한 288기의 토마호크 공격 사례나 2003년 이라크 침공 작전 당시엔 무려 800발을 쏴제낀 사례들을 보면, 아마도 아스널 쉽의 보유 미사일들은 교전 개시와 동시에 거의 단박에 소모될 것으로 보였다.

비록, 해상에서 소모한 미사일들을 보급하고 보충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현재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급 플라이트 IIA 이지스 구축함에도 미사일의 해상보급에 사용하는 크레인이 철거된 것 등에 비추어 보면, 해상에서의 미사일 보급과 장착은 현재로서는 매우 곤란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해상에서 미사일을 재장착하기 위한 크레인..효율성 면에서 별 쓸모가..


이러한 점에서 아스날 쉽의 장기간 지속적인 공격을 가능토록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예산으로도 곤란했고, 다양한 미사일의 조합으로 대공 대함 전투 능력도 갖도록 추진되었지만, 목표의 탐색이나 확인 등을 다른 잠수함이나 항공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속성 향상에 연결되는 함대로써의 대처 능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도 아니었고, 대지 대공 그리고 함대 방공 모든 면에서 활약 할 수있는 항공모함에 비한다면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전쟁 추세를 보아하니 첫날에 다 쏴제끼고 쫑날 듯..

  
게다가 비록 일찌감치 항공모함 정도의 활약을 기대한 함은 아니었지만 막상 아스널 쉽을 배치하게 되면 항모 전단을 구성하는 것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호위 전력 배치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인식되었다.
아스날 쉽의 건조 예정 척수는 6척으로 적었지만 일단 이 함의 화력을 관제할 아군의 순양함 급 함정이 같이 행동해야만 하였고, 또한 아스널 쉽이 적의 공격이나 고장 등에 의해 상실되는 것은 곧 아군의 타격 능력이 급감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호위함들과 행동을 같이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흠..항모와 같은 수준의 호위가 필요하다..이건 아닌댕?? -_-ㅋ


결과적으로 항모전단 수준이라고까지는 못해도 그것에 가까운 숫자의 호위함을 붙여야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만큼 다수의 호위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그 정도 숫자의 호위함에 각각 미사일을 탑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또한 위험의 분산 차원에서 생각하면 오히려 저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는데, 100기에 가까운 각종 항공기를 운용하기 위해서 항공모함은 그 대형화가 불가피하지만, 미사일은 소형 함정에도 탑재가 가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덩치에 왕창 싣는 거랑 여러 작은 놈에 나눠 싣는 거랑 뭐가 다른 겨?

 
따라서 위에 나열한 여러 요소들로 인해 아스날 쉽은 당초 구상된 것처럼 비용 면이나 운용 면에서 효율적인 체계만은 아니라는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당연히 이것만 파댄 미 해군 내의 항공병과 장교들은 고작 이런 놈 때문에 항모 전단의 예산을 쪼개고 항모 전력 증강을 억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들고 일어났으며, 각종 언론과 항공병과와 연관된 거대 군산복합체들에 이를 집중 홍보했다.


<다음 편에 계속>



항공모함이나 잠수함도 초반에는 찬밥대우를 받다가 확실한 계기가 있어서 된건데...
언제나 새로운 개념은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죠..
봉달님, 포스팅 감사!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열정^^ 앞으로도 쭈우욱 ~~~ 부탁드려요.
500원은 달아 놓으시고.
곧 계좌번호 쏘겠습니다...
오후 포스팅 언제봐도 즐거운 이제 봤네요 감솨합니다
별말씀을..
아스널쉽, 무척 신박한 아이디어라 생각하고 곧 잊어버렸었는데 따져보니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원래가 완벽한 무기란 없는 법이죠..
장거리 투사수단을 대량으로 채용한 대형함선... 흠...
제눈엔 전함의 발전형에 가까운 함선으로 보이네요
이걸 왜 항모 취급한거지?
과거 전함처럼 바다, 해안, 육지가 뒤섞인 전장에서 쓸모있는 함선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걸프만, 대한민국같은 전장 말이죠

그리고 화력의 총량이 같아도 그 운용은 명확한 차이가 있죠
예로부터 작은 애들은 뭉쳐서 강한 놈을 때리고, 강한 애는 여러 작은 놈을 치는게 상식이니까요
미사일을 함대 전체에 분배해 나눠쓰면 그 화력은 자연히 강자에게 쉽게 집중될테죠
작은 애 개개의 입장에서 자신의 화력은 강자를 향해 쓰는게 이득이니까요
반면 강한 애는 원래 강한 놈을 쓰러뜨릴 능력이 있으니 자신의 힘을 나눠 여러 약한 적을 물리치는게 이득이 될겁니다

그렇게보면 큰 배에 미사일을 잔뜩 운용하는건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공격의 사거리, 정확도가 뛰어나고, 여러 적에게 화력을 효과적으로 분배할 수 있으니 함대와 지상군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장에서 충분히 밥값할만 하다고 봅니다
쓰고보니 해군보다는 해군의 지원을 받는 육군이나 해병대가 좋아할것 같네요

보급상의 난점만 해결하면 아스널쉽 전용의 미사일을 개발해 쓸 수 있을법도 한데...
...여기까지가면 본문이 말하고자하는 내용을 벗어난 일이 되겠네요


일부러 정쟁을 일으키고 그걸 빌미로 조직내 불화를 확대하는 것은 권력투쟁의 상투적 수단입니다
아스널쉽 논란은 전쟁병기로서 가치가 목적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보입니다
이게 해군개혁에 줄 영향은 안좋은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아스널 쉽은 오늘날 줌왈트급 구축함의 기본 개념이 됩니다..
즈즞ㄷㅊㅌㅊㅌㅈㄷㅈㄷ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