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다 보면

봉달이 2018. 9. 11. 14:44

어째 거꾸로 돌아가나? 뒤로 진격의 기무사<끝>




4. 보더 제독의 죽음과 명예


1996년 5월 16일 정오 무렵,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 해군 부지(Washington Navy Yard) 내 주택가에서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당일 오후, 미 해군 당국은 57세의 현직 미 해군 참모총장 제레미 마이클 보더(Jeremy Michael Boorda) 대장이 자신의 집 마당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고 발견된 직후, 워싱턴 DC 종합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응급실 당직 의사는 도착 5분 후인 미 동부 표준시 오후 2시 30분, 이미 그가 사망한 상태였음을 확인했으며 현장에서 유서 2장을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렇게 미 해군 최초로 비 사관학교 출신이자 수병 출신의 참모총장은 임명 2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어이없게도 정복에 다는 “약장(略章 Service Ribbon)”과 관련한 논란 때문이었다.
약장이란 군인이 훈장이나 포장, 기타 장관급 이상의 표창이나 특정 전투에 참전했을 때의 기념 표식 등을 요약해서 옷에 달고 다니는 휘장을 의미한다.


 

명예와 품격이라..흠..그랬으면 좋겠는데..


보더 제독은 미 해군의 사성장군이자 참모총장을 역임했으므로 당연히 많은 약장을 패용했는데, 그 중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베트남전 참전기장(Vietnam War combat decoration)이었고, 그는 이 기장에 '컴뱃 V(Combat Distinguishing Device.. Combat V) 또는 V핀이라 불리는 추가기장을 달았는데, V핀은 실전을 겪은 사람만 추가로 달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논란의 사유가 된 약장 위의 V 장식..

 
보더 제독은 1965년에 구축함 존 크레이그(USS John R. Craig DD-885)의 병기 장교로, 1971년부터 1973년까지는 미사일 구축함 브룩(USS Brooke DEG-1)의 부함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기에 참전기장을 달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하였다(몇몇 자료에서 그가 소해함 패럿(USS Parrot MSC-197)의 함장으로 참전했다는 내용이 보이던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패럿은 베트남 근처도 간 적이 없다..)


보더 제독이 함장으로 근무한 패럿..이걸 타고 베트남에 간 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참전은 했지만 “실전(combat)은 겪지 않았다”는 것으로 실제 전투를 겪어보지 않은 보더 제독이 그 약장을 패용했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한창 몰리던 기존의 기득권자들, 즉, 보더 제독이 참모총장으로 오기 전까지 미 해군을 좌지우지하던 항공대 출신들은 일제히 일어나 이 기장과 관련된 내용을 잡고 늘어졌으며 언론에 제보해 그를 명예롭지 못한 인물로 몰아갔다(이 얼마나 쪼잔한 것들인가?)

 
이게 더 웃기는 것은 해군의 함정이 실전을 겪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상당히 애매한 것으로, 미 해군은 1946년, 전투에서 수행한 임무나 행위와 관련하여 청동 훈장(The Merit of Bronze Star Medal)을 수여받은 자가 약장위에 추가로 “V 핀”을 장착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이후 1947년 2월, 이 장식의 추가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행위 또는 서비스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이 V 핀의 신설은 2차 세계 대전 참전자를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는데 문제는 자격이 있는 2차 대전 참전자들 대부분이 전쟁이 끝난 직후 전역해버렸기 때문에 그들 대다수가 이 핀에 대해 알지 못했고 또한 이를 신청하지도 않았다.


전쟁에서 뺑이친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는데..전쟁 끝났다..그딴 거 필요 없삼~~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 해군은 한국 전쟁에서 발생한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함정이 직접적으로 적과 교전할 일이 거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실전 참가의 기준 또한 모호해졌다.


