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한인들

무지한 2012. 10. 18. 13:30

▲ 195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다.

양씨가 실리콘밸리에서 유명세를 떨친 것은 마이사이먼닷컴 때문이었지만 처음부터 창업의 길에 나선 것은 아니다.

    이민 후 실리콘밸리에 정착한 양 씨는 애플이나 시스코 등 현재 정보통신업계 선두업체들의 성공신화를 보고 자랐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엔 대기업에 입사했다. 제록스를 거쳐 삼성전자 미국 법인 등에서 먼저 일을 시작했던 것.

    그러던 중 아내가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상품의 가격이 모두 달라 불편해 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마이사이먼을 시작했다.

    양 씨가 초기 투자자금 2만5천달러와 아이디어를 냈고, 검색엔진 전문가인 윤여걸 씨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참여해 60대40의 지분으로 창업했다.

    하지만 '창업과 혁신의 메카'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창업이 녹녹한 것은 아니었다.

    창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실리콘밸리 내 벤처투자가를 200차례나 찾아갔지만 단 5곳을 제외하고 무려 195차례나 거절당했다.

    무엇보다 전문 투자가인 벤처캐피털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정말 안 되는 것인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좌절감도 컸다.

    "그래도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다. 당시 온라인 상거래가 많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소비자들이 쉽게 상품 검색을 하고 가격비교를 하는 서비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됐고 이를 잘 기술적으로 구현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런 확신으로 인해 비록 밥 먹듯 거절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씨는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동양인으로서 힘든 부분도 있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창업했다고 무조건 성공가도를 달린 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지분이 60%였으나 벤처투자가들의 투자가 시작되면서 지분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각 직전에는 17%에 불과했다.

    이러다 보니 투자자들과 이해가 달라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마이사이먼 기업공개(IPO)를 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좋은 인수제안이 오니까 투자자들은 일제히 회사를 팔자고 했던 것.

    그는 "기업경영이라는 게 롤러코스터와 같다. 세상이 모두 내 손안에 있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완전히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묘한 것은 투자자들의 주장에 밀려 그때 회사를 매각한 것이 오히려 행운이 됐다는 것이다.

    매각할 때는 아쉬웠지만 막상 매각 직후 닷컴버블이 꺼지기 시작해 그 시점을 놓쳤으면 그러 인해 경영난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고 종국에 매각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고 했다.

    양 씨는 당시 7억 달러에 회사가 매각되면서 주변에서는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생각만큼 많은 돈을 번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매각 전에 이미 지분이 많이 줄어있었고, 당시 인수기업인 씨넷으로부터 주식교환형태로 주식을 매각대금으로 받았으나 버블이 꺼지면서 한때 80달러까지 하던 씨넷 주식이 1달러까지 폭락한 것.

    또 증시폭락으로 자산관리가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양씨는 선교단체 등에 각종 기부를 하고, 세금을 제했더니 남은 자산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사실 양 씨는 이런 부분들을 제하고 실제로 얼마 정도가 손에 남았다고까지 말했지만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자금도 비컴닷컴을 창업하면서 거의 대부분 투자한 상태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양 씨에게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물었을 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창업을 하다 보면 경영난에 빠지거나 실패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이혼의 아픔이 훨씬 컸다"고 털어놓았다.

    양 씨는 "마이사이먼을 매각한 직후였는데 사업 때문에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매결혼을 했는데 서로 너무 맞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카운슬링을 받는 등 서로 노력했지만 양쪽 모두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당시 신앙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낸 후 지금의 아내와 만났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14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진심으로 믿기 시작한 것은 이혼의 아픔을 겪은 시점인 2001년부터였다"면서 "신앙심으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 씨는 이때부터 관심사에 대한 우선 순위를 매긴다면 일은 종교와 가족에 이어 3순위라고 덧붙였다.

    양 씨는 '항상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I can do all things through Him who strengthens me)'<빌립보서 4장13절>라는 성경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양 씨가 이 부분을 얘기할 때는 마치 신앙간증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