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의 눈물, 강화도 광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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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2019. 12. 20.

1871년 미국이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며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로 침공 하여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 한후

이 곳 광성보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미군을 이길수가 없었으나

한사람도 물러섬도 없고 한사람의 탈영병도 없이 싸우다 어재연 장군과 동생 어재순을 비롯한 많은 군졸들이 장렬히 순국 하였다

이른바 신미양요(辛未洋擾) 이다





안해루, 1745년 (영조21년) 성을 고쳐 쌓은후 안해루 광성보의 입구이다










쌍충비,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에서 순국한 어재연 장군 외 59명의 순절비









무명용사비, 전투가 끝난 후 미해병대 장교가 쓴 글에는

"우리는 노후한 무기를 가지고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수 없을 것이다" 라는 기록을 남겼다. 삼가명복을 빕니다





신미 순의총(辛未 殉義塚), 미군과 격전을 버리다 전사한 51몀 군졸의 신원은 알수가 없어 7기 의 분묘에 합장하였다

최후에 한명까지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며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전사한 자랑스런 우리민족의 호국정신을 보여 주었다

묵념으로서 예를 표하고 사진을 찍었다





손돌목돈대(孫乭項墩臺), 조선 숙종5년에 만들어진 돈대로서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한 백병전이 있었던 곳이다










돈대의 넓이는 230평 정도에 성곽의 길이가 108m 이다





손돌목 백병전에서 순국한 조선군인들                                미군에게 빼앗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2007년 임대형식으로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으로 왔다





광성포대, 해안수비를 위하여 설치된 방어시설










용두돈대(龍頭墩臺),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로서 고종8년에 포대가 설치되고 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미 해병대에 점령 당한 돈대















소포(小砲), 포탄을 장전한후에 뒤구멍에 점화하여 발사 하며 사정거리는 300m









신미양요에 참가한 미군 전투함 모노카시 호 (퍼온사진)



미국과의 만남은 이렇게 험하게 이루어 졌지만

그후 79년후 한국전쟁때 큰 도움을 받은 역사적 사실도 잊지 말고

좋은 우방으로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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