하지만 보더 제독이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수행한 임무들을 살펴보면 실전 참가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뚜렷한 행동들을 보였는데, 그가 병기 장교의 임무를 수행한 구축함 존 크레이그는 1965년 3월에 베트남에 배치되어 8월 11일 샌디에고로 돌아올 때까지 통킹만(Tonkin Gulf)의 양키 스테이션(Yankee Station 베트남 전 당시 미 해군 항모가 거의 상주하며 작전을 수행하던 지역..)에서 항모를 보호하기 위한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1965년 7월 29일, 구축함 존 크레이그는 다낭(Da Nang) 인근 해변에서 고립된 미 해병 제 3 사단 2 대대 H 중대 3 소대의 다급한 구조 요청에 응답, 해변에 접근하여 병기장교 보더 대위의 지휘 아래 5인치 함포 348발을 사격, 압박해오는 베트콩들을 저지하고 고립된 해병대원들을 구해냈으며, 그는 이 공로로 해군 표창(Navy Commendation Medal)을 수여받았다.


양키 스테이션 보호와 함포 지원 임무를 수행한 존 크레이그..


이후 보더 제독은 미사일 구축함 브룩(USS Brooke DEG-1)의 부함장으로 1972년 11월부터 1973년 2월까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브룩의 함장 윌리엄 피바르닉(William Dyer Pivarnik) 중령은 그에게 마찬가지로 해군 표창을 추천, 제 7 함대 사령관의 승인을 거쳐 두 번째 훈장이 수여되었다.
이 훈장의 표창장에는 “1971년 12월 15일부터 1973년 2월 20일까지 브룩에 부임하고 복무하는 동안 ”전투 작전들을 포함하여(including combat operations)“ 많은 임무와 여러 공적들을 이뤄냈기에 이 훈장을 수여함.”이라고 적혀있다.


보더 제독이 두번 째 해군 표창을 수여받은 미사일 구축함 브룩..

  
이렇게 보더 제독의 베트남 전 참전 내용을 꼼꼼히 뒤져보면 그의 실전 참가 유무를 두고 굳이 딴지를 걸 필요도 없어 보이고, 만약 그의 약장 V핀의 장착이 불명예스럽고 편법이었다면 오늘날 미 해군의 저런 기장 착용법에는 심각한 본질적 문제가 있음을 발견해 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저 컴벳 V 기장을 착용할 수 있는 자격을 오늘날 미 해군 내에서 갖출 수 있으려면 그 대상이 지극히 좁아지고 그 계층도 극소수 집단에 국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조건이 이상해지면 받는 놈만 받게 된다..등에는 왜 훈장이 없나용??


저 V핀의 자격 요건을 정한 시기는 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일로 당시까지만 해도 적함과 직접적으로 교전을 벌여야만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대상자 또한 광범위했고, 결국 대부분의 함정 승조원이 전투에 참가했기에 적과 직접적으로 교전을 벌인 대원에게 좀 더 나은 명예를 부여하고자 저런 특정 기장을 만든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지구상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했던 미 해군의 함정 승조원은 더 이상 적과 직접적으로 포탄을 교환하며 전투를 벌일 일이 없어졌고, 또한 기술과 전술의 발달로 오늘날엔 제 3 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더더욱 그럴 일이 없다.


2차 대전 때야 그랬지만 지금은...


이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도 마찬가지였으며 만약 항공대 출신들과 일부 늙다리들이 주장했던 바대로 “적과 직접적으로 교전하고 화력을 교환하는 것”이 실전 참가의 의미라면 베트남전을 대입해 봐도 기장 착용 가능자의 범위는 극도로 좁아진다.
즉, 저런 식의 규정을 대입하면, 비록 게릴라전이 베트남전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 하겠지만 막대한 전력을 쏟아 부은 정규전이나 마찬가지였던 베트남전 당시의 미 해군에서도 컴벳 V 기장의 착용이 가능한 자는 네이비 실과 해군 소속 하천경비정 대원들 그리고 항공대 파일럿에 국한되게 되는 것이다(오로지 이들만이 직접적으로 적과 교전이 가능했기 때문에..)


