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산도 출입문을 만든 까닭을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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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2010. 7. 13.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http://cafe.daum.net/masanstory) 진해 3차 탐방이 7월 3일 토요일 오후에 있었습니다.

글을 이제사 올리는 까닭은 풀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골왜성(역시 문화재청에 질문을 올렸는데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습니다.) 탐방 후 탐방대원들은 승용차로 용원의 망산도로 갔습니다.

망산도를 지난해에 포스팅(http://blog.daum.net/mylovemay/15533350) 했지만 새로운 풍경을 만났기에 올립니다. 

망산도/유주암/유주비각

 

망산도, 유주암, 유주비각의 유래를 살펴보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되어 있는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아유타국의 허황옥공주와 관련되어 있다.

 

가락국기의 내용을 보면, 건무 24년 무신년 7월 27일에 구간등이 아뢰기를 대왕께서 강림하신 이래로 좋은 배필을 얻지 못하시었으니 신등이 처녀중에 절묘한 자를 궁중에 뽑아 들여 배필을 삼으소서 라고 하니 왕께서 이르기를 내가 여기 내려온 것은 하늘의 뜻이요. 나의 배필로 왕비가 되는것 또한 하늘의 뜻이니 그대들은 염려하지 말라 이르고는 드디어 유천간에서 명하여 경주와 준마를 가지고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하는 한편 신귀간에게 명하여 승점으로 가게 하였다. 홀연히 바다 남서쪽에서 붉은색의 돛을 달고 붉은 기를 휘날리며 북쪽을 향해서 오는 배가 있었다.

 

유천등이 먼저 망산도에서 횃불을 드니 앞을 다투어 하륙하려 하였다. 신귀가 바라보고는 대궐로 달려와서 왕께 아뢰니 왕이 듣고 기뻐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용원의 부인당을 공주가 도래한 곳으로, 말무섬을 유천간이 기다린 망산도로, 쪽박섬에서 공주가 타고온 돌배가 뒤집힌 것으로 보아 이를 기념하는 유주각을 세웠다. 유주각은 융희(융희(隆熙)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의 연호(1907~1910), 1909년에 세움.) 2년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로 건축하였다. 비각안의 유주비는 비신이 높이 1.75M, 폭 0.765M, 두께 0.35M의 석비로 '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허씨유주지지'라 새겼다.(출처 : 진해 문화관광 홈페이지 : http://tour.jinhae.go.kr/02heritage/02_06.asp

 

녹산공단이 만들어지면서 용원 앞바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로와 겨우 3~4m정도의 거리인 섬(산)이 바다에 있다는 이유로 경남 문화재가 부산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진해의 풍경으로 올려야 하는 망산도와 유주암 이야기, 더불어 유주각까지 블로그 카테고리를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관계자들 또한 고민을 거듭했겠지만, 행정구역 개편은 지역민으로서 받아들이기에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탐방대원이 7월 3일에 만난 망산도 입구입니다.

 

 

아래 두 컷은 예전의 풍경입니다.

 

                                                ▲ 경남지방기념물 제 89호

 

 

                                      ▲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 57호

 

부산의 문화재로 되었지만 지난해엔 망산도 출입이 가능했습니다만, 7월 3일 방문을 하니 출입문이 생겼으며, 열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기에 탐방대원들은 완전 뜨악했습니다.

그나마 출입문과 망산도 사이의 시멘트가 걷어진 건 잘 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멀뚱이 바라보며 허황후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다음 장소로 이동 했습니다.

 

탐방후 며칠간 앓았습니다. 많이 더웠던 탓이었는데, 며칠 지나(7월 8일) 부산 강서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구청장에게 질문하는 페이지에 글을 올렸더니, 오늘 오전에 부산 강서구청에서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답변을 올려두었지만 관리의 어려움을 한 번 더 말씀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에 어려움없는 일이 어딨겠습니까.

그래서 관리감독청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물론 진해에서 관리를 할 때도 망산도는 쓰레기와 취객, 무속인의 출입으로 엉망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출입문을 만들어 열쇠를 채우지는 않았습니다.

강서구청에서 망산도 방문시 연락을 하면 언제든지 문을 열어 안내를 해 준다고 했지만, 우리 사는 일이 단체를 제외한다면 언제 망산도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살지는 않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우리것을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는데, 문화재란 한 번 훼손되면 복구가 불가합니다.

물론 이는 4대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의 문화재 담당자들과 김해의 김해 김씨 문중은 망산도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김해와 부산을 흐르는 낙동강변의 문화재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져봤는지 묻고 싶습니다.

 

                          ▲ 도시탐방 대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