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정원인 진주 용호정원과 용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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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2021. 7. 23.

7월 18일

비실 연꽃마을을 나온 우리는 마을 입구의 용호정원으로 갔습니다. 용호정원 관람 후 비실 연꽃마을을 찾는 게 맞는데 연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연꽃마을부터 찾고 용호정원으로 갔습니다.

용호정원(龍湖庭園)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6호로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25-2번지에 위치하며,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전통정원으로 면적은 10,618㎡입니다.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자결한 충정공(忠貞公) 박심문(朴審問)의 18 세손 박헌경(朴憲慶)이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 해마다 거듭되는 재해로 굶주림이 심하자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현재의 취로사업 형식을 취해 토지와 현금을 주어 이 정원을 조성케 하였다고 합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 한 사람의 결단이 지역 주민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용호정원은 중국 쓰촨 성 동쪽에 있는 무산의 높고 아름다운 12개 봉우리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며, 가산(假山) 가운데의 용호지에는 용호정(龍湖亭)이라는 팔각정자를 세웠는데, 당시 용호정을 먼저 만든 뒤 연지(蓮池)를 팠고 파낸 흙으로 12개의 가산(假山)과 둑을 쌓았다고 하는데, 용호정원은 한국 전통정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용호정원은 소유주 개인을 위한 정원이 아니라 마을 공동의 정원인 듯 논과 정원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담장이 없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비석군과 배롱나무 꽃과 잘 어울리는 용호정원이 보입니다.

 

용호정원으로 가는 길에는 꽃창포가 열매를 맺었으며 부들도 아름답게 익었습니다.

 

부들입니다.

부들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여름의 호수를 서정적으로 장식하는 수초가 바로 부들인데, 꽃꽂이 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 이삭은  기다란 소시지처럼 생겼습니다.

잎은 길고 날카롭지 않으며, 부들은 만져보면 아주 딱딱한데 언젠가 그 속이 궁금하여 베어 둔 부들이 있었기에 반으로 꺾어보니 생각 외로 쉽게 꺾였으며, 솜털이 솜사탕처럼 보송보송 피어올라 부들 속의 궁금증을 풀기도 했습니다.
옛날부터 부들 줄기를 갈라 짠 돗자리는 최고급으로 쳤다고 하며, 잎은 말려서 자리를 짜거나 발, 멍석을 만들었으며, 또 방석, 소쿠리 등을 짜면 오래도록 쓸 수 있고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아 감촉이 좋다고 합니다.

 

용호지변에 노리랑가가 있었습니다.

노리랑가는 2008년 진주문화원에서 박헌경 선생의 아드님인 청랑 박봉종 선생의 향토문화창달과 보전에 힘쓴 공을 기려 공이 노래했던 노루묵 언저리에 시비를 세웠는데, '노리랑가'는 민족의 고난과 함께 했던 대표적인 노래 아리랑 곡조에 겨레의 애환을 담은 노래 시로, 더구나 노리랑가는 일제 강점기 나라 없는 설움과 고향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노리랑가(歌)/ 청랑 박봉종

노리랑 노리랑/ 노라리오
노리목 고개로 넘어오소

 

용산사에서/종소리나고/정화수천변에 너 기다린다

 

용호정지에/원앙새 쌍쌍/ 실버들 휘날려 님 생각이오
같은 마음 열두 봉우리(如意十二峰)/바위틈 기슭/ 꽃들만 피어서/ 가슴만 섧소

 

노리랑/노리랑/노라리오
노리목 고개로 넘어오소

 

가산앞에 용호정원 안내 표지석이 있었습니다.

 

가산과 배롱나무 꽃에 싸인 용호지와 용호정입니다. 아쉽게 연꽃이 아직 피지 않았으니 혹여 용호정원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조금 시차를 두고 방문한다면 연꽃이 핀 용호정원을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용호정이 연못 가운데에 있다보니 가는 길이 없습니다. 근처에 나룻배가 있긴 했지만 주인의 허락없이 만질 수가 없지요.

 

용호정을 중심으로 가산을 돌아봤습니다. 앞쪽의 비석군과 달리 뒤쪽에도 비석군이 있었는데 1기는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용호정은 지역 시인 묵객들의 시회(詩會) 연회장으로 이용됐는데, 시인 묵객들이 무산 십이봉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시문이 12기 비석과 사각 석주에 새겨져 있습니다.

 

龍湖亭이 궁금하여 가산에 올라 용호정을 찍었습니다.

 

용호정 마루에 앉아 연꽃차라도 마신다면 신선이 따로 없을 듯한 풍경입니다.

 

배롱나무와 용호정 사이에 고택이 보이는데, 박헌경 공의 고택인 용산재(龍山齋)로 둥실한 산 아래 아늑하며 용호정은 이 고택의 바깥 정원인 셈입니다.

 

부들과 연꽃이 있는 풍경을 따라 용호재로 갑니다.

용호재로 가는 길에 만난 공덕비입니다. 배롱나무 꽃이 핀 곳이 용호지입니다.

부를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나눔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그의 행동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감사의 표시로 공덕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용호재에 다다랐을 때 뒤를 봤습니다. 용호재의 용호정원은 어디가 시작이며 어디가 끝일까 하면서요.

 

용호정원을 만든 밀양 박씨 문종 박헌경(朴憲慶 1872~1937)공의 고택인 박씨고택(용산재)은 박헌경 선생이 조상을 위해 마련한 재실인데 지금은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밖에서 볼 때는 으리으리할 듯했는데 열린 대문을 들어서니 누추했습니다.

몇 번 "계세요"하니 말씀이 어눌한 노인 한 분이 쪽문으로 들어오셨는데 문패의 후손인 박우희 선생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듯했으며, 방에서는 안주인인듯한 분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옛 물건)가져갔다면서 출입을 극히 꺼렸습니다.

하여 인사를 하고 나오니 박우희 선생께서 나오시며 말씀을 하셨는데 소통이 불가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이 어눌했지만 문화재로 인해 건물 수리나 보수 등이 불가하다는 말씀인 듯했습니다.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은 익숙한 한국인에게도 감동과 자부심을 주는데 그곳에 머무는 이가 불편하면 안 될 듯한데,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많은 부분에서 소외감을 느껴야 하니 이런 부분은 관에서 신경을 써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