베트남 전에서 그 조건을 맞추려면 이 둘과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 해군에서 거의 유일하게 논란의 여지없이 이 장식을 달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집단이 바로 미 해군 항공대 파일럿들이었고 그들은 그들만의 특권의식으로 집요하게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전투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더는 전투 현장에 있었고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배가 피격 당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It was not sufficient just to be in a combat theater. Boorda was in a combat theater. There was no question about that. But there is absolutely no evidence that his ship was ever shot at)”


해군에서 전투 V를 달 수 있는 유일한 거대 조직..항공병과 파일럿..


더 웃기는 사실은 보더 제독의 실전 참가 여부와 상관없이 베트남 전쟁 당시 그의 지휘관이자 해군 참모총장이던 엘모 줌왈트(Elmo Zumwalt) 제독이 보더 제독과 전투 참가 경력이 있던 일부 대원들을 위해 V핀의 착용을 구두로 허가했다는 사실이다(당시 그가 전투에 참가한 일부 부대원 전체에 V핀의 착용을 허락했고 보더 제독도 상관이 허락했으니 그냥 패용해도 되는 건줄 알고 있었다는...문제는 구도로 했다는 것이 문제..)
그러나 항공대 출신 인사들은 V핀을 착용하려면 이를 인증 할 수 있도록 표창장에 서명된 승인이 필요하므로 규정에 위반된 보더 제독의 행위는 부적절의 차원을 넘어 사기에 가까운 불명예스러운 행위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고, 매스컴을 통해 이를 공론화하기 위한 모종의 작전까지 벌였다.


내가 달아도 된다고 했어~~ 당시 참모총장 엘모 줌왈트..

 
그들의 제보로 마침내 뉴스위크 매거진의 베트남전 참전용사(그것도 공수부대 대령..) 출신 기자 데이비드 해크워스(David Hackworth)가 이의 적절성 유무를 두고 조사에 착수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보더 제독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미 그는 해크워스의 조사가 시작되기 1년 전에 그 기장을 착용할 “적법한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며 그 직후 스스로 두 개의 V핀을 착용하는 것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압박이 심해지고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자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선택을 하게 된다.


참전 용사에다 공수부대 대령 출신..이런 사람들 대충 어떤지 알지? 꼬장꼬장..


결국 항공대 출신 장교들이 보더 제독이 일부러 거짓 약장을 패용한다고 언론에 뻥튀기 제보를 날리자 어쩌면 해프닝에 지나지 않으며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문제가 엄청 부도덕한 행위인 것처럼 과장되었으며, 이를 이유로 하극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를 철저히 왕따시키는 “기수열외”까지 서슴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V를 달려면 서류가 필요하다고! 보더는 사기꾼! 뭐 그랬다는..


그의 불행한 선택 이후 그와 절친했던 한 익명의 해군 장교(익명..이것이 중요하다..기존 권력에 저항하면 그것이 어떤 불이익으로 돌아오는지..)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아무리 정직한 실수(honest mistake)였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는 해군의 격렬한 저항에 계속 부딪혔을 것이고 이는 미친 짓거리임이 분명하지만 그는 그의 앞날에 대해 깊이 번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자살을 선택했다..)”


정직한 실수도 불명예다..아래는 그에게 허락된 약장..

 

그는 매우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었지만, 같은 조직 내의 반대파들로부터 V핀 착용이 명예 훼손이라고 공격받자 결국 스스로를 불명예스럽다고 믿어버렸으며, 매우 극단적한 조치를 취할 도덕적 용기 또한 가지고 있었음이 문제였다.


또한 이제 막 권력을 잡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보수정권으로부터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던 해군을 엎어버리기 위해 테일후크 스캔들을 빌미로 위해 기존 세력과는 출신에서부터 거리가 먼 그를 무리하게 기용한 측면도 컸다.
당시 해군의 중요 고위 보직들엔 항공병과 출신 장교들이 막강한 기틀을 잡고 있었고, 거기에 그나마 해사 출신을 임명했으면 몰라도 해사 출신도 아닌 수병 출신인 그를 딸랑 집어넣었으니 딱히 빽이 되어줄 배경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엄청난 저항과 왕따 현상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해군 영감탱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걸 해보자 그랬는데..


