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 국립 진주 박물관과 쇄미록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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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30.

7월 18일

촉석루를 지나 영남 포정사 언덕을 넘으면 자연 속에 어우러진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옵니다. 국립 진주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은 진주성의 경관을 파괴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 속에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는데, 주변 경관보다 낮으면서도 석탑의 형상으로 되어 있어 경건함이 묻어납니다.

1,500평 규모에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된 박물관은 상설전시실인 '임진왜란실'과 '역사문화실', '두암실', '야외 전시실'이 있습니다. 1984년 개관 이후 가야 지역의 역사 유물을 전시했으나, 1998년에 국립박물관 중 최초의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진주 박물관은 전시 활동 외에 유적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는데 거창 말을 리 고분군(1985), 합천 죽죽리 폐사지(1985), 통영 연곡리 패총(1988·1989·1990), 통영 욕지도 패총(1988∼1989), 고성 율대리 고분(1989), 창녕 여초리 요지(1990·1991·1993), 통영 연대도 패총(1991∼1992), 진양 무촌리 폐 고분(1991), 창원 상곡리 와요지(1991), 진양 무촌리 고분군(1993), 고성 동외리 패총(1995), 하동 목도리 유적(1996), 남강댐 수몰지역 내 대평리 옥방 1 지구(1997), 진주성내 선화당터(1997) 등 20여 건을 조사하였습니다. 또 1998년까지 거창 말흘리, 통영 욕지도, 창녕 여초리, 통영 연대도 유적 등 10 책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간하였으며, 조사 및 연구 활동이 미흡한 서부·내륙 경상남도의 문화·역사 연구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대학교만큼 중요한 게 있다면 박물관입니다.

 

진주는 배롱나무의 도시처럼 배롱나무 꽃이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쇄미록'전시 안내가 걸려있기도 했습니다.

 

곳곳에 임진왜란 당시 장군과 의병장의 어록이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박물관 옆에는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국보 제105호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석탑입니다. 높이 4.8m이며 화강암 석재로 건조된 이 석탑은 본래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범호사(泛虎寺)라고 전칭되어오는 사지(寺址)에 일찍이 무너져 있었는데, 1941년경 대구의 일본인 골동상이 구입하여 일본인 공장에 옮겨놓았던 것을 당국이 압수하여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2018년 11월 국립진주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국립 진주 박물관 전시실입니다. 그동안 코로나 19로 문학관과 박물관 등을 관람하지 못 했었는데 진주 박물관은 관람이 가능하여 참 다행이었습니다.

진주 박물관은 임진왜란 전문 역사 박물관이라고 했습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을 말하는데, 1597년 제2차 침략전쟁은 따로 '정유재란'이라고 부릅니다.

임진왜란실은 임진왜란의 발발 배경과 조선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전쟁 중 사용된 무기와 일본군의 전략 및 점령 정책을 전시해두었습니다. 이어 우리 의병의 활약상과 수군의 승리, 명나라 군대의 참전 내용과 진주성에서 벌어진 전투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연승하며 종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과 당시 사용한 거북선 모형,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의 전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사용한 무기들입니다.

이름도 어려운 비격진천뢰입니다.

 

휴대용 화기인 조총과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는 보물 제 859호인 중완구는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화포입니다.

 

왜구를 벌벌 떨게 한 거북선입니다. 진주 박물관을 관람하면 우리나라 국민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여러 모습입니다.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해적처럼 생겼는데,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표준영정이 있습니다. 월전 장우성 화백이 1953년에 그린 이충무공의 초상화로 정부에서 이 영정을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했으며 원도는 현충사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곳곳에 쇄미록 전시 안내가 걸려 있었습니다.

쇄미록(瑣尾錄)은 조선 중기의 유생 오희문(吳希文 : ?~?)이 임진왜란 때 홍주·임천(林川)·아산(牙山)·평강 등지를 피난하면서 전란 상황과 사회상을 적은 일기로 보물 제1096호이며 7 책으로 쇄미록이라는 이름은 〈시경〉의 '쇄혜미혜유리지자'라는 구절에서 딴 것으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나그네'라는 뜻에서 피난의 기록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591년(선조 24) 11월부터 1601년 2월까지의 전쟁에 관한 기사는 물론 당시 각 계층의 생활상, 군대징발과 세금 징수, 군량 운반 등 구체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亂中日記)가 전쟁중에 쓴 일지라면 쇄미록(瑣尾錄)은 민간인의 일상을 기록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글귀입니다.

 

요즘 박물관은 참 친절합니다. 대부분 영상으로 안내와 소개를 하며 다시 읽고 싶거나 보고 싶은 장면은 다시 또 읽고 볼 수 있으며, 주요 장면을 보고 싶을 때는 또 그 부분만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쇄미록 전시는 8월 15일까지이니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진주성과 함께 진주 박물관 관람을 해 보는 것도 더위를 피하는 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다 보니 시설이나 이런 곳에 가더라도 인파가 붐비지 않습니다.

 

국립 진주 박물관은 1984년 개관 이후 가야 지역의 역사 유물을 전시했으나, 1998년에 국립박물관 중 최초의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가야와 신라 시대의 토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출입문에서 보는 박물관 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