어쨌든 그가 이런 불행한 선택을 하자 클린턴 행정부도 결국 과거로 회귀해 F-14 톰캣 파일럿 출신으로 기존 실세인 항공병과 출신의 해군 참모차장 제이 L. 존슨(Jay L. Johnson) 대장을 후임 참모총장으로 임명하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결국 미 해군 항공대의 승리, 즉, 자신들의 기득권을 이용해 반란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때 임명된 제이 존슨 제독 이후 정통 항공병과 출신의 미 해군 참모총장은 더 이상 배출되지 않고 있다.
이는 유력한 참모총장 후보군에 테일후크 스캔들 등으로 인해 항공병과 인맥이 싹싹 썰려나가며 유력 후보가 없어진 탓도 있지만 이때 항공대 출신들의 갑질에 이후 들어선 정권들이 학을 띠며 이것들을 최소한 참모총장이라는 대가리는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나름의 요령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정통 항공병과 출신 미 해군 참모총장 제이 L. 존슨..

 
테일후크 스캔들과 보더 제독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조직이라도 일부 계층에 권력이 집중되면 분명히 특권의식이 발생하며 이의 개혁에는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례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기무사 대소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발하였고 이 꼴 보기 싫은 작태는 또 다른 커다란 후유증을 남기게 될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앞의 보더 제독 사례에서 보듯이 같은 조직 출신이 아니라고 같은 군 출신이 아니라고 상관을 개무시 한다면 이는 군인으로써 더 이상 군복을 입고 있을 자격이 없으며 그들이 강조하는 명예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군에서 강조하는 철저한 상명하복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복종해야 하는 것인지가 더 중요하며 그것이 명예로 직결됨을 스스로 자각 해야만 할 것이다.


명예란 무엇인가?

  
이전에 문민 통제와 관련해 포스팅한 뻘글(http://blog.daum.net/mybrokenwing/708)에서도 밝혔지만 명예란 명예로운 복종에서 나오며 만약 오늘날 우리 군의 고위층을 차지한 이들이 단지 자기 군 출신, 자기 조직 출신에게만 복종해야 한다는 꼴통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명예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이 시대 군의 명예는 대의 민주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국민에 대한 복종에서 비롯되며 이는 시스템의 확립에서 보장되고 만약 당신들 스스로가 세운 전통이란 게 앞서 언급한 저따위 것이라면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닐 듯싶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군의 경우, 시스템 자체가 철저한 문민주의를 지향하고 있고 아직 국방부 장관까지는 아니지만 각 군을 통괄하는 장관 자리엔 이미 여러 여성 장관까지 배출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미 국방부 조직도..각 군 참모 총장 위에 군 장관이 있다..


만약 현재 우리 군의 전통(?)이 맞다고 치면, 높디높으신 참모 총장님네들께서는 군대도 안 갔다 온 치마 두른 아낙네의 명령을 받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때도 지금처럼 명예를 위해 아득바득 게길 것인가?    


직전 미 공군 장관 데보라 제임스와 현직 장관 헤더 윌슨.. 미 공군은 망한 거냐?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보더 제독의 유서 중 일부 공개된 부분을 남기고자 한다.


“사랑하는 제군들. 나는 해군의 핵심 가치인 “명예와 용기 그리고 헌신”과 관련하여 내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My Sailors. I cared about the core values of the Navy, honor, courage and commitment. And about how I would be viewed)“


우리도 고민이란 걸 좀 해보자.


명예란 걸 안다면 말이다..


...비극적이지만, 예상대로군요
일부러 정쟁을 일으켜 불화를 확대하는건 권력투쟁의 상투적 방식입니다
상대의 일처리를 비난하는 동시에 정치적/도덕적 흠결을 공격하는 것은 이미 교과서에 4대 사화라는 모범적인(?) 본보기가 있죠

미해군은 개혁의 본질이 권력장악이라는 것을 간과하여 좌절했네요
사실 개혁의 모범답안은 종교개혁에 대항한 천주교 자체정화라고 봅니다
공의회를 통해 새로운 규범의 마련,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기용, 예수회를 비롯한 외방 및 방인 수도회의 강화, 새로운 인재양성과 동시에 인력의 대대적 물갈이

미해군은 첫번째도 확실히 처리하지 못했는데 뒤의 2개는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지도자 개인에게 너무 많은걸 걸었습니다
보더 제독의 비극은 미해군의 성급함과 안일함이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개혁의 본질은 특권계층을 무너뜨린다는 것 - 권력장악이야말로 핵심이란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특권계층을 대체할 교리도 출중하지 않았고, 대체할 인원도 준비되지 않았으니 지도자 혼자 잘났어도 한계는 명확할 수밖에...
그나마 사후대책을 보면 개혁에서 인사권 장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깨달은것 같지만요

기무사 개혁은 필연적으로 권력투쟁이 될 것이며, 그 과정에 인의도 명예도 없는 개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한국은 개혁 지도자에게 명확한 지침과 함께 방대한 인적 지원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제2의 보더제독꼴을 보지 않으려면요
아~
약장하나 잘못붙여서 자살한 장군 이야기는 들어보았습니다
미국은 정말 명예롭고 윗사람이라도 사소한 잘못하면 얄짤없구나~
정직한 사회, 부럽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면이 있었군요
고 노무현대통령과 고 이회찬의원님이 떠오르네요...
결국 여기도 송영무 장관이 경질 되었군요.
군개혁의 최고 적임자로 인정되었던 사람마져 불명예스럽게 경질된다면
그 후임이 누구의 눈치를 볼까요. 형식적 인사권자?
아니면 실질적으로 자신을 올려준 그리고 자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볼까요.
참 갑갑합니다.
유감스럽지만 감당할 수 있는 손실로 여겨야합니다
개혁은 길디긴 게임입니다
인내심이 필요하고, 냉혹함도 필요합니다 - 비참한 결과를 예상해도 아군을 사지로 몰아넣어야해요
현 상황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개혁을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송영무 장관이 입각할 때,
"제대로 된 국방개혁은 물건너 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해/공군이 국방장관, 합참의장을 하게되면, 육군에 의해 왕따를 당합니다.

국방개혁은 결국 비대한 육군을 쳐내는 작업인데,
이는 육사출신의 강력한 장악력이 있는 장군이 아니면 기존 육군장군의 반발을 극복하고 개혁을 수행하기 힘들겁니다.

육군장군들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그런 사람을 발굴해 내서 개혁을 진행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다시 공군출신 장관 후보자가 내정되었는데,
국방개혁은 송영무 장관때와 비슷하게 진행될 듯 싶습니다.

국방개혁에 성공해서 해/공군의 세력이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비육사 장관뿐만 아니라, 민간인 장관, 심지어 여성장관까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 장관은 개혁 이후에, 민간인 위주로 나오면 좋겠죠.
국방차관은 미국처럼 회계사같은 경영전문가가 하고.

그나마 지금까지 송영무 장관이 초안 잡아놓은 것들이 나가리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애초에 한국에서 그런걸 바라다니. 한참 멀었구나. 마지못해 병영에 있는 징집병으로 이룬 군대에 개혁은 무슨 개혁이야?
9.11일 '진격의 기무사6' 포스팅 이후로, 자그마치 보름간 새로운 포스팅이 안되다니....
게으른 봉달님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언제부터 인지 염치없게도, 봉달 쥔장이 매주 포스팅 하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네요 ㅋㅋㅋ
쥔장님, 추석명절 연휴는 넉넉하게 잘 보내셨는지요? ^^
북한 놈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지에까지 휘장을 패용한게 뭔가 매우 ♬~~같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